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1 히든리거 =========================================================================
“저…….그게. 뭐.”
“그런 것이 아니라면, 아직 기회는 더 주어도 된다고 보네. 누차 강조했지만, 이제 고작 두 경기를 치른 상황이야. 한 번은 비기고, 한 번은 패했다고, 바로 변화를 주면, 더 큰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네.”
장두관이 마저 말하였다. 이강수는 아무런 말없이 매섭게 시선을 돌려 세령만 보았다.
“이 감독.”
그리고 곧바로 정책기획관이 세령을 불렀다.
“네.”
“다음 3라운드의 경기는 현재 3위로 달리고 있는, 서귀포와의 경기네. 주말에 열리며, 홈경기이니, 그 경기에서 지난 1라운드 때보다 더 화려한 경기를 보여줄 수 있겠는가?”
정책기획관의 물음에 세령은 그를 빤히 보았다. 다음 상대인 서귀포는 현재 3위다. 비록 득점은 4골 밖에 되지 않지만, 실점이 없는 팀이다. 그만큼 수비력이 잘 갖춰져 있는 팀이란 뜻이었다.
“잘하겠습니다. 선수들이 어제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준비를 철저히 하여 주말경기인 서귀포 전을 대비하겠습니다.”
벅찬 상대일 수도 있었다. 서귀포는 시즌 시작 전, 전문가들의 평가에서 1강, 5중, 4약으로 나누어진 팀분석에서, 5중의 최 상위그룹에 편성되었던 팀이다.
“서귀포는 확실한 골게터가 없다는 것이 단점이지만, 모든 팀들 중에서 최고의 수비진을 가졌다는 장점이 있네, 그 수비진을 뚫을 수 있는 묘안을 만들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경기를 할 것이네.”
장두관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 공격진이 화려하진 않지만, 수비진이 막강한 서귀포를 이겨내는 방법은 단 한가지였다. 바로 공격진이 약한 단점을 이용하여, 실점을 하지 않고, 단 한차례라도 수비진을 뚫어, 득점을 노리는 것이었다.
“그래 잘 준비하고, 이번 3라운드는 이번 주말에 열리니, 그 기간 동안 선수들에게 지난 2라운드의 교훈은 새겨두고, 패배의 쓴맛은 잊도록 해주게.”
“알겠습니다.”
정책기획관이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고, 곧 체육부대장도 세령을 향해 미소를 준 뒤, 그와 함께 나섰다.
“이래저래 자네를 돕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여유부리지 마라. 스포츠에서 패배는 모든 것이 감독 탓이다. 그 모든 책임을 다 짊어질 자신이 없다면, 애초에 물러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곧 이강수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고, 그는 매섭게 세령을 본 뒤, 회의실을 나섰다. 그리고 회의시간 내내 아무런 말이없더 서용식도 곧 이강수를 따라 나섰다.
“고작 두 경기네. 이번 세 번째 경기에서 자네의 화려한 전술과 함께, 선수들의 사기도 함께 올릴 수 있도록 준비를 철저히 해주게나.”
장두관도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고, 곧 회의실을 나섰다.
회의실에는 세령 홀로 앉아 있었다. 생각보다 어제 있었던 광양과의 경기에서 보여준 패배의 여파가 꽤 컸다.
세령은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 문을 열고 나섰다.
“…….”
문을 열고 나서자마자 연동훈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세령은 연동훈을 올려 보았다. 그리고 그의 눈을 보았다.
세령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눈에 눈물이 고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선수들 모두 모였습니다. 서귀포 전을 대비한 전술을 알려주십시오.”
연동훈은 그녀의 눈에 맺힌 눈물을 보면서 그 눈물에 대한 말은 하지 않았다. 이를 꽉 깨문 채, 자신이 할 말만 하였다.
“그래. 가자.”
세령은 그의 옆을 지나쳐가며 말했고, 그녀의 힘없는 뒷모습을 보며, 연동훈의 눈빛은 더욱 더 매섭게 변하고 있었다.
