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7 히든리거 =========================================================================
“이런 경기는 많다. 아니…….이보다 더한 경기도 많다. 우린 언젠가 겪어야 할 판정을 미리 겪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경기는 또 있을 것이고, 그 때마다 흥분하여 소리친다면, 오늘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감독도 없고 수석코치도 벤치에 없다. 선수들은 자신들을 이끌고 가 줄 사람이 없는 경기장을 버티고 있어야 한다.”
장두관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세령은 선수들을 향해 시선을 돌려보았다. 모두가 쓴 표정들이었다.
“경기는 끝내야지. 후반전에는 위치 변화 좀 주자.”
세령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모두가 그녀를 보았다. 진정 그 누구보다 더 화가 난 사람이 그녀일 것이었다. 하지만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여기서 소리쳐봐야 죄 없는 자기 자식들만 듣는 목소리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여긴 그녀였다.
“장만식을 빼고 연태민이 들어간다. 그리고 쉐도우 없이, 전철민이 중앙과 함께 쉐도우 역할까지 한다. 그리고 미드필더 지형구를 빼고 중앙수비수 우근우가 들어간다.”
중앙수비수 민철환 자리에 우근우를 넣었다. 그리고 미드필더를 줄이는 강수를 두었다. 이는 허리진영까지 상대선수가 쉽게 들어서게 만들 수 있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최전방 공격수과 중앙수비수가 한 명씩 없는 시점이기에 더 이상의 실점을 막기 위해서는 수비수를 강화해야 하며, 득점을 하기 위해서는 공격수를 강화해야 하기에, 미드필더를 빼고, 각각 공격수와 수비수를 보강한 것이었다.
-후반전 시작과 함께 국방부FC의 선수교체가 있습니다.-
아나운서는 두 선수의 교체를 알렸다.
“후반전 남은 체력을 다 쏟아 부어라. 이참에 우리 충청이 날개 달린 듯 날아다니는 국방부의 기세를 완벽하게 꺾어둔다.”
“알겠습니다.”
후반전 시작에 앞서 충청감독은 더욱 더 맹공격을 퍼 붓도록 주문하였다.
-경기 시작됩니다!-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예상대로 후반 경기 초반부터 충청은 자유롭게 국방부의 허리진영까지 파고들었다.
-이지석 선수 슛! 용지현 선수 막아냅니다!-
쉽게 국방부 골문까지 와버리니,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슛을 지르고 다시 편하게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충청의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빗발치는 슛을 용지현은 잘 버티며 막아내고 있었다.
“경기 안 풀리네...”
하지만 후반전은 전반전보다 더 어렵게 진행하고 있는 충청이었고, 의외로 골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에 충청감독은 자신의 이마를 긁었다.
그의 말처럼 후반 35분이 지나가는 동안 엄청난 슛을 때렸지만, 그 모든 슛은 용지현에게 막혔다. 그리고 교체해 들어간 우근우의 수비가 단연 돋보였다.
-남은 시간은 5분입니다. 충청FC. 더 많은 골이 나올 것 같았던 후반전에는 아직 단 한골도 뽑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 용지현 선수. 이지석 선수가 찬 슛을 그대로 잡은 후, 곧바로 던집니다!-
공을 넣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바로 역습. 용지현은 이지석의 슛을 잡고 난 뒤, 곧바로 길게 던졌고, 그 공은 설태구에게 전달되었다.
전반전과 후반전 내내, 평소와 같은 빠른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던 설태구는 공을 잡자마자, 충청진영으로 파고들었고, 그 옆으로 전철민과 함께, 반대에는 박철강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충청의 포백과 일직선상에는 연태민이 서 있었다.
설태구는 사이드 깊숙이 들어갔고, 곧 골문을 향해 시선을 돌린 뒤, 다시 충청의 허리진영에 있는 전철민을 보았다.
-설태구 선수! 최전방 골문 앞에 있는 연태민 선수가 아닌, 전철민 선수에게 공을 돌립니다!-
연태민에게 공을 주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연태민은 두 명의 수비가 밀착마크를 하고 있었고, 빠른 역습으로 올라온 탓에, 전철민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전철민 선수! 슛!-
‘팅!’
-아! 골포스트 맞고 다시 나옵니다!-
전철민은 수비수가 없는 자신의 정면을 보고 그대로 슛을 날렸고, 그 공은 아주 절묘하게 휘어짐 없이 곧바로 뻗어나가며 골로 연결될 듯 하였지만, 골포스트 윗부분을 맞고 다시 정면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전철민 선수! 다시 슛!-
‘철렁!’
-골…….입니다. 골포스트를 맞고 정면으로 다시 흘러나온 공은 그대로 전철민 선수에게 다시 연결되며, 그 공을 빠르게 차 넣는 전철민 선수입니다.-
운이 좋은 것이었다. 첫 번째 슛이 골포스트를 맞고, 정확하게 다시 전철민의 앞으로 떨어졌다. 그로인하여 전철민은 망설임 없이 그대로 슛을 날렸고, 이번엔 골포스트가 아닌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경기 종료 직전! 전철민 선수의 만회골로 한 점을 따라붙습니다!-
정규 시간은 모두 끝났다. 전철민의 슛으로 인하여 무득점의 패배는 면하고 있는 것이었다.
“삐익! 삐익!‘
-경기 끝납니다. 충청FC! 국방부FC를 홈으로 불러 1승을 챙기며, 승점 3점을 가져갑니다! 한 편. 국방부FC는 6경기 무패 행진을 마감합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들 떠 있었다. 지금까지 단 두골만을 넣었던 충청이 국방부를 상대로 두 골을 넣었고, 승리까지 가져왔기에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
관중들의 환호성도 이어졌다. 석연찮은 판정으로 잠시 인상을 구겼던 팬들도, 충청이 승리하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 얼싸 안으며 환호성을 질렀다.
