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5 히든리거 =========================================================================
“남은 선수들로 경기를 치러야지.”
세령도 병실에 누운 선수들을 보며 그의 말에 답했다. 그리고 식중독에 걸리지 않은 선수들을 체크하기 위하여 다시 국방부로 향하였다.
“어찌되었는가?”
국방부로 돌아오자마자 정책기획관이 세령에게 물었다.
“지금 병원에 입원한 선수들은 내일 시합에서 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정상적인 선수들로 구성하여 경기를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공격자원 중, 추강을 제외하고는 모두 누웠다. 그리고 미드필더진도 전멸이었다.
“일단 선수들의 건강상태에 더 신경 쓰고, 내일 시합은 대량실점을 면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 봐.”
“알겠습니다.”
정책기획관이라고 별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스포츠뉴스에서는 국방부FC선수들에게 찾아온 식중독에 관한 내용이 전파를 탔고, 그로인하여 22라운드 상대인 시흥은 때 아닌 특혜를 누릴 것만 같았다.
-축구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챌린지리그 22라운드 경기를 중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날. 아직 병원에 입원한 선수들이 퇴원하지 못한 채, 22라운드 경기는 시작되려 하였다.
-금일 국방부FC는 대부분의 주전선수가 식중독으로 인하여 경기에 뛰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이에 선수들의 포지션 변경이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부분의 주전이 빠진 상태로 명단을 꾸리긴 하였다. 하지만 각 선수들의 포지션 변경이 문제였다. 추강과 골키퍼인 구자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선수가 자신이 주로 맡았던 포지션이 아닌 생소한 포지션에 서서 경기를 치러야 할 상황이었다.
-리그 최하위인 시흥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1위로 달리고 있는 국방부FC를 시흥이 잡아준다면, 시흥에게도 귀중한 1승을 챙기는 것과 함께, 국방부의 뒤를 바짝 쫒고 있는 광양과 경기FC, 서귀포에게도 같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아나운서의 말처럼 그냥 한 경기를 패배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비록 2위인 광양과 승점5점차를 벌여놓은 상황이지만, 이번 경기에서 패배하면 승점차가 2점차로 줄어들기에, 막판까지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었다.
“그나마, 추강과 구자훈이 자기 포지션이라 다행이네. 어쨌든 이번 고비를 잘 넘겨봐.”
장두관은 많은 말을 해 줄 수 없었다. 세령이 선수구성을 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상황이기에, 그저 격려를 해 줄 뿐이었다.
-국방부는 제로 톱으로 나섰습니다. 추강과 함께, 서민구과 마철수가 공격을 주도하며, 그 외 미드필더진과 수비진은 모두 수비수 출신으로 다 채워진 국방부입니다.-
아나운서의 간단한 설명이었다. 추강과 서민구, 그리고 마철수는 공격자원으로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필드 위를 뛰는 나머지 일곱 명은 공교롭게도 모두 수비수였다. 골키퍼 구자훈을 제외하고는 일곱 명 전체가 수비수였기에, 그들이 미드필더 역할을 어찌 할지도 관건이었다.
-경기 시작됩니다.-
모두의 걱정이 표정에서 환히 보이고 있는 22라운드 시흥과의 원정경기가 시작되었다.
‘철렁!’
“하…….어이없네.”
역시 어려웠다. 수비수들로 미드필더를 구성하였다고해서, 이토록 쉽게 한 골을 내어줄 것이라 생각지 않았다. 수비출신들이기에 수비를 잘 할 것이라 여겼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미드필더 부분에서부터 뚫린 상태가 되자, 득점력이 빈곤한 시흥에게 전반 9분 만에 첫 골을 내어주었다. 그리고 첫 실점에 대해 국방부의 원정 팬들은 어이없는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밀고나가!”
경기가 재개된 후에도 국방부는 쉽게 공격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추강과 서민구, 마철수에게 공이 전달된다면 어찌 공격 포인트를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그들에게 공이 전달조차 되지 않았고, 미드필더 부근에서 모두 차단당하고 있었다.
