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9 히든리거 =========================================================================
“우리 형호…….약한 놈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런 운동도 시키지 않으려 했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저 놈이 더 악착같이 운동했습니다. 그리고 공을 만졌습니다.”
아버지는 형호의 어린 시절을 말하고 있었다. 약한 몸에 운동도 시키지 않으려 하였지만, 오히려 공을 가지고 더 열심히 놀았다는 것이었다.
“녀석의 실력은 제가 충분히 보장합니다. 그래서 더 겁이 났습니다. 훌륭한 기량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으면 나와 같이 될 것이라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역시 과거에 의해 자신의 자식마저 그 길을 걷게 하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후회도 많이 했습니다. 조금 더 악착같이 해 볼걸…….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포기했습니다. 나의 동생도 되지 않았고, 나의 아들도 되지 못했습니다. 그 놈의 학연, 지연…….언제까지나 따라다니는 그런 악습이 싫었습니다.”
충분히 이해하는 그의 말이었다. 세령은 천천히 걸어 세 사람의 앞으로 갔다. 그들에 비해 작은 키의 세령이었다. 심지어 오형호의 어머니마저 키가 큰 편이었다.
“맡겨주세요. 형호가 진정 하고 싶은 것…….그것으로 형호의 미래에 대한 후회가 없도록 해주는 것 또 한 부모님께서 하실 일이며, 의무입니다.”
세령은 그의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그도 세령을 보았다. 작은 키. 작은 여인. 하지만 지금 자신의 눈에 보인 세령은 그 어떤 여인보다 더 커 보였고, 강해보이고 있었다.
“후회…….없도록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약속드립니다.”
아버지의 물음에 세령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리고 오형호의 입가에도 미소가 생겼고, 그의 옆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있던 형도 웃으며 그를 보았다.
“사실…….국방부FC의 모든 경기를 다 보았습니다. 우리 아들만한 놈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은근히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그 때야 자신의 심정을 말하고 있었다. 몇 번이고 말하고 싶었던 말일 것이었다. 국방부FC의 모든 경기를 보면서, 군인의 신분으로 공을 차며, 자신의 기량을 내뿜고 있는 많은 장병들을 보며, 자신의 아들도 생각을 해 본 그였다.
그렇지만, 언제나 지난 과거가 그의 생각을 가로 막았었다. 하지만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야 자신의 생각을 가로 막고 있던 그 엄청난 장애물이 사라진 듯하였다.
“형호야.”
“네! 아버지!”
형호는 웃으며 그의 아버지 곁으로 갔다.
“훌륭한 감독 아래에서는 훌륭한 선수가 나오는 법이다. 그리고 넌…….지금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감독 앞에 서 있는 것이며, 그 분에게 인정받은 것이다.”
아버지는 세령마저 인정해주고 있었다. 세령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거렸고, 장두관과 서재호도 미소를 지었다.
진정 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결국 오형호라는 천재적인 미드필더를 영입하게 되었다.
“당신들이라면, 이 나라 스포츠계에 악습처럼 번져 있는 습관을 다 뿌리 뽑을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아무쪼록 못난 놈의 아들의 잘 부탁드립니다.”
오형호의 아버지는 세령을 보며 말했고, 곧 장두관과 서재호에게도 처음과는 달리 공손한 어투로 자신의 아들을 부탁하였다.
“오형호.”
“이병! 오형호!”
“목요일 오전 11시까지 국방부로 온다.”
“알겠습니다!”
오형호의 목소리는 활기찼다. 세령의 말에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생겨났고,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아들의 미소에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미소를 지었다.
영입을 목적으로 한, 사흘간의 이동을 모두 끝냈다. 세 사람은 국방부로 복귀하였고, 영입결과를 정책기획관에게 보고하였다.
“이강수와 서용석은 장병들이 도착하는 즉시, 국방부FC로의 전입을 모두 마무리 짓고, 국방장관님께 신고절차도 모두 마무리 짓도록 하게.”
“네. 알겠습니다.”
사흘 동안 다섯 명의 새로운 장병을 선수로 받아들였다. 그들이 속해있던 군부대에서 국방부FC로 전입신고를 하고, 정식으로 국방부FC소속 선수로 남은 국방의 의무를 다 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입 장병들의 정식 신고는 금주 토요일. 국가대표A매치 경기가 끝나고 난 뒤, 우리 선수들이 복귀하는 일요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강수가 정책기획관에게 말했고,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 국방부FC의 경기는 금주 일요일 오후 두시, 시흥FC와의 홈경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에 토요일 오후8시 우리 국방부FC소속 선수 세 명이 포함된 국가대표 A매치 경기가 있습니다. 전입 장병과 함께 토요일 A매치 경기를 관람할 예정입니다.”
이강수의 말을 듣고, 세령과 장두관, 서재호는 의외의 말을 한 그를 보았다. 지금까지 행정담당이라고 하였지만, 단 한 번도 지금과 같은 특혜를 만들어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일요일 경기를 앞두고 토요일 A매치 경기를 직접 경기장에서 관람토록 한다는 말은 그의 입에서 나온 말 중에, 가장 파격적인 말이기도 하였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 이 감독의 생각은 어떤가?”
“전. 좋습니다. 선수들에게 한 층 더 높은 클래스를 지닌 선수들의 움직임을 직접 보게 하는 것은 굉장한 도움이 될 것이라 봅니다. 이강수 대위님, 감사합니다.”
세령은 정책기획관의 물음에 답한 뒤, 이강수를 보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목요일. 국방부의 정문 앞에는 세령과 함께, 서재호와 이강수가 나와 있었다.