“제길…….”
그리고 쓴 소리로 중얼거렸고, 곧 그녀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그라운드에 도착하자, 선수들이 모두 굳은 표정으로 세령을 보고 있었다.
“뭐야? 모두 아침 굶었어? 왜 힘들이 없어!”
세령은 그들에게 자신의 우울한 표정을 보인다면, 이들은 어제의 경기를 더욱 더 가슴 아파 할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환한 웃음을 보이며 선수들에게 큰 목소리로 물었다.
“죄송합니다. 감독님.”
이태성이 그녀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 뭐가 죄송해? 어제 경기 때문에 그런 거야?”
“어제 경기는 진정…….”
“그래 어제 경기는 진정 형편없었어. 하지만…….너희들 스스로에게 물어봐. 최선을 다했는지. 그리고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고 여긴다면, 그건 죄송할 것이 아니다.”
세령은 이태성의 바로 앞에서 자신보다 훨씬 키가 큰 그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고, 곧바로 모두를 향해 다시 환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이세령…….참 희한한 아가씨 아닙니까?”
그리고 그녀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보고 있던 체육부대장이 그와 함께 서 있는 정책기획관을 보며 물었다.
“그저 축구를 좋아해서, 아버지를 따라 군대에서 공을 차고, 축구장을 들락거리던 소녀였는데, 어느새 자라나서 한 축구단을 지휘하는 감독이 되어 있습니다.”
체육부대장은 세령을 잘 알고 있기에, 그녀의 성장과정에 대해 말하였고, 정책기획관의 시선은 그녀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이해석 대대장이 나와 함께 근무할 때, 그 때가 이 소위 나이 고작 열다섯 살이었는데, 여중생이 친구들과 노는 것이 아니라, 군대에서 군인들과 공을 차고, 축구를 보러 다니고…….자네의 말을 들으니 그 때가 기억나는군.”
정책기획관도 세령과의 과거를 기억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현재 국방부FC의 감독 자리는 그녀의 의지가 아닌, 우리의 의지대로 실행한 것입니다. 비록 군대라 명령을 내린 것이지만, 그녀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그러니…….더 많은 지원을 해주어, 그녀가 어린 시절에 그토록 해맑게 웃으며 공을 찼던 기억이 아픈 기억으로 남지 않도록 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체육부대장의 말에 정책기획관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만에 하나 세령을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만든다면, 그녀는 더 이상 축구를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어제와 달리 맑은 날이었다. 아직 그라운드에 물기는 남아있었지만, 하늘은 비가 온 후라 아주 맑게 보였다.
“이번 주말, 서귀포전을 대비한 연습을 한다. 서귀포는 2라운드가 끝나는 동안 단 한골도 허용하지 않은 팀으로, 수비력이 아주 탄탄하다. 그러기에 상대의 역습을 잘 막고, 그 역습을 다시 역으로 이용하여 골을 뽑아내는 연습을 하자.”
세령은 선수들을 보며 여전히 밝은 표정을 지은 채, 말하였지만, 선수들의 표정은 좀 채 펴지지 않고 있었다.
세령은 연동훈을 비롯하여 코치진들에게 선수들 훈련내용을 전달하였고, 자신은 벤치로 돌아가, 서귀포의 1,2라운드 경기 내용을 확인하고 있었다.
“넌 왜, 회의시간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
한 편. 이강수는 서용식의 숙소를 찾아가, 회의실시간에 자신을 돕는 말을 하지 않은 서용식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좀 서두른 감이 없지 않아 있잖아.”
서용식도 이강수와 같은 생각으로 세령을 몰아내려는 사람이었지만, 그 역시 단 두 경기 만에 감독경질을 운운하는 것은 서두른 감이 있다는 것을 밝혔다.
“내가 지금 당장 이 감독을 경질하자는 목표로 말하는 것은 아니잖아. 이렇게 점차 운을 띄워놔야 이 감독의 경질이 차후에 더 편해지니까 하는 말이지.”
