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리거-79화 (79/163)

00079  히든리거  =========================================================================

“죄송합니다. 너무 긴장해서…….”

“긴장? 지금까지 연습했던 것과 뭐가 다를까? 상대팀이 클래식무대를 아쉽게 밟지 못했던 팀이라는 거? 아니면 수많은 관중?”

이태성의 말에 연동훈이 그의 앞으로 서며 다시 물었다.

“너희들은 상무2군 팀과도 경기를 하였다. 그들의 실력은 비록 청주와는 다르지만, 그들도 프로팀이다. 또 한 수많은 관중? 지난 해, 상무와 경남의 경기에서 경남의 엄청난 홈팬들의 함성을 듣고, 경기에 임한 상무선수들을 보았었다. 비록 직접 너희들이 뛴 것은 아니지만, 그 분위기는 충분히 인지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곳에 있는 관중들이 너희들을 비난하는 관중들이냐! 모두 너희들을 응원하기 위하여 금쪽같은 시간 쪼개서 나온 사람들이다! 경기에 패하더라도…….적어도! 경기를 뛸 마음이 없었다는 말은 나오지 말아야 할 것 아니야!”

연동훈의 목소리는 라커룸 밖까지 아주 크게 들렸다. 연동훈이 화가 난 이유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에게 패배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공을 차기 위하여 모인 사람들이라면, 공을 차란 말뿐이었다. 하지만 국방부 선수들은 그런 공을 차는 마음마저도 보여주지 못했던 것에 연동훈이 더욱 더 화가 난 것이었다.

“연 코치의 말이 모두 맞다. 너희들은 63만 군 장병을 대표하여 모인 축구천재들이다. 긴장? 그래 긴장이 되겠지. 하지만 진정…….만에 하나 저들과 총을 들고 싸워야하는 전쟁터에서 만났어도 긴장했다고 말할까? 그 말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너희들은 군인이다. 나와 연 코치가 이런 말을 하는 것에 대한 이유이기도하다. 군인이기에, 적어도 군인정신은 버리지 말자.”

세령의 목소리는 연동훈처럼 크지 않았다. 나지막하였지만, 오히려 그녀의 목소리가 선수들을 더욱 더, 움직이게 만들고 있는 듯하였다.

“후반전에는 변화를 좀 주자. 생각보다 많은 긴장을 한, 이철호를 빼고, 용지현이 들어간다. 그리고 쉐도우인 장만식의 자리에 추강이 선다.”

“네. 알겠습니다.”

호명된 네 명이 답했다.

“교체 아웃되었다고 속상해하지마라. 이제 첫 경기를 시작하였다. 앞으로 더 많은 경기가 남아있다. 더 많은 경기가 남은 만큼, 출전할 기회도 많다. 하지만…….계속 주어지는 기회 속에서도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세령의 말에 모두의 기분이 우울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은 사전에 이미 말해준 내용이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구단이기에, 제대로 된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선수를 계속 기용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말을 한 것이었다.

“후반전에는, 모든 긴장을 풀고, 너희들의 진정한 축구실력을 모두에게 보여줘라.”

“네! 알겠습니다.”

모두 큰 소리로 답했다. 전반전을 뛰고 교체되는 두 명의 선수도 모두 힘차게 답했다. 스스로 얼마나 많은 긴장을 하고  경기에 임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후반전을 시작하기 위하여 선수들이 다시 그라운드로 나서고 있습니다. 청주FC에서는 한 명의 교체선수가 있네요. 그리고 국방부FC에서도 두 명의 교체선수가 있습니다. FW의 장만식이 나가고 추강선수가 들어왔습니다. 또 한, 이례적으로 골키퍼 교체가 있었습니다.-

아나운서의 말에 관중들의 시선이 교체된 두 명을 이리저리 보았다. 그리고 중계카메라가 추강과 용지현을 잡았다. 추강이 화면에 잡히자, 대부분의 관중들은 정말 믿을 수 없다는 듯 한 표정들이었다.

그의 육중한 몸. 도저히 축구선수로써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이 담긴 표정들이었다. 반면에 용지현이 카메라에 잡히자, 많은 여성 팬들이 소리를 질렀다.

큰 키에 비율이 잘 맞는 몸. 그리고 얼굴 생김새도 수려하였기에, 그가 카메라에 잡히자, 추강을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삐~익!”

-후반전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국방부의 선축으로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전반전 경기에 불만이 많았던 수많은 관중들 중, 일부는 빠져나간 듯, 처음에 보이지 않던 빈자리가 곳곳에 보이고 있었다.

“관중들이 많이 빠져나갔군.”

후반전이 시작되자, 다시 국방부관계자들은 모두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장관이 관중석을 둘러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전반전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너무 무기력한 경기를 보여주었기에, 기대에 비해 실망감이 커 경기가 끝나기 전에 나간 것 같습니다.”

정책기획관이 답했다. 이는 비단 K리그에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세계 어느 스포츠도 이와 같은 현상은 간혹 있었다. 경기가 끝나지 않았지만,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패배가 확실하다는 생각을 한 관중들이 많이 빠져나간다.

하지만, 그들은 패배할 것 같아서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패배하더라도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자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무기력한 경기는 경기의 재미는 물론, 관중들이 보고 싶어 하는 열정적인 축구를 구사하지 않는다. 그로 인하여 경기장을 나서는 것이며, 그들이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후반전 시작과 함께, 국방부의 공격은 곧바로 이어졌다. 전반전에 비하여 선수들의 긴장이 풀린 듯 해 보였다.

