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0 히든리거 =========================================================================
“만약…….최감독에게 변수가 생기면, 어제 그가 관전한 우리 경기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던 경기가 되는 것입니까?”
“아니. 우린 최감독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축구를 한 것이 아니잖아. 우린…….우리 국방부 팀을 위하여 경기를 한 것이야. 그리고 이겼지. 그럼 됐어. 국가대표가 꼭 되겠다고 다짐한 선수도 있겠지만, 아직 우리 선수들에게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잖아. 젊으니까…….”
세령은 PC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포츠를 다루는 모든 매체에서는 하나같이 최감독의 선택이 잘 못된 것임을 강조하는 글들뿐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 읽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주말 경기를 대비하여 선수들과 몇 가지 전술을 알아보기 위하여 그라운드로 향하였다.
토요일 오후 두시. 챌린지리그 제 5라운드가 전국적으로 시작되었다.
국방부는 경기 원정을 떠났고, 광양은 여수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또 한 청주와 진주의 경기가 있었으며, 서귀포와 시흥전이 시흥의 홈에서 열렸다. 마지막으로 충청과 강릉의 경기는 충청의 홈에서 경기를 각각 시작하였다.
정식 일정은 토요일 두 팀과 일요일 세 팀의 경기로 나뉘어져 있었지만, 토요일 진행될 클래식 경기 중, 세경기가 구단의 사정으로 하루 딜레이 되면서 모두 일요일로 옮겨졌고, 그로 인하여 일요일 열릴 예정이었던 챌린지리그 세 경기가 토요일로 모두 옮겨지면서 치러지게 되었다.
굳이 클래식 경기가 연기되었다고, 챌린지 리그의 일정을 바꿀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관중들의 분산을 막기 위하여 내린 협회 측을 결정이라 하였다.
결국. 클래식 무대를 누비는 선수들을 위하여, 챌린지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일종의 피해를 보게 된 경우도 있을 것이었다.
일제히 동시에 벌어진, 다섯 경기는 역대 챌린지 리그는 물론, 클래식 리그를 통틀어 모든 팀이 경기 시간 90분간 단 한골도 넣지 못한 진기록을 만들어 내었다.
그 어떤 팀도 골을 넣지 못했으며, 어떤 팀도 골을 뺏기지 않았다. 모든 팀들의 스코어가 0대0으로 경기가 끝났다.
하지만 0대0의 스코어라고하여 경기가 재미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잘 찼고, 잘 막은 경기가 많았다. 그리고 열 개의 팀이 챌린지리그 개막 이후, 처음으로 공평하게 승점 1점씩을 나눠가진 라운드였다.
4월 중순이 넘어가며, 5라운드까지 경기를 소화하였다. 순위의 변동은 없었으며, 6라운드를 앞두고, 국방부는 주중 첫 FA컵을 치르게 되었다.
“우리 국방부의 첫 FA컵 경기가 이번 주 수요일 치러진다.”
5라운드를 챌린지 리그 우승후보로 급부상은 경기FC와 무승부로 마친 후, 세령은 선수들 숙소를 찾은 후 말했다.
“한 편으로는 운이 좋다고 봐야 할지도 모르지만, 또 한편으로는 상대가 너무 강해, 초반 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실 수도 있다.”
선수들은 이미 FA컵 첫 상대가 어떤 팀인지 잘 알고 있었다.
“우리의 첫 상대는 광주다. 광주는 클래식무대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올린 팀이다. 비록 이번 시즌에서 출발선이 삐거덕 거렸지만, 그 저력을 무시하지 못할 팀이다.”
첫 상대로 클래식 팀과의 대전이 예고되어 있었다. 그리고 연이어 Y대와 함께, 내셔널리그인 H조선과의 대결이 연이어 잡혀 있는 국방부FC였다.
주중에는 FA컵이 진행되며, 주말에 정규라운드가 치러진다. FA컵에서 총 16개 팀이 16강에 진출하며, 16강부터는 단 판 승부로 결정이 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16강 경기는 무더운 여름에 치러진다.
“광주와의 경기에서 승점을 얻는다면, 우린 무난하게 16강에 안착할 수 있다. 이번 시즌. 챌린지리그를 벗어나는 결과와 함께, FA컵까지 최선을 다해보자.”
