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6 히든리거 =========================================================================
“삐익!”
-경기 시작됩니다!-
심판의 휘슬소리에 맞춰 아나운서의 방송도 들렸고, 곧 폭죽이 터지며 경기는 시작되었다.
“이번 경기에서 충청을 잡아, 광양과의 승점차를 계속 줄여나가야 하네.”
“알겠습니다.”
장두관은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는 광양과의 접전이 예상되기에, 리그 끝 무렵 치열한 선두경쟁에서 미리 앞서가야 마음이 편하다는 것을 두고 말했다.
세령 역시 그 부분은 잘 알고 있었다. 언제나 막판까지 치열함을 보였던 챌린지리그였다. 반면에 클래식리그에서는 잔여 경기 3~4경기를 남겨두고서 이미 우승이 확정되는 경우도 있었다.
-충청! 찬스를 맞이합니다! 왼쪽 사이드를 완전히 열었고, 중앙으로 센터링!-
“삐익!”
-네! 반칙이 선언됩니다! 페널티박스 안에 있던 선수들이 서로 뒤엉키며 쓰러졌는데요. 아! 주심! 페널티킥을 선언합니다!-
“뭐야!”
경기 초반이었다. 고작 3분여가 지나간 시점이었다. 하지만 페널티 박스 안에서 일어난 선수들 간의 경합으로 인하여 수비자 반칙이 선언되고, 충청의 페널티킥이 선언되었다.
“와아아아!”
이에 충청의 홈팬들은 엄청난 환호성을 지르며, 경기 초반 선취득점을 할 수 있는 기회라 여기고 있었다.
-아! 이게 웬일입니까! 국방부의 중앙수비수 민철환선수! 조금 전의 반칙으로 인하여 레드카드를 받습니다!-
“!!!”
충격이었다. 이제 고작 3분이 지난 시간이었다. 그리고 더군다나 중앙을 책임지는 중앙수비수 민철환이 퇴장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저게 왜 레드카드입니까! 볼 경합 중, 일어난 몸싸움인데, 반칙을 선언한 것도 그렇지만, 퇴장까지 주다니요!”
연동훈이 선심을 향해 강하게 어필하였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장두관은 쓴 표정을 지으며 앉아만 있었고, 세령도 연동훈을 거들며 선심에게 강한 항의를 하였다.
“삐익!”
-아! 주심. 벤치로 향하며 휘슬을 불었습니다. 국방부FC의 감독인 이세령 감독과 연동훈 코치를 퇴장시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민철환의 반칙에 대한 어필이 심했다고 여겼는지, 주심은 자신의 권한으로 감독과 코치마저 벤치에 앉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다.
-경기 초반. 국방부FC의 대 위기가 찾아옵니다. 중앙수비수가 퇴장당한데 이어, 감독과 코치마저 벤치에 없으니, 전술에도 큰 차질이 일어날 듯합니다.-
아나운서의 말 대로였다. 퇴장당하면, 벤치에 있을 수도 없다. 선수는 그라운드 밖은 물론, 라커룸으로 곧장 향해야 하며, 감독과 코치는 관중석으로 이동해야 한다. 즉. 곧바로 전술을 구사할 수 없게 되는 처지가 된 것이었다.
-충청의 이연호 선수. 페널티킥을 차기 위하여 섰습니다. 하지만 국방부의 수문장은 용지현 선수입니다. 천재적인 골키퍼로, 페널티킥도 쉽게 막는 엄청난 선수입니다.-
아나운서는 용지현의 실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필드 슛은 물론, 페널티킥마저 직접 눈으로 보고 움직이며 잡는 놀라운 반사 신경을 가진 선수라 소개하고 있었다.
“삐익!”
심판의 휘슬 소리와 함께 충청의 이연호 선수가 서서히 공을 향해 다가섰고, 이내 속도를 높이며 움직였다.
‘펑!’
‘출렁!’
