소설리스트

슬레인 자작, 그리고 어쌔신 (6/37)
  • 슬레인 자작, 그리고 어쌔신

    “크롤라이드 님, 수고하셨습니다.”

    성공리에 2번째 저수지 공사를 끝내고 예상했던 공기 보다 15일 이상 앞당긴 결과에 후버와 크롤라이드, 아카이브 모두 만족스런 웃음을 지었다.

    보를 건설하는 기간이 남아 있지만 두 곳 모두 다 해서 총 한 달 이상의 공기를 앞당겼기에 3명의 마법사는 모두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흠흠! 이제 전위차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면 되는 건가?”

    “스승님께서도 전위차 이용에 대해서 실제로 실험해보고 싶으신 것이로군요.”

    “흠흠. 그럼 아카이브 너는 기대 되지 않느냐? 소규모 실험이 아니라 대형 관에서도 생각한 대로 잘될지 아닐지에 대해서 궁금해서 나는 참을 수가 없구나.”

    “저라고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단지 저는 살아갈 날이 많다보니 여유가 있는 것이지요.”

    “그러는 네놈이야말로 요즘 연초를 뻑뻑 피던데 막판에 스퍼트를 올리는 것 아니냐?”

    “푸핫! 스승님 그건 너무하십니다.”

    가끔가다 이렇게 둘은 서로 다소 짓궂은 농담을 주고받곤 했다.

    이 역시 아카이브가 6서클의 마지막을 보면서 크롤라이드가 아카이브를 제자가 아닌 한 명의 마법사로 인정해 주었기에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었다.

    평소 영지의 근엄한 아카이브가 아닌 처음에 크롤라이드와 스승과 제자의 연을 맺을 때의 천진난만한 시절로 돌아간 듯하여 그것을 바라보는 후버나 두 스승과 제자 사이에도 이러한 변화를 반기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후버, 네가 전해준 설계도를 보다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다.”

    “예. 하문하시지요.”

    “처음 저수지와 지브롤터 바위까지의 거리가 10km 정도라고 하였는데 점차적으로 유속이 빠르게 되기에 그 길이가 10km에 이른다 해도 수식이 서로 연결될 수 있는 필요조건만 충족된다면 큰 전위차가 있지 않더라도 유속은 상당히 빠를 것이라고 하면서, 너는 처음 1km 거리는 그리스 마법을 이용해서 마찰계수를 줄이는 방법만을 사용하고 그 후 그리스 마법과 전위차 마법진을 교대로 사용하였다. 그 이유를 알 수 있겠느냐?”

    “말씀하신 대로 유속만 증가시키려면 전체에 전위차 마법진을 새기기만 하면 충분합니다만, 저는 그렇게 될 시에 벌어질 수 있는 생태계 파괴나 수도관의 파열이 걱정되었습니다.”

    “생태계의 파열과 수도관의 파열이라… 만약 거대한 몬스터나 수중 생물이 관의 강한 흡입력에 이끌려 관을 막아버린다면 안으로 우그러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래서 아카이브와 내가 육각통을 연결하여 5개 방향에서 분할하여 물을 흡입하는 방식을 사용하기로 하지 않았느냐?”

    “또한 마법진의 손상 부분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만약 수도관 전체를 관통하는 마법진을 그린다면 조그만 부분이 잘못되어도 전체를 검사해야 하지만, 이렇게 1km 정도로 나눈다면 그런 수고가 조금 줄어들까 해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실용성이군. 좋아! 요즘 젊은 마법사들은 걸핏하면 크게 더 크게 만드는 것만 잘하지, 세세함이 부족하지. 마법진은 클수록 사실 효율이 떨어지는 법인데 말이야.”

    “역시 후버는 별종입니다. 저 나이 때부터 영지를 걱정하는 것하며, 후계자 자리를 가지기 싫다고 자기 형을 높여주는 것하며…….”

    “전 조용하게 살고 싶어서요.”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았기에 땅이 부드러워지는 봄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러기에 세 명은 천천히 저수지 공사 현장을 떠나 다음 공사예정인 수도관의 제작 및 설치에 대해서 토론하며 영지로 복귀하였다.

    *

    *

    *

    두 명의 남자가 원탁을 가운데 두고 레빌리온 백작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막 식사를 마친 듯 간단한 디저트와 차가 한 잔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지만 시녀와 시종들은 모두 식당 밖으로 나가 조용한 가운데 두 사내의 목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레빌리온 백작가란 말이지?”

    “예, 슬레인 자작님. 사실 큐리오벨트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을 만든 사람이 바로 그 레빌리온 백작가의 첫째 아들인 큐리오라고 합니다.”

    “대단하군! 아직 어린 나이에.”