이강수는 자신의 생각을 그에게 말했다.
“알아. 다 아는데. 역시 서두른 감은 있어. 감독 경질은 최소 열 경기 이상은 봐야 한다고 봐. 그 열 경기가 끝나도 밑바닥에서 허덕거린다면, 상부에서도 뭐라 반발을 하지 않을 것이고, 그 때, 이와 같은 이야기를 꺼낸다면 그 이야기는 급물살을 타고 진행될 것이라 본다.”
서용석은 이강수와 달리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단 한방에 제대로 된 효과를 보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튼. 몇 경기만 더 보자. 이미 어제 광양과의 경기로 인하여 많은 말들이 나오고 있다. 그런 처지에서 주말 서귀포전까지 망친다면, 이 감독의 자질을 충분히 논할 수 있어.”
이강수보다 어쩌면 서용석이 더 치밀한 사람이었다. 이강수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조금 전까지 자신을 돕지 않은 것에 대해 굳어있던 표정을 풀고 있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금요일이 되었다. 그동안 국방부FC는 여러 가지 루트를 이용한 공격패턴을 만들고 있었고, 곧 서귀포 선수들이 탄 버스가 국방부로 들어서고 있었다.
“야…….내가 국방부를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서귀포 선수들은 차량에서 내리며, 처음으로 밟은 국방부 내부를 보며, 서로 미소를 짓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석중이 너는 상무소속으로 있었었지?”
곧 선수들은 서귀포의 스트라이커 강석중을 보며 물었다. 강석중은 서귀포가 올린 4득점 중, 홀로 3득점을 올린 스트라이커며, 지난 해, 상무에서 뛰었던 선수였다.
또 한, 2월 달에 있었던 전지훈련 때도 국방부선수들과 함께 웃으며 연습을 하였다. 그리고 2월 말경 제대하여, 소속을 서귀포로 옮긴 인물이었다.
“그래. 그리고 …….난 저 선수들을 잘 안다.”
강석중은 저 멀리 그라운드에서 뛰고 있는 국방부선수들을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는 지난해, 국방부FC를 직접 만났었다. 또 한 그들과 우정을 나눈 올 초의 전지훈련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저 선수들을 잘 안다고 하니, 저들을 뚫을 묘책도 잘 알겠지. 이번 경기에도 너의 득점력을 믿는다.”
곧 그의 뒤로 서귀포 감독이 다가선 후, 그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하였다.
“서귀포의 강석중. 전지훈련때 우리 국방부를 도와준 선수야.”
세령은 서귀포의 두 경기를 보며, 홀로 세 골을 넣은 강석중의 플레이를 자세히 본 뒤, 곧 연동훈과 코치진에게 말했다.
“제대하고 곧바로 서귀포로 간 것입니까?”
서지후가 물었다
“그래. 잘 알다시피 상무는 국방의 의무를 대신한 스포츠인들이 모인 곳이야. 당연히 제대하면 더 있을 수 없어. 곧바로 팀을 옮겨야하지. 강석중은 지난 해, 상무에서 큰 활약을 펼치지 못했어, 그래서 클래식에 진출한 팀은 그를 원하지 않았지. 하지만 챌린지 리그에 속한 팀들은 달라, 많은 팀이 그를 원했고, 결국 클래식 무대를 밟고 있는 구단에 결코 뒤지지 않을 연봉으로 서귀포와 계약한 후, 그 진면목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는 선수야.”
세령은 강석중에 관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세령은 항상 경기가 있기 전, 요주의 인물을 알아둔다. 그리고 서귀포에서는 강석중을 요주의 인물로 택했다. 2라운드를 치른 현재, 광양의 서용호가 다섯 골로 챌린지 리그 득점 순위 1위이며, 그 뒤로 강석중이 세 골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만큼 그의 득점력은 인정해 줄 만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