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리거-92화 (92/163)

00092  히든리거  =========================================================================

“내일 경기에 대비하여, 모두 몸 좀 풀고, 그라운드에 익숙해져라.”

서귀포 감독은 코치진들에게 간단한 말을 전한 뒤, 곧바로 숙소로 향하였다.

다른 구단과 달리, 국방부로 원정 오는 팀들은 국방부FC 내부에 지어진 원정팀 숙소를 이용할 수 있다. 잘 차려져 있으며, 원정팀의 모든 편의를 다 제공할 수 있는 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또 한, 원정팀의 식단을 책임 질, 각 구단의 요리사들도 식자재만 들고 와, 요리하여 선수들을 먹일 수 있는 모든 조건도 다 갖추어져 있는 곳이었다.

“요즘 군대 좋구나. 아주 호텔 급이야.”

국방부 내부로 들어선 후, 숙소에 들어서자, 서귀포 선수들은 군부대의 내무반을 보며 서로 감탄을 늘어놓고 있었다.

이들 중, 상무소속도 있지만, 말 그대로 현역으로 제대하고 축구선수가 된 인물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자신이 군 생활했던 내무반과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시설에 놀란 것이었다.

‘톡 톡…….’

“응……?”

“비네.”

서귀포 선수들이 숙소로 들어서는 것을 본 후, 마저 연습을 하려던 순간, 한,두방울의 비가 내리는 듯하였고, 곧 세령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어느새 맑은 하늘에 먹구름이 조금씩 보이고 있었다.

“민우야. 내일 날씨 알아봤어?”

“네. 수요일에 알아보았는데, 주말은 화창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연동훈이 이민우를 보며 물었고, 이민우는 자신이 알아본 일기예보에 대해 말해주었다.

“이게…….화창한 날씨를 암시하는 전날이야?”

연동훈은 인상을 구겼다. 일주일 전, 수중 전에 대한 아픔이 절로 머릿속에 떠오르고 있는 듯하였다. 그리고 그와 함께 모든 선수들의 표정도 굳어지고 있었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한다. 그리고 내일 화창하다고 하니, 비가 내리다가 그치겠지. 자자…….다들 연습 실시.”

세령은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선수들을 보며 말하였다. 하지만 자신도 지난 일주일 전이 떠올라, 심장이 조금씩 빠르게 뛰고 있는 것을 느꼈다.

오후에는 국방부와 서귀포선수들이 서로 각자 돌아가면서, 그라운드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 시간에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비록 지난 광양 전처럼 쏟아져 내리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잔디와 공을 촉촉하게 적셔 놓을 정도의 비는 되고 있었다.

“내일…….3라운드를 치른다. 이번엔…….제대로 된 우리 국방부의 실력을 보여주자.”

석식을 마친 후, 모두 숙소에 모여 있었고, 연동훈은 선수들을 향해 힘차게 말했다. 하지만 선수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저녁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밖에는 비가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길…….기도라도 해야 하나…….”

이민우가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모두 푹 자고, 내일 경기 잘해보자.”

연동훈은 선수들이 벌써부터 긴장하는 것을 보며 말했고, 그의 말에 아직 취침시간 전이지만,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국방부FC는 조기 취침을 허락해주었다.

“그치지 않았네…….”

다음 날. 아침 일찍 눈을 뜬 이태성의 눈빛에는 아직도 내리고 있는 비가 보였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또 다시 수중전, 일주일 전의 악몽이 다시 찾아오고 있는 듯하였다.

“모두 잘 잤어?”

곧 세령이 숙소로 들어서며 물었다. 날씨와는 정반대로 그녀의 맑은 목소리에 누워있던 선수들도 일어났고, 모두가 그녀를 향해 보았다.

“오늘도 수중전이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는 뭐가 그런데야! 지난 광양전의 수중 전에서 참패를 당한 우리의 자존심을 살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우리 국방부는…….절대 나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줘!”

세령의 말을 듣고, 이태성이 몇 말을 하려하였지만, 그녀는 이태성의 말을 자른 후, 큰 소리로 말했고, 비몽사몽이었던 선수들의 눈빛이 그 순간 번쩍 뜨지고 있었다.

“그리고. 연태민은 이번 경기에 빠진다. 지난 번 경기에서 복부에 맞은 공에 의한 충격이 아직 있을 것이야. 비록 큰 문제는 없다고 하였지만, 조심한다고 나쁠 것은 없잖아.”

이번 서귀포전에서 연태민은 선발명단은 물론, 교체명단에서도 제외시킨다는 뜻을 보였다. 지난 번 경기에서 너무나 강한 슛을 그대로 복부에 맞았기에 그 타격이 아직 있을 것이라 간주한 것이었다.

“오늘 있을 경기에서 공격은 이태성과 추강. 그리고 전철민이 이끈다.”

“…….”

그녀의 말이 끝난 후, 모두의 시선이 전철민에게 향하였다. 그리고 전철민은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을 느꼈는지, 아무런 말없이 고개만 숙였다.

“고개를 왜 숙여!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을 버린다면, 그건 영원한 실수가 된다. 우리 모두 전철민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준다. 그리고 그 때…….진정 실수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두 번 다시 그런 실수는 없다는 것도 함께 보여줘.”

그녀의 말이 끝나자, 전철민의 옆에 앉아있던 이태성이 전철민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전철민은 광양 전에서 수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패배의 원인이 된 인물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누구하나 경기가 끝난 후, 전철민에게 쓴 소리를 뱉은 인물은 없었다.

