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리거-83화 (83/163)

00083  히든리거  =========================================================================

“그래…….그리 강한 팀이다. 그러니…….”

“연습만이 광양을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이 말씀을 하시려는 것 아닙니까?”

곧이어 전철민이 세령의 말을 자르며 그녀가 할 말을 먼저 하였다. 세령은 전철민을 보며 미소를 지은 뒤, 연동훈을 보았다.

“네가…….다 말했으면, 말했다고 나에게 알려줘야 할 것 아냐.”

세령은 연동훈의 복부를 주먹으로 수차례 툭툭 치며 말했다.

“감독님께서 어젯밤을 뜬 눈으로 보내셨을 것이라 미리 생각하여 말해둔 것입니다. 그래야 감독님도 좀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연동훈은 세령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고, 세령은 그의 눈을 잠시 동안 보고 있었다. 그리고 주위의 선수들도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이 놈이. 언제까지 내 눈을 뚫어지게 보고 있을 거야? 짬밥도 안 되는 놈이…….”

“누누이 말씀드렸지만, 짬밥은 제가 더 많이 먹었습니다. 그럴 땐. 계급도 낮은 놈이…….라는 좋은 말을 하십시오.”

세령은 연동훈의 말을 듣고, 잠시 동안 멍하니 있은 후, 곧 미소를 지었다.

‘툭!’

“아!”

그리고 연동훈의 정강이를 살짝 걷어찼고, 연동훈은 짧은 소리를 내며 자신의 정강이를 만졌다.

“앞으로 이렇게 허리를 90도로 꺾어서 인사해. 오로지…….너만.”

“네? 왜 저만 이렇게 인사를…….”

“명령이야. 장관님께서 말씀하셨지? 너희들은 선수들이기 이전에 군인이라고, 그러니 난 너희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야. 그러니 명령이야. 그 명령을 들어.”

할 말은 없었다. 군인이니 상급자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아주, 첫 경기를 잘 치렀다고 분위기 좋군.”

“충성.”

그들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한 번에 깨버리는 목소리였다. 바로 이강수였다.

“오셨습니까?”

세령은 그에게 인사하며 물었다.

“분위기 좋아. 청주가 꽤 강팀인데, 운 좋게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네. 하지만 너무 들 떠 있는 거 아냐? 이긴 것도 아니고, 겨우 무승부로 승점 1점을 챙긴 것뿐이야, 그게 다야. 만약 이겼으면 아주 잔치를 벌였겠네.”

이강수는 모든 것을 삐뚤게 보고 있었다. 선수들이 강팀과 무승부를 거둔 것에 만족하며 웃고 있을 때, 수고했다는 단 한마디만 해주어도 그건 꽤 큰 힘이 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업 된 기분마저 모두 다운시켜버리는 그였다.

“2라운드의 상대는 광양이야, 이번 챌린지리그의 강력한 우승후보이며, 청주보다 더 막강한 화력을 보강한 팀이기도 해. 과연 이 팀과의 경기가 있은 후에도 이렇게 웃을까?”

이강수는 세령의 앞에 서서 그녀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세령은 그의 말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은 채, 고개 숙여 가만히 있었다.

연동훈을 비롯하여 선수들의 표정이 구겨지고 있었다. 이강수를 향해 모두가 레이저를 쏘고 있는 듯 한 눈빛들이었다.

“잘 들 해라. 괜한 꼬투리 잡혀서 내가 직접 내쫓는 일이 없도록 하란 말이야.”

이강수는 세령을 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린 뒤 말했고, 세령은 고개 숙인 채, 그의 말에 답했다.

“비록 승리하지는 못했고, 모두가 만족하는 경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첫 무대를 밟은 성과치고는 괜찮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대령님께서는…….”

“연동훈.”

“중사 연동훈.”

그의 행동에 연동훈이 조금은 거친 어투로 말하자, 이강수의 시선이 그에게로 돌아서며 그를 불렀다.