    “영지의 마법사가 도왔다고 하니 아마 가신인 아카이브의 도움이 크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제 6서클 마법사로 접어들었다고 했던가? 그 정도 경지에 든 마법사가 자신의 연구 성과를 공유한다는 것 자체도 그의 능력이겠지.”

    레빌리온 백작가에서 전해져온 소식에 슬레인 자작은 괜한 조바심이 났다.

    자작 역시 신분제의 혜택을 입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인접한 레빌리온 백작의 존재로 인해 자신의 이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선대부터의 승작을 위한 노력은 번번이 중앙 귀족들의 농간에 의해 무산되고 남은 것은 자신보다 상위 귀족인 레빌리온 백작가를 삼키는 것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랜 노력의 결과로 레빌리온 백작가와의 객관적인 비교에서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자신의 영지가 앞선 이후부터는 특히 더 조급증이 들었다.

    카드뮴의 말이 슬레인 자작의 조급증을 더 부추겼다.

    “아무튼 덕분에 우리의 계획이 차질을 빗고 있습니다. 10년에 걸쳐 영지의 세금 징수를 막아보려 했는데 마탑의 수송 행렬을 건드릴 수도 없습니다.”

    “그럼 백작령의 세금 수송을 막는 것만으론 효과를 보기 힘든 건가?”

    “아직 얼마나 될지는 모르나 비선을 통해 접촉 해본 결과 이번 연도에만 3만 골드 이상의 수익을 벌어들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레빌리온 백작가의 한해 수입이 10만 골드 전후, 그중 세수가 8만 골드 전후인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금액입니다.”

    “우리가 원래 피해를 입히려는 금액이 어느 정도였지?”

    “대략 2만 골드 정도의 피해를 입히려고 했었습니다. 세금 후송 마차를 터는 것은 쉽지만 그러면 이쪽의 정체가 밝혀질 우려가 있어서 전면적으로 행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에…….”

    더 큰 문제는 자금력이 있는 상태에서 괜히 군사적 행동을 하면 오히려 레빌리온 백작가가 군사력 확충을 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당장에 레빌리온 백작가와 영지전을 벌이려는 게 아니라면 사실 2만 골드 정도의 피해를 주는 것 역시 괜한 경계심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세금 호송 행렬을 턴다고 해도 우리가 그중 가져올 만한 물품은 많지 않습니다. 레빌리온 백작가는 특이하게 세금의 적지 않은 부분을 금화 형태가 아닌 특산물로 받고 있습니다. 만약 그것을 우리가 현금화하려고 하면 우리가 한 짓이란 것 밝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2만 골드 어치를 털어봐야 현금화할 수 있는 가치는 1만 골드 남짓밖에 확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럼 자네는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을 것 같은가?”

    “저는 차남인 후버를 암살하고 장기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 이유는?”

    “앞으로 1~2년 후 큐리오는 아카데미로 향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5년 후면 졸업하여 후계자 자리를 물려받게 되겠지요.”

    “그 정도 수순을 밟게 되겠군. 그런데 그것과 차남인 후버를 암살하는 게 어떤 관계가 있는 건가?”

    “장남인 큐리오를 아카데미로 어린 나이에 보낼 수 있는 것은 설사 큐리오가 잘못되어도 후버가 그 뒤를 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후버를 제거한다면 큐리오는 성년이 된 후, 좀 더 준비를 시켜서 아카데미로 보내게 되겠지요. 일단 큐리오가 아카데미로 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장기전이 되겠군. 최소한 10년 이후에 백작령을 치자는 것이 아닌가?”

    “원래 계획도 6년 이상의 기간을 바라보던 계획이었습니다. 시간은 길어질지 몰라도 백작령이 그 기간 동안 받은 큐리오벨트의 로열티로 만든 비자금을 확보하고 특허권을 팔아 버리면 더 많은 것을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영지전에서 승자는 패자의 모든 것을 귀속한다는 제국 법령상 만약 이들이 승리한다면 레빌리온 백작가가 가지고 있던 유무상의 모든 권리를 이양 받고 자작가는 백작가로 승격하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중앙 귀족들에게 얼마간의 뇌물을 뿌려야 하겠지만 그 부분은 레빌리온가의 특허권만 팔아도 충당할 수 있었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백작가가 확보한 금력을 이용하여 군사력을 확충하는 것이기에 모든 부분에서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차라리 후버 그자를 충동질해서 영지 내의 계승권 싸움을 붙이는 것은 어떤가? 상잔하여 군사를 소모하였을 때 귀족의 신분제를 분란케 하는 후버를 벌한다는 목적으로 영지전에 개입을 하면 되지 않나?”

    “자작님의 말씀이 탁월하십니다만 후버에 대해 알아본 결과 그는 영지의 소변태, 혹은 신종변태 등으로 불리며 벌써부터 영지의 사용인들에게 신망을 잃고 있다고 하옵니다.”

