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9 히든리거 =========================================================================
“현재 1위는 광양의 천재 골게터 서용호입니다. 4경기에서 벌써 7골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로 경기FC의 민태호가 5골. 그리고 서귀포의 강석중과 우리 국방부의 이태성이 각각 4골로 공동 3위입니다. 하지만 그 뒤로 추강과 전철민, 연태민이 각각 3골과 2골씩으로 바짝 쫒고 있으니, 이대로 간다면, 득점왕도 한 번 노려볼 만합니다.”
득점 순위에 올라 있는 선수들 중, 국방부FC의 선수가 네 명이나 되었다. 이태성은 역시 원톱답게 4골을 넣었고, 그 뒤로 추강과 전철민, 연태민도 계속 따르고 있었다.
“모두 분발하도록 하고, 지금까지의 페이스는 아주 좋아. 장관님도 마음에 들어 하시고, 또 무엇보다 우리 국방부의 홈 팬들이 아주 많이 늘었다. 이 기세가 꺾이지 않도록 다음 5라운드 경기도 잘 치러주기 바라네.”
정책기획관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고, 곧 그가 나가자, 서용석의 매서운 눈빛이 세령을 향해 돌아섰다.
“4라운드까지 성적은 좋다? 그래 좋다고 보자. 그런데 초반 러시로 점차 힘 빠지는 것은 아니겠지?”
서용석은 조금 전, 정책기획관이 자리하고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눈빛을 한 채 말했다. 그러자 항상 세령에게 먼저 태클을 걸고 있던 이강수가 서용석을 보며 멍한 눈을 하고 있었다.
“서 대위…….”
그리고 그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잘한다고, 모두 말해주니 그냥 기분이 좋은 것 같은데…….”
“이봐 서대위.”
이강수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서용석이 계속하여 세령을 보며 쓴 미소를 지은 채 말하자, 다시 한 번 그를 불렀고, 그제야 서용석의 시선이 이강수에게 돌아갔다.
“왜?”
“왜? 야 서용석.”
“앗! 소대위님 언제부터 그곳에 계셨습니까? 앗! 장소령님도…….”
진정 눈뜬장님이 아니고서야 뻔히 자리하고 앉아 있는 두 사람을 보지 못했을 리 없었다.
“용석아.”
“네. 장소령님.”
장두관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의 옆으로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리며 나지막이 불렀다.
“그만하자…….제발…….장관님께 직접 한 소리 들었는데, 왜 그 못된 성격 버리지 못하고 있냐?”
서용석은 고개를 숙였다. 진정 그가 자리하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였다. 바로 빔프로젝트가 쏘고 있는 화면 때문이었다. 아주 교묘하게, 장두관과 소재은이 앉은 자리는 눈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절묘한 밝기와 각도로 서용석의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그만 나가자. 이곳에 더 앉아 있으면 이 소위 골병 나겠다.”
소재은이 세령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고, 곧 연동훈도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동훈은 세령의 뒤를 따라 나서며, 서용석에게 아주 매서운 눈빛을 보내주었다. 하지만 서용석은 여전히 그의 눈빛을 보지 못한 채, 장두관에 의해 모든 시선을 정면으로 하고 있었다.
“마저 정리하고 가라 너희들은…….”
장두관은 회의실 모든 뒷정리를 서용석과 이강수에게 맡기고 나갔다.
“젠장…….너 거기서 왜 갑자기…….”
“보이지 않았어. 이놈의 빔프로젝트 때문에 아주 교묘하게 가리고 있었어.”
이강수는 모두가 나간 후, 자리에서 일어나 서용석을보며 말했고, 서용석은 쓴 표정을 지으며 빔프로젝트를 주먹을 살짝 내리쳤다.
“정책기획관님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놈들을 계속 두는 것인지?”
회의실을 나온 소재은이 정두관을 보며 물었다.
“비록 저들의 생각이 삐뚤어져 있지만, 그래도 정말 행정에 관한 것은 우리 군부대에서 최고야. 그러니 그들의 실력을 감안하여 뽑은 것이고, 지금은 참고 있는 듯하기도 해.”
