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3 히든리거 =========================================================================
“내일…….신교대로 가보겠습니다.”
“고맙네. 내가 하지 못한 것을 자네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럼…….부탁하네.”
장두관은 그녀에게서 답을 들은 후에야 경기장을 서서히 빠져나가기 시작하였고, 그가 다시 벤치로 돌아오자, 기다리고 있던 서재호가 그를 보며 물었다.
“이감독이 내일…….장철수를 만나러 간다는군. 자네가 함께 가주게.”
“알겠습니다.”
서재호의 마음도 한 결 편안해졌다. 사실 이 모든 일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다. 자신이 국방부FC에서 맡은 일이 스카우트였다. 그러기에 장철수를 영입하는 것은 오로지 서재호의 몫이었다. 하지만 장두관과 서재호는 그 일을 세령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이었다.
21라운드까지 경기를 치른 후, 22라운드의 경기는 주말에 있었다. 세령은 화요일 아침 일찍 장철수가 있는 신병교육대로 가기 위하여 채비하였다.
자신이 없는 동안에 선수들의 훈련은 연동훈에게 맡겨두었고, 장두관에게도 부탁을 해 두었다.
“같이가.”
세령이 버스를 이용하여 가려는 것을 잘 알기에, 서재호가 따라 나섰다. 세령은 그를 보며 말없는 미소를 지었고, 두 사람은 곧 신교대를 향해 움직였다.
“앗! 이세령 감독님!”
신교대 위병소를 들어서자마자, 장두관이 찾아왔을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위병근무자들이 세령을 알아보며 너나 할 것 없이 다가서며 사인을 요청하였고, 위병근무자들의 행동을 먼발치에서 본 행정장교가 인상을 찌푸리며 위병소를 향해 씩씩거리며 다가섰다.
“지금 뭣들하는거야! 위병근무자들이…….어라…….이세령 감독!”
행정장교가 위병근무자들을 혼내기 위하여 다가서고 있었지만, 곧 그의 눈에도 이세령이 보이자, 잔뜩 찌푸렸던 표정이 풀리며 그녀의 곁으로 다가섰다.
“이곳까지는 어쩐 일입니까? 신교대에서 인재를 찾고자 오신 것입니까?”
위병근무자는 물론, 세령과 서재호도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행정장교의 계급은 대위였다. 대위의 계급으로 세령에게 꼬박꼬박 높임말을 사용하며 묻고 있었기에, 모두가 멍하니 그를 보고만 있었다.
“충성…….”
세령이 그를 보며 경례하였고, 곧 그도 그녀의 경례를 받은 후, 다시 그녀의 곁으로 한 발 더 다가서며 그녀를 빤히 보았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진정 장두관때와는 대우가 달랐다. 그는 세령에게 계속하여 높임말을 사용하며 안으로 들어서도록 하였고, 세령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안내에 따라 신교대로 들어섰다.
“야…….행정장교님이 저리 행동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위병근무자들은 행정장교의 행동에 어안이 벙벙하였다. 군대는 계급사회이기에, 행정장교가 세령에게 말을 낮춰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하지만 마치 별을 대하듯 행정장교는 그녀의 앞길을 열어주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행정장교의 과잉친절로 인하여 행정반으로 들어선 세령과 서재호는 행정반 안에서도 과잉친절이 이어지는 각 사병들과, 장교들로 인하여 어색한 표정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혹시…….장철수를 만나러 오신 것입니까?”
행정장교가 먼저 물었다. 이 또 한 장두관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상황이었다. 이에 서재호는 홀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혹시나 하여 했던 말이 지금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네. 뭐…….장철수 사병을 좀 만날까하여 왔습니다.”
“기다리십시오. 내가 가서 직접 데리고 오겠습니다.”
세령의 말을 들은 후, 행정장교가 직접 움직였고, 그가 나간 후, 행정반 안에 있던 사병들이 모두 다가와 그녀에게 사인을 요청하였다.
