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리거-162화 (162/163)

00162  히든리거  =========================================================================

“결정은 본인들이 한다. 어디를 가든, 그것은 자신들이 결정하는 것이다. 더 큰 무대를 위하여 더 높은 레벨의 경기를 경험하고자 한다면, 그 무대를 직접 밟아라. 그것만이 성장의 지름길이 된다.”

정책기획관이 마지막 말을 한 뒤, 멍하니 서 있는 세령의 어깨를 토닥거린 후, 라커룸을 나섰다. 모두는 멍하였다. 진정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소재은은 세령의 옆으로 다가와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연동훈은 눈동자를 떨며 그녀의 곁으로 갔다.

“선택은…….본인이 하는 거랍니다. 잘 선택하십시오.”

연동훈은 그녀에게 말한 뒤, 선수들을 보았다.

“모두! 감독님께 화끈한 마지막 경기를 보여드린다! 모두 그라운드로 나서라!”

연동훈의 큰 목소리가 있고서야 선수들의 멍함은 사라졌다. 그리고 그라운드 위로 올랐다. 수많은 관중들은 그들을 향해 박수를 쳤다.

마지막 경기. 국방부가 승리하고, 광양이 패배하면, 또 다시 경기FC의 결과를 봐야하지만, 무조건 승리한다면 오히려 더 유리한 고지에 있는 것이 국방부였다.

골득실에서 앞서기에 광양만 잡으면, 거의 우승확정이었다.

-국방부FC와 광양FC의 시즌 마지막 경기가 시작되겠습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한 층 더 높아져 있었다. 그리고 선수들의 기분도 평소와는 달랐다. 이미 진로가 선택되어버린 선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감독이 다음 시즌에는 떠나는 상황이 만들어 질 것이었다.

모두가 상위클래스로 훌쩍 올라서는 시점이었다. 이 경기가 어쩌면 이들과 마지막으로 뛰는 경기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경기 시작되었습니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광양은 국방부의 원정경기를 꼭 승리로 만들기 위하여 초반부터 강하게 밀어붙였다. 하지만 국방부는 평소와 달랐다. 강한 압박이나, 연속적인 역습이 아닌, 진정 부드러운 경기를 하고 있었다. 마치 물 흐르듯 유유히 흘러내리는 경기를 하고 있었다.

“국방부의 경기스타일이 아닙니다.”

국방부의 날카로운 역습이나, 강한 슈팅이 없었다. 그저 마치 영화처럼 잘 짜인 각본처럼 패스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슛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철렁’

“뭐야…….”

부드러운 축구는 진정 처음이었다. 짧은 패스와 긴 패스, 스루패스와 함께, 선수들의 마음이 마치 한 마음인양, 패스를 받을 선수가 어디로 움직이며, 패스하는 선수가 누굴 보며 패스하는지, 진정 모든 선수가 아무런 말이 없는데도 다 알고 있는 듯하였다.

이에 추강부터 시작된 패스는 이장성과 서지호, 그리고 오형호를 거쳐 다시 페널티박스 안으로 날아오며 이장성의 머리에 공을 적중시켰고, 이장성은 또 다시 장신의 키를 이용하여 골을 넣었다.

“잘한다! 국방부!”

관중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진정 처음 보는 축구스타일이었다. 이토록 마음이 잘 맞는 선수들이 있을까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철렁!’

그리고 전반 30분. 또 다시 한 골이 터졌다. 이번에도 긴 패스와 짧은 패스로 이어지는 공격에 광양의 골문이 열리고 말았다.

“기쁜데…….왠지 슬픕니다.”

필시 골이 들어갔으니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연동훈은 그 골이 슬퍼보였다. 모두에게 주는 선물이지만, 왠지 받고 싶지 않은 선물처럼 느껴지는 골이었다.

-전반전 끝납니다.-

전반전이 끝난 후, 관중들은 난리였다. 환호성을 치며, 박수를 쳤다. 귀빈석에서도 장관은 입이 귀에 걸렸다. 하지만 라커룸으로 향하는 선수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필시 모두에게 좋은 방향으로 전개된 내일이었다. 그런데도 선수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유럽의 명문구단으로 향하는 선수들의 표정이 이토록 어두울 수 없는 것이었다.

전반전을 2대0으로 앞서면서 이미 우승경쟁에서는 유리해졌다. 하지만 선수들의 표정이 대형 모니터에 잡히면서 그들의 표정이 밝지 않은 것에 관중들은 의아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선수들이 어둡다.”

