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리거-114화 (114/163)

00114  히든리거  =========================================================================

“삐익! 삐익!”

-전반전 경기가 끝났습니다. 양 팀 득점이 없는 가운데, 이렇다 할, 결정적인 찬스도 없었던 전반전이었습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에도 힘이 없었다. 화려한 공격력을 자랑하던 국방부의 부진도 의외였고, 8무승부에서 더 이상의 무승부는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던 청주의 무기력함은 더욱 더 경기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는 듯하였다.

“축구 할 생각 없어?”

라커룸으로 들어선 선수들을 향해 연동훈이 물었다.

“아닙니다.”

“아닌데. 아닌데 왜 이딴 식으로 경기를 운영해?”

연동훈의 표정은 날카로웠다. 전반전에 있었던 슈팅 하나도 그나마 청주에서 지른 슈팅이었다. 즉. 국방부는 전반전 45분 동안 단 한 차례도 슈팅을 하지 못한 것이었다.

“후반전에는 조금 더 공격적으로 나가자, 연태민의 뒤를 장만식이 받쳐주며 공격 진영에서 내려오지 마라. 그리고 그 뒤를 미드필더 진들이 커버한다. 양쪽 윙어들은 오프사이드를 피해 전방진영을 잘 파고들어, 찬스를 만들어보자.”

세령이 소극적이었던 전반전에 비해, 후반전은 수비적인 경기가 아닌 공격적인 경기를 운영할 뜻을 밝혔다.

이는 이미 전반전에도 선수들에게 주문한 것이었지만, 양쪽 윙어들이 공격에 가담할 때마다 오프사이드에 걸리며 공격이 끊어지는 현상이 많았었다.

후반전에는 양쪽 윙어들의 활발한 공격전향으로 골을 만들어 보고자 하였다.

-후반전 경기 시작됩니다.-

후반전이 시작되면서, 그나마 몇 명 앉아 있던 관중들마저 없어 보였다. 그만큼 전반전 경기가 지루하였던 것이었다.

-청주! 모처럼 잡은 기회입니다. 중앙을 돌파하며 찬스를 만들어 냈습니다!-

경기 시작 후, 처음으로 흥분한 듯 한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이었다. 청주의 양쪽 윙어들이 국방부의 오프사이드를 절묘하게 피하며, 공격의 활로를 열었고, 그 즉시 중앙 미드필더가 파고들며 공간을 만들었다.

-강 수! 강수 선수! 슛!-

‘철렁!’

-골! 골입니다! 후반 25분에 청주의 첫 번째 선취득점이 나왔습니다!-

청주의 선취골이 나왔다. 양쪽 사이드를 열어준 것이 화근이 된 공격이었다. 오른쪽 사이드에서 시작된 청주의 공격은 매서웠고, 수비수가 붙었지만, 그 공은 즉시 중앙으로 뿌려지며, 중앙미드필더는 국방부의 포백을 무너뜨리며 페널티박스 안으로 들어선 청주의 공격수 강수 선수에게 연결되면서 가볍게 인사이드킥으로 골대 모서리를 향해 차 넣었다.

조용하였던 양쪽 벤치의 명암이 보였다. 청주 쪽에서는 모든 코칭스태프가 일어나 환호하였고, 국방부쪽 벤치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연동훈은 사이드라인까지 나와 선수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들을 향해 격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힘을 내자는 뜻을 담은 고함소리였다.

경기가 다시 재개되었고, 첫 골을 넣은 청주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완벽한 수비적인 축구로 돌아섰다.

수비수는 물론, 미드필더 네 명도 절대 자기진영 중앙을 넘어서지 않고 있었다.

“경기가 너무 답답하게 흘러간다.”

어느덧 후반전도 3분여만 남았다. 그동안 수차례 공격을 시도하였지만, 수비수 여덟 명이 지키는 청주의 골문을 열기는 쉽지 않았다.

이에 장두관은 이마를 긁으며 중얼거렸다.

“설태구! 치고 올라가라!”