    “아직 15세 정도라고 알고 있는데 벌써부터 그런 소문이 돈단 말인가?”

    “소문 정도가 아니라 사실이라고 하옵니다. 백작은 그런 후버가 마음에 안 들어 영지의 공사 현장에 처박아둘 정도라 하니 상잔을 일으킬 만큼의 능력은 안 되고 그렇다고 장자도 아닌 후버를 이용할 방법은 죽여서 큐리오의 발목을 잡게 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뭐 그딴 쓸모없는 놈이 다 있어! 고민할 필요도 없군, 죽여 버려!”

    애초에 슬레인 자작에게 후버는 그다지 비중이 큰 인물이 아니었다.

    그나마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용도로 쓸 수 있다고 하니 그렇게라도 사용하는 것이 보헴 가문의 슬레인 자작에게는 최선의 방책이었다.

    “그럼 어쌔신을 보내서 죽여 버려! 뭐 그딴 놈이라면 아무나 보내도 상관없겠지. 쓸데없이 돈 많이 들이지 말고.”

    “예. 그럼 그쪽으로 청부를 넣어 두겠습니다.”

    슬레인 자작의 지시에 길게 인사하는 것으로 둘 간의 대화는 끝났고, 슬레인 자작이 방 밖으로 빠져 나갈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남자는 어쌔신 길드로 청부를 넣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

    *

    *

    “슬렌, 마릴린은 뭐 하냐?”

    “공부한다고 자기 방에 있을 거예요.”

    앞발을 할짝거리며 슬렌이 대답했다.

    날이 풀리고 아카이브와 후버가 돌아오면서 아카이브에게 이것저것 배우느라 마릴린은 따로 밤에 시간을 내기 힘들었고, 후버도 마릴린이 그런 노력을 하는 게 좋기에 최대한 마릴린의 편의를 봐주고 있었다.

    “근데 도련님. 좋은 정보가 있는데, 헤헤!”

    “응, 왜?”

    “아까부터 창문 밖에 누가 매달려 있는데 수상하지 않아요?”

    직감적으로 누군가 자신을 노리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게 누구인가에 대해서 후버는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대외 활동은 가능한 비밀리에 했기에 자신의 형님을 노리면 노렸지, 자신을 노릴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뮤트.”

    간단하게 창문 근처로 소음을 차단하는 마법을 사용하고 후버는 슬렌에게 좀 더 정확한 현재 상황을 물었다.

    “슬렌, 대충 위치가 어디쯤이야?”

    “창문 바로 아래에 한 명, 그리고 위에 한 명, 두 명인데.”

    “좀 강한 것 같아?”

    “그냥 영지 기사의 중간 수준 정도인 것 같은데, 잠깐 보고 올까?”

    “아니야, 그럴 필요는 없어.”

    “사로잡기는 힘들 것 같은데 뭐 운이 좋다면 살아날 수 있겠지.”

    “바인딩.”

    “사일런스 펄슨.”

    후버는 둘 중 위에 있는 놈에게 바인딩 마법과 사일런스 마법을 함께 걸었다.

    영지 기사 중급 수준이라면 바인딩을 풀지 못할 것이고 그보다 수준이 높다면 최대환 파이어 볼을 화끈하게 사용해서 아카이브와 크롤라이드를 부를 생각이었지만 기다려 봐도 둘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디스펠 뮤트.”

    “슬렌, 이제 자야겠다. 가서 불 끄고 와.”

    “네, 네, 도련님 꺼야지요.”

    요즘 들어 슬슬 기어오르는 슬렌을 보며 언젠가 한번 밟아 줄 필요성을 느꼈지만 괜히 지금 소란스럽게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여 자는 척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조장님 지금 들어갈까요?”

    “…….”

    뭔가 조장이 입을 벌려 중얼거리긴 했지만 바인딩 마법과 사일런스 마법으로 인해 움직이지도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제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대장이 뭐라 하기는 하지만 말리는 기색이 없자 위쪽에 있던 어쌔신은 슬그머니 창문을 이용해 후버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후버의 방바닥을 밝는 순간 환한 빛 무리가 그의 전신을 감싸고 그는 소리를 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는 상황에 빠졌다.

    잠에 드는 척하기 전에 후버가 설치해둔 트랩 마법진에 걸린 것이다.

    “슬렌, 밧줄 좀 가지고 와. 넉넉하게.”

    그 말에 슬렌이 아무런 대답도 없이 밧줄을 가지러 가고 후버는 어쌔신의 복색을 살피고 있었다.