장두관이 그녀의 말을 들은 후 말했다. 이강수와 서용석의 행동이 지나친 면이 있기에 직접 그 두 사람을 뽑은 정책기획관마저도, 생각을 달리 할 수 도 있다는 말을 하였다. 이는 지난 3라운드가 끝날 때, 국방장관이 정책기획관에 직접 한 말도 있기에, 정책기획관이 이강수와 서용석을 다시 점검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4라운드까지 마친 상황에서 현재 순위와 함께, 득점 랭킹에 대해 알아보았다. 국방부는 4위로 출발은 그다지 나쁜 편이 아니었다. 또 한 득점 순위에도 10위권 안에 네 명을 진입시키며, 득점력도 인정받고 있는 추세였다.
최홍표 국가대표 감독이 경기를 지켜본 국방부와 시흥의 4라운드 경기는 이날 스포츠 뉴스의 메인을 장식하였다. 지금까지 국가대표 감독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었던 챌린지 리그에 다시 국가대표 감독이 찾은 것이 화두가 된 것이었다.
국방부 선수들에 비해, 시흥의 선수들은 최홍표가 보는 앞에서 망신을 톡톡히 당했다. 4실점이란 점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선수들의 투지를 볼 수 없었던 경기였다.
“최 감독. 왜 많고 많은 팀들 중에서 국방부와 시흥의 경기를 관전한 것입니까? 국방부는 이제 신생팀이며, 무엇보다 군인들입니다. 군대에서 하는 뻥축구를 버리지 못한 군인들의 축구와 득점력은 물론, 수비력도 엉망이 시흥 전에서 뭘 얻어 낼 것이 있다고…….”
그 날 저녁. 축구협회에서는 최홍표를 호출하여, 굳이 국방부와 시흥 전을 관전한 것을 두고 말이 나오고 있었다.
“클래식 리그도 아닌 챌린지 리그를 관전 할 것이라면, 광양이나 경기, 서귀포 전을 두고 왜 하필 증명되지 않은 그런 팀들 간의 경기를…….”
“광양이나 경기, 서귀포의 시합은 이미 지난해에도 많이 봤습니다. 그리고 충분히 실력 있는 선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고요. 하지만 오늘은 신생팀인 국방부 소속 선수들을 체크해 보기 위하여 간 것입니다.”
협회 관계자의 말이 끝나기 전에 최홍표가 자신이 해당 경기를 관전한 이유를 말해주었다.
“그래서요? 뭐라도 건진 것이 있습니까?”
“네. 아주 좋은 정보를 많이 얻었습니다. 진정 축구를 좋아하고, 훌륭하게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을 보았습니다.”
최홍표는 협회에서 많은 말이 나오고 있지만, 그들의 말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하였다.
“5월 중순에 있는 평가전은 최감독도 잘 아시다시피, 올해 들어 첫 유럽 팀과 하는 평가전입니다. 그것도 상대가 영국입니다. 해외파는 물론, 국내 클래식 무대에서 이름값 좀 한다는 선수가 나서도 힘든 경기인데, 굳이 챌린지 리그까지 내려가 봐야 했습니까?”
최홍표의 오늘 행동에 대한 협회의 말은 너무 많았다. 그들은 오로지 정해진, 그리고 확신된 선수들을 발탁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굳이 모험이라는 것에 시간을 투자할 인물들은 아니었다.
“네. 맞습니다. 지금하신 말씀처럼 이름값좀 있는 선수들 데려다가 경기를 치르며 됩니다. 하지만…….그 이름값이라는 것은 대체 누가 만든 것입니까? 얼마 정도나 하는 것입니까?”
최홍표가 그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모두 최홍표를 노려보는 듯하였다.
“해외파요? 그래 맞습니다. 해외파 선수들 아주 대단합니다. 세계 이름값 높은 선수들과 함께 그라운드를 누비니 당연히 대단합니다. 하지만…….그들의 축구 스타일과 지금 대한민국의 축구 스타일을 동일시 보시면 안 됩니다. 해외파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의 기량이 우수하다고 말하지만, 축구는 그 우수한 선수 한명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다 뜻이 맞아야 합니다.”
최홍표는 자신이 이번 평가전을 대비한 선수 발탁에 대해, 쓴 소리를 내뱉고 있는 협회 관계자들에게 자신의 뜻을 확실히 전달하고 있었다.
