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7 히든리거 =========================================================================
“그리고 오늘은! 특별히 아주 특별난 음식으로 굶주린 배를 채울 것이다.”
장관의 말이 이어졌고, 곧 연동훈이 식당 안쪽 주방을 보며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주방에서 여러 가지 음식을 들고 일어서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을 보며, 국방부FC소속 선수들의 눈동자가 커지고 있었다.
“엄마?”
“엄마.”
“엄마!”
주방에서 모습을 보인 사람들을 보며, 곳곳에서 엄마라고 부르는 말들이 들려왔다. 이태성마저 그 장면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단순한 파티가 아니었다. 지금 주방에서 모습을 보인 사람들은 진정 국방부FC소속장병들의 어머니들이었다.
모두의 어머니였다. 그동안 보고 싶었던 사람들 중, 단연 가장 우선시 되는 사람일 것이었다. 군대 오기 전 모든 불효는 군대 와서 느낀다고 하였다.
어머니를 보는 순간, 그 자리에서 모든 장병들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그냥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이었다. 어머니라는 그 단한가지만으로 강한 사내들의 눈물샘을 자극한 것이었다.
“오늘! 장병들에게 가장 큰 선물을 주려 어머니들께서 오셨다. 많이 보고 싶었을 것이었고, 그동안의 불효가 막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다 잊어라! 어머니께서 해 주시는 따뜻한 밥을 먹으며, 남은 군 생활도 열심히 최선을 다한다!”
곧 장두관이 큰소리로 말하였다. 모든 선수들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 대답하였다. 하지만 우렁차지 않았다.
“어머니 앞이라고 어리광이라도 부리려는 것인가! 목소리가 작다! 더 크게 답해라!”
다시 한 번 장두관이 큰 소리로 외쳤고, 선수들은 식당이 무너질 듯 아주 크게 답하였다.
“그럼 모두! 식사하도록!”
장두관의 말이 끝나자마자, 장병들의 눈에는 장관이고 정책기획관이고 보이지도 않았다. 오로지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어머니뿐이었다. 모두 식당 배식창구 앞으로 다가갔고, 주방 안으로 서 있는 어머니를 향해 손을 뻗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내민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함께 눈물을 글썽거렸다.
“어찌…….이런 아이디어를 다 생각해 낸 것인가? 이 감독.”
장관이 세령을 보며 물었다. 그의 말처럼 이 모든 이벤트를 생각해 낸 인물은 세령이었다.
“그냥…….이들에게 뜻 깊은 뭔가를 주고 싶었습니다. 선물을 줄까. 휴가를 줄까…….많이 생각해 보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더 갚고 싶은 것은 어머니가 해주는 따뜻한 밥 한공기라 생각했습니다.”
모두는 세령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어떤 것보다 더 갚진 선물일 것이었다.
장관과 정책기획관, 그리고 국방부 관계자는 간단하게 부모님들과 다시 인사를 한 후, 국방부 건물로 향하였다. 그리고 식당에 남은 인물들은 진정 국방부FC를 움직이는 인물들만 남았다.
장두관을 시작으로 소재은과 이강수, 그리고 서용석과 서재호가 앉아 있었고, 세령이 가장 중앙에 앉아 있었다. 자신보다 높은 계급이 사이드로 앉아 있는 상황에, 자신 홀로 정 중앙의 상석에 앉은 듯 하여 가시방석처럼 느껴졌지만, 적어도 이 선수들에게는 세령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며, 우선시되는 사람이기에, 장두관이 특별히 배려해 준 것이었다.
그리고 연동훈을 비롯하여 코칭스태프들도 연신 어머니들을 도와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23명의 장병. 그들의 모든 어머니가 다 찾아왔다. 아들을 보기 위하여 생계를 잠시 접고 찾아왔다. 그리고 아들을 보며 오늘 하루의 그 어떤 일보다 더 중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어머니들이었다.
정말 수많은 음식들이 마련되었다. 각기 어머니들이 다른 종류의 음식을 준비하였다. 즉, 적어도 음식의 종류가 23종류는 넘는다는 말이었다.
점점 식당의 식탁위에 진열되기 시작하고 있는 음식들을 보며, 선수들의 표정도 함께 밝아지고 있었다.
