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리거-129화 (129/163)

00129  히든리거  =========================================================================

“이태성.”

“병장. 이태성.”

“잘 잤어?”

진정 큰 소리 한 번 지르고 싶은 심정의 이태성이었다. 하지만 그의 물음에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연동훈 형님.”

“뭐? 형님? 이 놈이 수면부족으로 정신착란 현상이 일어나나…….야, 이태성.”

“하하하. 농담입니다. 이제 곧 이별인데, 언제 다시 만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마지막으로 그동안 동생들을 잘 보살펴 준 것에 대해 고마워서 형이라 한 번 부르고 싶었습니다.”

이태성의 말에 연동훈은 그를 빤히 보았다. 그리고 살며시 안아주었다.

“잘 가라…….그리고 마지막이라는 것은 없다.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잖아. 국방부FC 초대 주장이었으며, 또 국가대표로 발탁까지 되었던 위대한 선수. 넌…….충분히 우리 국방부FC를 편히 찾아올 자격이 있다.”

연동훈은 그를 꼭 안고 말했다.

“아침부터 무슨 지지리 궁상이냐. 남자끼리 그리 애틋하게 안고 있으면 오해받는다.”

곧 세령이 두 사람의 뒤에 서며 말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꼭 안고 있었다.

“이태성. 이리와봐. 나도 한 번 안아줄게.”

곧 세령이 두 팔을 벌리며 말하자, 그 때까지 꼭 안겨 있던 이태성은 온 힘을 다하는 듯, 연동훈의 품을 빠져나오며 두 팔을 벌리고 있는 세령에게 가서 안겼다.

연동훈은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보았다. 그리고 또 다시 악마의 눈빛으로 서서히 변해가고 있었다.

“그만…….떨어져라.”

음성마저 변했지만, 이태성은 여전히 세령의 품에 몸을 약간 구부린 채, 안겨 있었다.

“떨어지라고!”

이내 연동훈의 큰 목소리가 들렸고, 그제야 이태성이 세령의 품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아침부터 공복에 큰소리치네. 힘이 남아도나본데, 우리 오랜만에 알통구보 한 번 돌까?”

세령은 연동훈을 놀리는 듯 말했다. 연동훈이 가장 싫어했던 것이 알통구보였다. 자신이 힘들어서 싫어한 것이 아니라, 세령이 진정 중요부위만 가릴 정도의 스포츠브라를 입고 연병장을 돌았던 과거가 있기에, 그로 인하여 알통구보를 굉장히 싫어하였다.

“오랜만에 한 번 돌고 가고 싶습니다.”

이태성이 연동훈의 표정을 보며 장난끼가 발동한 듯 웃으며 말하였고, 곧 숙소에 있던 선수들도 모두 일어나 이태성과 같은 말을 하였다.

“그래? 그럼 제대로 한 번 돌자. 감독님은 빠지십시오. 오늘 아침 점호는 제가 직접 감독하겠습니다.”

연동훈은 이태성의 말과 선수들이 직접 뱉은 말에 대해 후회할 정도로 제대로 된 알통구보를 보여주려 이를 꽉 깨문 채 말하였다.

“왜? 날 빼고 그래? 나도 돈다. 하도 오랫동안 아침에 뜀박질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몸도 찌푸덩하고, 날씨도 아주 좋고 하니, 웃통을 훨훨 벗어던지고 싶어지는 날씨네.”

“그럼! 저희먼저 나가 있겠습니다!”

세령의 말이 끝나자마자, 선수들의 표정은 한 층 더 밝아지며, 조금 전까지 모두가 잠이 부족한 듯 한, 멍한 눈들이었지만, 초롱초롱한 눈들을 한 채, 연동훈의 옆으로 지나치며 말했다.

“준비해 볼까.”

세령도 이내 나가려 하였다. 그러자 숙소를 나서려던 그녀의 손을 연동훈이 잡아 세웠다.

“어쭈. 연동훈. 내 손을 너무 자연스럽게 잘 잡는다.”

“나가지 마십시오. 그리고 제발…….제발 그 웃통 깐다는 말 좀 하지 마십시오. 그게 뭡니까? 그리고 저 놈들…….저 새파랗게 어린 동생들 앞에서 그러고 싶습니까?”

