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크고 아름다운 알 (2/37)
  • 크고 아름다운 알

    “이번엔 도련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요즘 들어서 마릴린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녀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버는 가끔가다 사라져 버리곤 했다.

    그는 항상 사람들이 거의 없는 장소를 좋아했고, 비슷한 장소를 찾아보면 그곳에 후버가 있었다.

    그렇게 몰래 사라지지 않을 때에는 주로 혼자서 책을 보며 방안에만 있으니 속을 썩일 이유가 없었다.

    “마릴린, 오늘도 즐거워 보이네~”

    “제이드 오빠는 웬일로 성문 경비를 서고계신 건가요?”

    “그게… 영감님이 어휴… 워낙 나한테 사사로운 가르침을 자주 내리시잖아.”

    사사로운 가르침이 뭔지는 마릴린도 잘 알고 있었다.

    초기에는 기사인 필러 경이 제이드를 상대로 대련을 빙자한 구타를 벌이곤 했다.

    하지만 세실리아가 큐리오를 상대로 필러 경의 행동을 따라 하기 시작하면서 필러 경은 창고에서 문을 잠그는 일을 하지 않았다.

    백작가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주로 공개된 장소에서의 대련을 통해 제이드의 실력을 높여주는 것으로 그 방향을 바꾸었던 것이다.

    하지만 제이드에게 있어서는 은밀히 맞던 것이 공개적으로 맞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 긍정적인 의미의 변경은 없었다.

    “수고하세요. 오빠~”

    성문 경비를 맡은 제이드를 일별하고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고민하면서 자신에게 인사하는 몇 명의 예비 시녀들에게 눈인사를 해주자 어느샌가 마릴린은 후버의 방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릴린! 앞에 서 있지 말고 들어와!”

    문 앞에서 잠시 서 있던 마릴린에 후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전에 문을 긁는 듯한 소리가 들린 것으로 봐서 이번에도 후버 도련님의 애완동물인 슬렌이 먼저 마릴린이 온 것을 후버에게 알린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도련님. 안녕 슬렌.”

    “가족과 만난 것은 즐거웠고?”

    “네, 도련님. 즐거웠어요. 근데 슬렌는 점점 더 똑똑해지는 것 같아요. 이제 글자 위는 긁지도 않네요.”

    “지속적으로 훈련하고 있으니깐 아카이브 경의 말대로 주인이 어떻게 조련하느냐에 따라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

    후버가 3살이 되던 해에 아카이브가 가지고 온 것이 바로 슬렌이었다.

    알의 상태에서 주인이 된 자가 마지막 사흘 동안 품고 있으면 그 주인의 냄새를 기억하고 평생 따른다 해서 귀하게 취급받지만, 높은 가격 때문에 아무나 가질 수는 없었다.

    사흘의 시간이 지난 후 알에서 슬렌이 깨어나자 슬렌의 외모를 본 아카이브는 후버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주었다.

    “도련님이 슬렌을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귀여워해 주시기보다는 체계적인 교육을 해주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그건 좀 생각해볼게요.”

    “슬렌의 모습이 다른 형태이면 모를까 우연인지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도련님에게 좀 더 이 알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어떤 설명인가요?”

    진지해진 아카이브의 모습에 후버가 아카이브와 슬렌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아직 여물지는 않았습니다만…….”

    후버의 품에서 슬렌을 빼앗아 안은 아카이브가 슬렌의 작은 발바닥을 약간의 힘을 눌러서 빼내자 살 속에 파묻혀 있던 날카로운 발톱이 작게 반짝였다.

    “발톱이군요… 그런데 상당히 날카로워 보이네요.”

    “그렇습니다. 흠…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슬렌과 같은 종족은 이 알에서도 다소 드물게 나타나는 종입니다.”

    “무언가 다른 동물과는 다른 점이 있나요?”

    후버의 물음에 아카이브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를 불러 그의 검을 검집 채 건네받았다.

    “다른 점이 있지요.”

    끼이이이이!