    “어쭈! 꽤 신경 썼는데. 검은색이 아니라 회색으로 맞춤을 한 것을 보니 처음부터 벽에 달라붙으려고 한 거고. 일단은. 사일런스 디멘션. 일단 소리는 안 흘러 나가게 했지만 시끄럽게 굴지는 않기를 바래. 난 널 믿으니깐.”

    그러고는 슬렌이 가져온 밧줄을 이용해 바인딩 마법에 의해 매달려 있던 조장까지 끌고 올라와서 바닥에 눕히고 이제는 쓸 일이 없는 슬렌의 문자 공부용 명패를 가죽 주머니에 한 움큼씩 넣더니 아담한 사이즈의 주머니를 두 개 만들었다.

    “이거 먹어!”

    너무 아담하게 만든 것일까? 하나 가지고는 입안에 다 차지 않았다.

    “두 번 먹어!”

    쑤셔 넣는 명패 때문에 상처가 났는지 잇몸에서 피가 흘렀다.

    “맛있어?”

    “컥컥컥컥컥!”

    뭔가 목에 걸려서 컥컥거리는 소리가 어쌔신에게서 났지만 무시했다.

    “너도 두 번 먹어!”

    “컥컥컹! 컥컹!”

    “야이, 병신들아! 코로 숨을 쉬어야 할 거 아니야?”

    한결 숨쉬기 편해진 표정을 하는 둘에게 후버가 사일런스 퍼슨 마법을 풀어주고 질문하기 시작했다.

    “묻는 말에 대답한다. 기회는 세 번. 내가 하는 말이 맞으면 눈을 길게 한 번 깜빡이고 아니면 가만히 있는다. 이 병신들아! 니들 진짜 어금니 같은 곳에 독 넣고 다니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이들은 그 정도 급은 아닌 듯했다.

    아니면 후버가 너무 소설을 많이 본 것일지도, 애초에 사람이 힘을 내기 위해서는 어금니를 꽉 깨물어야 한다.

    그런 어금니에 독이든 캡슐을 장착해 둔다면 힘 한 번 쓰고 죽어 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짓인 것이다.

    “일단 네 부하한테 먼저 말을 듣도록 하지. 슬렌 이 새끼 입에 넣고 있는 거 빼내봐!”

    불쾌한 표정을 한 채 신경질적으로 앞발을 움직여 부하의 입에 넣은 가죽 주머니를 빼내는 슬렌.

    “소속과 이름?”

    “모른다.”

    “소속과 이름?”

    “흥! 죽여라.”

    “소속과 이름?”

    “…….”

    “대답 안 할 거라 이거지?”

    어리바리해 보이는 놈부터 취조하려는데 친히 귀족인 자신의 추궁에 모르쇠로 일관하자 깊은 빡침이 몰려 왔다.

    그러고 보니 이 자식들은 자신의 몸을 푹푹 찌르려고 온 놈들.

    귀여운 구석이라곤 어디에도 없는 놈들이다.

    특히 이름을 말하지 않은 이놈은 그냥 못 보내준다.

    후버가 현재 상황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영화에서 보던 베드캅 굳캅, 근데 여기에 굳캅을 연기할 사람은 없었다.

    혼자 둘 다 해야 하는 것이다.

    “아오! 이 새끼가 간만에 빡치게 하네. 너 나 누군지 알아? 알겠지. 아니깐 왔겠지. 근데 네가 모르는 게 한 가득이야, 새끼야. 아오! 진짜 네가 귀족의 스트레스를 알아? 근데 새꺄! 그 스트레스 푸는 유일한 게 평민한테 존대 좀 받는 건데 네가 아오! 막말을 쓰바!”

    자신을 죽이러 온 게 뻔한 어쌔신들을 보자 이 세계로 넘어오면서 받은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몰려 왔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아직 어린 자신을 죽이라는 놈이나, 그렇다고 덜컥 죽이러 오는 놈이나, 영지 내의 시녀들이 자신을 슬슬 피하는 것이나, 시종들이 어느 날부터 존경의 시선을 보내는 것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니들 어쌔신들이 착각하는 게 하나 있어, 이 새끼들아! 귀 씻고 쳐들어. 너 같은 애들 고용하려면 돈이 좀 들지. 그럼 누가 의뢰를 하겠냐? 귀족이 하겠지? 근데 귀족이 직접 하겠냐? 자기 수하가 하겠지? 수하가 그 돈이 어디서 나서 하겠냐? 영주 이름으로 상단에서 찾아서 하겠지? 근데 그런 귀족이 상대하는 상단이 작은 상단이겠냐? 졸라 크겠지?”

    상기된 표정으로 한번 크게 숨을 들이키는 후버.