‘철렁!’
그리고 전반 30분 두 번째 골을 허용하였다. 용지현을 대신하여 경기에 투입된 구자훈의 실력도 이미 인정된 상태였다. 하지만 골문으로 향하여 수없이 날아오는 모든 공을 다 막을 수는 없었다.
“삐익!”
-전반전 종료됩니다.-
전반전을 0대2로 끝냈다. 다행히 생각보다 많은 실점을 하지 않았다.
“모두 잘했어. 이대로 후반전도 잘 버티자. 오늘 너희들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하는 거다. 그리고 왜 모든 선수들에게 멀티플레이어가 되라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는 날이기도 하다.”
세령은 긍정적으로 풀이하였다. 현대축구는 자신이 맡은 포지션에서만 뛰어나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공격과 허리, 수비수까지 모든 자리에서 잘 뛸 수 있는 선수가 되어야 진정 훌륭한 선수라 말 할 수 있는 요즘이었다.
“저러고도…….나에게 그리 말하고 간 거야…….”
한 편. 주말이라 신교대 장병들도 국방부의 경기를 TV로 시청하고 있었고, 전반전을 졸전으로 끝내자, 장철수가 쓴 표정을 지으며, 세령을 비웃는 듯 한 말을 하였다.
“선수들이 식중독에 걸려서 저렇다고 하잖아. 아나운서가 하는 말 못 들었어.”
그의 말에 함께 신교대에 입소한 장병이 말하였지만, 그는 그의 말을 정당화 하려 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을 무시하고 돌아간 세령이 제대로 된 철퇴를 맞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후반전 시작됩니다.-
후반전 시작 후, 국방부의 공격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었다. 추강은 육중한 몸을 이끌고 이리저리 많이 뛰어다녔고, 서민구과 마철수도 허리부분까지 내려와 공을 받은 후, 공격에 가담하고 있었다.
-추강선수! 중앙을 빠르게 치고 들어갑니다!-
전, 후반 통틀어 처음 찾아오는 찬스였다. 추강에게 공이 전달되었고, 추강은 중앙을 휘젓고 들어선 뒤, 골대를 향해 보았다.
-추강! 그대로 슛!-
‘철렁!“
-골! 골입니다! 역시 추강 선수의 대포알 슛은 건재합니다!-
가뭄에 단비 같았다. 추강의 시원스러운 중거리 슛이 나왔고, 그 슛은 그대로 골문을 통과하였다.
“좀…….하네.”
장철수는 계속 밀리던 국방부의 해결사로 나타난 추강의 슛을 보며 홀로 중얼거렸다.
“역시. 추강은 대단해. 진짜 2부 리그에는 어울리지 않은 선수야!”
함께 축구를 보고 있던 장병이 큰소리로 말하자, 장철수의시선이 그에게로 돌아갔다.
“그래봐야 2부 리그야. 저 실력으로 클래식무대에 올라서면 그 즉시 후보감이다.”
장철수는 여전히 자신 외에 다른 선수들의 기량에 대한 칭찬은 없었다. 모두가 대단하다고 말해도, 자신에게는 그저 평범한 공차기에 불과한 추강의 슛이었다.
-후반전도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모두가 지친 상태였다. 하지만 국방부FC에는 마땅히 선수를 교체할 여유가 없었다.
“선수들이 많이 지쳤습니다. 남은 시간이 5분 정도이지만, 한 두명씩 주저앉고 있습니다.”
연동훈의 말이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또 다시 국방부의 센터백인 우근우가 주저앉았다. 다리에 쥐가 나면서 근육 경련까지 일으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조금만 버티자!”
추강이 큰소리로 외쳤고, 선수들은 파이팅을 외쳤다. 그리고 버티고 버티며 정규시간을 모두 마쳤다. 추가시간은 3분이었고, 그 3분이 마치 30분보다 더 길게 느껴지는 국방부선수들이었다.
‘철렁!’
