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리거-154화 (154/163)

00154  히든리거  =========================================================================

“공만 차면되는 것입니까?”

세령을 보며 물었다.

“그래. 한 번만 차라. 다른 것은 우리가 판단한다. 넌 드리블과 함께 공만 차라.”

세령 대신 서재호가 답했고, 그는 자신의 발아래 공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세령을 본 뒤, 내무반에서 자신을 내다보고 있는 수많은 장병들을 보았다.

그는 그들을 본 뒤, 다시 자신의 발아래 있는 공을 보았고, 드디어 첫 볼터치와 함께 드리블을 하였다. 그리고 골대를 향해 다가서며, 정확하고 아주 빠른 슛을 날렸고, 그 공은 골네트를 다 찢을 듯, 골문 안에서 수없이 많은 회전을 보이고 있었다.

“와우!”

내무반에 있던 모든 장병들이 탄성을 질렀고, 행정장교도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가 수원에서 경기를 할 때는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신교대에 들어온 이상, 자신의 소관이기에 관심을 가졌고, 그가 직접 공을 차는 것을 처음 보았기에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정말 대단합니다.”

행정장교가 세령을 보며 말했지만, 세령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어때? 괜찮은 것 같아?”

곧 서재호가 세령에게 물었다.

“장철수.”

“네. 137번 훈련병 장철수.”

“다시 해봐.”

“네? 다시…….말입니까?”

세령이 뜻밖의 말을 하자, 장철수는 물론 행정장교와 서재호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래. 다시 차봐. 드리블부터해서, 골문을 향해 제대로 차 봐.”

장철수의 표정이 구겨졌다. 조금 전 보여준 자신의 드리블과 슛도 일품이라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시 보여 달라는 그녀의 말에 인상이 찌푸려진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장철수는 표정을 구긴 채, 다시 드리블을 시작하였고, 곧 골문을 향해 강한 슛을 날렸다.

그리고 여전히 신병들과 일부 장교들의 입에서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지만, 여전히 세령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장철수가 다시 세령의 앞으로 다가섰고, 세령은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곧 세령이 축구공 하나를 들어 자신의 발아래 두었다.

“뭘…….하시는 것입니까?”

장철수가 물었고, 세령은 그의 물음에 답하지 않은 채, 자신이 직접 드리블을 하여 앞으로 뛰기 시작하였고, 이내 골문을 향해 강한 슛을 질렀다.

“와아아!”

조금 전, 장철수가 슛을 지를 때, 나왔던 함성과는 차원이 달랐다. 세령이 드리블에 이어 때린 강력한 슛은 조금 전, 장철수가 때렸던 것과 거의 흡사한 회전력과 강도를 보이며 네트를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세령이 돌아왔고, 장철수의 앞으로 섰다.

“네가…….유명한 선수인 것도 알아. 너의 실력도 알아. 하지만…….우리 국방부에는 자만심에 가득찬 놈은 필요 없다. 네가 보여준 드리블과 슈팅, 지금 여기에 있는 장병들에게는 대단하다고 여겨질지 모르지만, 그 정도의 드리블과 슈팅은 우리 국방부FC의 모든 선수들이 다 할 수 있다.”

세령의 말에 장철수의 표정은 더욱 더 굳어졌다. 그리고 두 주먹마저 꽉 쥐어지고 있었다.

“지금 보인 것이 너의 실력이라면, 난 너를 데리고 갈 생각이 없다. 그러니 네 생각처럼 넌…….공을 차지 않아도 돼. 그리고 앞으로, 더 이상 너에게 공차자고 찾아오는 사람이 우리 국방부에는 없을 것이다. 군 생활 잘하고, 제대할 때까지 건강해라.”

세령은 그의 어깨를 토닥거린 후, 그대로 몸을 돌렸고, 서재호와 행정장교는 그녀의 말에 놀란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며 그녀의 뒤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진심이야? 정말 저 놈을 버릴 거야?”

서재호가 그녀의 뒤를 따르며 물었다.

“잘한다고 모두가 훌륭한 선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홀로 잘한다고 무조건 팀 전체가 승리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 놈…….자신이 잘한다고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 국방부에는…….그런 놈 필요 없습니다.”

세령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을 들은 행정장교도 그녀의 말을 이해하였다. 축구는 팀플레이다. 혼자 잘났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세령의 말처럼 장철수는 혼자 잘난 것이었다. 자신이 그동안 받았던 대우를 아직도 생각하며, 그 정도의 기본적인 대우를 바라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령에게는 어림도 없었다. 세령에게는 과거의 그 어떤 것도 필요치 않았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다. 지금 선수의 컨디션과 함께, 마음이 중요한 것이었다.

장철수는 홀로 가만히 서 있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축구를 시작한 이례 이와 같은 대접은 진정 처음이었다. 그리고 세령을 향해 독한 눈빛을 주고 있을 때, 그녀의 앞으로 상무의 코치진이 들어서고 있었다.

“이게 누구신가? 이세령 감독님 아니신가?”

그는 세령을 보며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였고, 세령도 그의 손을 잡은 뒤 악수하였다.

“장철수를 보러 이제는 감독님께서 직접 오셨나봅니다.”

“네. 뭐.”

“그러고 보니, 저기 서 있는 선수가 장철수 아닙니까? 이미 그를 보고 가시는 듯한데, 계약이 끝난 상태는 아니겠죠?”

코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세령이 직접 움직였고, 지금까지 만나지 못했던 장철수가 연병장에 서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테스트를 직접 보았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계약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코치님께서 직접 보십시오. 혹시 코치님의 마음에 들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세령은 그와 짧은 만난 후, 그대로 주차장으로 향하였고, 행정장교는 그녀의 뒤를 따르며 계속하여 다시 한 번 보자는 말을 하였다. 하지만 세령은 발길을 끝내 돌리지 않고 있었다.