    “큰 상단이면 그 수하가 돈 찾을 때까지 몇 명이나 보겠냐? 수십 명이 보겠지? 한두 푼도 아닌 돈을 찾아가니깐 그 돈 매우려면 상단주가 골치 아프겠지? 그럼 그 상단 총관한테 괜히 갈구겠지? 그렇게 내리 갈굼이 시작되겠지? 그럼 마지막에 말단을 갈궜겠지? 걔가 충성심이 있겠냐? 없겠지? 근데 내가 정보 길드 가서 요즘 상단들한테 돈 좀 뽑은 귀족 있냐고 물어보겠지? 그럼 제일 먼저 그런 말단들한테 정보 길드가 물어 보겠지? 금화 하나 던져주면 말할 것 같냐? 안 할 것 같냐?”

    후버의 분위기와 정신없이 계속되는 질문에 어쌔신 1과 2는 정신이 빠져 버렸다.

    어차피 그들은 암살단에서 중급 정도의 실력을 지닌 그저 그런 수준, 게다가 조장과는 다르게 질문을 받고 있는 어쌔신 1은 이런 경우가 처음이었다.

    “할 것 같은 데요.”

    “그래, 새꺄! 그렇게 대답 잘하면 좋잖아. 근데 잘 생각해봐. 내가 딱 보니깐 정보 길드에 의뢰를 하면 그 길드가 이것저것 알아보고 뭐 우연히 같은 시기에 아무 이유 없이, 아니면 딴 놈 죽이라고 돈 뽑은 놈도 있을 테니깐 여러 명 수사하려면 돈이 좀 들지 않겠냐?”

    “네.”

    대답을 하기도 안 하기도 모호한 상황에서 질문의 포인트가 절대 대답해선 안 되도록 교육받은 어쌔신 길드의 위치라던가 하는 것이 아니자 대답하고 말았다.

    경험의 차이와 갑작스런 험악한 분위기에 취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정보 길드도 먹고 살려면 수수료 좀 붙여 줘야 하겠지? 귀족 조사한다고 위험 수당이니 뭐니 붙겠지? 너도 귀족인 나를 죽인다고 위험 수당 붙여먹었지? 얼마 받아 처먹었냐?”

    “선금 10골드에 성공 보수 400골드… 헉!”

    “대답 잘하니깐 좋네. 맘에 든다. 너 잘하면 오늘 살수도 있겠다. 어… 근데 너 방금 봤어? 씨발! 네 조장 새끼가 네가 의뢰금 부니깐 눈빛 변하는 것? 봤어? 못 봤어?”

    “봤습니다.”

    “그럼 저놈 살아가면 네가 비밀 불었다고 하겠어? 안 하겠어? 어차피 넌 버린 몸이야. 이제 어쌔신 길드랑 상대하려면 내 무력을 보여주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되겠지? 그럼 내가 널 죽이겠냐? 딱 봐도 경력자로 보이는 저놈을 죽이겠냐? 그리고 입장을 바꿔서 네가 400이면 저 새끼는 600은 받을 텐데, 400 딱 채워서 깔끔하게 1000 채우고 싶을까? 안 싶을까?”

    “채우고 싶습니다.”

    “너 쟤랑 친해? 안 친해? 안 친한 것 같은데?”

    “네. 안 친합니다.”

    “너는 진짜 운 좋은지 알아. 내가 비록 귀족이지만 생명 귀한 거는 알거든. 너는 내가 하는 거 봐서 깔끔하게 풀어준다. 대신 저 새낀 내가 처리할게. 좋아? 안 좋아? 고마워? 안 고마워?”

    “감사합니다.”

    얼떨결에 이것저것 긍정하다보니 후버의 말이 점차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긍정의 대답만을 유도하는 후버의 말처럼 조장이 자신을 죽일 수도 있는 것이다.

    조장이 손발이 맞는 후임과 오지 않고 처음 보는 자신과 온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고 있던 중이라 후버의 말이 더 신뢰감 있게 다가왔다.

    “야, 내가 말했잖아. 너랑 나랑은 이제 공동 운명체 맞지? 나는 너한테 정보를 싸게 얻어서 좋고 너는 죽을 거 내가 살려주니까 좋은 거 아니야? 시발! 저 칼로 뒤에서 푹 찔러봐. 슬렌, 발톱으로 조장 새끼 쫙~ 할퀴어봐!”

    쫘악!

    옷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조장이 고통에 몸부림 쳤다.

    잔인하게도 슬렌은 가장 신경이 많고 예민한 손가락 부위를 가죽 장갑과 함께 찢어버린 것이다.

    “봐봐. 고통스러워해? 안 해? 저 조그만 발톱으로 할퀸 것으로 저 지랄인데 칼로 푹 찔러봐? 너 슬렌 발톱 봤어? 못 봤어? 안 보이지. 나도 안 보여. 졸라 조그마하거든. 근데 저 칼 보여? 안 보여? 보이지? 저걸로 살 막 쑤시고 저어대고 돌리고 씨발! 아플까? 안 아플까?”

