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리거-85화 (85/163)

00085  히든리거  =========================================================================

“답이 없습니다. 공격진과 미들진들은 기본적인 드리블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골키퍼는 평범한 공도 골로 허용하고 있습니다.”

계속 대책 없이 움직인다고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세령은 모두를 불러 모았고, 곧 이민우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좋은 방법 없을까?”

세령이 말하였고, 모두가 생각하였다. 하지만 수중 전에 대비하여 뭔가 특별하게 갖추어야 할 것은 없었다. 모든 것은 감각이다.

어떤 수중전은 공이 너무 잘 미끄러지며, 빨리가는 경우도 있다. 반면에 공이 바닥에 꽂히듯, 굴러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일단 익숙해지는 것이 우선인 듯합니다. 내일 우리는 광양구장 원정을 갑니다. 광양구장이 어떤 구장인지 아직 제대로 모르기에, 우리 국방부 구장과는 또 다른 느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연동훈의 말이 맞는 말이었다. 잔디 상황에 따라 많은 변수가 일어나는 경기가 바로 수중 전이었다. 비가 오면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잔디의 상태이기에, 아직 광양구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어쩌면 후회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후 내내 비는 그치지 않았다. 선수들은 잔디에 익숙해지기 위하여 움직이고 또 움직였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모두 집합.”

오후4시. 세령은 모든 선수들을 집겹시켰다.

“샤워하고, 5시까지 주차장으로 집합한다. 내일 있을 경기를 위해 오늘 저녁 광양으로 내려간다.”

내일 광양 원정이기에, 최소 하루 전, 원정경기를 위하여 해당지역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 곳에서 경기가 있기전, 잔디에 익숙해지며, 낯선 환경에 적응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오후 5시. 모든 선수들을 태운 국방부FC버스는 국방부를 나서고 있었다. 비가 오고 있는 탓에 그들을 배웅해주는 사람들은 없었다.

차량은 비오는 서울거리를 벗어나며 고속도로에 올라탔고, 퇴근길에 앞서, 비까지 오니 도로는 꽉 막혀 있었다.

5시에 출발했지만, 광양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되었다. 이것도 굉장히 빠른 시간 안에 도착한 것이었다.

선수들은 곧바로 숙소로 향하였고, 비오는 날, 장거리 이동을 한 탓에 하나, 둘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자리에 몸을 눕혔다.

“오늘은 특별한 내용 없이 휴식을 취한다. 내일 아침 일찍 광양구장의 잔디와 함께 약 30분간 연습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니, 그 때…….모든 적응을 다 마쳐라.”

여유란 것은 없었다. 고작 30분 동안 광양구장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었다. 광양 팀들은 자신의 연고구장이니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도 하루 종일 그 구장에서 연습을 하였을 것이었다. 여러모로 불리한 경기를 치르게 되는 상황이었다.

다음 날. 모두의 바람과 달리, 비는 그치지 않았다. 빗줄기는 더욱 더 굵어진 듯, 아주 많은 양의 비를 뿌리고 있었다.

“오늘 경기 힘들겠다.”

세령은 창밖을 보며 홀로 중얼거렸다.

“감독님. 연습 시작해야겠습니다.”

경기는 오후6시에 있다. 아침 일찍 운동장을 한 번 사용하고, 오후에 다시 30분을 더 준다는 말이 있었다. 오전에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기 위하여 바삐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이게 뭐야…….”

구장에 들어서 첫 볼터치를 한 이태성이 한 말이었다. 어제 국방부 홈구장에서 공을 다루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공은 아주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여긴 우리 구장과 정반대입니다.”

연동훈이 말했다. 세령은 잔디를 밟아보았다. 물기를 머금고 있고, 비가 계속하여 내리지만, 구장 어디에도 물이 고여 있는 곳은 없었다. 그만큼 시설이 잘 되어 있다는 말이었다.