“장철수. 이렇게 보니 느낌이 새롭네. 나도…….너의 실력을 볼 수 있도록…….”

“관심 없습니다. 그만 가십시오.”

“…….”

세령의 앞에서는 자신의 드리블과 슛을 보여준 장철수였다. 하지만 상무의 코치에게는 쓴 표정을 지은 채 말하였고, 그의 말에 코치 또 한 쓴 표정을 지었다.

“젠장…….어디서 2부 리그 감독주제에 잘난 척은…….”

장철수는 세령을 매섭게 본 후, 그대로 내무반으로 향해 돌아갔고, 상무의 코치는 괜한 불똥이 자신에게 튄 듯, 매섭게 세령을 향해 노려보았다.

“다시 안 보고 갈 거야?”

“네. 훌륭한 선수란 것은 이미 매스컴을 통해 확인했지만, 선수의 인성도 중요합니다. 특히 우리 같은 군인들에게는 단결력이 우선입니다. 혼자 잘났다고 떠벌리는 선수는 필요치 않습니다.”

세령은 완강하였다. 서재호가 다시 말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돌아서지 않았고, 곧 행정장교와 인사를 나눈 뒤, 그대로 신교대를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장철수!”

다시 내무반으로 돌아온 행정장교는 장철수를 큰 소리로 불렀다.

“너. 뭐야? 이세령 감독에게 그 표정과 말버릇이 뭐야?”

“제가 뭘 잘못하였습니까? 전 제 실력을 보여주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판단은 저 사람이 한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잘 못한 것은 없습니다.”

“저…….저사람? 이놈이…….”

진정 화가 치밀어 오른 행정장교였다. 하지만 그에게 뭐라 할 수 없었다. 국방부장관이 누누이 말했듯이 국방부FC는 강제성이 없어야했다. 선수들이 원해야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장철수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럼. 처음부터 아예 공을 차지 말든가. 왜 마지막에 영웅처럼 등장해서 공을 차고 그래?”

행정장교가 다시 그에게 물었다. 처음에는 절대 차지 않을 것이라 말하였지만, 많은 장병들이 다 찬 후, 그는 직접 축구공을 안고 나와서 공을 찼기에 그 이유를 물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랬습니다. 축구가 장난입니까? 뭐. 군대스리가는 장난이겠지만, 프로리그는 장난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사업입니다. 선수의 발 하나에 아주 많은 것이 걸려있습니다. 오로지…….선수들에 의해 모든 것이 좌지우지되는 프로리그에서 이따위 드리블 한 번과 슈팅 한 번이 통할 것 같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그래서 축구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려 한 것뿐입니다.”

장철수는 자신이 왜 축구공을 들고 나왔는지를 말하였다. 그리고 그의 말에 행정장교의 표정은 더욱 더 굳어졌다.

“네가 지금 말한 그 군대스리가의 장난. 그 장난이라 생각되는 군대스리가 출신 선수들이 지금 챌린지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밥 먹고 공만 찼던 다른 팀들보다 더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 있다. 네가 한 말을 생각하니, 이세령 감독이 한 말이 이해간다. 축구는…….단합이지, 혼자 잘났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딱 너를 두고 한 말 같다.”

행정장교도 이내 장철수의 앞을 돌아섰다. 지금까지 장철수에 관해 수많은 구단과 함께, 방송에서도 나왔기에, 그를 조금 더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행정장교였다. 하지만 세령은 그 짧은 시간에 장철수를 제대로 본 것이었고, 그로인하여 행정장교는 세령을 더 잘 보게 된 것이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이감독이 그리 생각했다면 장철수는 버려야지. 조심히 올라오게.”

서재호는 서울로 향하던 길에 휴게소에서 장두관에게 연락하였고, 신교대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이에 장두관도 세령의 생각에 동참하면서, 장철수는 이제 장두관의 머리에서도 떠나려 하는 순간이었다.

“이대로 경기를 이어갈 것인가?”

어느덧 토요일이 되었다. 내일이면 22라운드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하지만 국방부는 아직 이민구외에 공격수가 없다. 즉 연태민의 자리를 아직 채우지 못한 것이었다.

“이번 22라운드는 이민구를 원톱으로 세우고, 추강을 그 밑으로 해서…….”

“큰일 났어.”

회의실에서 22라운드에 대해 의논하고 있을 때, 소재은이 문을 열고 들어서며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세령이 그녀의 눈을 보며 물었고, 곧 소재은과 함께, 선수들 숙소로 향해 갔다.

“이게…….어찌된 일입니까?”

“모두 식단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데, 아무래도 오늘 점심때 나온 해산물에서 문제가 있었나 봐.”

숙소로 들어서자 모두의 눈에 보인 것은 기진맥진해 있는 선수들이었다. 이민구는 거의 쓰러져 있었고, 설태구와 용지현도 누워 있었다. 그리고 몇 선수들도 얼굴이 하얗게 뜬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지금 바로 병원으로 가봐야겠습니다.”

“이미, 의료부대에 연락했어. 곧 구급차가 올 거야.”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선수들에게 식중독이 올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였다. 다른 장병들에 비해 이들은 따로 식단이 마련되어 있을 정도였지만, 단 하나의 음식으로 인하여 선수들 절반이 누워버린 상황이었다.

“그나저나…….내일 시합은 어찌해야 합니까? 주전 대부분이 다 누웠습니다.”

총 22명 중, 아홉 명이 병원신세를 지고 있었다. 이에 연동훈이 병실에 누워있는 선수들을 본 후, 세령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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