-골! 골입니다! 충청의 이연호 선수! PK를 성공시킵니다!-
믿었던 용지현은 움직이지도 않고, 골라인 중앙에 서 있었다. 그리고 이연호가 찬 공은 아주 빠르게 골라인을 통과하였고, 용지현은 그것을 막지 못하였다.
충청의 벤치에서는 모두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고, 홈 팬들은 박수갈채와 함께 큰 함성을 질렀다.
세령은 연동훈과 함께 관중석 한 쪽으로 앉아 쓴 표정만을 짓고 있었다.
“용지현이 왜 움직이지 않았지…….”
쓴 표정을 지으면서도 용지현이 움직이지 않은 것을 두고 이민우가 중얼거렸다.
“매번 PK를 다 막을 수는 없는거야. 지현이도 사람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이민우의 말에 세령은 여전히 멍하게 서 있는 용지현을 보며 말했다.
-스코어 1대0으로 충청이 앞서갑니다. 이는 파죽지세로 내달리고 있던 국방부의 발목을 완벽하게 잡은 골입니다!-
국방부는 최근 6경기에서 단 한 경기도 패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먼저 골을 허용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가볍게 승리를 할 것이라 여겼던 충청 전에서 첫 골을 먼저 내준데다, 선수마저 한 명 부족한 상황에 남은 경기시간을 소화해야 할 판이었다.
-여세를 몰아 충청의 공격은 다시 이어집니다!-
중앙수비가 없으니, 미드필더가 내려앉아야 할 판이었다. 그렇게 되니, 또 다시 허리부분에서 쉽게 공을 빼앗겼고, 또 역습을 미리 차단하는 효과도 볼 수 없었다.
-차태식 선수! 중앙으로 몰고 갑니다! 그대로 슛! 아…….용지현 선수의 슈퍼세이브입니다.-
중앙수비수가 없고, 미드필더가 내려와 있다고 하지만, 중앙은 의외로 쉽게 뚫렸다. 약 17미터 정도의 거리에서 빠르게 질러진 충청의 슛은 용지현의 손에 잡혔다. 이 역시 보통의 골키퍼라면 충분히 실점을 당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용지현은 조금 전의 실점에 대해 조금이라도 만회하려는 듯, 그 슛을 쳐내지 않고 잡아냈다.
-용지현선수! 길게 스로잉을 합니다!-
용지현이 공을 쳐내지 않고, 잡는다면, 거의 대부분 중앙선으로 곧바로 던져졌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국방부의 빠른 역습은 이어지곤 하였다.
-공을 잡은 전철민 선수, 곧바로 충청진영 중앙으로 돌아들어선 장만식 선수에게 스루패스를 열어줍니다!-
전철민의 패스는 정확하였다. 추강을 대신하여 오랜만에 쉐도우 자리를 차고 들어선 장만식은 거구의 몸을 이끌고 골대로 곧바로 향해 달렸고, 그의 몸이 워낙 커기에 충청의 수비수가 쉽게 붙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장만식! 최전방 공격수 이태성을 보며 다시 스루패스를 연결합니다!-
장만식이 공을 잡고, 페널티박스 모서리로 이동하고 있을 때, 이태성은 충청의 포백 라인을 아주 아슬아슬하게 무너뜨리며 더 안으로 들어섰다.
-이태성! 이태성!-
장만식의 스루패스는 정확히 수비수를 모두 제치고 들어선 이태성의 발 가까이 뻗어가고 있었다.
‘퍽!’
-아! 공을 보고 달리던 이태성 선수와 그 공을 막기 위하여 다가서던 충청의 골키퍼 오지현 선수가 충돌합니다!-
두 사람은 쓰러졌다. 그리고 충청의 골키퍼 오지현의 머리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고, 먼저 쓰러졌던 이태성이 일어나며 그의 곁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저리 비켜!”
하지만 충청 선수들의 저지에 의해 그의 곁으로 가지 못하였고, 그 순간 이태성은 자신을 밀어내는 충청의 선수로 인하여 뒤로 밀려났지만, 연이어 또 한 선수가 이태성을 더 밀어내려하자, 그는 작은 마찰이라도 피하려 몸을 돌려세웠다.