연동훈이 소리쳤다. 청주 선수들이 수비전향으로 돌아서면서 오프사이드는 모두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비수가 많다보니, 패스가 자주 끊겼다. 이에 연동훈은 드리블 능력이 좋은 설태구에게 직접 파고들 것을 주문하였다.

설태구는 연동훈의 목소리를 듣고, 패스가 아닌 드리블로 직접 청주진영을 휘젓기 시작하였다. 작은 체구에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이니, 수비수 두 명이 붙어도 설태구를 잡기는 힘들어 보였다.

-설태구 선수! 청주의 코너부분까지 왔습니다! 그대로 센터링!-

정말 오래만에 보는 센터링 같았다. 그만큼 중앙으로 공을 띄워주는 상황이 없었었다.

-장만식 선수 뛰어 오릅니다! 헤딩 슛!-

최전방 공격수 연태민이 아닌, 거구의 미드필더 장만식이 떠올랐고, 공은 정확하게 장만식의 머리에 맞았다.

‘탁!’

-청주의 골키퍼 이경수 선수! 정말 슈퍼세이브입니다. 골과 다름없는 공을 쳐 냅니다!-

진정 잘 맞은 헤딩슛이었다. 골대로 그대로 들어갈 것 같았다. 하지만 청주의 단시 골키퍼 이경수는 의외의 빠른 몸놀림으로 공을 쳐냈고, 공은 골라인 아웃되었다.

-경기 시간은 이미 멈췄습니다. 이번 코너킥이 국방부의 마지막 공격이 될 듯합니다!-

청주의 1승이 눈앞이었다. 전광판의 시계는 멈추었고, 어느덧 추가시간도 다 지나갔다. 단 한 번의 코너킥으로 이번 경기는 끝날 것 같았다.

“제발…….”

이민우가 두 손을 모았다. 이번에도 패배하면 주전 선수 세 명이 국방부의 승리를 모두 따낸 것이었다는 말이 흘러나오는 것은 당연할 것이라 여겼다. 뛰어난 선수들이지만, 그런 주전들이 없는 상황에 자신들의 기량을 더 많이 펼치지 못한 것이 더 아쉬울 것이었다.

-국방부, 골키퍼인 이철호 선수도 공격에 가담합니다!-

어차피 마지막 공격이 될 것은 뻔하였다. 단 한명이라도 더 공격에 힘을 보태고자, 최후방을 지키는 골키퍼 이철호마저도 페널티 박스 안으로 들어섰다.

-국방부! 설태구 선수의 코너킥!-

설태구의 발을 떠난 공은 골라인을 아슬아슬하게 타고 가다, 페널티 박스 안에서 휘어지고 있었다.

양 팀 공격수와 수비수가 청주진영에 다 들어와 있었고, 모두의 시선은 완벽하게 휘어져 들어오는 공에 모든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장만식! 헤딩!-

가장 거구의 몸을 지닌 장만식의 머리에 공이 와 닿았다. 이는 조금 전, 코너킥을 얻기 전 상황과 같았다.

-골키퍼 이경수 선수 다시 쳐 냅니다!-

정말 똑같은 상황이었다. 이번에도 이강수의 손에 걸린 공은 뒤로 밀려났고, 조금 더 뒤에 있던 국방부 골키퍼 이철호의 발 아래로 공이 떨어졌다.

-심판! 휘슬이 울리지 않습니다! 국방부의 골키퍼 이철호 선수! 다시 한 번 슛!-

이철호는 자신의 발아래 떨어진 공을 보며 슛을 질렀다.

‘팅!’

-아! 골포스트 맞습니다! 아! 연태민! 바로 앞에 있던 연태민 공을 잡아 수비수를 등지며 슛! 골! 골입니다.-

골문 앞 혼전이었다. 장만식의 헤딩슛을 막아냈지만, 그 공은 이철호의 앞으로 떨어졌고, 이철호가 다시 슛을 하였지만, 골포스트 맞고 나왔다. 하지만 그 앞에 있던 연태민의 발에 걸렸고, 연태민은 수비수 세 명을 등지며 어렵게 몸을 돌린 후, 터닝슛을 질렀다.

