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리거-103화 (103/163)

00103  히든리거  =========================================================================

“그래도 이 팀에서 여자라고는 너와 나 뿐이니, 원정경기오면 이런 것은 좋네.”

소재은이 침대에 몸을 눕히며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국방부FC에서 여자는 단 두 명이다. 나머지 모두는 남자들이라, 원정길에 접어들면, 대부분 침대가 없는 온돌방을 구하고, 그 곳에서 마치 M.T를 온 마냥 함께 모여 잠을 청한다.

반면에 소재은과 세령은 단 둘이서 시간적 여유를 가지며 샤워도 하고, 편한 잠자리를 제공받는 특혜도 누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태성이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다.”

자리에 누운 후, 소재은이 말했다.

“무슨…….문제라도 있습니까?”

“별다른 문제를 말하지 않는데, 그놈…….예전처럼 힘이 나지 않아. 체온도 정상이고, 그렇다고 뭐 딱히 어디 아파보이지는 않는데, 몸이 너무 무거운 듯 해 보여.”

소재은의 말을 듣고 나니, 지난 FA컵 때부터 이태성의 몸이 무겁다는 것을 떠 올렸다. 그리고 이틀 동안 있었던 연습게임에서도 이태성의 몸은 더욱 무겁게 느껴지고 있었다.

“내일 아침에 선수들 체크 한 번 더 해봐. 그리고 선발출전 명단을 작성해. 이태성에게 괜히 무리하게 경기에 뛰도록 하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선수 기용문제는 전적으로 세령에게 권한이 있었다. 하지만 선수들의 건강상태에 대한 권한은 오히려 소재은에게 더 있기에, 그녀의 말을 그냥 흘려들을 수는 없었다.

다음 날. 화창한 주말이었다. 기온도 포근하고, 남쪽의 따뜻한 바람은 무척 포근한 느낌마저 주고 있었다.

“이태성.”

“병장. 이태성.”

지난 밤 말대로 세령은 아침 일찍 연습을 하기 위하여 나서는 선수들 속에 있는 이태성을 불렀다.

“너. 어디 아파?”

“아닙니다. 아픈 곳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어깨가 쳐져있어? 집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닙니다. 없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확실히 이태성은 과거의 이태성이 아니었다.

“오늘 경기. 넌 교체멤버로 들어가라. 아무래도 몸이 아니면 정신적으로 지쳐 있는 듯 보인다.”

“알겠습니다.”

이태성은 자신을 교체멤버로 투입시킨다는 세령의 말을 듣고도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저 힘없게 답하고 난 뒤, 다른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하기 위하여 움직이고 있었다.

“이태성이…….마음이 많이 흔들리고 있는 모양인데.”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태성이 선수들 곁으로 간 뒤, 곧바로 장두관이 세령의 옆으로 서며 말했다.

“뭐…….확실히 그 문제 때문에 그렇다고 볼 수 없지만, 그 문제 외에는 다른 문제가 떠오르지 않아서 말이야.”

“그 문제라는 것이…….”

세령은 장두관의 말뜻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태성. 병장 2호봉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이제 두 달도 남지 않은 놈이다. 곧 이 곳을 떠나야 할 놈이란 말이지.”

“…….”

진정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병장이라는 것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제대 날짜를 얼마 남겨두고 있지 않았다. 전반기도 마치지 않고, 국방부FC를 떠나야 하는 인물이 바로 이태성이었고, 그 뒤로 거의 5일에서 10일 간격으로 마형식과 우동화, 전철민과 골키퍼 이철호가 국방부FC를 떠나야 할 시기가 점차 다가오고 있었다.

세령은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하면서도 예전의 그 밝은 표정을 쉽게 볼 수 없는 이태성을 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그래? 그런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구나. 마치 지난 해, 연동훈과 이민우가 제대 할 때와 같은 느낌이 든다.”

