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1 히든리거 =========================================================================
“초반 영국의 압박이 강한데.”
장두관이 경기를 지켜보며 말했다. 영국은 공격진 세 명이 서로 양쪽과 중앙을 맡아, 공이 전달되는 즉시, 해당 선수에게 바짝 붙으며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볼을 걷어내야 합니다! 우리 진영에서 너무 공이 돌고 있어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격해졌다. 경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영국의 강한 압박으로 인하여, 공은 한국진영에서 좀 채, 벗어나지 못한 채, 수비수들이 공을 서로 돌리고 있었다. 이에 불안한 마음에 그의 목소리가 격해진 것이었다.
-아! 서후 선수의 패스미스가 일어납니다! 그 공을 잡은 헤니선수! 곧바로 골대를 향해 봅니다!-
우려하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서후 선수가 공을 잡은 후, 다시 라이트백 이만기 선수에게 패스하려던 순간, 그 패스를 알아차린 영국의 최전방 공격수 헤니가 공을 가로챘고, 그 즉시 골대를 향해 보았다.
-헤니! 슛!-
거리는 멀지 않았다. 약 17미터 정도 되는 거리였으며, 헤니의 최대 장점인 정확하며 빠른 슛이 나왔다.
-장형! 쳐 냅니다!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수문장답게, 헤니 선수의 강슛을 쳐 냅니다!-
다행이었다. 선발로 나온 장형은 한국에서 다시 나오지 않을 최고의 골키퍼라는 찬사를 받은 인물이었다. 그 명성답게 헤니의 정확하고 강력한 슛을 쳐내며, 골라인 밖으로 내 보냈다.
“역시. 장형이다. 저런 괴물이 있으니, 서울이 골을 뺏기지 않지.”
관중들도 장형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었다. 몇 관중들의 말처럼 장형이 속한 서울은 거의 3경기에 한 골을 내어줄까 말까하는 팀이었고, 클래식리그 최소 실점을 자랑하는 팀이기도 하였다.
-영국의 코너킥! 페널티박스 안으로 들어옵니다! 브라운선수! 헤딩! 아…….골입니다.-
대단한 골키퍼라고 자랑하던 순간이었다. 관중들은 장형의 선방에 대해 칭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칭찬에 대한 장형의 대답은 실점으로 돌아왔다.
아주 빠르며 강하게 감아 들어온 공은 페널티박스 중앙에 서 있던 여러 선수들 틈으로 떨어지고 있었고, 중앙수비수인 최민수와 서후가 뛰어 올랐지만, 그들보다 머리하나는 더 있을 정도의 큰 키를 자랑하는 영국의 미드필더 브라운선수가 큰 키에 높은 점프력을 과시하며 헤딩하였고, 그 공은 아주 빠르게 골문을 향해 들어갔다.
천하의 장형도 움직이지 못할 아주 빠르고 정확한 헤딩슛이었다.
-경기 시작 3분 만에 첫 골을 실점합니다. 같은 실점이라 하여도 초반 실점은 선수들에
게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그의 말처럼 같은 실점이라 하여도, 경기시작 후 5분, 그리고 끝나기 5분전에 이루어지는 실점은 아주 큰 변수를 만들어준다.
경기 시작과 함께 첫 골을 넣은 영국은 화려한 세레모니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당연히 자신들이 이기는 경기를 하는 것처럼, 그저 가볍게 동료들 간에 손을 마주치거나, 포옹을 하는 정도였다.
관중들은 멍하니 그라운드를 보고만 있었다. 또 다시 패배의 먹구름이 5만 관중을 다 덮고 있는 듯 한 분위기였다. 최홍표는 앞 선 6경기의 A매치 중, 단 한 번의 승리도 가져가지 못한 감독이다. 이번에도 패배하면 그의 지도력은 도마 위에 오를 것이 뻔하였다.
영국 측 벤치도 의외로 조용하였다. 감독이나 코칭스태프들이 일어나 환호하거나, 과한 행동을 취하는 인물이 없었다. 오히려 한국 측 벤치보다 더 조용한 듯 보이는 그들이었다.