세령은 군인들에게 있어서는 그 어떤 스타보다 더 스타였다. 공 좀 찬다는 장병들은 그녀의 눈에 들기를 희망하고 있기에, 그녀가 찾아왔다는 한가지만으로 축구공에 자연스럽게 눈이 가는 현상까지 나오고 있었다.
“그래? 행정반에 이세령 감독이 왔다고?”
곧 세령의 출현은 삽시간에 신교대에 퍼졌고, 이어서 신병교육대장의 귀에도 들어갔다.
“한 번 가봐야겠군,”
사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만날지도 모르는 인물이 바로 세령이었다. 교육대장은 물론, 작전장교와 함께, 일부 장교들도 모두 행정반으로 향하였고, 행정반은 때 아닌 장교들의 모임 터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반갑네. 신병교육대장 이관호네.”
곧 교육대장 이관호가 세령을 보며 악수를 청하였고, 세령은 그에게 경례한 뒤, 악수를 받았다.
“우리 신병교육대에서도 인재가 참 많네. 시간이 된다면, 몇 장병들을 보겠는가?”
전혀 생각지 못한 상황이었다. 세령과 서재호는 장철수를 보기 위하여 찾은 것이지만, 신병교육대장의 말로 인하여, 여느 장병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
“전…….축구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 편. 장철수를 찾아간 행정장교는 그에게 세령이 왔다는 말을 전하였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을 꺾지 않고 있었다.
“한 번 만나봐라. 우리 군인들에게 이세령 감독은 진짜 스타다. 그런 사람이 너를 보고자 직접 왔는데…….”
“그건 다른 장병들에게나 통하는 말입니다. 전…….프로리그를 거쳤고, 이미 최고의 레벨에 올라섰습니다. 그런데 제가 왜 이제 막 걸음마를 띈 국방부FC로 가야합니까? 그리고 그런 곳에 갈 것이라면, 해외리그의 러브콜을 받았을 것입니다.”
장철수는 끝내 세령을 만나는 것을 거부하였다.
“가보자! 이세령 감독이 신병들의 축구실력을 직접 본다고 하신다. 축구에 관심 있는 장병들은 모두 연병장으로 집합!”
행정장교가 그를 계속 설득하고 있을 때, 갑작스레 한 장교의 큰 목소리가 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신병교육대에 있는 모든 장병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연병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래. 네 생각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네 뜻을 이세령 감독에게 전하고, 다른 선수를 찾도록 해야겠다.”
행정장교도 그를 설득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서둘러 연병장으로 향하기 시작하였고, 장철수는 모두가 바삐 연병장으로 향하고 있는 것을 창문을 통해 보고 있었다.
“너무…….많군.”
진정 생각지 못했던 상황이라 서재호가 어리둥절하였다. 연병장에는 신병교육대에 입소한 엄청난 숫자의 장병들이 거의 다 모여든 것처럼 보였다.
“모두 다를 볼 수 없으니, 공을 좀 찬다는 놈들만을 골라 보도록 하자.”
서재호가 세령에게 말했고, 세령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신이 군인이 된 이례, 이토록 많은 장병을 한꺼번에 본 것은 진정 처음이라 여겨지고 있었다. 그만큼 연병장에는 수많은 장병들이 빼곡하게 서 있었다.
곧 신교대의 조교들에 의해, 정렬이 되었고, 연병장에 설치된 골대 중, 한 쪽 골대를 시원스럽게 비워둔 채, 장병들은 자신의 실력을 보이고자, 긴 줄을 서고 있었다.
“공을 차지 못하는 놈이 줄을 선 것이라면, 곧바로 군기교육대 입소다. 잘 생각하고 줄을 서라.”
너무나 긴 줄이었기에, 조교가 큰 소리로 외쳤지만, 그 줄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줄이 더 늘어나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하…….오늘 안에 보는 것은 힘들겠다.”
