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리거-77화 (77/163)

00077  히든리거  =========================================================================

“모두! 정신 차린다!”

이태성은 심판이 휘슬을 불기 전, 몸을 돌려 자기진영에 서서 조금은 멍해 보이는 듯 한 선수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이는 연동훈이 외치는 소리와는 다른 느낌을 전해 받고 있는 선수들이었다.

연동훈은 코치며, 지금 이 순간은 그라운드 밖에 서 있는 인물이지만, 이태성은 달랐다. 지금 자신들과 함께 뛰는 선수다. 그의 큰 목소리는 잔뜩 긴장하고 있던 모든 선수들의 어깨를 주물러주며, 긴장을 풀어주는 듯 한 느낌을 전해주었다.

“기세를 몰아서 한 골 더 넣자!”

이태성의 힘찬 파이팅에 이어, 이에 질세라 청주의 주장도 선수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고, 그들의 힘찬 함성이 들려왔다.

“어째…….두 팀 모두, 군인 같네…….”

“…….”

청주 펜스의 뒤쪽에 있던 관중 중, 한 명의 말에 청주감독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고작 군인신분으로 공을 찬다는 국방부FC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던 그에게 그들과 같다는 말이 들리니, 당연히 쓴 표정이 나오는 것이었다.

“삐~익!”

-1점을 허용한 국방부FC의 선축으로 다시 경기는 재개되고 있습니다. 이태성 선수가 공을 뒤로 돌리고 있습니다.―

한 점을 허용한 상태에서 경기는 재개되었다. 이태성은 공을 중앙미드필더인 전철민에게 돌렸다. 전철민은 공을 잡은 후, 상대 선수들의 움직임을 보았다. 그 순간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청주의 스트라이커와 눈이 마주쳤다.

“뭐야…….왜 이리 빨라.”

하지만 그 공을 잡고, 상대 선수를 보며, 공격을 어떤 방향으로 할지에 대한 생각을 할 틈은 많지 않았다. 공을 잡자마자, 청주의 공격진들이 그 즉시 달려오고 있었다.

-공을 받은 전철민 선수의 움직임에 당황스러움이 보이고 있는 듯합니다. 이 또 한, 아직 경험미숙에서 나오는 행동으로 보이는데요.―

아나운서는 이태성에게서 공을 전달받은 전철민이 청주FC의 빠른 압박에 당황한 모습을 그대로 보며 말했다.

아나운서의 말처럼 전철민은 자신을 향해 다가서는 청주의 최전방 공격수의 움직임에 당황한 듯, 공을 다시 더 뒤로 돌렸고, 중앙수비수인 우근우에게 공이 갔다.

하지만 청주 스트라이커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곧바로 다시 우근우에게로 향하였고, 우근우는 라이트백인 여민호에게 공을 돌렸다.

-경기가 재개되자마자, 청주의 강한 압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국방부는 전방으로 공을 넘기지 않고, 계속하여 뒤로 공을 보내고 있습니다.―

“상대 공격수가 바로 앞인데, 공을 후방으로 계속 돌리면 어떡해!”

너무 당황한 듯, 자신의 생각과 다른 행동들을 하고 있는 듯하였다. 연동훈은 이미 청주의 공격수 세 명이 공을 따라 바로 붙고 있는 시점에서 위험지역을 벗어나지 않은 채, 공을 돌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소리쳤고, 여민호는 그 즉시 공을 청주진영으로 아주 길게 차 넘겼다.

-어렵게 공을 멀리 차내고 있는 국방부FC의 여민호 선수입니다.―

“뻥 축구네…….역시 군바리들은 어쩔 수 없는 축구를 하는군.”

전형적인 군대축구였다. 수비수는 무조건 멀리 차 내는 것. 공격수는 선임이 맡으며, 선임은 실수해도 그냥 실수다고 넘어가는 것. 상대를 볼 컨트롤로 따돌리는 것이 아닌, 일단 공을 무조건 걷어낸 후, 누구라도 공을 잡으라는 식의 뻥 축구. 7개월간의 맹훈련을 했지만, 이들에게 아직 군대의 습성이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기도 하였다.