-시흥! 경기 막판 추가골을 넣습니다!-
결국 생각했던 이변이 일어나고 말았다. 국방부는 리그 최하위인 시흥에게 일격을 당했다. 그것도 3점을 내주며 무릎을 꿇었고, 시흥은 진정 오랜만에 1승을 올리며, 총 22라운드 중, 3승째를 거두고 있었다.
“그 때. 나를 데리고 갔으면 이런 일은 없었지. 나 혼자도 충분히 시흥정도의 팀에서는 다섯 골을 뽑아낼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장철수는 경기가 종료되자,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고, 모두는 그를 매서운 눈으로 보고만 있었다.
경기가 끝난 후, 국방부FC 선수들은 모두 그라운드에 드러누웠다. 평소보다 더 많이 뛴 것도 있지만, 심적 부담이 너무나 컸던 탓이었다. 연동훈 및 코치진들은 그라운드로 올라가 선수들을 다독거려 주었다. 경기에 패한 것에 대해서는 그 어떤 누구도 말하지 않았고, 오히려 선수들을 다독거려 주기만 하였다.
시흥과의 원정경기를 끝내고 부대로 복귀하자마자, 세령은 병원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선수들의 건강상태를 체크하였다. 다행히 더 위독해진 선수들은 없었고, 점차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오늘 경기로 인하여 광양과의 승점차는 예상대로 2점차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경기FC도 승리를 거둬, 이제 3파전으로 시즌중반을 소화하고 있는 중입니다.”
회의실에서는 오늘 경기에 대한 내용을 이강수가 보고하였다.
“선수들의 건강상태는 어떠한가?”
이에 정책기획관은 경기결과보다는 선수들의 건강상태를 먼저 물었다.
“다행히 호전되고 있습니다.”
“다행이군. 선수들에게 휴식을 부여하고, 건강이 회복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아주게.”
“알겠습니다.”
정책기획관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선수들의 건강상태만을 확인한 후, 곧바로 회의실을 나섰고, 그 뒤를 따라 모두 회의실을 나섰다.
“괜찮나?”
장두관이 회의실에 남아 홀로 앉아 있는 세령을 보며 물었다.
“네. 괜찮습니다.”
“한번은 겪어봐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게. 항상 선수들의 컨디션을 생각했지만, 이런 상황도 언젠가는 찾아온다는 것을 배웠다고 생각해. 그리고 앞으로 선수들에게 어떤 훈련을 가르쳐야 할지도 알게 된 계기라 받아들여.”
장두관은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린 뒤, 회의실을 나섰고, 그 뒤로도 세령은 한동안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식중독으로 고생했던 선수들이 다시 부대로 복귀하였다. 단 며칠 만에 살이 다 빠진 듯, 홀쭉해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음식으로 고생한 장병들에게 무리하여 음식으로 체력보충을 시키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부대로 복귀한 선수들에게 세령은 새로운 전술을 시도하였다. 바로 멀티플레이였다. 공격수라고 공격만 하는 것이 아니며, 수비수라고 수비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들에게 모든 포지션을 다 소화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지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점차 드러나고 있었다. 22라운드 시흥 전에서의 패배 후, 다시 일주일 만에 치르진 23라운드에서 국방부는 진주 원정을 승리로 장식하였다. 이 경기부터 선수들에게 각기 포지션 변경을 시도하였고, 의외로 자신의 원 포지션보다 변경된 포지션에서 더 실력을 발휘하는 선수들도 나왔다.
특히 오형호는 공격형 미드필더로써 오른쪽을 주로 맡았지만, 그에게 추강의 아래를 지원하는 중앙미드필더 자리를 맡겼고, 그는 사이드보다 더 화끈하고 매끄러운 경기를 보여주었다.
또 한 이장성과 서지호도 미드필더에서 공격자원으로 충분히 승산이 있는 시합을 보여주었다. 이장성의 큰 키를 이용한 헤딩슛이 자주 나왔고, 서지호의 중거리 슛도 추강과 비슷할 정도로 정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