연동훈은 그녀를 보며 인상을 팍팍 구긴 채 말하였다. 그러자 세령은 연동훈의 앞으로 한 발 다가서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내…….눈 좀 봐.”

연동훈을 올려다보며 말똥말똥한 눈빛을 한 채, 부드러운 어투로 말하자, 이내 연동훈의 귀가 빨개지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눈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었다.

“네가 나가서 통솔해. 그리고 애들 앞에서 그리 표시 나게 행동하지 마. 그게 뭐냐…….남자답지 못하게.”

“…….”

세령은 연동훈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한 뒤, 숙소를 나섰고, 연동훈은 잠시 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이내 입가에 미소를 지었고, 곧 그 미소는 점점 악마의 미소를 바뀌고 있었다.

“다…….죽었어. 이놈들…….”

두 주먹을 꽉 쥐며 홀로 중얼거린 뒤, 곧 그라운드를 향해 뛰어나갔다.

선수들은 모두 오랜만에 세령의 알통구보를 본다는 생각으로 들 떠 있었지만, 연동훈 홀로 걸어 나오는 것을 보며 인상을 구겼다. 그리고 그 구긴 인상은 점 차, 공포를 느끼는 표정들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라운드를 향해 걸어 내려오고 있는 연동훈의 표정 때문이었다. 진정…….지옥을 보여주겠다는 듯 한 표정이었다.

“너희들 말처럼…….오늘 아침 구보. 제대로 한 번 뛰어보자! 모두 공복에 운동장 20바퀴다. 모두 웃통 깐다!”

기대는 물 건너갔다. 이태성의 장난으로 시작된 말이 최악의 아침을 열어주고 있는 순간이었다.

“연동훈이 또 악이 바친 모양인데…….무슨 일이 있었는가?”

회의실에서 장두관이 그라운드를 향해보고 있었고, 세령이 들어오자, 그녀를 보며 물었다.

“이태성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합니다.”

“그래? 그럼 이태성에게만 주지, 왜 애꿎은 애들까지 다…….”

“저 놈 성격이 그렇지 않습니까.”

세령은 그저 장두관의 물음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고, 곧 그와 함께 나란히 창가에 서서 알통구보를 시작하고 있는 선수들을 향해 내려 보고 있었다.

“충성! 병장 이태성! 금일부로 원대복귀를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오전 10시. 이태성은 국방부 회의실을 찾았고, 국방장관과 정책기획관이 자리한 곳에서 원대복귀 신고를 하였다.

“이태성 병장.”

“병장! 이태성!”

장관이 그의 앞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였고, 이태성은 큰 소리로 관등성명을 말하며 악수를 받았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자네는 우리 국방부FC의 초기 멤버로써 아주 훌륭한 족적을 남기고 가는 것이네. 그동안 고마웠고, 사회인이 되더라도 우리 국방부FC를 응원해주기 바라네.”

“네! 알겠습니다!”

장관의 말에 이태성은 큰소리로 답했다. 이내 정책기획관도 그의 앞에 섰고, 몇 마디를 한 뒤, 그를 안아주었다.

이태성은 국방부FC소속으로 8개월을 뛰었다. 국방부FC가 소화한 총 12라운드 중, 이태성은 9라운드까지 뛰었고, 그는 좋은 기록을 남기며 떠나게 되었다.

“이태성.”

장두관에 이어, 이강수와 서용석까지 모두 악수를 하였었고, 소재은이 아무런 말없이 살며시 안아주고 난 뒤, 서재호가 그를 불렀다.

“병장. 이태성.”

“제대하면 너를 위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무슨…….말씀이십니까?”

서재호는 국방부FC에서 스카우트 역할을 하고 있다. 전군을 돌아다니며, 국방부FC에 맞는 장병을 찾고, 그 장병을 데리고 선수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제대하는 국방부FC소속 장병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역할도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 국방부FC에서 보여주었던 너의 뛰어난 축구실력과 함께, 얼마 전 있었던 A매치에서의 좋은 평점으로 인하여, 너를 원하는 구단이 나왔다.”