“영국의 조직력이 좋은 것인지…….”
3분 만에 첫 골을 내주고 나니, 분위기가 많이 바뀐 듯 보였다. 서재호는 단 3분 만에 보인 영국축구의 빠른 전개와 함께, 단 한 번의 코너킥도 골로 연결시키는 그들의 조직력에도 감탄하고 있었다.
“저들이 밥 먹고 연습하는 것이 저거야. 세트피스. 바로 잘 짜인 각본대로 선수들이 잘 움직여 주는 거지. 저들은 아주 정교한 패스에 이어, 그 패스가 떨어지는 곳에 항상 같은 동료가 서 있는 연습을 한다. 그러니, 눈을 감고도, 자신의 발끝을 떠난 공이, 다시 자신의 동료에게 가는 아주 훌륭한 패스워크를 가지고 있지.”
장두관이 서재호의 말을 들은 후, 그라운드위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그리고 세령의 시선도 그라운드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영국은 진정 빨랐다. 지금까지 자신이 본 그 어떤 팀들보다 더 빠르게 공격전향으로 배치되며, 그 성과도 빠르게 만들어내는 팀이었다.
-먼저 한 골을 내주고 따라가야 하는 처지입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힘이 없었다. 초반에 한 골을 내주었지만, 아직 남은 시간이 많아, 충분히 따라 잡고, 역전까지 할 수 있다는 말을 많이 하였었다. 하지만 그건 언제까지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전반 초반에 뺏긴 그 한골이 결국 결승골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였다.
전반전 경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전반 초반보다는 더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한국 팀이었고, 그 조직력에 더 강한 조직력을 지닌 영국 팀이 여전히 강한 압박을 가하며, 한국선수들이 쉽게 중앙선을 넘어오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다.
“패스도 쉽지 않겠네. 어찌 우리 선수 한 명 한명에게 영국의 수비수가 저리 잘 붙어있지?”
세령은 계속 이어지는 경기에서 눈을 전혀 떼지 않으며 보고 있었다. 그리고 영국의 수비수들이 어찌 움직이는가에 모든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들은 공을 받을 자리에 있는 우리 선수들의 바로 뒤나, 옆으로 바짝 붙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공격자보다 수비자가 많은 것을 잘 이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국의 공격자는 최전방 원톱인 손차형을 비롯하여, 미들진 네 명이다. 총 다섯 명이 공격적으로 움직이지만, 영국의 수비수는 무조건 공격자보다 한 명은 더 많은 수비수를 두고 있었다.
한국의 공격수가 3명이면 이들은 포백과 함께, 수비형 미드필더가 약간 아래로 내려와 수비에 가담하였고, 나머지는 중앙선 인근에 서서 역습을 노리고 있는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양민구! 올라가라!”
애써 중앙선을 넘은 공은 다시 내려오고 있었다. 앞쪽으로 들어서는 선수가 있어야 스루패스라도 할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영국의 수비수에 막혀, 앞으로 전진도 하지 못한 채, 오히려 몸을 다시 돌려 중앙선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이에 손차형이 아주 큰 소리로 외치자, 중앙미드필더 양민구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그의 움직임에 맞춰 양쪽 윙어인 소지광과 서민환도 빠르게 움직였고, 그에 맞춰 영국의 수비진도 빠르게 따라 움직였다.
-한국! 공격이 빠릅니다. 공을 잡은 설기동 선수, 자신보다 앞서 움직이는 양민구에게 공을 넘겨주고, 자신은 돌아들어갑니다!-
손차형의 한 마디에 선수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벤치에서 소리치는 감독의 목소리보다, 같은 필드 위에서 움직이는 동료의 목소리가 더 잘 들리는 것이었다.
-양민구! 다시 빠르게 사이드를 치고 들어가는 소지광 선수에게 길게 패스합니다!-
약간 먼 거리였지만, 양민구가 중앙에서 띄워준 공은 왼쪽 사이드로 치고 들어서던 소지광의 앞으로 정확히 떨어졌다.