“선수들의 실력 차가 크지 않은 팀. 그 팀은 강팀은 아닐지라도, 팀워크는 그 어떤 팀보다 더 뛰어날 것입니다.”
협회 관계자가 줄줄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 최홍표는 일어섰다. 그는 자신의 축구 스타일을 언제나 옳게 봐 주지 않는 협회 관계자들과 자주 마찰이 있었던 인물이었다.
최홍표가 회의실을 나선 뒤, 협회 관계자들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안되겠습니다. 최감독에게 따끔한 충고를 해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내일 아침 일찍 조간신문에 충고를 줄 만한 기사를 하나 올리십시오.”
협회 측 고위 인물은 회의실을 나간 최홍표의 빈자리를 보며 말했고, 한 협회관계자가 고개 숙여 답을 하였다.
“역시. 이 사람은 감독 체질이 아니라니까. 해외파가 수두룩하고, 클래식에서도 뛰어난 선수가 많은데, 무슨 챌린지 리그까지 훑어보고 난리야.”
다음 날. 모든 스포츠매체에서는 최감독에 관한 글이 1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가 협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챌린지 리그에서 뛰는 선수를 국가대표로 발탁하고자 하는 고집을 피우고 있는 것으로 인하여, 협회 측과 불화설이 있다는 보도였다.
기사 내용을 본 시민들은 하나같이 최감독의 선택이 잘 못 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들은 국가대표라면 적어도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니, 검증된 선수를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모두가 해외파나 클래식 무대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 국가대표로 발탁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열심히 뛰었는데, 말짱 도루묵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신문 내용은 세령의 귀에도 들어갔다. 연동훈이 아침 일찍 일어나, 스포츠 매체에서 전하는 내용을 들고, 세령을 찾았고, 세령도 이미 자신의 PC로 해당 기사를 읽고 있었다.
“아무리 감독이 우수하고, 선수들이 뛰어나도, 협회나, 국민들에게 신의를 얻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상이야.”
“최홍표 감독…….지난 4라운드 때도 보았는데, 전광판에 그의 모습이 보여도 관중들의 호응은 없었습니다.”
세령의 말을 들은 후, 지난 4라운드 때, 최홍표를 본 관중들의 반응이 떠올라 연동훈이 말하였다.
“최감독님에 대해 몇 알아봤는데, 예전에도 이런 일이 많았더군. 2014년 월드컵이 끝난 후, 취임하였지만, 그는 여섯 번의 A매치 중, 한 1승도 얻지 못한 감독이야.”
“네. 저도 확인해보니, 1무 5패의 성적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었습니다.”
최홍표의 국가대표 성적은 엉망이었다. 그러니 국민들의 불신은 더욱 더 커진 것이고, 그에 따라 협회에서도 불신을 더 키우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 상황에 국가대표 선수 발탁을 챌린지 리그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 더욱 더 황당하게 전해지고 있는 국민들이었다.
“개인적으로 볼 때는 참 훌륭한 감독이지만, 내가 이 자리에 앉아보니, 답이 딱 나오더라.”
“무슨…….”
“훌륭하고, 뛰어나고, 이름값 있는 감독…….쥐뿔도 필요 없더라. 오로지 이기면 그냥 장땡이야. 이기면 감독 전술이 어떤 전술인지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마저도, 저 감독 대단하다는 말을 하더라. 경기에 이겼지만, 자신이 구상한 전술이 아니었는데도, 이기니 그를 훌륭한 감독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었어…….하지만 너도 알다시피…….난 이제 겨우 네 경기를 뛴 감독이야. 그런 감독에게 훌륭하고, 뛰어나다는 말이 벌써 나올 수 있을까?”
연동훈은 세령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알 수 있었다. 감독인 세령도 마찬가지지만, 선수들에게도 그 말은 함께 쓰일 수 있는 말이었다.
골 넣고, 패스 잘하고, 경기에 열심히 뛰면, 훌륭한 선수라 말한다. 진정 남아도는 것이 체력밖에 없어서 지치지 않고 달렸을 뿐인데, 그런 선수들도 아주 뛰어난 선수가 되는 것이다.
즉. 감독이나 선수. 모두 이겨야만이 훌륭한 감독이며 선수가 된다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