    “아픕니다.”

    “안 아프려면 어떻게 해야겠어?”

    “다 말해야 합니다.”

    “읊어봐!”

    별로 아는 것은 없었지만 어쌔신 1은 최대한 자신이 아는 한 모든 것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가 아는 정보는 너무나 단편적이었다. 그저 의뢰가 들어온 날짜와 인상착의 정도, 이 정도로 누군가를 특정하기에는 부족하다.

    “너 내가 말 잘해야지 돌려보내준다 했어? 안 했어?”

    “했습니다.”

    “근데 너 이 정보가 상단 말단한테 금화 하나 쥐어주면 누군지 이름 나오는데 그것보다 좋다고 생각해? 안 해?”

    “죄송합니다.”

    그 말과 함께 어쌔신 1의 어깨가 축 쳐졌다.

    “뭘 그런 거가지고 또 소심하게 침울해하고 그래? 형, 귀족이야! 자~ 한잔 받고 천천히 생각해봐.”

    “예, 감사합니다.”

    어쌔신 1은 후버가 입에 부어주는 술을 받아서 마셨다.

    한껏 긴장됐던 몸이 술 한 모금에 살짝 풀리면서 갑자기 의뢰 전에 단장이 자신의 조장에게 종이를 건네면서 조장에게 돈도 찾아오라는 말을 했다는 것과, 우연히 훈련을 받을 때 들었던 일반적으로 의뢰가 들어오면 선수금은 암살을 실행한 사람이 가지고, 성공해서 받는 돈을 길드에서 갖는다는 사실 역시 떠올랐다.

    아닐지도 모르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과 함께 필요한 정보를 주지 못하면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조장의 품을 뒤지시면 의뢰금을 받은 종이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종이를 상단에 가져다주면 종이에 적힌 만큼의 돈을 줍니다. 돈을 맡긴 사람은 상단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그리고 상단에는 보관자의 신분이 적인 종이. 이렇게 한 장을 잘라서 두 장으로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걸 상단에 가져가시면 누가 의뢰했는지를 알 수 있으실 겁니다.”

    “너… 하면 되잖아. 새끼! 그 말이 너를 살렸다. 똑똑한 놈.”

    눈알을 굴리며 고갯짓을 하는 조장의 품을 뒤져보니 후버의 모습과 침투 경로 그리고 마지막 종이는 어쌔신 1이 말한 증서가 담긴 종이였다.

    500골드라고 적힌 종이에 ‘메디치 상단’이라는 인장이 한쪽 귀퉁이에 박혀 있었다.

    “봐봐! 500골드짜리네. 네가 400골드 받으면 설마 조장이 100골드 받겠어? 너 푹 찌르던가 아니면 제몫은 이미 챙겨둔 것 아니겠냐?”

    “네, 그렇습니다. 이런 개새끼! 같은 길드에 있으면서 배신을 해? 퉷!”

    몸을 움직일 수 없자 조장과 최대한 거리를 두고 싶은 어쌔신 1은 조장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자신과 그는 이제 무관하다는 것을 최대한 어필했다.

    “뭐 화낼 거 없고, 중요한 것은 너는 오늘 살아가지만 쟤는 여기서 죽는다는 거야. 말 한마디에 목숨을 구했으니까 좋아? 안 좋아? 그러니깐 진정하고 네가 날 위해서 할 일이 있다. 그것만 끝내면 확실히 살려주고 한 몫 챙겨주지. 어때?”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이제 아주 은혜라고 말하는 어쌔신 1의 말에 실소가 나오려 했지만 억지로 참은 후버는 다시금 대답 잘하는 어쌔신에게 말했다.

    “근데 말이다. 너랑 나랑 그렇게 좋은 인연으로 맺어진 건 아니야. 그렇지?”

    “죄송합니다.”

    “뭐 지난 일이니깐 잊자고 했잖아. 단지, 그러다 보니 내가 좀 너를 완전히 신뢰하기는 힘들어. 그래서 아까 네가 먹은 술에 약간의 약을 탔어. 별건 아닌데 앞으로 5시간 안에 해독 못하면 죽는 것밖에 없어. 별거 아니지?”

    그 말에 어쌔신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근데 이거 이거를 마시고 큐어 포이즌으로 한번 치료하면 해독이 된단 말이지.”

    “예. 예.”

    “그럼 가봐. 가서 돈 찾아오고 누군지 알 수 있게 수표의 반대편도 같이 가지고 오면 치료 깔끔하게 해주고 한 몫 줄게. 어때?”