“지금…….성과가 괜찮았다고 말했나? 무승부가 좋은 결과다? 누누이 말했지만, 국방부FC는 타구단과 다르다고 했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구단이다. 무승부에 만족하는 경기라면, 애초에 다 집어치워라.”

이강수는 세령에게서 다시 연동훈에게로 향하며 그를 똑바로 보고 말하였고, 그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연동훈.”

“중사. 연동훈.”

“그래. 넌 중사 연동훈이다. 축구팀 코치이기 이전에 군인이라는 말이지. 상급자의 말에 함부로 나불대지 마라. 그게 군인이며, 군대다.”

이강수는 연동훈의 머리를 잡아 좌, 우로 흔들며 말했다.

“지금 뭐하는 거야 이강수!”

“!!!”

이강수가 연동훈의 머리를 잡아 계속하여 흔들고 있을 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소재은이 달려오며 소리쳤다. 그러자 이강수는 재빨리 연동훈의 머리에서 손을 떼며 그녀를 향해 바로섰다.

“충성. 대위 이강수.”

“지금 뭐하는 거냐고? 왜 연동훈의 머리를 잡아 흔들어?”

“그게…….이놈들이 무승부에 만족하며 즐거워하기에, 정신 상태를 다시 고쳐주기 위하여…….”

“모두가 박수쳤는데, 넌 왜 그래? 모두 잘했다고 하잖아. 축구를 모르는 내가 봐도 잘했어. 그런데 축구에 미쳐있는 네가 그걸 몰라?”

이강수는 조금 전 세령이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말없이 그녀의 마지막 말을 듣고 있었다.

“서용식과 너. 내가 경고하는데, 행정업무나 잘 봐. 괜히 애들 기죽이러 그라운드에 나타나지 마라.”

“그래도…….저희가 선수들의 모든 것도 관리해야 하고…….”

“그래. 그건 이강수 대령의 말이 맞아.”

소재은의 말에 이강수가 그녀의 뜻에 따를 수 없다는 말을 할 때, 벤치 한 쪽에서 장두관이 말했다.

“충성. 언제부터 계셨습니까?”

소재은이 그를 보며 경례한 후, 물었다.

“나? 한 참 됐는데. 내가 여기 한 참 전부터 있었는데, 내가 여기에 있는지 몰랐나보군.”

장두관이 벤치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러자 이강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한 참전부터 있었다면 자신의 행동을 모두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강수의 말이 모두 맞는데, 이강수의 행동은 모두 틀렸다.”

역시였다. 장두관은 이강수의 모든 행동을 다 보고 있었다.

“자네와 서용식대위가 선수들에 관한 많은 것을 관리하는 것은 당연해. 그리고 선수들을 일일이 다 체크하는 것도 당연하고, 하지만 선수들의 기분이 향상되어 있는 시점에 굳이 그 기분을 모두 다시 깎아내릴 필요까지 있을까?”

“죄송합니다.”

장두관은 이강수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하였다. 그리고 소재은의 앞으로 다가갔다.

“이강수와 서용식 대위는 선수들에 관해 이 감독 못지않은 권한 행사를 할 수 있는 인물이야, 의무담당인 자네가 참견하지 말라고 할 자리는 아니지.”

소재은은 이강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장두관은 소재은에게 말한 뒤, 다시 연동훈을 보았다.

“연중사.”

“중사. 연동훈.”

“자네의 말도 모두 일리가 있어, 무승부지만 선수들이 만족하고, 잘 했다고 여기며, 스스로 컨디션을 조절할 수 있다면, 굳이 나무랄 필요는 없지. 그렇지만 이강수 대위는 자네 상사야. 상사가 하는 말은 잘 들어야지.”

“알겠습니다.”

연동훈의 행동에 대해서도 말했다.

“즉. 이강수의 말처럼 너흰 감독, 코치, 선수이기 이전에 군인이다. 그러니…….상관이 하는 말은 잘 따르도록 한다.”