“!!!”

이태성은 놀란 눈을 한 채, 서재호를 보았고, 곧 시선을 돌려가며, 회의실에 있는 모두를 한 번씩 보았다.

“K리그 클래식리그의 서울에서 너를 원한다. 네 생각은 어때?”

“네? 서울에서 말입니까?”

또 한 번 놀란 그였다. 고작 챌린지리그에서 9경기를 뛰었고, 군인이라는 신분으로 국가대표로 나가, 단 45분을 뛰었던 것이 전부였다. 그런 스펙으로 K리그 최고 명문구단인 서울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온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너의 결정이 있어야, 우린 너를 서울에 보낼 수 있다. 아쉽게도 네가 제대한 후 일어나는 일이라, 이적료가 없다는 것이 우리 국방부로써는 굉장히 아픈 손실이지만, 너를 위해서는 충분히 그 길을 열어주고 싶다. 지금 즉시 결정 내리지 않아도 된다. 아직 제대가 일주일 남았으니, 그 기간 안에 결정하고, 결정이 서면…….나에게 연락하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루어 질 것이다.”

이태성은 어안이 벙벙하였다. 진정 믿을 수 없는 그의 말이었다. 군대 입대 전, 학교나 축구클럽에서 공을 찬 경험도 없었다. 그저 군대에서 공 좀 찬다는 말에 국방부FC에 입단하였고, 즐거운 마음으로 공을 찬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미래가 바뀔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 것이었다.

“이태성이 서울로 가면, 우리와 경기장에서 만나는 날은 빨라도 내년시즌이겠네.”

세령이 그를 보며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자신이 서울로 가면 클래식무대를 밟는 것이었다. 하지만 국방부FC는 챌린지 리그라 FA컵이 아니고서는 서로 만날 일은 없었다.

그렇다고 국방부FC가 올해 챌린지리그를 우승하여 내년 시즌에 클래식무대를 무조건 밟는다는 조건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네가 하는 선택은 무조건 우리 국방부FC에서 뛰는 선수들에게 아주 큰 밑거름이 될 것이다. 넌…….초기멤버이며, 네가 하는 모든 것은 아마 우리 국방부FC에서 무조건 처음 일어나는 일일 테니 말이야.”

장두관이 말하였다. 그의 말처럼 이태성은 국방부FC의 모든 것을 처음으로 창출하는 인물이었다. 제대도 가장처음 하는 것이며, 제대 후, 클래식무대를 밟는 것도 국방부FC에서 뛴 선수들 중, 가장 처음 하는 것이다.

“선택은 다음 주까지다. 이미 서울에서는 너를 받을 준비를 모두 마쳤다고 하니, 너의 결정만 있으면 된다.”

서재호가 다시 말하였고, 이태성은 여전히 멍한 눈으로 그를 보며, 모두를 보았다.

“잘 가라.”

“잘 가십시오!”

모든 신고가 끝났다. 이태성은 국방부의 정문에 서 있었고, 그를 원 소속부대로 보내주기 위하여 서재호가 함께 서 있었다. 그리고 세령이 손을 흔들며 말하였고, 연동훈도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와 함께 그라운드를 누볐던 선수들도 모두 손을 흔들며 큰소리로 외쳤고, 이태성은 글썽거리는 눈물을 닦으며, 서재호와 함께 차량에 올라탔다.

차량은 벗어났다. 국방부정문에는 이제 지나다니는 일반 차량만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세령을 비롯하여 연동훈과 함께, 국방부FC 관계자들은 쉽게 정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앞으로 이와 같은 이별이 줄줄이 예고되어 있었다.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그 아픔을 줄여나가야 했다.

“자자! 이번 주말에 있을 진주와의 챌린지리그 13라운드 홈경기를 대비하자. 진주는 최근 좋은 성적을 올리며 빠르게 상승세를 타고 있는 팀이다!”

모두가 여전히 정문 앞을 지나쳐가는 많은 차량들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곧 세령이 큰 소리로 말하였고, 모두는 그제야 멍한 시선을 돌려 세령을 보았다.

연이은 홈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선두를 따라잡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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