연동훈이 이어서 말했다. 같은 조에 편성된 팀들 중, 광주를 제외하면 나머지 두 팀은 아마추어 팀이라해도 과언이 아닌 팀들이었다. 물론 공이 둥글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지만, 광주전을 시작으로 좋은 성과를 얻는다면, FA컵에서도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 믿고 있었다.
다른 타국의 프로리그에 비해 경기가 많지는 않지만, 경기를 치르는 날짜는 생각보다 빨리 다가오는 듯하였다.
-2016 대한은행 FA컵. 국방부FC의 첫 시합을 중계해 드리겠습니다.-
수요일. 날씨는 아주 맑았다. 이제 완연한 봄기운이 맴도는 듯, 추위를 느낄 수 없는 날씨였다.
국방부FC 홈구장에 처음으로 클래식리그에서 뛰는 광주가 방문하였다. 광주에는 이미 국가대표 선수 세 명이 포진해 있는 강팀이었다. 하지만 첫 출발부터 패배하며, 현재까지 진행된 클래식 리그 6라운드까지, 광주는 1승 4무 1패로 10위를 달리고 있는 팀이었다.
“모두 몸 좀 푼다고 생각하며 뛰어, 주말에 서울과 경기를 대비해야 하니, 주전들은 쉬도록 하고…….”
“네 감독님.”
광주 감독은 국방부와의 경기에서 주전을 대거 빼고, 거의 2군으로 선수 구성을 하였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에 반해 국방부FC는 모든 선발 선수를 주전급으로 내세웠다. 처음 치르는 FA컵인 만큼 좋은 결과를 얻고자 하는 바람도 있었다.
-국방부FC의 선발에 비해, 광주의 선발은 거의 2군 선수들로 구성이 된 듯합니다. 그만큼 광주 감독은 이번 경기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뜻으로 풀이가 되는데요.-
아나운서의 말대로 광주는 주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선수를 찾기 힘들었다.
“삐~익!”
-경기 시작됩니다.-
심판의 휘슬소리와 함께, 국방부의 선축으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국방부는 이태성이 여전히 원톱으로 나섰고, 그 뒤로 추강이 받쳐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추강은 공을 뒤로 돌리며 광주의 경기 스타일을 보기 위하여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추강에게서 공을 받은 우동화도 다시 공을 더 후방으로 돌렸다.
포백으로 나온 우근우가 전방을 다시 주시하며 보았지만, 광주의 공격진들은 무리하게 공을 뺏기 위하여 압박을 가하지는 않았다.
“느슨하게 하는군.”
장두관이 벤치에 앉은 상태에서 말했다. 초반부터 몰아붙일 심상이라 여겼지만, 의의로 광주는 경기를 느슨하게 끌고 가고 있었다.
“그냥…….우리 방식대로 하자.”
전반 5분 동안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세령이 말했고, 연동훈은 그녀의 말뜻을 곧바로 알아들은 듯, 그라운드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을 향해 손짓을 하였다.
그리고 그 손짓을 추강이 보았고, 추강은 중앙선에 선 채, 공을 잡고 있는 레프트 백 장형도에게 손짓으로 숫자를 표시하였고, 장형도는 그의 손짓을 보고, 그 역시 자신의 머리위로 추강에게 받은 숫자를 손짓으로 나타내고 있었다.
-장형도 선수! 공을 아주 길게 차올립니다!-
레프트 백에 서 있는 장형도의 롱 패스가 나왔다. 그가 찬 공은 중앙선을 훌쩍 넘어 그대로 뻗어나갔고, 그 공의 끝에는 레프트윙 서민구가 서 있었다.
-아주 긴 패스지만, 정확히 서민구 선수에게 연결됩니다. 서민구 선수. 공을 잡자마자, 광주의 수비수를 따돌리고, 페널티 박스 안으로 들어섭니다!-
‘촤아아아!’
“삐~익!”
-서민구 선수의 개인 돌파를 저지하기 위하여 슬라이딩 태클을 시도한 광주의 이호명 선수! 이미 공이 지나쳐 간 뒤에 들어온 태클에 서민구 선수의 발이 걸리며 넘어졌습니다! 그리고 심판은 광주의 파울을 선언하며, 국방부에게 페널티킥을 줍니다!-
전반 7분여가 지난 상황이었다. 광주 수비수의 거친 태클로 인하여, 국방부는 아주 좋은 기회를 맞이하고 있었다.