세령은 장두관에게 들은 말을 소재은에게도 하였다. 그리고 소재은은 연동훈과 이민우를 떠 올렸다.

그 두 사람도 그 지긋지긋한 곳을 벗어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제대하는 날에는 밝은 표정들이 아니었다. 짧았지만 그 동안 정들었던 세령과 함께, 그동안 다정하지 못했던 소대원들을 두고 가는 것이 그의 마음을 편치 않게 한 것이었다.

지금 이태성의 마음이 그런 마음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태성이 일병의 계급으로 합류했지만, 어느덧 그와 함께 한 시간이 흘러가고, 제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었다.

“일단 그놈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어야하는 것이 우선인 듯하다. 오늘 선발에서 이태성은 뺐지?”

“네. 뺐습니다.”

“그래 잘했어. 저놈과 대화하고, 마음을 풀어주는 것이 우선이니,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내가 대화 좀 해볼게.”

소재은이 총대를 메고 이태성의 마음을 풀어주려 하였다.

-축구 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화창한 주말. 진주FC와 국방부FC의 챌린지리그 제6라운드 경기를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랜만에 전해 듣는 원정 경기의 아나운서 멘트였다. 지난 해, 상무가 이곳에서 경남FC와 경기를 치를 때, 아나운서의 편파적인 방송이 귀에 거슬렸다. 그리고 이번엔 간접적인 편파방송이 아닌, 직접 듣는 방송을 겪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관중이 많다.”

챌린지 리그에서 흔히 보기 힘든 관중수였다. 오늘 진주 운동장은 챌린지 리그의 축구경기가 있고, 내일 클래식리그의 경기가 예정되어 있다. 경남FC의 경기에 가끔은 홈구장 역할을 하고 있는 진주공설운동장이지만, 진주에서 직접 만든 팀이 생기면서, 경남FC를 응원하는 다른 경남지역의 팬들보다, 진주 팬들은 진주FC를 더욱 더 많이 응원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해 보았던 그 구름관중과 버금갈 정도의 관중이 운동장 관중석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거…….챌린지리그를 구경하러 온 관중들이라 보기 힘들 정도군.”

장두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미 여러 차례 진주구장을 밟아본 인물이었다. 체육부대에 있을 때, 상무의 경기를 보기 위하여 함께 움직였고, 진주구장도 꽤 많이 왔었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이토록 많은 관중은 보지 못한 그였다.

-오늘 공식적인 집계로 진주 공설운동장을 찾은 관중이 3만 명을 넘었습니다. 이는 최근 벌어진 클래식리그 경남FC의 최대 관중인 2만 3천명을 훌쩍 뛰어넘은 관중수로, 이미 진주FC는 경남을 대표하는 경남FC보다 더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 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멘트가 나온 후, 관중들의 파도타기 응원이 이어지고 있었다.

“떨린다…….”

그들의 응원에 이미 50%는 먹히고 들어서는 경기인 듯하였다. 아직 그라운드 위로 발도 올려놓지 않았지만, 그들의 응원 열기에 연태민은 입에서 침이 바르는 듯, 입술에 침을 묻히며 말하고 있었다.

“긴장하지 말자. 어차피 저들과 경기를 치르는 것은 아니야. 그러니 우린…….저 그라운드 위를 밟고 뛰는 진주의 베스트 11을 뭉개주는 거에만 신경을 쏟자.”

연태민의 말에 연동훈이 선수들 옆으로 서며 말했다. 하지만 말은 쉬운 것이었다. 직접 저들의 응원 열기 속에서 공을 제대로 잡을수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국방부FC의 선발라인업입니다. 포메이션은 4-4-2군요. 최전방에 투톱으로는 연태민 선수와 함께, 추강선수가 섰습니다. 그러고 보면 추강 선수의 포지션은 참 다양하군요. 주로 쉐도우로 출전하지만, 지난 번 경기에서는 중앙미더필드 까지 내려가 있었고, 이번에는 또 투톱으로 올라섰습니다.-

아나운서는 추강의 기용에 대해, 그의 정확한 포지션을 가늠하기 힘들다는 뜻을 말했다. 모두가 정해진 포지션에 그대로 서지만, 유독 추강은 최전방과 쉐도우, 그리고 중앙까지 고루 서며, 전형적이 멀티플레이어의 실력을 뽐내고 있었다.

