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8 히든리거 =========================================================================
“야…….연동훈. 멋져 보인다.”
곧 두 사람의 옆으로 소재은이 다가서며 말했고, 연동훈의 옆에서서 세령을 보았다.
“이런 멋진 남자가 곁에 있으니, 이 소위는 좋겠네. 그것도 연하남이잖아.”
“소 대위님!”
소재은의 말에 세령은 진정 처음으로 얼굴이 붉어지는 듯 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고, 곧 연동훈을 매섭게 노려본 뒤, 그라운드를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잘 다녀와 이 감독!”
“잘 다녀오십시오! 감독님!”
소재은이 뒤돌아서서 가는 그녀에게 큰소리로 말했고, 곧 연동훈도 큰소리로 말하자, 세령은 자신의 귀를 막고 더 빨리 뛰기 시작하였다.
“귀엽지?”
“네?”
“귀엽잖아. 비록 남자들이 우글거리는 군대에 몸담고 있지만, 저런 여자, 어디서 쉽게 만나지 못한다. 잘 잡아라. 연동훈.”
소재은은 여전히 연동훈을 놀리는 듯 한 억양으로 말했지만, 그녀의 말에는 진심도 포함되어 있었다. 꽃다운 나이에 사내들과 어울리며, 사내들 틈에서 생활하지만, 천성 여자인 세령이었다.
이에 소재은은 연동훈에게 자신의 진심이 담긴 말을 하였고, 연동훈은 소재은의 말이 장난처럼 들렸지만, 한 편으로는 장난이 아닌 진심인 것을 느끼고 있었다.
다음 날. 세령은 거의 반 강제적으로 진행된 휴가로 인하여 간단하게 짐을 챙기고 있었다.
“아무쪼록 휴가기간만이라도 모든 것은 잊고 마음 편히 다녀오게.”
곧 그녀의 숙소로 장두관이 찾아들어서며 말했고, 그의 뒤로 소재은과 연동훈이 함께 서 있었다.
“이래도…….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이래도 돼. 장관님께서 내려주신 휴가증이야, 군대에서 누가 이 휴가증을 반려할 수 있을까? 그러니 마음 편히 다녀와. 여행 다니며, 그동안의 피로도 좀 떨쳐버리고, 복잡한 머리도 상쾌하게 만들고…….”
“그냥. 가십시오. 말을 듣고, 또 듣다보면, 결국 오전시간이 후다닥 가버립니다. 그냥 가십시오.”
소재은이 주구절절 말을 늘어놓고 있을 때, 연동훈이 소재은의 옆에서서 말하였고, 자신의 말을 자르고 나선 연동훈을 매섭게 보던 소재은은, 이내 미소를 지은 뒤, 연동훈의 복부를 팔꿈치로 툭 쳤다.
“이감독이 없다고 너의 복부가 마냥 한가로운 것은 아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못하면 그 복부에 내 팔꿈치가 계속하여 꽂힐거야. 그러니…….이감독이 없는 이번 주 14라운드 경기, 꼭 승리해서, 이 감독 마음을 더욱 더 편안하게 해 줘.”
소재은은 연동훈을 보며 말했다. 그의 어깨에 엄청난 무게감의 책임을 떠넘기는 말이었으며, 연동훈은 갑작스레 자신의 어깨에 올려진 무게감에 두 눈이 떨리는 듯하였다.
“걱정 말고 다녀와. 나와 연중사가 잘 이끌고, 또 소대위가 선수들을 잘 체크하고 있으니, 14라운드 경기결과가 좋을 것이네.”
장두관이 그녀의 앞에 서서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한 뒤, 먼저 숙소를 나섰고, 곧 소재은도 그녀를 안아준 후, 숙소를 나섰다.
“연동훈. 빨리 끝내고 이 감독 보내주자.”
소재은이 숙소를 나서며 연동훈에게 말했고, 그녀의 말에 연동훈은 휘둥그레진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 난 뒤, 다시 세령을 향해 멈춰 세웠다.
“자…….잘 다녀오십시오.”
그리고 꾸벅 큰 인사한 뒤, 경례하였고, 이내 소재은의 뒤를 따라 숙소를 곧바로 나섰다.