“삐익!”
그 순간 주심의 휘슬소리가 또 울렸다. 모두는 주심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아! 이태성 선수! 레드카드 입니다!-
“!!!”
“뭐야! 말도 안 돼!”
어이없는 카드였다. 이태성은 진정 그 누구와 마찰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과 충돌한 골키퍼가 걱정되어 다가서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충청의 선수들이 그를 밀어냈고, 이태성은 그들이 밀자, 뒤로 밀려난 것뿐이었다.
하지만 또 한 선수가 그를 밀려다 넘어졌고, 그가 넘어지면서 심판은 그 앞에 이태성 선수가 있는 것만을 보게 되었다. 진정 이태성과 해당 선수의 충돌은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의 뒷주머니에서는 보란 듯이 빨간색 카드가 등장했다. 이태성은 어이가 없었고, 세령은 또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연동훈의 목소리도 커졌지만, 그 두 사람의 목소리는 절대 반영되지 않고 있었다.
-이번 상황은 좀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정확하게 이태성 선수와 지용민 선수가 서로 충돌이 있었는지를 확인해야…….아…….지용민 선수 혼자 넘어진 상황입니다.-
조금 전의 상황에 대해 모두가 자세히 보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 경기장 전광판에는 조금 전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 슬로우비디오가 작동 중이었고, 그 모습을 모든 관중들은 물론, 양쪽의 벤치에서도 보았다.
하지만 진작 그 슬로우비디오를 봐야 할 주심과 선심의 시선은 그 곳을 향하지 않고 있었다. 이는 자신들이 내린 결정에 대해 번복하는 창피를 스스로 막겠다는 것이었다.
충청의 관중들은 환호성을 질렀지만, 그 중에 일부의 홈팬들은 의외로 야유를 보내기도 하였다.
아무리 홈 어드밴티지가 있다고 하지만, 너무 눈에 뻔히 보이는 상황이라, 스스로 창피한 것을 느낀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주심의 선언은 번복되지 않았다. 페널티박스 안에서의 공격자 반칙이 선언되었고, 그로 인하여 이태성마저 경기장을 나와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어렵게 돌아가는군.”
장두관의 표정은 굉장히 일그러져 있었다. 수많은 클래식경기를 보았고, 이런 상황도 여러 차례 겪었지만, 결코 자행되어서는 안 되는 홈 어드밴티지라 여겼다.
주심은 정확성을 가져야하며, 중립성을 가져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누가 봐도 조금 전 상황은 오히려 충청의 반칙이지, 절대 이태성의 반칙이라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쩌겠어. 이 또한 경기다. 심판의 눈도 속이는 것이 스포츠야.”
충청의 코치진들도 조금 전의 상황에 대해서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만큼 자신들의 눈에도 과한 결정이라 보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감독은 달랐다. 이 하나의 어드밴티지로 인하여, 리그 2위인 국방부FC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국방부는 이미 두 명의 선수가 퇴장 당했다. 하물며 그 다음경기에는 민철환과 이태성이 경기에 뛸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두 명이 퇴장 당했지만, 전반전 내내 국방부는 충청의 공격을 잘 막아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용지현의 선방쇼는 진정 신들린 듯한 몸처럼 보였다.
“삐익!”
-전반전이 끝납니다. 충청FC. 두 명이 부족한 국방부FC에게 선취득점 후의 득점을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충분히 대량득점을 이어할 수 있는 상황이 있었지만, 역시 국방부의 수문장인 용지현 선수의 선방쇼를 뚫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반전이 마무리 된 후, 아나운서는 아쉬운 듯 한 억양으로 방송을 하고 있었다.
선수들은 모두 라커룸으로 향하였고, 그제야 세령과 연동훈도 선수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런 경기가 어디 있습니까!”
선수들이 보는 앞에서 연동훈의 큰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조용하였고, 그의 큰 목소리는 마치 메아리처럼 라커룸 안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