“비가오니 관중석이 많이 비어있군.”

어느덧 경기시작 20여분을 남기고 있을 때, 국방부장관이 VIP석에 앉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비가 오는 탓인 듯합니다.”

“꼭 비가 와서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정책기획관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강수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듯 말하였지만, 그 말은 국방장관의 귀에 고스란히 들어갔다.

“이 대위.”

“네! 대위 이강수!”

장관은 그에게 시선을 주며 불렀고, 이강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관등성명을 말했다.

“자네의 말뜻이 무엇인가?”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혼잣말을 한 것뿐입니다.”

“혼잣말? 그 혼잣말이라는 것이 너무나 자세히 들려서 묻는 것이네. 무슨 뜻으로 한 말인가?”

정책기획관의 눈빛이 변하였다. 또 한 장관의 목소리도 톤도 변하였다.

“비가 오는 것도 있겠지만, 지난 2라운드 광양과의 경기로 인하여, 혹시 그 때처럼 대량실점을 하는 것을 염두해두고 관중들이 찾아오지 않고…….”

“그 무슨 말인가! 어째 팀의 행정을 담당하는 사람의 입에서 팀을 감싸주지 못하고, 과거를 들추어내어 말하고 있는 건가!”

기어이 장관의 큰 목소리가 나오도록 만들어버린 이강수였다. 이강수는 틈틈이 운을 띄워놓으며, 세령을 경질하도록 생각하였지만, 이번엔 아주 제대로 역효과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것이 아니라…….”

“당장 가서 자네가 그동안 했던 행정업무의 기록을 가지고 오게!”

이강수는 놀란 눈을 한 채, 그의 말을 들었다. 자신이 국방부FC의 행정담당으로 오면서 그동안의 업무기록을 보자는 말에 이강수의 눈빛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장관님 말씀 듣지 못했나? 당장 가서 가져 와!”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는 이강수에게 정책기획관이 다시 한 번 소리쳤고, 그 때서야 이강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업무실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너무 삐거덕거리면 그 문제를 초반에 잡아야 하는 거네. 모두가 좋아하지만, 단 몇 사람이 싫어한다면, 모두를 위해 그 몇 사람은 충분히 버릴 수 있어야 한단 말일세.”

“알겠습니다. 장관님.”

장관은 뼈 있는 말을 한 뒤, 시선을 그라운드로 돌렸다.

-축구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K리그 챌린지 제 3라운드. 국방부FC와 서귀포FC의 경기를 중계해 드리겠습니다.-

경기 시작 시간이 다가왔다. 아나운서의 멘트가 들렸고, 자리에 앉은 관중들은 대부분 우비를 입은 채, 큰 전광판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비가 오는 가운데, 지난 라운드와는 달리, 꽤 많은 관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는 국방부FC에 대한 기대감을 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아나운서는 2라운드 때와 관중 비교를 하며 말했다. 2라운드 때는 전국적으로 비가내리며, 2라운드 전체 경기 관중수가 1만 명을 넘지 않았었다. 그리고 비록 1라운드 때보다 적은 관중이지만, 약 5천 명 정도가 들어 찬 국방부의 홈구장을 보며 말했다.

-서귀포FC에 이어 국방부FC 선발 라인업입니다. 포메이션은 4-4-2를 택했군요. 그리고 최전방에는 이태성과 추강선수가 선발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허리부분에는 우동화, 전철민, 도지훈, 박철민 선수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포백에는 장형도, 서민후, 구민철선수와 민철환 선수가 섰습니다. 마지막 골키퍼에는 용지현 선수가 섰습니다.-

선발 라인업이 발표되면서, 정책기획관의 시선은 그라운드 위에 서 있는 세령에게로 집중되었다.

이태성과 추강, 그리고 우동화와 전철민을 빼면, 허리부분과 포백라인에 이번 시즌 들어 처음 출전하는 선수가 대거 포진되었다. 그로 인하여 세령의 전술적 면에 대해 궁금하여 그녀를 본 것이었다.

“오늘은 처음 보는 선수가 꽤 있군.”

장관의 귀에도 익숙지 않은 이름이 들리자 말하였다.

“네. 아무래도 오늘 이감독이 새로운 전술을 구사할 모양입니다.”

“그래? 그렇지 않아도 지난 번 패배로 인하여 보는 눈들이 따가울 텐데, 확실한 주전선수들로 승리를 따내려고 하는 것이 아닌, 일종의 모험을 한다? 의외군.”

장관의 눈에도 세령의 전술은 의외였다. 그 뿐만 아니라 이번 선발라인업을 들은 모두가 의외의 눈을 하고 있었다.

“생각해 둔 것이라도 있는가?”

그리고 장두관이 그녀의 곁으로 가서 물었다.

“생각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선발라인을 구축하였는가?”

“저들도 공을 차기 위하여 합류한 선수들입니다. 언제까지 벤치에만 앉아있도록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비록 시기적으로 한 번의 변화를 꼭 줘야하는 시점이지만, 그렇다고 이미 입증된 선수들만을 내세워 경기를 할 수 없습니다.”

장두관은 그녀를 보았다. 지금 현재 누군가 자신을 몰아내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는 순간에 모험을 즐기는 듯 보였다. 보통의 감독이라면 확실한 승리를 위하여 주전급 선수들을 모두 포진시켰을 것이다. 그리하여 승리를 얻은 후, 한시름 놓는 길을 선택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세령은 아니었다. 자신의 안전보다는 선수들에게 자신의 실력을 뽐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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