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0 히든리거 =========================================================================
“늦어서 죄송합니다. 차가 너무 막히네요.”
오형호의 아버지는 지난 날, 세령 일행과 마주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자신을 먼저 낮추며, 세령에게 다가와 두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였다.
세령과 서재호, 장두관은 그에게 환한 웃음을 지으며 국방부 안으로 안내하였고, 오형호는 서재호와 함께 급히 행정반으로 향하였다.
“아무쪼록 못난 아들놈 잘 좀 부탁드립니다.”
부모님은 다시 한 번 세령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며 오형호를 부탁하였다. 완강하게 거부하였던 지나 날의 그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진정 자식을 맡기는 입장에 선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긴 시간을 이동하여 온 것에 비해, 아주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부모님은 다시 통영으로 향하였다. 세령과 장두관은 그들이 국방부를 벗어나, 저 멀리 사라질 때까지 보고 있었고, 돌아가는 그들도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아들을 맡기고 가는 표정들이었다.
이강수는 서둘러 다섯 명의 장병들 전입절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금요일부터 이들은 각부대의 장병들이 아닌, 국방부FC를 대표하는 국방부소속 축구선수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었다.
“드디어 오늘인가.”
토요일. 날씨는 맑았다. 국방부장관은 달력을 보며 말했다.
서울 상암운동장에는 벌써부터 관중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5무 1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가지고 있는 국가대표들에게 다시 한 번 국민들의 믿음에 보답해 달라는 뜻도 있었으며,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기에, 아직 경기 시작시간이 한 참 남았지만, 경기장으로 많은 관중들이 모이고 있었다.
이로 인하여 토요일 진행되는 클래식리그와 챌린지리그에는 거의 관중이 없었다.
내일 경기가 있는 국방부FC는 이강수의 특별 건의로 인하여 토요일 있는 국가대표 A매치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다.
“서둘러 이동한다.”
세령도 일찍 움직일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미 협회의 도움으로 국방부FC 선수들이 앉을 자리는 모두 배정받았다.
-축구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잠시 후, 8시부터 우리 국가대표와 영국과의 친선경기를 중계해 드리겠습니다.-
아직 한 시간이 남은 오후 7시. 이미 관중은 만원이었다. 중계를 맡은 아나운서는 관중들을 보며 말하였고, 이미 수많은 서포터즈들은 대형 기를 흔들며 응원이 한창이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서재호가 상암구장을 가득 메운 관중을 보며 물었다. 진정 이토록 많은 관중들 틈에서 공을 찬다는 것은 설렘일 것이었다.
홈팬들의 함성소리로 인하여 선수들 간의 대화도 아예 들리지 않을 것이었다.
잠시 후, 경기장으로 선수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양 국가의 선수들은 그라운드 위에 올라 조금씩 몸을 풀고 있었고, 카메라에 선수들이 잡히면, 관중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이는 비단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한정된 환호성은 아니었다. 영국 국가대표선수들도 대부분 우리나라에서 꽤 알려진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축구팬들은 프리미어리그를 빼놓지 않고 시청한다. 그리고 그들의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 중, 국가대표로 발탁된 영국 선수들이 상암구장 그라운드 위에 올라서 있는 것이었다.
천문학적인 몸값을 가진 선수들부터, 화려한 드리블과 함께 골을 성공시키는 축구천재까지. 진정 프리미어리그의 대표들이 모두 모여 있는 듯하였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경기 시작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선수들 입장이 시작되었고, 곧 양국가의 국가가 울려 퍼졌다.
국가제창이 끝난 후, 양 팀 선수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하나하나 잡히고 있었다. 영국의 국가대표선수들이 카메라에 잡히며, 각자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상암구장의 관중들은 엄청난 환호성을 질렀다.
진정, 세계적인 스타의 플레이를 직접 눈으로 본다는 것에 흥분한 관중들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세령의 눈동자는 지금까지 그 어떤 때보다 더 초롱초롱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 장두관과 서재호, 그리고 연동훈을 비롯하여 코칭스태프들도 그녀의 그런 표정을 진정 처음 보는 것에 의아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이 감독. 자네도 축구 팀 감독이네, 어찌 선수들을 보고…….”
“선수들을 보고 반하는 것은 감독의 자연스러운 행동입니다. 제가 만약 지금처럼 어떤 누군가를 지도하는 감독으로 계속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우리 선수들도 저들처럼 꼭 세계적인 축구선수로 만들고 싶습니다.”
장두관이 물었고, 그녀의 답을 들은 후, 그는 세령의 모습을 다시 보았다.
어떤 감독들은 말했다. 꼭 세계적인 축구 선수들을 영입하여 세계 최고의 클럽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령은 달랐다. 세령은 세계적인 축구선수들을 영입하여 최고의 팀을 만들겠다는 것이 아닌,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선수들을 저들처럼 최고의 선수가 되도록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자네는…….꼭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네.”
장두관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세령의 시선은 온통 호명되고 있는 영국의 축구선수들을 보고 있었다.
곧 대한민국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카메라에 잡혔다. 그러자 조금 전, 영국선수들에게 보내주었던 환호성과는 비교도 안 될 엄청난 환호성을 질러주었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들이라도, A매치에서 만나면 역적이지. 모두가 개인적으로 해당선수를 좋아하지만, 어쩌겠나. 자국의 편에 서는 것이 당연한 것이니 말이야.”
장두관이 관중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말했다.
“와! 이태성! 추강! 용지현! 잘해라!”