서재호는 길게 늘어진 줄을 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인상을 찌푸리거나, 격한 말을 하지 않았다. 이 또한 국방부FC의 명성이 높아졌기에 일어나는 일이라 여기고 있었다.
세령과 서재호가 서 있는 상황에 신병들의 공차기가 시작되었다. 간단한 슛부터, 드리블 능력까지만 딱 보이고, 모두 물러나고 있었다. 기회는 여러 번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단 한 번의 드리블과 함께, 단 한 번의 슈팅으로 테스트는 끝이었다.
“의외로 쓸모 있는 놈들이 좀 있다.”
서재호가 신병들의 움직임을 보며 중얼거렸다. 전혀 생각지 못하고 온 상황이지만, 어쩌면 이장성이나 서지호처럼, 인재를 발굴해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테스트는 꽤 길게 진행되고 있었다. 아침부터 시작된 테스트는 어느새 점심시간이 다 되어도 끝나지 않았고, 줄을 선 인원들 중, 고작 반 정도가 드리블과 함께 슛을 보인 후였다.
“모두 해산! 점심 먹고 다시 한다. 그리고 오전에 공을 찬 놈들은 절대 오후에 나오지 마라. 오후에는 모두 교육장으로 향한다.”
조교가 큰소리로 말했지만, 장병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교가 재차 인상을 찌푸리며 큰소리로 말하자, 그 때서야 하나, 둘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어떠하던가? 인재는 좀 있던가?”
점심시간이 된 후, 간부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을 때, 대대장이 세령의 옆으로 앉으며 물었다.
“네? 아 네…….생각보다 괜찮은 장병들이 보였습니다.”
“그래. 다행이군. 나도 우리 신교대에서 국방부FC소속 선수를 보낼 수 있다면 좋겠는데 말이야…….”
바람이긴 하였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국방부FC의 남은 자리는 한자리였다. 그것도 스트라이커의 자리였다. 그 자리는 무척 중요하기에, 아무나 영입할 수 없는 것도 있었다.
점심을 먹은 후, 오후에도 몇 장병들의 테스트가 이어졌고, 거의 3시가 넘은 시간에야 끝났다.
“괜찮은 놈은 있었지만, 내 마음을 훔쳐가는 놈은 없군.”
모든 장병들을 본 후, 서재호가 자신이 기록한 메모를 보며 중얼거렸고, 세령을 보았다.
“저도…….그렇습니다. 마땅히 이놈이다…….라고 생각되는 놈은 없었습니다.”
“그렇지? 역시 장철수를 봐야겠는데…….”
이미 장철수를 생각하고 왔기에 다른 선수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정 괜찮다고 생각되는 인물은 있었지만, 마음을 앗아가는 장병은 보이지 않았었다.
“쓸 만 한 놈이 있습니까?”
곧 행정장교가 다가서며 물었다.
“역시…….안되겠습니다. 우린…….이쯤에서 그만 국방부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장철수를 봤으면 했는데, 보지 못했으니…….다음에 시간되면 다시 와보도록 하겠습니다.”
세령 대신 서재호가 답하였다. 그의 답에 행정장교의 표정이 굳어졌고, 그는 시선을 돌려, 장철수가 있는 내무반을 쏘아보았다.
“잠시만…….기다리십시오.”
그가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그가 내무반으로 들어서려 할 때, 장철수가 한 손에 공을 들고 나오고 있었다.
“장철수…….”
“그냥…….한 번 보여주면 되는 것입니까?”
“그래. 그래 이놈아. 그냥 한 번 보여줘.”
행정장교는 그가 왜 마음을 돌렸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행동에 웃으며 그를 데리고 서둘러 세령을 향해 걸어갔다.
“장철수입니다.”
곧 행정장교가 장철수를 소개하였고, 두 사람은 그를 보았다. 장두관이 그토록 만나고자 찾아왔지만,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간 것에 비해, 지금 두 사람은 제 발로 찾아온 장철수를 눈앞에서 보고 있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