“추강. 네가 차라.”
“아닙니다. 이병장님께서 차십시오.”
이태성은 추강에게 페널티킥을 차도록 하였지만, 추강은 오히려 이태성에게 다시 권하였다.
“제가 차도되겠습니까?”
그러던 중, 라이트 윙인 설태구가 나서며 말했다. 지금까지 설태구는 단 한 번의 슛도 지른 적이 없었다. 윙어지만, 공격보다는 거의 수비에 많은 가담을 하였고, 또 공격 시에도 자신이 슛을 지르는 것보다, 더 좋은 위치에 선, 동료 선수에게 패스하여 완벽한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주로 하였던 그였다.
이태성은 벤치를 향해 보았다. 그러자 연동훈은 페널티 킥을 차고자 자처하여 나온 듯 보이는 설태구를 향해 보았고, 이태성의 눈빛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았다.
연동훈은 세령을 보았다. 세령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고, 그 답변을 곧바로 이태성에게 주었다.
“그래. 이번 페널티킥은 설태구. 네가 차라.”
“감사합니다.”
설태구는 전문 킥커가 아니기에 슛 감각이 떨어질 수 있었다. 더군다나, 전문 골잡이들도 심장이 쿵쾅거리는 페널티킥을 자처하여 찬다고 나온 배짱이 놀라웠다.
설태구는 큰 신장을 가지고 페널티킥을 막고자 선 광주의 골키퍼를 보았다.
-아. 설태구 선수가 킥커로 나섰습니다. 이는 국방부의 지금까지 경기 중, 처음 보는 상황입니다. 단 한차례의 슈팅도 없었던 설태구 선수, 과연 페널티킥을 성공시킬 수 있을지…….-
아나운서도 선수들 기록지를 보며 설태구가 단 한차례의 슛도 없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말을 방송 중에 모두 말하고 있었다.
-설태구 선수! 슛!-
‘철렁!’
-골입니다! 설태구 선수, 그의 첫 골이 터집니다!-
설태구의 킥은 완벽하였다. 아주 빠르거나, 공의 회전이 들어가 있지도 않았다. 설태구가 찬 공은 골대의 정중앙을 향해 평범한 속도로 날아갔다. 정말 강심장이 아니라면 절대 페널티킥에서 중앙을 공략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다. 그만큼 골키퍼와의 신경전이 가장 많은 방향이 중앙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설태구는 천천히 달려오며, 툭하고 공을 찼고, 그 공은 약 1미터 정도의 높이로 날아가 골대 정중앙으로 들어갔다. 광주의 골키퍼는 왼쪽방향으로 몸을 날렸고, 비록 공의 속도가 빠르지 않다고 하지만, 그 공을 막기 위하여 다시 몸을 움직여 중앙으로 올 정도는 아니었다.
“처음 페널티킥을 찬다는 선수가, 아주 대담한 심장을 가졌군.”
그리고 설태구의 킥을 본 광주의 감독이 홀로 중얼거렸다. 그는 첫 골을 어이없게 내 주었지만, 표정변화는 일체 없었다.
“설태구가 페널티킥을 연습한 모양입니다.”
“그러게. 나도 저 놈이 저토록 정교하게 찰 줄은 몰랐어.”
설태구의 페널티킥을 본 연동훈이 말했고, 세령도 의외의 실력을 보인 설태구를 보며 의아함을 나타냈다.
정중앙으로 공을 차면서 땅에 깔리는 슛을 했을 경우에는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점프한 골키퍼의 발에 맞아 다시 팅겨져 나올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적당한 높이를 두고, 공중으로 띄워진 채 날아오는 공은 한 쪽 방향을 잡아 움직인 골키퍼가 막아내기는 불가능한 슛이었다.
발에 걸리지도 않을 뿐더러, 어느 정도의 속도만 붙어있다면, 방향을 잡고 움직인 골키퍼가 다시 몸을 일으켜 잡아내지 못하는 경우였다.
하지만 정중앙으로 차는 킥은 정말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쉽게 도전하지 않는 페널티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