카메라에 세 선수가 나란히 잡혔다. 그러자 세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흔들며 소리쳤다. 그 모습은 영락없는 소녀 팬의 모습이었다.
장두관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보았지만, 서재호와 연동훈, 그리고 선수들은 모두 머리를 숙이며 그녀와 시선을 마주하려 하지 않았다.
“세 명 중, 단 한명도 선발라인업에 없군.”
장두관의 말처럼, 하지만 아쉽게도 세 선수는 선발라인업에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란히 교체멤버로 다 이름을 올려놓았기에, 오늘 경기에서 무조건 단 1분이라도 그라운드를 밟는다는 것이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곧 한국과 영국의 국가대표 친선전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나운서의 멘트가 나오자, 관중들의 환호성은 더욱 더 커졌다.
영국 측 선발은 화려하였다. 선발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선수들의 이름이 호명 될 때마다, 그 이름 하나하나를 모두가 아는 것 마냥, 관중들의 환호성은 더욱 더 커졌다.
-이어서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발 라인업입니다. 먼저 시스템은 4-4-1-1을 들고 나온 최홍표 감독입니다. 원톱으로는 모두의 예상대로 손차형 선수가 나왔습니다. 현재 뛰고 있는 리그에서도 득점 공동 3위이며, 훌륭한 시즌을 마무리하고 있는 손차형 선수입니다.-
원톱으로 손차형이 나왔다. 그의 이름이 발표되며, 대형모니터에 얼굴이 보이자, 관중들은 조금 전, 영국선수들이 호명될 때보다 더 큰 호응을 보내주고 있었다.
-그 아래로 쉐도우 자리에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설기동이 섰습니다. 중앙미드필더로 레버쿠젠의 양민구 선수와 함께, 양쪽 사이드로 FC서울의 소지광과 수원의 서민환 선수가 섰군요. 그리고 수비형 중앙미드필더의 자리에 생각지 못한 선수가 나왔습니다. 바로 챌린지리그 광양FC의 서민수 선수가 섰습니다. 서민수 선수의 소속팀 포지션은 중앙미드필더지만, 이번 국가대표에서는 수비형으로 약간 내려온 자리네요.-
이어 미드필더 다섯 명이 소개되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설기동과 레버쿠젠의 양민구는 모두가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FC서울의 소지광과 수원의 서민환도 이미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선수였다.
하지만 광양FC의 서민수는 모두의 눈과 귀에 낯선 인물이었다. 하지만 관중들은 그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었다. 소속팀이 비록 2부 리그지만, 해당 선수는 지금 현재, 국가대표로 뛰고 있기에, 그 대우를 충분히 해주고 있는 관중들이었다.
-DF의 자리에는 중앙에 리버풀의 최민수와 아스날의 서후선수가 섰습니다. 그리고 라이트백으로 서울의 이만기 선수, 레프트 백으로 제주의 장지형 선수가 섰습니다. 이 역시 전문가들이 어느 정도 예상을 한 케이스군요.-
이어지는 수비진영의 소개에도 예상을 크게 벗어나는 선발 라인업은 없었다. 아나운서의 말처럼 많은 전문가들이 지목했던 선수가 선발로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수문장으로는 서울의 장형 선수가 섰습니다. 현재 장형 선수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붙박이 골키퍼로 그의 능력을 따라잡은 선수가 아직 없다는 것이 전문가의 평입니다.-
이어 마지막 수문장 자리에 선, 장형이 소개되면서 11명의 선발라인업이 모두 소개되었다.
“그 놈의 전문가적 입장…….대체 전문가라는 것은 뭘 두고 전문가라고 하는지 모르겠군.”
아나운서의 멘트를 모두 듣고 난 후, 서재호가 중얼거렸다. 그의 말처럼 언제나 경기에 앞서 전문가의 평이 이렇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그들의 평가가 꼭 경기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누가 선정했는지도 모르는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예상이 곧 결과로도 반영되는 것 마냥 말하고 있었다.
“그 분야에서 잘 알면 전문가지, 다른 것이 전문가이겠는가?”
장두관이 그의 말을 들은 후, 웃으며 말하였고, 곧 세령도 미소를 지으며 그를 보았다.
“너희들은 웃지마라. 이 감독까지는 봐 줄 수 있지만, 연동훈이 밑으로는 잇몸 보이지마라.”
자신의 말에 의해 장두관과 세령이 미소를 지으며 웃자, 연동훈과 이민우도 웃으려 하였다. 하지만 그 즉시 서재호의 말이 나왔고, 연동훈의 밑으로 모든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입을 딱 다물고 있었다.
“삐~익!”
-경기 시작됩니다!-
드디어 많은 국민들이 기다리던 영국과의 평가전이 시작되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A매치 평가전이며, 더군다나 상대가 영국이라는 것에 만원관중이 모였고, 그 환호성은 진정 월드컵을 연상시키는 분위기였다.
-한국의 선축으로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손차형 선수가 뒤로 밀어준 공을 설기동 선수가 잡아, 다시 라이트윙 소지광 선수에게 패스합니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손차형의 발에서 시작된 패스는 아주 빠른 속도로 소지광에게 연결되었고, 영국의 공격진은 초반부터 강한 압박으로 나오고 있었다.
공을 잡고 오래 머물면 그 즉시 영국의 공격진이 다가섰다. 그로 인하여, 한국진영에서 공이 벗어나지 않고 있었으며, 공은 계속하여 더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