“모두에게 이 구장에 익숙해지도록 일러둬. 어제와는 달리 공은 아주 빠르게 움직인다. 드리블의 간격도 좁히고, 공을 차는 강도도 줄여야해.”

세령은 긴장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어제 그토록 공이 잘 뻗어나가지않아, 공을 차는 강도를 높였다. 하지만 오늘은 정반대였다. 어제처럼 공을 차다가는 자신이 드리블 한 공조차도 잡기 힘든 상황이 전개 될 것이 뻔하였다.

“저기 국방부 팀이네.”

오전에 주어진 연습을 거의 끝낼 때 쯤, 광양 선수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그들은 국방부FC를 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청주를 고전하게 만든 팀이다. 절대 과소평가하지마라.”

“네 감독님.”

광양의 감독은 약 50대 중반을 넘어선 인물이었다. 그리고 비록 챌린지리그를 맡고 있지만, 그의 현역시절은 대단하였다. 공격수 출신답게 자신이 맡은 모든 팀들은 거의 대부분이 닥공 스타일이었다.

광양도 마찬가지였다. 수비보다는 공격에 더 많은 치중을 두고 있고, 그로 인하여 실점도 많지만, 득점이 지난 시즌 우승팀보다 20골은 더 많았던 팀이다.

“처음 뵙게 되는군요. 광양을 맡고 있는 김철남입니다.”

국방부FC가 연습을 끝내고 나오자, 세령을 본 김철남감독이 먼저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십니까? 국방부FC를 지휘하는 이세령입니다.”

세령은 김철남을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감독님의 현역시절 경기를 많이 보았습니다. 정말 대단한 경기였고, 아직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뽑아낸 30미터 장거리 슛은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네? 그 경기를 기억하십니까? 어찌 보면 감독님이 태어나기도 전에 치러진 경기인데…….”

김철남은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세령이 말한 아르헨티나전 득점은 지금으로부터 거의 30년 전 일이었다. 세령의 나이가 20대 중반이니 결코 라이브로 볼 수 없는 장면이었고, 특별하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한, 찾아보기도 힘든 영상이었다.

“제가 나이는 아직 어려도, 우리나라 역대 월드컵 영상은 모조리 다 봤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바로 감독님의 골 장면입니다.”

김철남은 세령을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광양선수들을 보았다. 지금 자신이 맡고 있는 광양선수들 조차도 이와 같은 세세한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는 인물이 단 한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영광입니다. 유능한 감독께서 저의 과거를 이리 다 기억해주시니…….”

“경기에서 감독님의 과거를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령은 그에게 꾸벅 인사한 후, 국방부FC선수들을 인솔하여 다시 라커룸으로 향하였고, 김철남은 세령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감독님. 이제 연습하시죠.”

김철남이 세령을 보고 있을 때, 광양선수들이 그에게 말했고, 김철남은 세령을 보고 있던 눈빛과는 달리 매서운 눈빛을 한 채, 광양선수들을 보고 있었다.

“알아서 차.”

그는 짧은 한마디를 한 후, 코치진 벤치에 주저앉았다.

광양선수들은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듯, 그의 거친 말에도 표정하나 구기지 않고, 각기 자신들이 소화해야 할 연습을 알아서 착착하고 있었다.

오후에도 주어진 연습을 잘 소화하고 있었다. 여전히 공을 다루는 것에 서툴렀지만, 오전보다는 나아진 점이 보였다.

“이곳 광양구장은 배수처리가 잘 되어 있습니다. 비가 많이 내려도 물이 바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물이 고여 있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니 특별히 공이 가다 멈출 일이 없다는 것을 미리 숙지해두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

세령은 코치진 벤치에 앉아 연습하고 있는 선수들을 향해보며 몇 가지 기록을 하고 있었고, 그 때, 김철남이 다가서며 그녀의 옆으로 앉으며 말했다.

