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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리거-122화 (122/163)

00122  히든리거  =========================================================================

-아론! 페널티박스 모서리에서 슛!-

‘철렁!’

-아!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수비수 이만기 선수를 제친 후, 곧바로 골대를 향해 지른 슛이, 그대로 골문 안으로 들어갑니다! 장형 선수가 몸을 날렸지만, 이미 공은 골대 안으로 들어간 후 입니다!-

장형의 스피드도 굉장히 빠른 편에 속하였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보다 아론의 슛이 더 빠르게 움직였다. 무엇보다 수비수 이만기를 제친 후, 곧바로 내질러진 슛은 장형이 미처 그의 동작을 감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그의 반응속도가 평소보다 조금 느렸다.

-전반 20분. 다시 한 골을 내줍니다! 영국은 단 세 번의 공격으로 두 골을 뽑아내는 결정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 번 슈팅에 두 골이었다. 또 한, 세 번의 슈팅모두 유효슈팅이었다. 그리고 그 세 번의 슈팅에서 두골을 챙겨가는 놀라운 결정력을 보여주고 있는 영국이었다.

“시간 많다! 다시 집중해서 해라!”

경기가 재개된 후, 한국의 벤치에서 수석코치가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그라운드 위를 뛰어다니는 선수들의 귀에 잘 들어가지 않았다.

-또 다시 영국의 공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째 공격다운 공격 없이 그냥 공을 내주냐! 제대로 좀 하자!”

아나운서의 말이 끝나자마자, 관중석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세령이 앉은 자리 인근에서 들렸고, 세령의 시선이 그 관중에게로 돌아섰다.

“모두다…….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세령이 홀로 중얼거렸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면 모두가 저토록 소리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저런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선수들은 모두가 최선을 다한다. 그렇지만 그 최선만으로 모든 경기에서 승리할 수만은 없는 것이었다.

리그 경기처럼 경기수가 꽤 많은 경기라면 한 번의 패배에도 관중들은 박수를 쳐 줄 것이었다. 하지만 국가대항전은 달랐다. 리그 경기처럼 수십 번 치르는 경기가 아니었다. 어쩌다 한 번씩 찾아오는 국가대항전에서 승리를 원하는 것은 모든 관중이 다 같은 생각일 것이었다.

-다시 아론 선수 공을 잡았습니다! 영국의 공격이 빠르게 전개되고 있지만, 우리선수들 제대로 따라붙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공격은 언제나 빨랐다. 느슨하게 치고 들어오는 공격이 없었다. 이에 한국 수비진들은 그들의 빠른 움직임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고 있었고, 몇 번이나 위험한 기회를 넘기고 있었다.

-장형 선수의 선방으로 골은 면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계속 수비가 뚫리면 또 다시 실점을 할 수 있는데요. 최홍표 감독의 전술 변화가 필요한 시기인 듯합니다.-

전반 40분 정도가 지날 때였다. 두 번째 골을 허용한 뒤, 한국은 제대로 공격으로 나서지도 못하고 있었다. 전반 40분 동안 한국이 지른 슛은 고작 두 개였다. 하지만 영국은 두 골을 뽑아낸 후에도 여러 차례 위협적인 유효슈팅을 만들어 냈지만, 장형의 선방에 막히며, 추가 득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째 장형하고 저 누구냐…….챌린지에서 온 선수. 그래 서민수 선수 밖에 보이지 않냐.”

관중들은 전반전이 끝나갈 무렵 함께 온 일행끼리 전반전에서 빛났던 선수들을 말하고 있었다.

일부 관중의 말이긴 하지만, 그들의 말처럼 전반전 내내 훌륭한 움직임을 보인 선수는 장형과 서민수였다. 장형은 비록 두 골을 허용하였지만, 그 후로는 골과 다름없는 위협적인 슛을 여러 차례 막아내며 차츰 자신의 페이스를 찾아가고 있었고, 서민수는 처음과 같이 아주 훌륭한 수비로 축구 관계자들은 물론, 관중들에게까지 인정받고 있었다.

반면에 협회나 기타 기자단들이 최고라 여겼던 손차형과 설기동 등, 유럽파선수들의 움직임은 굉장히 둔해보였다. 손차형은 리그에서 보여주었던 매서운 공격력을 단 한 차례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삐~익!”

-전반전 끝납니다. 우리 대표 팀은 전반 3분과 20분에 각각 한 골씩 내주며, 0대 2로 전반전을 마칩니다!-

전반전이 끝났다. 영국 선수들은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짓고, 여유 있는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내려오고 있었지만, 우리 대표 팀 선수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리고 최홍표는 그들이 그라운드를 내려오기도 전에, 이미 벤치를 벗어나 라커룸으로 향해 있었다.

“손차형.  설기동. 양민구, 최민수, 서후…….너희들이 뛰어 본 전반전이 어떠냐?”

최홍표는 라커룸으로 들어온 선수들을 본 뒤, 이들 다섯 명의 이름을 호명하여 물었다. 유독 이 다섯 명의 이름만 부른 이유는 이들은 모두 명문클럽에서 인정받은 주전 선수들이기 때문이었다.

“쉽지 않았습니다.”

양민구가 답했다.

“쉽지 않다? 그래 어느 면에서 쉽지 않았나?”

“서로…….뜻이 맞지 않았고, 무엇보다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았습니다. 패스를 주고받아, 다시 공격으로 넘기며, 빠른 전개가 되어야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어지는 양민구의 답을 듣고, 그는 다시 물었다.

“선수들 간의 개인능력이라고 봅니다. 우리 같은 해외파는 빠른 경기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파 선수들은 그 스피드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이는 빠르게 이어지는 공격의 흐름을 깨는…….”