이강수가 장두관의 말에 굳어있던 표정을 풀었다. 반면에 연동훈과 코치진, 선수들의 표정은 더욱 더 굳어지고 있었다.

“난. 광양과의 경기에 대해 몇 가지 알아봐야해서 이만…….”

장두관이 자리를 벗어났다. 그러자 이강수가 어깨에 더욱 더 힘을 주며, 세령과 연동훈을 보았다.

“장소령님 말씀 잘 들었지? 나나, 너희들 모두 군인이다. 상관이 하는 말은…….”

“그래 이 대위. 상관이 하는 말은 잘 들어야지. 그러니까 그만 가봐. 더 이상 입 나물거리지 말고.”

“…….”

이강수는 모두를 고루 보며 한 마디 하려하였지만, 곧 소재은이 그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 이강수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비록 같은 대위지만, 이미 소재은이 자신보다 호봉이 높은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소재은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장두관은 모두에게 충고를 하면서도, 마지막에는 소재은에게 그 모든 권한을 다 넘겨주고 간 것과 같았다. 하지만 이강수는 장두관이 자신의 편을 들고, 그 자리를 벗어난 것이라 여기며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냥. 연습해. 이강수 대위가 오기 전까지 느꼈던 그 기분으로 연습해. 그리고 이번엔 광양을 잡고, 이강수 대위나 서용식 대위가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도록 실력 좀 보여줘.”

이강수가 그 자리를 벗어난 후, 소재은은 모두를 향해 보며 미소를 짓고 말했다. 모두는 진정 소재은이 있어, 천만 다행이라 여기고 있는 표정들이었다.

만에 하나 소재은이 없었다면, 저 두 사람의 악마기질을 어찌 감당하며 군 생활을 마칠지 생각하기도 끔찍할 정도였다.

“젠장…….진정 저 마녀와의 인연은 끊을 수 없는 건가.”

세령을 시작으로 아침부터 기선제압을 하려 하였지만, 소재은의 등장으로 인하여 오히려 기선제압을 당하고 돌아오는 길에 쓴 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이강수 대위의 말은 받아들이고, 고칠 것은 고친다. 하지만 승리고 무승부고 패배고간에, 나 자신이 열심히 뛰었다고 여긴다면, 그건 충분히 박수 받아야 할 일이다.”

세령이 모두를 보며 말했다. 모두는 승리해야만이 만족한다고 한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에도, 또 자신 스스로에게도 후회 없는 경기를 한 것이라면, 패배라는 성적표를 받더라도 기뻐하라는 그녀의 말이었다.

“좀 쉬십시오.”

연동훈이 세령을 보며 말했다. 그녀의 눈은 진정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있는 듯하였다.

“괜찮아. 그리고 어제 광양 팀의 경기를 분석해 봤는데, 광양은 중앙을 주로 사용한다. 양쪽 사이드에서 센터링이나, 기타, 치고 들어오는 공격을 하다가도, 결정을 짓는 곳은 언제나 중앙이었어. 스트라이커인 서용호는 물론 쉐도우 자리에 서 있는 이민호의 공격력이 탁월하기에 그 방식을 고집하는 것 같기도 하고.”

세령은 날 밤을 지새우고 자신이 분석한 내용을 말해주었다. 현대축구는 과거와 달리 양쪽 사이드를 주로 많이 사용한다. 사이드를 치고 들어와, 센터링을 올리며, 공격수에게 기회를 만들어주고, 또 수비수가 공을 걷어냈을 때, 2선 공격이 유용하기에 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광양은 아니었다. 광양의 공격은 대부분 중앙 침투로 다 이루어지고 있었다. 열아홉 살의 신성 서용호라는 대단한 스트라이커를 보유한 광양이 선택한 전략일수도 있는 것이었다.

세령의 분석내용을 토대로 연동훈은 중앙수비수는 물론, 중앙미드필더들의 자리를 변형시키며, 서용호와 이민호를 막기 위한 수비강화에 중점을 둔 연습을 시행하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