군대에서 절대 맛 볼 수 없는 최고의 요리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선수들 중, 유독 추강의 눈빛은 A매치를 뛸 때보다 더 초롱초롱 빛나고 있는 듯하였다.
“감독님. 우리 아들들을 잘 보살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머니들은 세령의 앞으로 다가와 그녀에게 인사하였다. 세령은 정말 아름다운 미소를 보이며 자신을 향해 웃어주는 어머니들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이런 좋은 날, 우리 이 감독께서 또 감동하셨나봅니다. 여성 아닙니까. 그리고 꽃다운 나이 25세입니다. 이 아름다운 나이의 처자가 사내들과 어울리며 지냈는데, 우리 어머니들께서 따뜻하게 해주시니, 우리 이감독이 너무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는가 봅니다.”
그녀의 눈물에 대해 장두관이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들은 그의 말을 듣고, 더욱 더 세령의 손을 잡고, 그녀를 안아주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세령의 눈물에 대한 의미는 달랐다. 그녀는 어머니의 품을 느껴보지 못한 여인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군부대에서 살아온 기억이 전부였다. 어머니의 따뜻한 품을 기억하지 못하며, 어머니의 맛있는 음식을 기억하지 못하는 여인이었다.
그런 여인이 지금, 자신의 어머니와도 같은 손을 내밀어 주는 이들에게 어머니라는 감정을 얻은 것이었다.
소리 내 울고 싶었던 세령이었다. 눈물을 흘릴 것이라 생각지도 않았지만, 한 번 쏟아져 내려오는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큰 소리까지 내며 울고 싶어졌던 세령이었다.
소재은이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토닥거려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물을 보며 마음 아파하는 연동훈의 눈도 붉어지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아닙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어찌 보면 우리 새끼들과 나이차도 얼마나지 않아 마치 딸 같기도 하네요.”
그녀는 조금은 진정된 듯, 눈물을 닦으며 말했고, 곧 이태성의 어머니가 그녀를 다시 안아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냥 우리들이 감독님께 감사하다는 말만 전할 뿐입니다. 우리 새끼들을 이토록 잘 돌봐주시는 사람이 마치 누나 같았으니, 이놈들이 쉽게 제대하려고 할지 모르겠네요.”
분위기를 돌리기 위하여 이태성의 어머니가 농담을 하였다. 그러자 장두관이 미소를 지으며 웃었고, 서용석과 이강수도 웃었다. 서재호도 이어 큰 소리로 웃었다. 세령은 눈물이 맺힌 눈동자를 한 채,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지었다. 눈이 붉게 변하였지만, 그녀의 모습은 어머니들의 눈에 진정으로 아름다운 여인처럼 보였다.
진정 맛있는 저녁을 모두 함께 먹었다. 군 생활하며, 그 어떤 밥보다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어머니들은 모두 돌아갔다. 자식들을 다시 세령에게 맡기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모두 돌아갔다.
“모두 배불리 밥은 잘 먹었는가?”
점호시간. 장두관은 모든 선수들이 들릴 정도의 큰 목소리로 물었고, 선수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우렁찬 목소리로 답했다.
“어머니들께서 오늘 해 주신 밥이. 너희들의 남은 군 생활에 더욱 더 큰 활기를 줄 것이라 믿는다. 모두 그 밥이 헛된 밥이 되지 않도록 남은 군 생활도 최선을 다한다!”
“네! 알겠습니다!”
모두가 우렁차게 답했다. 그저 큰 목소리만은 아니었다. 진정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난 뒤, 그 행복함을 그대로 간직 한 채, 장두관의 물음에 답하는 듯 한 목소리였다.
점호가 끝난 후,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장두관과 세령, 그리고 서재호는 따로 소회의실에 모여 있었고, 곧 소재은과 함께, 연동훈을 비롯하여 코칭스태프들도 모두 소회의실로 들어왔다.
“23시 정도에 시작하면 어떠하겠습니까?”
곧 연동훈이 모두를 향해 보며 물었다.