충청 선수들은 어깨동무를 하며 승리를 만끽하였고, 국방부선수들은 힘없기 고개를 숙인 채, 그라운드를 내려오고 있었다.
“이번 경기는 국방부의 승리라고 봐도 될 듯 하군. 그리고 국방부FC선수들 아주 뛰어나다. 비록 경기에 패했지만, 스포츠맨십은 승리한 그들이야.”
많은 관중들 사이에 앉은 한 외국인, 그는 얼마 전, 최홍표를 만났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옆에 앉은 또 다른 외국인에게 말했고,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고 있는 그 중에서 유일하게 두 사람의 표정은 굳은 채, 관중석을 벗어나고 있었다.
이날의 경기는 그 즉시 스포츠매체에 다뤄지고 있었다. 깨끗한 판정이 아니었다는 것과, 그 역시 경기의 일부라는 의견으로 네티즌들 사이에도 말이 많이 나오고 있었다.
“모두 잘했어. 훌륭한 경기를 치렀고, 비록 패배했지만, 우린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다.”
세령은 모두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따뜻한 말을 해주었다.
“여기서! 자신이 이번 경기에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여기는 놈은 손들어!”
연동훈이 큰 소리로 물었다. 모두가 그를 보았고, 서로를 보았다. 단 한명도 손을 드는 선수는 없었다.
“그래. 단 한명도 없다. 비록 초반에 퇴장당한 민철환도, 그리고 억울하게 퇴장당한 이태성도 모두 열심히 했어. 우리가 초반에 무슨 말을 했는지 모두 기억하지! 경기에 패배하더라도, 자신의 경기에 대해, 단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다면, 그 경기는 패한 경기라도 절대 고개 숙이지 말라고 했다! 그러니! 모두 고개 들어!”
연동훈의 큰 목소리에 선수들은 하나, 둘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선수들을 향해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장두관과 세령, 그리고 소재은은 연동훈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진정 수석코치로써 해야 할 일을 조금씩 하고 있는 그가 보였다.
비록 패배한 경기였지만, 선수들의 분위기는 밝았다. 힘없이 쳐져있는 것보다 다음 경기를 위해 더 열심히 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었다.
지난 과거에 대한 후회가 머릿속에 남아있으면, 절대 다가오는 미래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선수들은 숙소로 향하였다. 곧바로 국방부로 향할 수 있지만, 충청과의 경기를 해당 지역 방송을 통해 본 정책기획관이 일요일 복귀를 명령 내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일 저녁에 있을 국가대표 선발 발표에 대해 직접 생방송으로 모두 보도록 하기 위한 배려이기도 하였다.
저녁 8시, 스포츠 채널에서 최홍표 감독의 국가대표 선발에 대한 기자회견이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있었다.
이 방송은 해외파 선수들은 물론, 국내리그에서 뛰는 모든 축구선수들이 집중하여 보고 있었다.
-이번 국가대표 선발. 어떤 중점을 두고 선발하셨습니까?-
방송이 시작된 후, 기자들의 질문이 쇄도하기 시작하였고, 최홍표 감독은 마이크를 잡으며 카메라를 응시하였다.
-이번 선발의 중점은 이름값에 그 어떤 점수도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해외 유명클럽에서 뛰고 있다고 하여, 무조건 선발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자신이 몸담은 클럽에서 뛰어난 기량과 함께, 꾸준한 주전활약이 있는지, 또 짧은 시간 그라운드를 누볐지만, 그 짧은 시간에 충분히 자신의 기량을 보여주었는지에 대해 중점적으로 검토하였습니다.-
최홍표는 협회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소신대로 선수선발을 밀고 나갔다. 협회에서는 이미 이름값이 있는 해외파 리그를 1차적으로 검토하고, 그 후에 클래식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을 선발하라는 압박을 가하였다.
하지만 최홍표는 클래식리그는 물론, 챌린지리그와 대학리그. 그리고 실업리그까지도 모두 보았다. 진정 학연, 지연에 상관없는 제대로 된 선수들을 선발하고자 하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총 22명의 선수를 선발하였습니다. 기존 국가대표로 뛰었던 선수들도 있으며, 이번에 처음 국가대표의 태극마크를 가슴에 품은 선수들도 있습니다.-
최홍표 감독의 이 말에 많은 선수들의 입가에 미소가 생기고 있었다. 기존 국가대표라면 대부분 해외파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었었다. 하지만 처음 태극마크를 가슴에 품는 선수가 있다는 말은, 클래식리그는 물론, 예하 리그에서도 국가대표로 발탁된 선수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럼 발표하겠습니다.-
최홍표는 자신의 손에 들린 태블릿PC를 보며 말했다. 모두가 긴장된 상태에서 그의 입만을 보고 있었다.
-먼저, FW는 독일분데스리가 뮌헨에서 뛰는 손차형 선수. 그리고 K리그 클래식의 수원에서 뛰는 이형식선수. 마지막으로 K리그 챌린지리그의 국방부FC 이태성 선수입니다.-
“!!!”
기자회견장에 있는 모든 기자들이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독일의 손차형선수는 이미 세계에서 인정할 정도로 대단한 기량을 가진 선수였다. 그리고 수원의 이형식 선수 또 한, 득점랭킹 1위로 뛰어난 골 감각을 지닌 인물이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불린 챌린지리그, 국방부FC의 이태성 이름이 나오자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국방부FC에서도 모두가 아무런 말없이 이태성을 보고 있었다. 이태성은 설마 자신의 이름이 호명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공격수이지만, 득점 면에서 광양의 서용호에게 완전 뒤져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최홍표는 서용호가 아닌 이태성을 선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