“몇 시지?”
이강수가 물었다.
“오전 10시 30분입니다.”
“11시까지 모두 오라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이놈들…….시간 아주 제대로 맞춰서 올 모양세군.”
약속된 시간에서는 아직도 30분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금일 새롭게 국방부FC로 들어올 장병들을 마중하기 위하여 세 사람은 일찍부터 국방부 정문에 나와 있었다.
“충성!”
곧 국방부 정문에서 힘찬 경례소리가 들렸다. 세 사람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하였다.
“1호차네. 어디 대대 1호차야?”
군용 지프차가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지프차 아래에는 1호차, 즉 대대장이나, 부대 내, 최고권위자를 뜻하는 차량 번호가 적혀 있었다.
“8사단 오뚜기 부대, 부대장 차량 같습니다.”
차량 번호를 보며 서재호가 말했다. 그리고 곧 군용 지프차가 정문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세 사람의 앞으로 다가와 정차하였다.
“길이 멀지 않아 좋네.”
“충성!”
서재호의 말이 맞았다. 해당 차량은 오뚜기 부대에서 만났던 여형민을 태운 차량이었다. 그리고 먼저 내린 사람은 부대장이었고, 세 사람은 그를 보며 경례하였다.
곧 여형민이 내렸다. 여형민은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던 장병이었다. 그리하여 특별히 부대 내에서 관심을 많이 가져주고 있던 장병이었다.
“충성!”
여형민도 세 사람을 보며 경례하였다.
“부대장님께서 직접 오실 것이라 생각지 못했습니다.”
세령이 그를 보며 말했다.
“내 새끼 보내는데, 마지막 길이라도 함께 해주고 싶어서 왔네. 그리고 온 김에 정책기획관님도 좀 뵙고가고…….겸사겸사지.”
부대장은 세령의 말에 답한 뒤, 국방부 내를 둘러보았다.
“잘 왔다. 여형민.”
곧 세령은 여형민의 앞으로 서며 미소를 지었고, 그를 향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였다. 여형민도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은 뒤, 내민 손을 잡아주었다.
“차량이 또 들어옵니다.”
서재호가 정문을 보며 말했고, 이번에는 두 대의 차량이 함께 들어서고 있었다.
“수방사와 수도군단차량이군.”
차량을 보자마자 여형민을 태우고 온, 부대장이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들어온 차량에서는 수방사의 이민구와 수도군단의 지호형이 내리고 있었다.
“이래저래 이렇게 만나게 됩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역시 두 장병을 데리고 온 사람들도, 수도군단의 작전장교와 수방사의 행정장교였다. 그리고 오뚜기부대 부대장이 두 사람을 보며 반가움을 나타냈고, 서로 안면이 있는 듯, 악수를 나누었다.
곧이어 53사단인 충렬부대 차량이 들어서고 있었다. 멀리 부산에서 올라온 차량이었다. 그리고 그 차량에는 구자훈이 타고 있었다.
“충성!”
구자훈을 반기려 세 사람이 차량 앞으로 다가섰다. 하지만 차량에서 내리는 인물을 보며, 모두가 놀란 눈으로 힘차게 경례하였다.
“사…….사단장님께서 직접…….”
모두가 놀란 이유였다. 차량에서 내린 인물은 다름 아닌 53사단장이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구자훈이 내렸다.
“길이 멀긴 멀군.”
“사단장님께서 어떻게 직접 오셨습니까?”
차량에서 내린 후, 허리를 이리저리 돌리며 말하던 그를 보고, 세령이 다가서며 물었다.
“먼 길 보내는 자식이라, 함께 움직인 것일세, 그리고 우연찮게도 내일 국방부에서 사단장급 회의가 있어서 겸사겸사 같이 온 것이네.”
금요일, 국방부에서는 참모급 회의가 있었다. 그리고 그 회의에 사단장급 이상의 인물들이 대거 참석할 예정이었고, 시간이 맞아 구자훈을 직접 태우고 온 53사단장이었다.
그가 국방부로 들어서며, 국방부내에 있던 정책기획관이 그 소식에 후다닥 달려 나왔다.
그리고 그와 만나 몇 대화를 나누었고, 곧 국방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아직 한 놈이 오지 않았지만, 일단 들어온 놈들을 데리고 가서, 전입절차를 마무리하도록 하지, 한 놈이 오면 자네가 좀 데리고 오게나.”
“네 알겠습니다.”
해병대 수색대대 오형호를 제외하고는 모두 도착하였다. 시간은 11시가 넘었으며, 그 시간에 맞춰 전입 장병들의 전입절차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이강수는 11시 정각에 미리 도착한 장병들을 데리고 행정반으로 향하며, 세령에게 말했다. 세령은 정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통영이라는 아주 먼 거리라는 것도 있지만, 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은 군인에게 용납이 되지 않는 것 중에 하나였다.
11시 10분이 되었다. 정문에서 수산회차량이 멈춰 섰다.
“통영수산인데.”
그 차량을 보며 서재호가 말했다. 통영수산. 바로 오형호의 부모님이 운영하던 횟집이었다. 세령은 곧 정문을 향해 뛰어갔고, 밖을 보았다.
“맞습니다.”
생선을 잔뜩 실은 차량에서 오형호가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부모님과 삼촌, 형도 함께 내렸다.
“모두 잘 오셨습니다.”
세령은 정문 밖으로 나와 그들을 마중하였다. 세령을 보며 오형호가 힘차게 경례하였고, 그의 가족들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