“사실…….놀랐습니다. 요즘 젊은 선수들조차 저를 기억하는 선수들은 많지 않습니다. 하물며 군인이고 여성인 이감독이 저를 기억한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세령은 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사실…….저 축구 광팬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하나의 축구팀을 지휘하고 있지만, 그 전에는 축구라면 그 어떤 경기도 빼놓지 않고 거의 다 보았습니다. 물론…….우리나라 선수들을 위주로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감독님의 경기를 보고 한 눈에 반했습니다. 정말 시원시원한 슛과 함께 상대 수비진을 농락하는 듯 한 드리블. 그냥 한마디로 멋졌습니다.”

세령은 자신이 진심으로 느낀 감정을 말해주었다. 김철남은 연신 그녀를 보며 웃었고, 국방부선수들을 세령 대신 지휘하고 있는 연동훈은 매서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

“오늘 경기. 잘 부탁드립니다.”

김철남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세령도 그의 손을 잡으며 웃었다.

“무슨 말을 하는데 그리 실실 웃고 계셨습니까?”

“뭐? 실실? 이놈이…….그냥 이 잔디에 대해 말씀해 주셨어. 그리고 좋은 경기 부탁한다고…….그런데 너 요즘 들어 말이 점점 이상하게 나온다.”

세령은 연동훈에게 김철남과 나눈 대화를 말해주고 난 뒤, 그의 톡 쏘는 듯 한 말에 대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냥입니다. 그냥 감독님이 다른 남자와 대화하면…….”

“시끄럽고, 일단 선수들 모두 쉬게 하고 곧 있을 경기에 대비하여 아픈 놈들이 있는지 확인해.”

세령은 연동훈의 말을 더 듣지 않고 선수들을 체크하라는 말을 한 뒤, 우산을 쓰고 라커룸으로 향하였다.

-비가 오는 가운데, K리그 챌린지 제 2라운드. 광양FC와 국방부FC의 경기를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은 어느덧 오후 6시를 향해 다다르고 있었다. 비가 많이 오는 관계로 챌린지 리그에서도 축구팬이 많다는 광양의 홈구장에 들어찬 관중은 백여명도 안 되어 보였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더 좋은 일 같습니다.”

선수들이 출전하기 전, 대기하고 있었고, 곧 이민우가 코치진 벤치로 이동하며 말했다.

“그래. 광양의 홈팬들은 엄청난 함성으로 원정팀을 압박한다고 소문이 자자했어. 그런 면에서는 지금의 이 비가 우리를 돕고 있는 것이긴 한데…….그게 문제는 아니잖아. 중요한 것은 경기야. 수중전이 처음이고, 또 물먹은 공과 잔디에 아직 적응조차 하지 않았어.”

이민우의 말에 세령은 아직도 검은 구름을 잔뜩 머금고 있는 하늘을 보며 말했다. 비는 절대 그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하고 많은 양의 비를 뿌릴 것처럼 보였다.

“어차피 치러야 할 경기이니, 주눅 들지 않고, 시원스럽게 하자. 공이 가다 멈추는 것보다야. 시원스럽게 굴러가는 것이 어쩌면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수비수들은 여차하면 공을 멀리 걷어내고, 공격수는 골대가 보인다 생각되면, 그냥 질러. 그게 최상일수도 있다.”

맞는 말일수도 있었다. 비가오니 엉거주춤 공을 다루는 것보다 걷어내는 것이 유리할 것이며, 또 공이 아주 빠르게 날아가는 것을 경험하였기에, 공격수들이나, 또 슈팅 능력을 지닌 선수들은 골문이 보인다고 느껴지며, 망설이지 않고 슛을 때리는 것이 상책일수도 있다.

어차피 비가 오는 조건이 똑같으니, 빠른 공을 골키퍼가 막지 못하는 경우는 비슷할 것이라 여긴 것이었다.

두 팀의 선수들이 입장하고 있었다. 관중들의 환호성은 없었다. 장내 아나운서의 힘찬 해설도 없었다. 빗소리로 인하여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조차도 잘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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