    아카이브가 슬렌의 발톱을 뺀 채로 검집에 대고 문지르자 금속과 금속이 기분 나쁘게 마찰하는 소리가 후버의 방을 가득 채웠다.

    “무슨 소리를 들었습니까?”

    “금속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 조금은 소름끼치는 소리네요.”

    “혹시 다른 소리는 듣지 못하셨습니까?”

    “예. 듣지 못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나무로 만든 검집 따위가 마찰음도 내지 않을 만큼 이 아이의 발톱이 날카로우니까요. 이것을 보시지요.”

    아카이브는 검집에서 검을 꺼내서 후버에게 보여주었다.

    금속의 검면에 긴 발톱자국이 방금 전의 마찰음을 설명해 주는 듯했다.

    “모쪼록 도련님께서 이 아이를 문자 그대로 평생의 한 쪽이라고 생각하시고 관심을 가지고 키워주신다면, 도련님께서 산적들이나 몬스터 따위에게 비명횡사 당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혹시 저에게 맡겨 주신다면 제가 기초적인 교육을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싫어요. 제가 가지고 있을래요.”

    아카이브의 말 보다는 슬렌의 귀여운 모습이 마음에 든다는 듯 볼을 부비는 후버의 행동에 강제로라도 다시 후버에게서 슬렌을 빼앗으려던 아카이브는 내밀었던 손을 슬그머니 품으로 감추었다.

    아직 여물지도 않은 슬렌이 어느샌가 앙증맞은 팔을 아카이브에게 휘두르며 후버의 품속에서 저항을 했기 때문이다.

    “흠… 그건 조금 아쉽지만 모든 것이 후버 도련님의 복이니 운명이 이끄는 대로 잘 자랄 것이라고 믿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슬렌이 단순한 펫이 아니라 컴페니언 이라는 것은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쓴웃음을 지으면서 물러나는 아카이브, 겉보기에는 아이답게 아카이브의 교육이라는 말에 곧바로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후버의 머릿속에는 슬렌을 어떻게 교육할지에 대한 생각이 잡혀 있었다.

    후버의 그런 노력 덕분인지 슬렌의 지능은 점차적으로 발달하여 슬렌의 나이 2살 때 이미 일반 아동 7세 정도의 지능을 보여준 다는 것을 아카이브로부터 확인 받았다.

    그런 슬렌의 능력을 더 키워주기 위해 후버는 대륙공용 문자부터 가르치고 있었는데 그런 훈련의 목적으로 누군가 후버의 문 앞에 서게 되면 슬렌은 그가 누구인지 명패를 긁음으로써 알려 주고 있었다.

    *

    *

    *

    “슬렌~ 그건 뭐야? 이리로 가지고 와봐!”

    요즘 들어 몸집이 자란 슬렌은 간혹 가다 후버에게 이런저런 물건을 입으로 물어오곤 했다.

    멍!

    훈련받은 대로 후버의 발아래 자신이 물고 온 것을 내려놓았다.

    “저번처럼 마을에서 아무거나 물어온 건 아니겠지?”

    바닥에 놓인 천을 든 순간 방문이 열렸다.

    “세실리아 누님, 마릴린… 같이 무슨 일이야?

    푸어억!

    해맑게 웃으며 손에 천을 쥐고 손을 흔드는 후버의 눈에 갑작스레 뭔가 검은 것이 지나갔다.

    그리고 후버의 의식은 딱 거기 까지만 기억했다.

    “세실리아 님, 후버 님이 눈을 뜨려는 것 같아요.”

    후버를 둘러싸고 큐리오, 세실리아, 마릴린까지 올망졸망한 눈을 후버에게 향하고 있었다.

    “이제 정신이 좀 들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누님.”

    “아무 일도, 아무 일도 없었단다.”

    세실리아의 말과는 다르게 후버와 세실리아의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다. 슬렌과의 낱말 조합으로 인한 변명으로 사태를 파악한 세실리아였지만, 그날 후버의 손에 들린 천 조각이 누군가의 속옷이라 생각한 세실리아는 이미 후버를 떡이 되게 만져준 상태였다.