그들도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른 구장에서 경기FC는 충청을 맞아 2대0으로 앞서고 있었다. 하지만 두 점차 승리는 국방부를 잡을 수 없었다. 최소 4점차였기에, 실점마저 많은 경기FC는 최소 5점차 이상을 만들어야했다.

후반전이 시작되어도, 국방부의 공격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압박이 없지만, 광양은 왠지 쉽게 공격을 가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공이 쉽게 차단되며, 역습찬스를 내주고 있었다.

‘철렁!’

또 다시 골이었다. 이번엔 추강이었다. 독일의 명문팀이 반해버린 그의 대포알 장거리 슛이 나왔다. 거의 30미터는 족히 될 법한 거리에서 지른 슛은 골네트를 다 찢을 정도로 아주 강하게 골대에 꽂혔다.

현역선수들 중, 과연 이토록 강한 슛을 날릴 인물이 몇이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강한 슛이었다.

“삐익!”

-경기 끝납니다! 국방부FC!. 창단 첫 회에 클래식무대로 승격하는 영광을 안습니다!-

아나운서는 흥분된 목소리로 말하였다. 귀빈석은 난리도 아니었다. 장관은 눈물마저 흘리며 연신 물개박수를 쳤다.

하지만 그에 반해 선수들은 크게 기뻐하지 않고 있었다.

“웃어라. 웃어야한다! 모두가 잘 된 일 아니야!”

연동훈이 소리쳤다. 하지만 선수들은 웃지 않았다. 그저 어색한 미소만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마지막 경기를 끝내고, 스포츠매체는 국방부의 승격을 축하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그들이 뛰어온 이번 시즌의 모든 것을 하이라이트로 준비하여 보여주었다. 초창기 이태성과 연태민을 시작으로, 가장 마지막에 들어온 이장성과 이민구의 활약. 그들의 활약으로 인하여 국방부는 다음시즌을 클래식에서 보내게 되었다.

“모두 웃어. 기쁘잖아.”

연동훈이 라커룸으로 모인 선수들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왜 연중사님은 웃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왜? 이 감독님은 웃지 않으십니까?”

추강이 말했다. 그의 말처럼 웃으라고 말하고서는 당사자들은 웃지 않고 있었다. 기쁘지만 슬픈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모든 시즌이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FA컵 결승이었다. 그 한 경기만이 이제 모두가 함께 뛸 수 있는 경기였다.

장관은 그제야 정책기획관으로부터 내용을 전달받았다. 그도 기쁘지만 슬픈 표정을 지었다. 진정 국방부FC를 위해 뛰어준 뛰어난 인재들이었다. 그들을 보내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들을 잡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선택은 본인이 하는 것이었다. 국방부가 약속한 것이었고, 그들의 정책이기도 하였다.

선택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FA컵 결승전을 끝으로 이들은 바로 선택하고 떠날 준비를 해야 했다.

서울과의 FA컵 결승전. 역시 서울은 어려운 상대였다. 전반전에 서울로 이적한 연태민에게 골을 내어주었고, 끌려갔다.

국방부는 한 층 더 성장한 연태민을 보며 부러워했다. 하지만 오히려 연태민이 그들을 더 부러워해야 할 판이었다.

FA컵 결승전은 서울의 3대0 승리로 끝났다. 당연한 승리라 보았지만,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국방부의 연승행진을 결국 클래식무대의 우승팀이 막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모든 결정은 다 했는가?”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정책기획관은 FA컵 결승전이 있은 다음 날, 곧바로 당사자들에게 모두 물었다.

“결정했습니다.”

아무도 답을 하지 않을 때, 세령이 먼저 답했다. 그리고 그녀의 답이 있은 후, 연동훈의 표정은 굳어졌다. 그리고 소재은의 눈동자는 붉어지고 있었다.

“너희들은? 너희들도 모두 선택했어?”

곧이어 선수들에게도 물었다. 그들은 힘없게 답했다. 모두가 자신이 선택한 것을 말하지 않았다.

“내일, 그 답대로 움직인다. 내일 아침, 남은 선수들은 제주도 전지훈련을 떠난다. 우린 시간적 여유가 없다. 다음 시즌은 클래식에서 뛰어야한다. 잠시라도 여유를 가질 수 없다. 그리고 떠난 선수들의 자리를 채워 줄 선수를 찾아야한다.”

정책기획관이 말하였고, 모두의 표정은 우울해 보였다. 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 싶은 생각이었지만, 그 시간적 여유조차도 주지 않았다.