    어차피 어쌔신 1에게 선택권은 없었기에 후버가 바인딩마저 풀어주자 자신은 이제 암살단의 일행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조장에게 발길질을 몇 번 하고 후버에게 비굴하게 웃어 보인 다음 수표에 표시된 상단을 향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바인딩이 풀리자 쏜살처럼 뛰어나가는 어쌔신 1을 보는 후버의 표정이 착잡하게 변하였다.

    “거참! 영주성의 방어 태세가 이래서야 아무리 평시라고 하지만 이거 군사 훈련이라도 한번 해야지.”

    메디치 상단까지의 거리는 왕복 약 한 시간의 거리, 저렇게 열심히 뛴다면 그의 반도 안 걸릴 것이다. 돌아오지는 못하겠지만 후버는 슬렌과 함께 한잔씩 술을 나누며 어쌔신 1을 기다릴 겸 조장에게도 심문을 하기 시작했다.

    “너네 조직도 참 개판이구나.”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죽여라!”

    “죽이는 거야, 간단해. 간단하지. 근데 말이다. 난 널 죽이지 않을 거야.”

    “무슨 개소리냐? 내가 저놈처럼 멍청하게 정보나 흘릴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넌 흘리지 않을 거야. 오히려 아주 멀쩡한 제정신을 가지고 나를 도와주겠지. 그것도 자발적으로.”

    “풋! 헛소리를 하고 있군. 암살 길드의 조장을 어떻게 보는 거냐?”

    “너 내가 많은 어쌔신을 격어 본 것은 아니지만 조장과 일반 어쌔신의 실력 차이가 이 정도밖에 안 난다는 말은 들어 본 적도 없어. 너의 역할은 버리는 패 정도겠지.”

    “괜히 넘겨짚는군.”

    “누군지 몰라도 너 정도로 레빌리온 백작가에 암살을 하러 온다? 그 배후는 우리 레빌리온 백작가에 대한 내부 정보까지는 가지고 있지 않아. 하지만 길드는 다르겠지. 정보 길드만큼은 아니더라도 지역 귀족 가문에 대한 정보는 가지고 있을 테니깐.”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끝까지 설명을 들어봐. 현재 레빌리온 백작가에는 크롤라이드 님이 와계신다. 알지 모를지 모르겠지만 7서클 마법사 정도의 위치를 가지고 있지. 그런데 너나 돈을 찾으러 간 놈이나 디스펠 같은 초급 아티팩트도 가지고 있지 않아. 그렇다고 네들의 수준이 특급을 넘는 것도 아니고.”

    술로 목을 축인 후버가 뒤이어 말을 했다.

    “아마도 의뢰인이 준 금액이 그 정도겠지. 7서클 이상의 마도사는 그 자체로 전략병기, 길드의 계약서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겠지. 그러한 존재가 있을시 의뢰가 실패하면 길드에서 실패의 보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정보와 그 등급에 맞지 않은 어쌔신을 고용하지 않은 의뢰인에게 그 책임을 물어 희생된 암살단원에 대한 보상을 해야 된다고 명시되어 있을 거야.”

    “그런…….”

    “그러니깐 너희들은 버림 패라는 거야. 죽어줘야 고마운 거지. 그런데 억울하지 않나?”

    “어디까지나 그건 네놈의 추측이 아닌가?”

    “그럼 나랑 내기하는 것은 어때? 여기서 메디치 상단까지의 거리는 왕복 한 시간이지만 열심히 뛰어 다니는 네 부하는 아마 조금 있으면 메디치 상단에 수표를 바꾸러 가겠지?”

    “방금 전에 자기가 시킨 일도 기억 못하나?”

    괜한 딴죽 따위는 무시하고 후버가 말을 이었다.

    “난 그녀석이 수표를 바꾸고 나오는 순간 죽는다는 거에 걸지. 너는 그 반대에 걸면 되는 거고.”

    “웃기는군! 그걸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으냐?”

    “7서클의 크롤라이드 님이 머무시는 백작성이다. 그래서 이런 것도 할 수 있지.”

    후버는 두 개의 수정구를 꺼내 하나는 조장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영상을 켜놓고 하나는 하늘 위로 날려 보냈다.

    실시간으로 수정구가 움직임에 따라 하늘에서 찍힌 영상이 수정구를 통해 조장의 눈에도 비춰졌다.

    빠른 속도로 날아간 수정구가 어느 샌가 열심히 달려가는 어쌔신의 머리 위에서 영상을 비추고 있었다.

    헐레벌떡 메디치 상단의 정문을 넘어 수표 지급 창구로 달려간 그는 몹시 초조해보였다.

    “참, 말 잘 들어. 벌써 메디치 상단까지 갔군. 대충 15분이 걸렸으니 나름대로 훈련을 열심히 받았나보군.”

    “으음… 확실히 그녀석이군.”