    후버가 들고 흔들던 천 조각이 바로 여성의 속옷이었기 때문이었다.

    “뭔가… 저에게 큰 충격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온몸이 너무 아파요.”

    속옷임을 모르고 그것을 흔들던 후버는 세실리아로부터 지독한 구타를 당하고 의식을 잃었던 것이다.

    슬렌이 단어를 조합하여 사실을 알렸을 때는 이미 후버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 이후였던 것이다. 세실리아 역시 자신이 오해했음을 알았지만 이미 늦어버린 상황이었다.

    “그렇구나. 아프면 이 약을 먹으면 편해질 거야.”

    물 한잔과 함께 수면제를 권하는 세실리아, 아직 후버에게 진실을 이야기하기는 힘들었다.

    힘겹게 약을 넘기고는 다시 잠에 빠지는 후버, 하지만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는 말이 맞는지 양심의 가책을 느낀 마릴린에 의해 다시 의식을 찾자마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된 후버는 슬렌을 다정스럽게 불렀다.

    “슬렌~”

    나른한 후버의 목소리에 한껏 긴장한 슬렌이 다시 한 번 움찔하는 반응을 보였다.

    현재 슬렌의 자세는 네발 달린 축생의 자세를 초월한 머리를 박은 자세, 그리고 그 정점에는 나무 식기의 모서리와 만난 슬렌의 뒤통수가 불안 불안한 균형을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

    앙증맞고 귀여운 브릿지 자세였지만 문제는 그 자세를 너무 오래하고 있다는 것.

    “마릴린~”

    마릴린의 자세는 평상시와 같이 후버의 방 한편에 시립한 자세였지만 항상 후버를 바라볼 때의 밝은 얼굴이 아닌 한껏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너희 둘을 믿었는데 마릴린은 문을 잠그고 슬렌은 뒤통수를 후려치는구나!”

    “그게 도련님… 저는 어쩔 수가 없었어요! 세실리아 님을 거스르면…….”

    이번에도 구타 전에 방문을 잠갔는지 대답을 하는 마릴린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알고 있어. 하지만, 그 일을 나와의 오해를 풀기 전에 세실리아 누님에게 먼저 이야기한 그 저의가 매우 의심스럽구나.”

    “제가 말씀드린 것이 아니라 세실리아 님과 함께 방을 들어오다가 우연히…….”

    아직 사실관계에 대한 후버의 기억은 다소 정리되지 않은 듯했다.

    주인에게 도움이 될 만하다 싶으면 일단 물어오고 보는 슬렌의 습성 때문에 생긴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다.

    하지만 그런 슬렌의 습성이 후버에게 엄청난 기연을 안겨줄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

    *

    *

    깊은 밤 상처의 치료를 위해 방문한 신관을 반성을 위해서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명분으로 돌려보낸 후버는 자신만의 시간이 늘어나자 그 시간을 오직 마법의 수련을 위해 사용하고자 했다.

    땡그랑!

    “이건 또 뭐야? 슬렌, 또 이상한 것을 주워 온 것은 아니겠지?”

    욱신거리는 고통이 후버의 경계심을 높여 주었다. 다행히도 이번에 주워온 물건은 한눈에 보기에도 무엇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멍!

    “팔찌로군. 뭐 설마 이번에도 별일이 있겠어? 그냥 팔찌인데… 이건 우리 백작가의 인장인 듯한데… 굉장히 낡았네.”

    호기심이 든 후버는 자신의 팔에 팔찌를 찼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팔목에 낀 팔찌가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이게 무슨! 너 이 개새끼, 이건 또 어디서?”

    후버가 호기심에 팔찌를 팔에 찬 순간 여러 가지 기억이 후버를 덮쳐왔고 두서없는 팔찌의 기억이 후버의 뇌리로 몰려왔다.

    거지부터 시작해서 왕까지, 그리고 팔찌를 가진 왕이 모반으로 인해 사망할 때에는 왕을 추적하던 병사의 손에 들어갔다.