“시간은 중요치 않아, 어차피 13라운드의 경기도 주말에 있다. 내일 선수들은 가벼운 훈련과 함께, 영국과의 경기에서 나왔던 영국의 세트피스를 공부하며, 우리만의 세트피스를 연습할 것이니, 그다지 많이 뛰지는 않아.”
연동훈의 말에 세령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똑 똑’
그 순간 회의실에 노크소리가 들렸고, 곧 연태민과 용지현, 그리고 설태구와 함께, 일부 선수들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잠들었어?”
연동훈이 그들을 보자마자 물었다.
“아직 입니다. 마형식 병장과 우동화병장, 그리고 전철민 병장과 이철호 병장은 이미 코를 골기 시작했는데, 목표인 이태성 병장이 아직 잠들지 않았습니다.”
연동훈의 물음에 연태민이 답했다.
“잠이 오지 않을 거다. 이제 잠들고 난 뒤, 눈을 뜨면, 이별이니 마음이 편치 않을 거야. 그래도 기다린다. 내가 제대할 때, 누군가가 이런 것을 해주었으면 했는데, 나는 물론이고 우리 3소대에는 그런 광경을 아예 보지도 못했다. 그래서 난…….오늘 결단코 이태성을 모포말이한다.”
이들이 늦은 밤. 점호를 끝내고 난 뒤에도 잠에 들지 않고, 모두 회의실에 모인 이유였다. 바로 제대자의 화끈한 말년 신고식. 바로 모포말이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동안의 묵은 감정을 모두 벗어던지고, 서로의 악연을 벗고, 인연으로 기억하자는 뜻에서 제대하는 장병을 시간별로 돌아가며, 한 가지씩 기억에 남는 이벤트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이 모포 말이다. 부대별로 다르겠지만, 모포말이를 시작으로 불침번이 시간별로 깨우기, 얼음물 샤워등. 여러 가지가 있다.
지금 연동훈은 자신이 겪지 못했던 그 추억을 자신의 곁에서 떠나가는 장병들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이 바로 이태성이었다. 이태성을 시작으로 마형식, 우동화, 전철민, 이철호가 줄줄이 제대한다. 이들에게 전부 화끈한 밤을 선사하고파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나머지에겐 모두 알렸지?”
“네. 모두 알렸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왜? 무슨 문제가 있어?”
연동훈의 물음에 연태민이 답하였고, 그의 말이 시원스럽지 않아 연동훈이 다시 물었다.
“추강이 이미 코를 골며 잠들었습니다.”
“하…….그 놈…….”
함께 모포말이와 각종 이벤트를 진행해야 할 인물이 그 목표들과 함께 곯아떨어진 것이었다.
이미 목표 대상인 다섯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에게 알려주었다. 목표물 외에 나머지는 자는 척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지만, 추강은 실제로 그들과 함께 깊은 잠에 빠져들어 버린 것이었다.
“추강의 힘이 필요한데…….나머지는 장병들이 힘을 합쳐 들 수 있지만, 이철호가 키가 크며 몸이 커다. 그를 들 수 있는 인물은 추강뿐인데…….”
“가서 깨우면…….”
“자게 놔 둬. 피곤한 놈 깨워서 득 될 것 없다.”
연동훈의 말에 연태민이 그를 깨우려 하였지만, 곧 세령이 말렸다. 무엇보다 장병들의 건강을 먼저 챙겨야 하는 것이 임무였다. 몸이 피곤하여 자는 장병을 깨워서까지 이벤트에 합류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일단. 인원분배를 잘 해서 움직여라. 단 번에 들어서 바로 시작해야 한다. 모포를 말아서 적당히 허가된 구타와 함께, 마지막에는 욕실로 데려가 아주 시원한 샤워를 시켜준다.”
“알겠습니다.”
장두관이 모두 정리하였다. 인원을 적절하게 잘 분배하면, 거구의 몸인 이철호도 간단하게 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체계적으로 움직이며, 모포말이를 한 상태에서 물세례를 한다는 것이었다.
원래는 얼음물 샤워가 제대로지만, 추운 겨울이 아니기에, 얼음물에 대한 최악의 상황은 면한 목표대상들이었다.
잠시 후, 숙소 상황을 다시 보고 온 설태구가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