    “레코딩. 신경 쓸 거 없어. 그냥 나도 뭔가 증거가 필요하니깐 저장해 두는 것뿐이야.”

    다시 빠른 속도로 레빌리온 백작가로 향해 발걸음을 놀리는 어쌔신의 뒤에 타이트한 흑색 복장을 입은 인영이 뒤따라가기 시작했다.

    메디치 상단의 수표 교환 창고에서 수표를 어음으로 바꾸고는 두 장의 수표를 모두 회수하여 다시금 뛰기 시작하는 어쌔신.

    그리고 그가 메디치 상단에서 나오자 다시금 그를 뒤 쫓아 가는 타이트한 흑색 복장 인영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여기서부터가 하이라이트니깐 잘 봐두라고. 특별히 소리도 들려주지.”

    “…….”

    후버의 말대로 진행되는 상황에 조장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화면만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리고 수정구를 통해 들리는 둘의 대화 소리.

    “누구냐?”

    “길드장이다. 결과는?”

    “죄송합니다. 실패했습니다.”

    “조장은 죽었는가? 왜 너만 있는 거지?”

    “조장은 살아 있습니다. 현재 포로로 잡혀 있습니다.”

    “으흠…….”

    약간의 침음성을 낸 길드장은 허리춤에 있던 단도를 꺼내 어쌔신 1의 복부 깊숙이 검신을 박아 넣었다.

    “큭… 어째서?”

    “너희들의 임무는 성공하는 게 아니라 실패하는 거다. 백작성 안에서 죽었어야 했는데 뭐 상관없겠지. 저승길 노잣돈은 슬레인에게 받아서 넉넉하게 챙겨 주마.”

    팟.

    길드장이 어쌔신을 단칼에 베어 버리는 것으로 영상은 끝을 맺었다.

    자체적으로 조사해야 한다는 생각에 고민하던 후버에게 해답을 주듯이 길드장이 직접 슬레인이 배후라는 것을 밝힌 이상, 더 이상 필요한 정보는 없었다.

    “이제 네가 해야 할 일을 알려 주겠다. 100골드를 주겠다. 도망쳐라!”

    “그게… 무슨?”

    “너를 먼저 배신한 건 어쌔신 길드다. 내 말이 틀렸는가?”

    “흠!”

    “아니면 가족이라도 있나?”

    “가족 같은 건 없다.”

    가족이 없다는 말에 후버는 약간의 안도감이 들었다.

    만약 조장이 도망이 아닌 가족에게 간다고 한다면 자신의 계획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까닭이다.

    “그럼 나는 해가 뜨는 즉시 정보 길드로 가서 누군가 나를 암살하려고 했던 것과 크롤라이드 님의 트랩에 걸려서 도망갔다는 것, 그리고 한 명은 그대로 죽었다는 말과 함께 이 일을 처리한 어쌔신 길드를 찾는다고 정보 길드에 의뢰를 할 것이다.”

    “그럼 나는 그냥 도망가면 되는 건가?”

    “단순한 도망이 아니다. 정확히 일주일 후 너의 흔적을 일부러 암살단에게 남겨야 한다. 그들이 너를 찾기 위해 노력하도록.”

    “만약 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방금 전에 네가 봤던 수정구가 오늘부터 너를 감시할 것이다. 막연하게 네가 어디 있는지 아는 암살단과 정확히 어디 있는지를 아는 나. 둘 중에 어느 쪽이 추격에 붙는 것이 유리한지 스스로 생각해보도록. 시간은 1주일 정도 있으니깐.”

    “빠져나갈 틈을 안 주는군. 분명히 너의 프로필에 적혀 있는 나이는 이 정도의 치밀한 생각을 할 나이가 아니었는데…….”

    질린 표정의 단장이 후버를 노려보았지만 묶여 있는 그로서는 힘을 쓸 상황이 아니었다.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깐.”

    후버는 서랍에서 100골드 단위로 포장되어 있는 꾸러미 중 하나를 조장에게 넘겨주었다.

    공사의 집행을 위해 사용할 돈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가봐라. 길드장이 바보가 아닌 한 이쪽에도 조만간 감시 병력을 세울 테니.”

    “어쨌든 목숨은 살려줘서 고맙군. 이 돈은 잘 쓰도록 하지.”

    “그리고 의뢰금은 3천 골드를 선수금으로 받았다. 네 덕분에 어떻게 된 것인지 이해가 되는군. 아마 성공 보수는 3천 골드 선이겠지. 내가 아는 것은 여기까지다.”

    그 말과 함께 조장은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 버렸다.

    멀리 사라지는 조장을 보며 후버는 역시 백작성의 경계 태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여름 동안은 영지병을 정예화하고 확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늦은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은 할 일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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