    병사의 손에서 다시 도둑으로, 도둑의 손에서 용병으로, 그중 몇몇은 팔찌의 능력을 알아보고 활용하였지만 대부분은 그저 장식물 이상의 가치를 부여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레빌리온가의 초대 가주인 나일러스의 기억을 확인하고야 이 팔찌가 자신에게 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저분은… 분명히 초상화에서 보았던 초대 가주님…….”

    후버의 눈앞에 귀족의 집무실로 보이는 곳에서의 두 남자가 서로 마주하고 앉아서 자신이 차고 있는 팔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호기심을 느낀 후버는 둘의 대화에 좀 더 집중하였다.

    “요상한 팔찌로군. 필립 자넨 이런 것을 본 적이 있나?”

    “저도 처음 보는 물품입니다. 그보다는 저에게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으니.”

    “단순히 마나만으로 반응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단 말이야. 여기의 기록을 보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의 기록도 많으니까 말이야.”

    “그럼 마나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것 입니까?”

    “마나를 사용할 수 있으면 좀 더 효율적으로 이 팔찌를 사용할 수 있는 것 같더군. 내 후대의 인물들이 이 팔찌를 모두 사용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야.”

    “그건 왜 그렇습니까?”

    “필립, 자네는 태어날 때부터 귀족이지?”

    “그렇습니다.”

    잠시 나일러스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필립이 자신과 함께 다니며 약간은 신분제에 대해 깨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천생이 귀족인 사람은 평민의 불만을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민 시절의 경험이 도움이 된다는 의견 역시 이해하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자네가 동의할지는 모르지만 귀족으로서의 삶이 길어지고, 혹은 태어날 때부터 귀족인 자들은 귀족이외의 자에 대한 삶을 모르지. 그들의 어려움이나 생활 속의 소소한 지혜 같은 것을 말이야.”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리고 귀족이 다스리는 것은 그 평민들인데, 마법사가 마나를 모르고 마법을 사용할 수 없듯이 귀족이 평민을 모르고 평민을 다스릴 수 있겠나?”

    “어떻게 그런 비유를… 마나는 인간보다 상위에 존재합니다. 일개 평민과 비교할 만한 것이 아니지요. 마나의 축복을 받아야 마법사가 될 수 있지만 평민의 축복으로 귀족이 태어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역시 나일러스가 생각한 대로 필립은 자신의 생각을 이해해 주지 않았다.

    “그 부분은 태어날 때부터 귀족인 자네와 내가 결코 좁힐 수 없는 생각의 차이겠지. 신분제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뭔가 할 말이 많은 듯한 필립이지만 그만하자는 나일러스의 말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눌러 담았다.

    “좀 더 마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군. 필립, 이 팔찌에 더 많은 사람들의 기억을 담으면서 대대손손 레빌리온가에 전승되게 하려면 어떤 마법적 처리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가?”

    그 말에 필립이 잠시 팔찌를 바라보았다. 저 물건이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듯했지만 대답은 나일러스가 물어본 것에 충실한 대답을 하였다.

    “귀환마법을 걸어서 일정 시간 이상 영지를 떠나게 되면 돌아오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좋군, 덧붙여서 누군가 발견하면 이것을 레빌리온가에 가지고 올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은데…….”

    “보물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되어야겠군요.”

    “좋은 생각이야. 보물이 된다면 누군가는 이것을 훔치려고 하겠지. 그럼 이 팔찌의 안쪽에 레빌리온 가의 인장을 세기고 돌려주는 자에게 보상을 한다고 하면 좋겠군.”

    “그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필립의 대답을 들은 나일러스가 마법을 이용해서 레빌리온가의 인장을 세기고는 귀환마법을 걸었다.

    “이제 영지 밖으로 나간 팔찌는 10년의 주기로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도록 설정을 했다네.”

    작은 마나의 파동만을 느낀 필립은 너무나도 간단하게 귀환 마법과 인장을 새기는 나일러스의 마법적 능력에 놀랐지만 자신의 팔에 중첩하여 스트랭스 마법을 거는 모습에 더더욱 놀랐다.

