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리거-145화 (145/163)

00145  히든리거  =========================================================================

-후반 45분. 정규시간이 끝났습니다. 추가시간은 3분이 주어졌군요.-

어렵게 한 골을 넣은 후, 국방부도 공격보다는 수비적으로 경기를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경기 운영은 관중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국방부의 경기 스타일은 오로지 닥공이었다. 지금까지 치르진 13라운드까지 한 골 승부라도 국방부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닥공이었다.

하지만 14라운드는 세령이 아닌 연동훈이 지휘하고 있었고, 그에 따라 팀 경기 운영도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삐익~!”

-경기 끝납니다! 국방부FC. 어렵게 한 골을 넣어, 여수FC에게 귀중한 1승과 함께 승점 3점을 가져옵니다.-

경기는 끝났다. 하지만 지금까지 승리했던 많은 경기에 비해 관중들의 기분은 뭔가 개운치 않은 듯 한 표정들이었다.

신예 선수들의 경기를 잘 본 것도 있었고, 또 국방부답게 많은 공격을 시도한 것도 좋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았던 빠른 역습이라는 것이 없었던 경기였으며, 무엇보다 경기 막판, 1점 리드를 지키고자 수비적으로 나간 것이 관중들의 마음을 개운치 않게 한 것이었다.

하지만 국방부FC관계자들은 큰 박수를 보냈다. 그들에게 관중의 마음을 일일이 다 채워줄 수 있는 여력은 없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관중의 기분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승리다. 승점을 가져오며, 다음 시즌에는 클래식무대를 밟는 것이 우선적이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관중들과는 달리, 연동훈의 지휘가 마음에 들었다. 1점차 리드는 언제나 불안한 리드였다. 그러기에 자칫 공격시에 실수라도 나오는 순간에는 그 즉시 실점으로 이어지는 현상이 많기에, 1점차 리드를 지키며, 수비적으로 경기를 모두 마친 연동훈에게 후한 점수를 주는 관계자들이었다.

“오늘 경기. 이겼지만 왠지 매끄럽지 않다. 이세령 감독이 있을 때와는 느낌이 다르지 않았냐? 이겼지만 기분은 덜하다.”

경기가 끝난 후, 경기장을 나서던 관중들에게서 쉽게 나오는 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말은 귀빈석에서 일어나, 라커룸으로 향하기 위하여 움직였던 세령의 귀에 들어왔고, 또 그녀와 함께 움직이던, 차호성 및, 이장성과 서지호의 귀에도 들어갔다.

“난. 정책기획관과 대화 좀 한 후, 사단으로 복귀할 것이네, 자네는 어찌할 텐가?”

사단장이 귀빈석을 나서며 이해석에 물었다.

“딸아이와 저녁만 먹고 부대복귀를 할 것입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게.”

사단장은 이해석에게 답을 들은 후, 그의 어깨를 토닥거렸고, 곧 정책기획관과 함께 귀빈석을 벗어났다.

“연동훈. 1승 축하한다.”

라커룸에서는 소재은이 연동훈을 보며 축하의 말을 전하였다. 세령을 대신하여 감독직을 수행한 경기에 1승을 챙기며, 국방부에 승점 3점을 안겨주었으니, 그가 가져온 1승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축하를 해 주었다.

“이 감독.”

모두의 축하를 받고 있을 때, 라커룸으로 세령이 찾아왔고, 그녀를 본 장두관이 먼저 그녀를 부르자, 라커룸에 있던 모든 선수들이 세령을 보며 다가섰다.

“충성. 경기 잘 보셨습니까?”

연동훈이 그녀의 앞으로 다가서며 자신이 처음으로 맡아보았던 국방부FC의 경기에 대해 물었다.

“그래. 잘 봤어. 꽤 좋은 경기를 했다.”

연동훈은 그녀에게 칭찬을 들은 것이지만, 이상하리만큼 기분이 좋은 것 같지 않았다. 그녀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진정으로 축하 해 줄 것이라 믿었지만, 그녀는 너무나 짧은 말을 하였고, 그 외에 다른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게…….답니까?”

이에 연동훈이 조금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응? 그게…….다라니?”

세령은 진정 그가 한 말의 뜻을 모르기에 물었지만, 연동훈은 그저 굳은 표정만을 지은 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조금 더, 많은 말을 해 줄 수 있잖아. 정말 훌륭했다. 선수기용이 제대로 됐다. 신입 선수들이 좋은 역할을 해 주었다…….뭐. 이런 말들 말이야. 지금 연 중사는 그런 말을 듣고 싶은 거잖아.”

세령이 그의 말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여 다시 물었고, 그 물음에 대해 소재은이 대신 풀이하여 말해주자. 세령이 연동훈의 굳은 표정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냥. 잘했어. 내가 해 줄 말은 이게 다야. 뭔 사내자식이 칭찬 못 받아서 똥씹은 얼굴을 하고 있어. 야! 연동훈!”

하지만 세령의 입에서는 고운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짧은 말을 하였고, 곧바로 연동훈을 불렀지만, 연동훈은 그녀를 제대로 보고 있지 않았다.

“이 감독…….나 좀 보게.”

곧 장두관이 세령을 불렀고, 그녀는 장두관을 따라 라커룸 밖으로 나섰다.

“자네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연동훈에게는 그 누구보다 더 많은 칭찬을 듣고 싶은 사람이 바로 자네네. 그런데…….”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어? 그럼 말 좀 예쁘게 해주지…….”