“틀렸다.”

양민구가 전반전에 느낀 자신의 소감을 말하고 있을 때, 그의 말이 끝나기 전, 최홍표는 그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너희들은…….최선이라는 단어를 빼먹었다. 그 단어가 이미 너희들의 머릿속에 없다.”

“…….”

최홍표의 말에 모든 선수들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물론 최선을 다해서 경기에 임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관중들은 물론, 최홍표의 눈에도 이들에게 최선이라는 단어는 없는 듯 한 전반전이었다.

“해외파가 빠른 흐름을 주도하는데, 국내파가 따라가지 못한다? 그럼 속도를 늦춰, 그 흐름에 맞출 수 있는 것이 프로다. 빠른 선수는 속도를 줄일 수 있지만, 느린 선수는 속도를 더 낼 수 없다. 무리하게 속도를 올려 움직이면, 경기 시작 후, 급격한 체력저하로 전반전도 다 뛰지 못한 채, 그라운드에 쓰러진다. 꼭 빠른 축구만이 승리한다는 것은 없다.”

최홍표는 모두를 고루 보며 말하였다. 그의 말처럼 빠른 흐름에 익숙해져 있던 해외파들은 속도를 약간 줄여, 국내파들의 움직임에 맞출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영국에 비해 느린 축구를 구사하는 국내파들은 그 이상의 속도를 내는 것은 힘들었다.

“국가대표…….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을 말한다. 너희들은 해당 소속팀에서 굉장히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는 놈들이다. 그런데 속도가 맞지 않아 전반전이 힘들었다? 그건 핑계다. 소속팀으로 돌아가 다시 그 명성을 얻기 위해서는 몸도 사려야지. 이 이야기는 아마 소속팀 감독이 너희들에게 한 말일 것이다. 먼 길을 날아왔으니, 몸도 지쳐 있을 것이고, 또 무리한 경기로 인하여 만에 하나 부상이라도 입는다면, 해당 팀에 큰 폐를 끼치는 일이기에 리그보다 덜 한 움직임을 보인다. 내 말이 맞나?”

최홍표는 국내파 선수들보다 해외파 선수들을 지목하며 말했다. 그들은 해당 소속팀에서 주전이다. 당연히 부상은 자신의 축구인생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었다. 무엇보다 한국선수로써는 받기 힘든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고 있는 이들이, 금전적으로 대가가 없는 국가대항전에 목숨을 걸고 뛸 이유는 적었다.

월드컵과 같은 경기에서나 자신의 모든 실력을 다 뽐내려 뛰겠지만, 보통 평가전이나, 친선전에서는 자신의 실력을 십분 발휘하지 않고, 부상을 염려하며 뛰는 선수들도 있었다.

“국가대표는…….돈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하여 뛰는 것도 아니다. 명예다. 나라를 대표하여 뛰는 명예. 적어도 이 나라에 태어나,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면, 그 순간만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최홍표는 격한 말을 하지 않았다. 전반전 내내 자신은 물론, 관중들마저 실망스럽게 느껴질 정도의 축구를 하였다. 하지만 후반전은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것을 보고자 모두를 향해 보며 말하고 있는 그였다.

“후반전은 선수교체가 많을 것이다. 일단 손차형을 빼고 이태성이 들어간다. 그리고 설기동을 빼고 추강이 들어가며, 소지광과 서민환을 빼고, 이유성과 오지성이 들어간다. 그리고 골키퍼 장형을 빼고 용지현이 투입된다.”

후반 시작과 함께 다섯 명의 선수가 교체되는 것이었다. 일단 전반전에 무딘 움직임을 보여주었던 손차형이 빠지고, 이태성이 들어가게 되었다.

그 순간부터 선수들의 눈은 바삐 움직였다. 극과 극의 교체라 보아도 무방할 교체였다. 최고의 기량을 지닌 손차형을 빼고, 국내2부 리그 공격수를 투입하는 것은 진정 모험이었다.

그리고 쉐도우 자리에 서 있었던 설기동을 대신하여 추강이 들어가는 것도 역시 극과 극의 교체였다. 전반전에 양쪽 공격을 주도하였던 국내파 윙어들인 소지광과 서민환을 빼고, 첼시의 이유성과 레알마드리드의 오지성이 투입되면, 이 부분에서는 업그레이드 된 교체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골키퍼 교체에 또 다시 모두의 눈들이 장형과 용지현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전반전…….모두 열심히 뛰어주었다. 비록 나와 관중들 눈에는 열심히 뛰지 않았다고 여겨져도, 너희들 스스로는 열심히 뛰었다고 생각한다.”

최홍표는 전반전을 뛰고 교체되는 다섯 명을 보며 말했다. 손차형과 설기동. 양민구…….이 세 사람은 진정 해당 소속팀에서 에이스지만, 오늘만큼은 그 이름값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전반전 45분만을 그라운드위에서 보낸 뒤, 다시 해당 소속팀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후반전에는 우리 선수들 교체가 많습니다. 영국에서도 세 명의 선수를 교체하였지만, 우리 대표 팀은 무려 다섯 명의 선수가 모두 교체되며 후반전을 소화할 예정입니다! 먼저 손차형 선수가 나가고 이태성 선수가 들어왔군요. 그리고 설기동 선수가 나가며 추강 선수가 들어왔고, 소지광 서민환 선수가 나가고, 각각 이유성과 오지성 선수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골키퍼에 용지현 선수가 섰습니다.-

“와! 내 새끼들! 제대로 한 방 보여줘!”

아직 선수들이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나운서는 이미 교체명단을 입수하고, 방송으로 내 보냈고, 방송이 나오자마자 세령은 아주 큰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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