“에혀…….기회를 줘도 못 살리고…….넌 연예를 어찌 할래?”
자신을 따라 바로 나와 버린 연동훈을 보며, 소재은이 혀를 차고 말했지만, 연동훈의 붉어진 얼굴에 그녀의 말은 잘 들리지 않고 있었다.
세령은 세 사람의 말을 듣고만 있었고, 곧 미소를 지은 뒤, 작은 가방하나를 둘러메고 숙소를 나섰다.
“정책기획관님은 물론, 이강수와 서용석에게도 보고 없이 가도 된다. 그냥 그대로 국방부 정문을 통과해서, 4박 5일 동안은 국방부에 얼씬도 하지 마라.”
세령이 숙소를 나온 후, 휴가 신고를 하고자 몸을 돌리는 순간, 장두관이 다시 머리만 빼곰 내밀며 말했고, 그의 행동에 세령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세령은 장두관의 말에 의해, 휴가신고 없이 곧바로 국방부 정문을 향해 걸었다.
“충성. 잘 다녀오십시오.”
그리고 정문에 서 있던 장병들이 그녀에게 경례하며 말했고, 세령은 그들에게도 따뜻한 미소를 보여주며 그대로 국방부를 나섰다.
“하…….어디로 가나…….”
막상 국방부를 나섰지만,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는 그녀였다. 정해놓은 목적지도 없었고, 무엇을 하고자 생각한 것도 없었다. 그저 급하게 마련된 휴가에 의하여 국방부를 나선 것뿐이었다.
“아빠는…….잘 계실까?”
이해석이 떠올랐다. 국방부FC를 맡으며 한동안 너무나 소홀했던 아버지와의 만남이 떠올랐고, 그녀는 그 즉시 이해석이 있는 1사단 15연대 4대대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의정부에서 차량을 갈아타고, 또 법원리에 내려서도 걸어 올라가야 했다. 오랜만에 오니, 많은 것이 달라보였지만, 정작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동네였다.
“어…….어라…….설마…….”
그녀가 군복이 아닌, 평상복차림에 작은 가방을 둘러메고 위병소를 향해 걸어 올라가자, 위병소에 서 있던 한 장병이 그녀를 빤히 보며 말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왜 그래? 뭐 사단장님이라도 오고 계시냐?”
위병조장은 그의 행동을 보며 농담으로 물었고, 그는 손가락으로 위병소 앞 길목을 가리키며 여전히 말을 더듬거렸다.
“누군데 그래?”
그의 행동이 어리바리해 보여, 위병조장이 직접 위병소를 나와 길목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어라…….설마…….”
그 역시 조금 전, 장병이 했던 말과 행동을 똑같이 하고 있었다. 위병소 근무자 중, 한 명이 세령을 기억하고 있었고, 위병조장 역시 세령을 알고 있기에, 그녀의 방문은 무척 반가우면서도, 의아했던 순간이었다.
“저…….전진!”
아직 위병소에 다다르기에는 10미터 이상 더 남았지만, 위병조장은 그녀를 향해 힘찬 경례를 하였고, 그의 경례소리가 워낙 컸던 탓에, 장병들 교육을 위하여 교육장으로 향하던, 2소대장 이연호와, 화기소대장 강찬호가 위병소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 시간에 누가 왔나? 위병조장의 목소리가 하늘을 찌르는구먼.”
강찬호가 위병소를 향해보며 말했고, 곧 이연호도 그와 함께 나란히 서서 위병소를 보고 있었다.
“어…….어라…….설마…….”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이, 같은 표정과 어투였다. 강찬호는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위병소를 통과하며, 위병조장과 악수를 하고 있는 세령을 보았고, 이연호도 마찬가지로 멍하니 그녀를 보고만 있었다.
“어쩐…….일이십니까?”
위병조장이 그녀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냥. 휴가야. 그런데 넌 아직도 제대하지 않았어?”
“하하…….다음 달 제대입니다. 그보다 이렇게 이 소위님을 다시 뵈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이제는 우리 국군의 영웅 아니십니까?”