-그 아래로 전철민 선수가 섰고, 옆으로 우동화 선수, 좌우로 설태구 선수와 박철강 선수가 섰습니다. 포백에는 장형도, 우근우, 장강식, 서민후 선수가 섰습니다. 그리고 골키퍼는 이철호 선수가 오랜만에 등장하였습니다. 이번 경기에서 이태성 선수를 제외한 이세령 감독의 의도가 궁금하기도 하군요.-

항상 이태성을 먼저 내세우고 있었던 세령의 전술에 변화가 주어지자, 아나운서마저 그 변화에 대한 궁금증을 나타내고 있었다.

곧 진주FC의 선발라인업이 소개되었고, 선수 한 명 한명이 호명될 때마다, 홈 관중들의 환호성과 함께 엄청난 박수갈채를 받고 있는 진주의 선수들이었다.

“차별대우 쩌네…….”

추강이 홀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연태민이 웃었다.

“이런 게 원정게임 맛이지. 적지에 선, 열 한명의 전사. 그 전사들이 수만 명의 적을 무찌르다. 좋잖아?”

“하하. 정말 그럴싸합니다. 연병장님…….아…….그러고 보니, 꼭 작년에 연동훈 중사님을 부를 때 느꼈던 그 느낌이 들고 있는 것이…….”

“뭐? 내가 연중사님의 느낌이 난다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런 것이 아니라…….연동훈 중사님의 병장 시절에 항상 연병장이라고 불렸는데…….”

“아…….난 또 뭐라고. 내가 연동훈 중사님과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뜻으로 들었잖아.”

“하하…….조금 더 생각하시면 결코 좋은 뜻이 아닐 것입니다.”

“뭐가?”

“아닙니다. 혹시 경기에 지장이 있을 수 있으니, 그 내용은 경기가 끝난 후,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놈이. 지금 선임과 장난치자는 거야?”

연태민과 추강은 긴장된 순간에 서로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고, 그들의 웃는 모습이 경기장 대형 전광판에 보이자, 관중들의 엄청난 야유가 쏟아지고 있었다.

“저 두 놈에게 긴장감이란 없는 모양이군.”

관중들의 엄청난 야유로 인하여 전광판으로 시선을 돌린 연동훈이 말했다. 두 사람의 웃음을 보며, 한 편으로는 긴장감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좋은 것이었지만, 적지에서 너무 편해 보이는 것 또 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국방부FC의 선축으로 챌린지리그 제6라운드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연태민에게 공을 받은 추강은 뒤로 공을 돌리며 경기초반을 느슨하게 끌고 갈 준비를 하였다.

“태성아.”

경기가 시작된 후, 소재은은 이태성의 옆으로 앉았다.

“마음이 심란하지?”

“네? 무슨 말씀이신지?”

“너…….곧 제대하잖아. 제대하면 이곳을 떠나야하고, 저놈들과 그라운드를 누비며 함께 공을 찰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잖아.”

이태성은 그녀의 말을 들은 후, 고개를 숙였다. 그의 모습에 소재은은 이태성의 우울한 심정이 그 문제로 인한 것이라 단정할 수 있었다.

“사실…….군대에 입대한 후는 어찌하던 시간이 빨리 갔으면 하는 바람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는 동안, 무심할 정도로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하게 느껴지곤 하였습니다.”

이태성은 장두관이 말한 것처럼 제대를 앞두고 있는 심란한 마음 때문에 경기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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