    필립이 나일러스에게 무엇을 하는지 물으려는 순간 나일러스가 팔찌를 힘껏 던지기 위해 자세를 취하자 필립은 황급히 나일러스의 행동을 말렸다.

    “잠시만 나일러스 님. 지금 무엇을 하시려는 겁니까?”

    “귀환 마법도 걸었으니 세상을 여행할 수 있게 영지 밖으로 던지려는 것이네.”

    “그렇게 하면 누군가가 주워서 바로 레빌리온가로 돌려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나일러스가 몰랐던 사실을 알았다는 듯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슬쩍 팔을 아래로 내렸다.

    ‘초대 가주님은 좀 단순무식한 면이 있으셨나 보군.’

    후버는 언젠가 초대 가주의 삶을 살펴보아야 할 필요를 느꼈다.

    혹시라도 이러한 귀물이 백작가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될 듯했다.

    “내가 그 생각을 못했군. 뭐 좋은 생각이 있는가?”

    필립도 고민이 되는지 두 마법사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며 입을 열지 않았다.

    나일러스도 체면을 살리기 위해 머리를 굴려봤지만 당장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먼저 좋은 생각이 난 것은 나일러스가 아닌 필립.

    “이건 어떻습니까? 그 팔찌를 누군가에게 하사하는 것입니다.”

    “하사하다니?”

    “레빌리온가에 충성을 하고 기여를 한 인물이 영지 밖으로 자신의 이름을 떨치고 가문의 식솔을 모두 데리고 나간다고 하면…….”

    “하면?”

    “그 가문의 아이에게 이 팔찌를 선물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한세대 간은 레빌리온가의 보호를 받는다는 뜻과 함께 전해준다면 나일러스 님의 목적도 이룰 수가 있고 자신들의 충성도 역시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나일러스 역시 그 생각이 좋다고 여겼는지 팔찌에 다시금 마법을 걸었다.

    레빌리온가의 인물이 하사한다면 하사받은 사람의 생명이 끊어지기 전까지는 팔찌는 그 사람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일단 내가 잠시 이것을 이용해 볼 테니 자네가 적당한 사람이 있으면 추천해 주게.”

    “예. 레빌리온 백작가를 떠나는 인물이 있다면 심사하여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것을 끝으로 팔찌와 관련된 나일러스의 기억은 끝을 맺었다.

    아마도 다음 대 레빌리언가의 사람이 이 팔찌를 사용하면 팔찌의 유례를 설명해주려는 나일러스의 배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대박이야.”

    5분 정도 바닥에 누워 있던 후버가 의미 모를 소리를 하자 슬렌이 깜짝 놀란 듯 몸을 일으켰다.

    “너 이 개새끼… 이것만 아니었으면 바로 탕인지 전골인지 결정했을 거다.”

    기분이 좋은지 후버가 슬렌의 털을 마구 쓰다듬자 슬렌도 약간의 깨갱거리는 개소리를 내며 후버의 쓰다듬어 줌에 기뻐하였다.

    “잠깐 기다려봐.”

    다시 후버가 정신을 팔찌에 집중했다. 그러기를 약 5분 정도 흐르고 번쩍 눈을 뜨는 후버.

    “있어! 마법을 수련하는 방법에 대한 기록이 있어! 게다가 나일러스 님 께서 직접 해석까지 해주신 기록이.”

    애교부리 듯이 품으로 파고드는 슬렌을 밀어낸 후버는 당장에 팔찌를 사용할 생각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후버는 그렇게 나일롱 환자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일반 평민이야 이 정도 상처는 1~2주일 정도면 충분히 나을 만한 상처였지만 귀족에게는 다른 기준이 적용되는지 후버가 아무리 꾀병을 오래 부려도 그것을 제지하는 사람보다는 대견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 시간은 후버가 팔찌의 기록을 방해 없이 살펴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3개월 정도가 지나자 후버가 좀이 쑤셔서 원래의 일정대로 교육을 받겠다고 하자 자청해서 병을 털어낸 후버를 대견하게 생각하는 인물들이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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