위병조장은 세령의 말에 답한 뒤, 그녀를 보는 눈빛을 달리하고 있었다. 그의 말처럼 진정 그녀는 전군의 스타였다. 이제는 TV외에는 볼 수 없을 것이라 믿었던 그녀가 버젓이 부대를 찾아오니 당황스럽기도 하면서, 반갑기도 하였다.
“이 소위!”
그리고 곧바로 이연호의 큰 목소리가 들렸고, 교육장으로 향하던 발길을 돌려, 강찬호와 함께 세령의 곁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전진! 그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두 사람의 눈빛도 위병조장과 다를 바 없었다. 진정 스타를 보는 듯 한 눈빛이었고, 두 사람은 서로 먼저 세령의 손을 잡아보고자, 앞 다퉈 그녀의 앞으로 섰다.
“모두…….동작 그만!”
두 사람이 세령과 악수를 하기 위하여 그녀의 앞으로 더 다가설 때, 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고,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곧바로 모든 행동을 멈춘 후, 위병소 뒤쪽 길목을 향해 서서 경례를 하였다.
“저…….전진…….”
그리고 세령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향해 보며, 경례하였다. 바로 4대대장 이해석이었으며, 세령의 아버지였다.
이해석은 멍하니 선 채, 세령을 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자신의 딸을 안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보는 눈들이 너무 많기에 참고 있었다.
“어쩐 일인가? 요즘 국방부FC가 한가한가보군.”
이해석은 괜히 딴청을 부리며 말했고, 그의 말을 들은 후, 세령은 천천히 걸어가 그의 앞으로 다가가 섰다.
“아빠…….건강하시죠?”
그녀의 한마디에 이해석은 애써 태연한 척 있던 표정과 행동을 모두 풀고, 그녀를 향해 보았다. 그리고 살며시 안아주었다.
“어…….대대장님께서 왜…….”
위병근무자 중, 한 명은 세령과 이해석의 관계를 알지 못하기에 두 사람의 포옹을 이상한 눈으로 보았지만, 이내 위병조장이 그에게 다가가 두 사람의 관계를 말하자, 놀란 눈으로 두 사람을 보았다.
이연호와 강찬호도 두 사람의 포옹을 보며, 괜히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국방부의 생각지도 못한 제안으로 인하여, 이별 아닌 이별을 했던 두 부녀가 오랜만에 만난 것이었기에, 두 사람의 포옹은 그냥 일반적이 포옹을 넘어선 많은 감정을 담은 포옹이라 여겨졌다.
“자네들은 교육시간이지 않은가? 장병들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서둘러 교육장으로 가게.”
“네? 아 네. 알겠습니다. 전진.”
멀뚱히 두 부녀를 보고 있던 이연호와 강찬호에게 이해석이 말했고, 곧 두 사람은 미소를 보이며 답한 뒤, 곧바로 교육장으로 향하였다.
“들어가자. 밥은 먹고 온 거니? 아빠가 맛있는 밥이라도…….”
“제가 해드릴께요. 들어가요 아빠.”
이해석은 세령에게 따뜻한 밥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밥은 오히려 세령이 이해석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오랫동안 따뜻한 밥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마음이 그녀의 눈동자에 맺힌 눈물로 대신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 이소위가 왔어?”
강찬호는 교육장으로 향하기 전, 중대에 들려, 중대장인 최태윤과 행정보급관인 박만둘에게 세령이 왔음을 알리자, 두 사람도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반가운 표정으로 물었다.
“네. 지금 대대장님과 함께 있습니다.”
“관사로 가 봐야겠습니다. 이 소위가 왔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죠.”
최태윤이 강찬호의 말을 들은 후, 곧바로 대대장관사로 향하려고 할 때, 박만둘이 그의 앞으로 섰다.
“잠시만…….잠시만 두 사람이 함께 있도록 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리 긴 시간이라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생각하면, 아주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던 부녀입니다. 서로 할 말도 많을 텐데, 저희들은 오늘 일과가 끝난 후에 찾아가 보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두 사람 생각은 하지 않았던 최태윤이었다. 그는 박만둘의 말을 들은 후, 다시 자리에 앉았고, 곧 관사를 향해 시선을 주며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