당장 내일…….이제 이들과 이별해야 할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늦은 밤이 되었다. 선수들은 쉽게 잠을 청하지 못하고 있었고, 세령도 잠을 청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무십니까?”

연동훈이 찾아왔다.

“왜?”

“그냥…….그냥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 왔습니다.”

연동훈은 그녀의 결정을 아직 모른다. 그녀가 떠날지, 아니면 남을지, 그녀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가서 자라. 내일 전지훈련가려면 체력 보충해야 하잖아.”

“이동 중에 자면 됩니다. 그보다…….내일…….”

“결정은 내가 하는 거야. 넌…….그냥 남은 일정을 소화해.”

세령은 그의 말을 다 듣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자리에 누워 손을 휘휘 저으며 그를 나가게 하였다.

“당신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그 행복…….이어가고 싶습니다.”

“…….”

연동훈은 그녀의 숙소를 나서며 말하였고, 세령은 그가 나간 후, 아무런 말없이 이불을 자신의 머리끝까지 다 덮어버렸다.

머릿속은 복잡하였다. 원하는 것과 바라는 것은 분명 달랐다. 그녀가 바란 것은 모두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녀가 원한 것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령의 머릿속을 잠시 흔들어놓고 간 연동훈은 그라운드에 홀로 섰다.

“왜. 안자고 청승을 떨고 있냐?”

소재은이었다. 그녀도 잠이 오지 않는지, 그라운드로 나와 멍하니 선 채, 하늘만을 보고 있는 연동훈을 보며 말했다.

“주무십시오. 내일부터 전지훈련을 시작하면, 선수들에게 많은 부상도 함께 따릅니다. 그 때는 진정 쉴 시간이…….”

“자식. 내 걱정하는 거야? 아니겠지? 그냥 이감독이 먼 나라로 떠난다고 하니까. 괜한 멋진 척 나에게 말하는 거지?”

“아…….아닙니다.”

“아니긴. 네 얼굴에 다 쓰여 있다. 난…….이세령이 좋은데, 그녀는 나의 곁을 떠날 준비를 한다. 괴롭다…….이렇게 떡하니 이마위에 쓰여 있어.”

연동훈은 얼굴이 붉어졌지만, 이번엔 아니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말을 들은 후, 머리만 숙인 채, 가만히 있었다.

“내가 너무 정곡을 찔렀나?”

“괜찮습니다. 모두…….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모두가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연동훈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며 말했다. 슬픈 표정을 짓고 싶었지만, 진정 연동훈의 이목구비상, 슬픈 표정은 절대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어서자라. 내일이면 몇 놈을 보지 못하니, 아침 일찍 일어나 얼굴이라도 많이 봐 둬야지.”

소재은은 그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하였고, 연동훈은 그녀의 말을 들은 후, 소재은을 빤히 보았다.

“왜? 왜? 너…….무슨 생각해? 왜 날 그런 버터 바른 눈으로 보고 지랄이야?”

소재은은 연동훈의 변한 눈빛에 소름을 느끼며, 뒤로 물러서다 넘어졌다. 그리고 그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버하지 마십시오. 소대위님의 말씀에 갑자기 생각난 것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연동훈은 넘어진 그녀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고, 그제야 소재은은 붉어진 얼굴을 다시 원상복구 시키며 그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무…….슨 생각이 났는데?”

“오늘이 지나면 더 이상 보지 못한다는 말…….그 말은 오늘이 가기 전, 오랫동안 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럼 설마…….”

“네. 모조리 깨우겠습니다.”

“야야! 내일 전지훈련이야!”

“차 안에서 자면 됩니다. 차에서 공차라고 하지 않습니다!”

연동훈은 그녀의 말을 들은 후, 곧바로 숙소로 향해 달리며 말했고, 소재은은 그를 잡지 못한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연중사가 무슨 일로 저리 바삐 뛰는가?”

곧 장소령이 그녀의 뒤로 서며 물었다.

“제가 괜한 말을 해서…….”

“괜한 말?”

소재은은 자신이 연동훈에게 했던 말을 장소령에게 하였다. 그러자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웃기만 하였다.

“진짜 저 놈은 모두를 깨울 놈입니다. 애들이 피곤할 텐데…….”

소재은은 걱정스런 눈빛으로 말했지만, 여전히 장소령은 그냥 미소만 지은 채, 그라운드를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말려야 하나…….”

소재은은 홀로 그라운드에 서서 멍하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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