“와아아아!”
전반 15분 정도가 지난 상태에서 대한민국의 첫 번째 공격이 이어지고 있는 것에, 관중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소지광! 중앙을 보며 센터링!-
소지광의 빠른 발이 영국 수비수보다 먼저 움직였고, 바로 앞에 수비수가 있었지만, 소지광이 올린 센터링은 수비수를 약간 비켜나, 페널티박스 중앙으로 올려지고 있었다.
-손차형! 헤딩!-
‘탁! 팅!’
-아! 골키퍼 손에 걸리며, 골포스트를 맞고, 골라인 아웃됩니다! 아쉬운 순간입니다! 하지만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한국의 첫 번째 코너킥입니다!-
전반 3분 만에 첫 골을 내 주었던 상황과 비슷하였다. 영국도 이와 같은 상황에 첫 골을 얻어냈고, 이번엔 한국에게 그 기회가 주어졌다.
-서민환선수! 코너킥!-
“삐익!”
-아…….선심이 기를 들었습니다. 이미 공이 골라인을 벗어난 후, 다시 들어왔다는 뜻인데요…….아쉽게 첫 번째 얻은 코너킥을 무산시키고 있는 한국 대표 팀입니다.-
같은 상황이었지만, 결론은 달랐다. 한국의 서민환 선수가 올린 코너킥이 킥과 동시에 골라인을 벗어난 후, 들어왔다는 뜻을 선심이 보였고, 주심은 곧바로 그 신호를 받아 휘슬을 불었다.
“아쉽네.”
세령이 잔뜩 긴장하고 있던 어깨에 힘을 빼며 말했다. 사실 코너킥을 골로 연결시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코너킥뿐만 아니라 그 어떤 경우에도 골로 연결시키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그 와중에 코너킥은 같은 동료들끼리 제대로 된 호흡만을 잘 갖춘다면, 의외로 쉽게 골을 얻어낼 수 있는 상황도 전개된다.
-잭 스틸 선수! 길게 공을 찹니다!-
영국의 골키퍼가 공을 길게 차 올렸다. 그 공은 중앙선을 지나 한국진영 가운데까지 날아와 떨어졌다.
그리고 그 공을 잡은 선수는 영국의 미드필더 알렌이었다. 그저 운이 좋을 수도 있지만, 그 먼 거리에서 차 올린 공이 아주 정확하게 자신의 동료 발아래 떡하니 떨어졌다.
알렌은 서민수를 등지고 서 있었다. 서민수는 미드필더지만, 공격보다는 수비에 더 치중하라는 역할을 받은 선수였다.
개인기가 좋은 알렌은 서민수를 제치려 이리저리 몸을 돌렸다. 하지만 서민수는 쉽게 그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개인기로 수비수를 농락한다는 알렌은 챌린지리그에서 뛰는 서민수의 수비를 뚫지 못한 채, 공을 다시 중앙으로 내주고 있었다.
-서민수 선수의 완벽한 수비입니다. 알렌 선수가 저 상태에서 돌아설 수 있었다며, 골대로 향하는 헤니 선수라든지, 벨라미 선수에게 곧바로 공이 연결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서민수 선수, 엘렌 선수가 돌아서지 못하도록 잘 막아냈습니다.-
관중들은 서민수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알렌은 프리미어리그 맨시티 소속으로 그의 기량은 세계가 인정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선수가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도록 서민수는 완전 봉쇄해 두었다.
-알렌의 공을 받은 스콧 선수. 다시 사이드로 길게 공을 차올립니다.-
중앙이 뚫리지 않자, 사이드를 공략하려 하는 영국이었다. 중앙에 위치해 있던 스콧은 왼쪽을 치고 들어가던 아론 선수에게 공을 연결해 주었고, 아론 역시 화려한 개인기로 이만기 선수를 간단하게 제친 후, 곧바로 골대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