-국방부FC의 선축으로 시작된 후반전입니다. 이태성 선수, 교체되어 들어온 추강 선수에게 공을 패스해 줍니다.-

이태성이 밀어준 공은 추강에게 연결되었다. 추강이 공을 잡자, 일부 관중들은 그냥 웃었다. 진정 그의 몸이 육중하였기 때문이었다.

추강은 공을 잡은 후, 전방을 주시하였다. 이태성이 빠르게 상대진영 중앙을 파고들고 있었고, 양쪽 사이드로 마형식과 서민구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전반전과는 확연히 다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태성 선수의 움직임과 함께, 마형식과 서민구 선수가 빠르게 청주FC 진영으로 파고들고 있습니다.-

전방을 살피고 있을 때, 청주의 공격수가 압박을 가하기 위하여 다가섰다. 그는 추강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추강의 발아래에 있는 공을 보며 다가서고 있었다.

지난 몇 번의 연습게임 중, 추강은 인신공격을 꽤 많이 받았었다. 자신의 육중한 몸을 놀리는 선수가 꽤 있었다.

하지만 청주의 공격수는 달랐다. 그의 몸에 관한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축구공에만 모든 시선을 주고 있었고, 그 공을 뺏고자 다가서고 있었다.

-추강 선수, 전방으로 공을 패스하기에는 이미 각 선수들에게 수비가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우동화선수에게 공을 패스합니다.-

추강은 그를 본 후, 오른쪽 옆으로 움직이는 우동화를 보았다. 추강은 그 즉시 우동화에게 공을 준 후, 자신은 중앙선을 넘어 상대진영으로 오르기 시작하였고, 공을 받은 우동화는 라이트윙인 마형식에게 곧바로 패스해 주었다.

-패스 전개가 빠르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반전과 완전 다르잖아.”

아나운서는 물론 관중들도 전반전과 달리, 후반전에는 체계적으로 공격을 진행하고 있는 국방부 팀을 보며 표정들이 신중해졌다.

전반전을 끝내고 실망하며 돌아가려다, 후반전의 경기를 보고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관중들은 완전히 변한 국방부의 경기 스타일에 조금씩 매료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공을 잡은 마형식은 빠르게 사이드를 치고 들어가며, 순식간에 코너까지 올라갔고, 중앙을 보며 시선을 돌렸다.

“너무 단조러워.”

그들의 움직임을 본 청주의 감독이 별 긴장을 하지 않는 듯 말했다.

‘펑!’

-마형식 선수의 센터링!-

“!!!”

-아! 센터링이 아닙니다!-

하지만 단조로운 공격이라고 여겼던 전개방식이 아니었다. 그 위치에서 센터링이 올라 올 것이라 모두가 예상하였다. 심지어 아나운서마저 센터링이라고 외쳤다.

하지만, 그 공은 정확하게 청주진영 중앙으로 빠르게 땅에 깔리며 뿌려졌고, 거의 대부분의 청주 미들 진들이 페널티박스 안에 있었기에, 그 공이 향하는 곳에는 청주 선수들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뭐야!”

청주감독은 놀란 눈을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보통은 그 자리에서 센터링을 올려, 경합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로 인하여, 만에 하나 흘러나온 공을 2선에 있는 선수가 슛으로 연결하는 방식이었다.

-추강 선수에게 공이 패스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달랐다. 마형식은 센터링이 아닌, 청주진영 정 중앙에 위치한 추강의 앞으로 아주 강하며 빠른 땅볼패스를 연결해 주었고, 사방에 청주선수가 단 한명도 없는 자유로운 상황을 맞이한 추강은 자신의 앞으로 다가서는 공을 보며 그대로 달려들었다.

‘펑!’

-추강 선수. 슛!-

“!!!”

‘철렁!’

-골! 골! 골입니다! 정말 믿기지 않는 골이 나왔습니다!-

아나운서가 흥분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고, 관중들도 모두 함성을 질렀다.

“저 선수 대체 뭐야!”

관중들이 모두 함성을 지르며 일어섰다. 심지어 청주 감독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있었고, 국방부장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크게 웃으며 박수쳤다.

추강은 자신의 앞으로 굴러오는 공을 보며, 아주 정확하게 슛을 날렸다. 그 공은 위로 뜨지도 않았으며, 땅에 바운드되지도 않았다. 마치 비행기가 이륙할 때처럼, 아주 천천히 고도를 높이며 골대를 향해 날아갔고, 조금씩 떠 오른 공은 골대 모서리를 아주 아슬아슬하게 통과하며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모두가 놀란 이유는 그의 강슛도 있지만, 거리였다. 거의 25미터 이상은 넘을 먼 거리에서 지른 슛이었고, 그 공은 아주 빠르지만, 위로 뜨지도 않은 채, 단 한 번의 바운드도 없이 골문 안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추강은 4대대 체육대회에서도, 이미 정교한 슛으로 호평을 받은 경험이 있다. 그의 슛은 당시 모두에게 큰 쇼크를 주었었다.

-정말! 대단한 슛이 나왔습니다. 여느 유럽리그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아주 멋진 슛이 나왔습니다!-

아나운서는 흥분이 가시지 않는 듯, 계속하여 소리치고 있었다.

“삐~익!”

국방부FC 창단 후, 첫 골의 주인공은 추강이었다. 그것도 아주 멋진 골이 나왔으며, 모든 관중들에게 기립박수를 받을 정도로 엄청난 슛이었다.

스코어는 3대 1이 되었다. 전반전을 보고 집으로 향했던 관중들은 이 그림 같은 골을 직접 보지 못하였다. 그리고 더 많은 골을 헌납하며 처참하게 무너질 것이라 생각하였던 모두에게 반전의 기쁨을 선사해준 골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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