그 공은 골키퍼 이강수가 움직이지도 못한 상황 속에 골문으로 들어갔고, 선심의 오프사이드 기도 올라가지 않았으며, 주심은 골을 인정하는 휘슬 소리를 불렀다.

이에 청주에서는 강한 어필을 하였다. 이미 정해진 시간이 모두 끝났고, 마지막 코너킥도 공격 실패로 끝난 상황이기에 경기를 끝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주심은 아직 공이 페널티박스 안에 있었기에 경기를 진행하였다는 것을 알렸다.

극적인 동점골이 나오며 패배가 거의 확실하였던 경기에 무승부의 결과를 만들어내며, 승점 1점을 챙기는 국방부였다.

하지만 청주는 9무승부라는 진기록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1승을 챙기며 승점 3점을 가져갈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지만, 종료직전, 단 한 번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며 또 다시 무승부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국방부FC는 비록 무승부를 거두었지만,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 소리와 함께 국방부 벤치에서는 선수들을 향해 박수를 쳐 주었지만, 다 잡은 경기를 놓친 청주의 벤치에서는 쓴 표정들만이 보였다.

“어렵게 무승부를 거두었다는 소식입니다.”

경기가 끝난 후, 장두관은 경기 결과를 국방부에 알렸고, 정책기획관은 곧 장관에게 결과를 알렸다.

“주전 선수가 없는 상황에서 1무1패를 기록한 것이군. 어찌 생각하는가?”

장관은 경기 결과를 듣고 난 후, 정책기획관에게 물었다.

“비록 승리를 가져오지는 못했지만, 나름 선전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경기에 뛴 선수들 중, 공격자원들 대부분이 제대를 앞두고 있기에, 마음이 심란했을 것입니다. 이는 이태성이 지난 경기에서 무기력하게 경기를 치렀던 것과 비슷하다고 봅니다.”

정책기획관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였다. 이태성도 제대를 앞두고 심란한 마음에 경기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었다.

하물며 이번 경기를 비롯하여 앞선 강릉 전에서도 공격을 이끌었던 연태민과 마형식, 우동화와 전철민이 곧 제대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으며, 골키퍼 이철호마저도 함께 제대하기에, 그들의 마음이 무거웠을 것이라 여겼다.

“서재호가 전 군을 다 돌아보고 왔으니, 서둘러 세대교체를 하고, 이어지는 경기에 차질이 없도록 자네가 지원을 잘 해주게.”

“네 알겠습니다.”

장관은 밝지 않은 표정을 지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고, 정책기획관도 곧 새로운 선수 선발을 위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말 경기를 치른 후, 국방부는 토요일 밤, 늦은 시간에 다시 부대로 복귀하였다. 모두가 주눅들은 어깨를 하고 차량에서 내리고 있었고, 그 앞에는 정책기획관만이 그들을 마중하고 있었다.

“수고했네.”

정책기획관은 가장먼저 내린 세령을 보며 말하였고, 곧 장두관과 소재은에게도 수고했다는 말을 하였다.

이어서 코칭스태프들과 선수들이 내렸다.

“빡빡한 경기 일정을 소화하느라 많이 지쳤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주는 주중경기가 없기에, 적절한 휴식과 함께, 훈련도 열심히 소화해주게.”

정책기획관은 여전히 선수들을 다독거려주는 말만 하였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경기결과에 대해 선수들에게 소리친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그 어떤 누구보다 더 편치 않을 것이었다. 국방부FC라는 축구단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니, 그 결과에 따른 책임도 자신이 결국 가져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늦은 시간이지만, 이감독과 장소령, 그리고 서재호는 나를 따라오게.”

선수들에게 휴식을 준 후, 정책기획관은 세 사람을 따로 불렀다.

“내일부터 이감독과 장소령은 서재호와 함께, 새롭게 국방부FC로 들어올 선수선발을 위해 움직여. 이번주에 경기가 없으니, 시간은 지금뿐이야. 직접 눈으로 보고, 충분히 우리 국방부FC에 녹아들 수 있는 인재들을 데리고 돌아오게.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3일. 그 안에 장병들을 체크하고, 목요일 다시 복귀하게.”

“알겠습니다.”

정책기획관의 말에 세령이 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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