“저 놈. 기분 들떠서 날아가는 것 보기 싫어서 그랬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연동훈은 저보다 더 축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겨야 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우리 국방부는 여느 구단과는 다릅니다. 지금…….여기에 있는 모든 선수…….선수라고 하지만 장병들입니다. 축구선수가 꿈이 아닌 일반 장병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꼭 이겨야 한다는 것만을 가르치는 것보다, 즐기는 것을 먼저 가르치고, 그에 따라 이기는 방법을 스스로 알아가게 한다면…….우리 같은 사람들이 장병들에게 조금 더 큰 기쁨을 주지 않을까 하고 생각됩니다.”

장두관은 그녀의 말을 들은 후, 잠시 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기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겨나가는 방법을 스스로 알아가게 한다는 말. 장두관은 자신이 지금까지 체육대대에 있으면서 언제나 생각하였던 말이었지만, 국방부FC에 합류하면서 그 말을 잊은 듯하였다.

그리고 조금 전, 세령이 다시 그 말을 일깨워 주었다.

“그래. 자네 말이 맞는듯하군. 저들은 선수가 아니었어. 장병들이지,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장병들. 그들에게 국방부FC의 사업성을 위하여 헌신하라는 말은 잔혹할 수도 있는 말이군. 정해진 의무기간을 끝내면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장병들인데, 그들을 이용하는 듯 한 느낌이 들고 말이야.”

세령은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 그저 선수들에게 즐기는 축구를 하라고 말하고 싶은 그녀였다. 하지만 장두관은 더 깊게 생각하였다.

국방부FC를 거쳐 가는 모든 장병들에게 앞길을 환히 열어줄 수 있다면, 충분히 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기간 동안 국방부FC에서 열심히 뛰며, 국방부FC의 명성을 올려놓고, 떠나는 장병들에게 그 앞길을 열어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예를 들어 이태성을 제외하고는 제대한 인원 중, 단 한명도 축구의 길로 접어들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지 못했고, 길을 닦아주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기간 동안 국방부FC를 위하여 열심히 그라운드를 누비고 다녔고, 지금과 같은 좋은 성적을 내고 떠나갔다.

그리고 장두관은 생각한 것이었다. 과연 그들에게 국방부FC가 해 준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한 것이었다. 그리고 내린 답변은…….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오로지 국방부FC의 좋은 성적만이 남아 있을 뿐, 그 성적을 만들어 준, 장병들에게는 아무런 것도 해주지 못한 것이었다.

세령은 장병들이 모두 축구선수로 전향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최선을 다하지만, 즐길 수 있는 축구를 하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들에게 앞길을 열어주지 못했으니, 자신의 의무기간동안 즐기기라도 하라는 뜻이었다.

승리를 위해서 자신들이 하고 싶은 방향으로 경기를 치르지 못했던 조금 전의 그 경기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들어가세. 휴가기간이지만, 그래도 우리 선수들에게 축하는 해주어야지.”

잠시 무거운 분위기였지만, 그 분위기는 둘 만의 분위기였다. 장두관의 말에 다시 라커룸으로 들어선 세령은 조금 전보다 더 환한 미소로 선수들을 향해보며, 축하를 해주었다. 그리고 연동훈의 앞에 다시 섰다.

“15라운드도 네가 할래?”

“네? 농담하십니까? 이제 감독님 휴가도 내일이면 끝입니다. 휴가 끝나고 감독님이 복귀하는데, 제가 어찌 팀을 이끌겠습니까?”

“이놈 봐라…….난 농담으로 한 말인데, 이놈은 내 말을 진담으로 받아듣고 있네. 진짜 내가 장기휴가라도 받으면 아예 국방부FC 감독 자리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비켜주지 않을 놈이네.”

“하하하.”

세령은 조금 전, 장두관과 나누었던 대화의 무거움을 모두 벗고, 라커룸으로 돌아와 연동훈의 기분을 풀어주려 농담을 하였다. 그리고 그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인 연동훈에 의해 라커룸에는 선수들의 웃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대대장님. 오늘 저녁은…….”

라커룸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잠시 듣고 있던 이해석의 옆으로 최태윤이 다가서며 말을 건네려다. 이해석이 손동작으로 입을 막자, 최태윤의 말이 끊겼다.

“내가 괜한 걱정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네. 우리 세령이가 항상 어리고,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라 여겼는데. 이제보니 다 컸어. 내 손길이 닿지않아도 저 아이가 잘 하고 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알게 된 듯 하군. 그만가세.”

“네? 지금 부대로 복귀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세령에게 힐링은 내가 아니라 바로 저 장병들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최태윤은 그의 말을 들은 후, 살며시 고개를 내밀어 라커룸 안을 보았다. 모두가 웃고 있었고, 그 중심에 세령이 서 있었다. 세령의 입가에도 미소가 잔뜩 있었고, 그녀의 미소는 진정 아름다워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라커룸을 향해 보고 있는 이해석과 최태윤을 본 장두관이 라커룸에서 나와 두 사람의 앞으로 다가섰다.

“앞으로. 우리 세령이를 많이 도와주게.”

그가 다가서자, 이해석은 장두관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하였고, 장두관은 많은 의미가 담긴 그의 말에 경례로 답을 하였다.

“이대로 부대로 가실 것입니까? 이감독과 저녁식사라도…….”

“세령이의 휴가 마지막 날은 이곳에서 저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더 좋을 듯해서 말이네. 세령에게 잘 전해주게.”

이해석은 장두관에게 대신 작별인사를 한 후, 라커룸을 벗어나기 시작하였고, 장두관은 다시 한 번 그의 뒤를 보며 경례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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