여민호가 걷어 낸 공은 청주미드필더에게 연결되었다. 단 세 번의 골터치만에 다시 청주에게로 공이 넘어간 것이었다.

“이거…….어쩐지 승점지급기가 될 듯 한 느낌이네.”

관중들은 경기 초반이지만, 국방부의 경기능력을 본 후, 동네 조기축구에서도 보기 힘든 경기력이라 혹평을 늘어놓고 있었다.

-여민호 선수가 걷어낸 공은 또 다시 청주에게로 넘어갔습니다. 청주FC. 천천히 국방부 진영으로 공을 몰고 나오며, 공격진들도 함께 상대진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나운서는 청주FC가 공을 잡자, 마이크 가까이 입을 들이밀며 멘트를 하고 있었다.

“아직 경기 초반이며, 선수들의 긴장이 풀리지 않은 이유도 있습니다.”

정책기획관은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서, 몇 몇 관중들의 혹평을 듣고 인상을 구기고 있는 국방부장관에게 말했다.

“내가…….우리 선수들의 경기능력에 표정이 굳어지는 것이 아니네. 자네의 말처럼 이제 경기초반이야. 그리고 이제 시즌이 시작되었고, 그 첫 경기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지. 하지만…….관중들은 이 짧은 시간에 벌써 우리 국방부를 욕하고 있다는 것이…….”

국방부장관이 표정을 구긴 이유였다. 이는 비단 챌린지리그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클래식은 물론, 심지어 국가대표에게도 이와 같은 반응은 수차례 나왔다.

새로운 감독이 팀을 꾸려, 첫 시합을 진행하는 도중, 관중들이나 TV로 시청하는 축구팬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경기를 진행하면, 하나같이 욕을 퍼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고작 한 경기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은 축구팬이나, 더 나가 스포츠팬들이 고쳐야 할 부분이라 말하고 있었다.

-국방부FC와는 달리, 청주FC의 공격은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는 이미 수많은 경험에서 나오는 각 선수들의 움직임이기도 하죠.―

청주의 공격이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정교한 패스와 잘 짜인 각본대로 경기를 운영하고 있었고, 또 다시 국방부의 페널티박스 근처까지 아주 쉽게 다가섰다.

이에 아나운서는 얼핏 국방부FC의 경험부족을 말하고 있으면서도, 청주FC의 우수한 경기운영을 말하고 있었다.

청주는 공격을 하면서도, 여의치 않을 경우 공을 다시 뒤로 돌리며, 급하게 경기운영을 하지 않고 있었다. 페널티박스 가까이 다가갔지만, 그 공을 슛으로 연결하지 않고, 공을 다시 뒤로 빼며, 이태성을 제외한 거의 모두가 수비에 가담하고 있는 국방부의 선수들을 다시 흩어지게 만들기 위하여 경기조율을 하고 있었다.

뒤로 물러난 공을 쫒으며 국방부 선수들이 다시 퍼져나가고 있었고, 좁은 거리를 유지한 채, 수비를 보고 있던 국방부 선수들 간에 거리가 벌어지자, 그 틈에 청주의 공격이 다시 빠르게 이어지고 있었다.

-청주FC! 다시 빠른 공격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국방부진영 중앙을 치고 들어왔고, 공을 왼쪽으로 내줍니다.―

“설마. 공격 두 번에 두 골은 아니겠지?”

관중들은 설마라고 말하지만, 그들의 억양은 비웃는 듯 한 어투였다. 공은 왼쪽 코너로 내려갔고, 그 순간 왼쪽 윙어가 바로 센터링을 올렸다.

‘철렁’

“하하하. 그 봐. 맞잖아.”

-골! 골입니다. 또 다시 실점하는 국방부FC입니다.―

관중들이 생각했던 대로 경기는 흘러갔다. 두 번째 공격도 아주 쉽게 이루어졌다. 왼쪽 코너에서 올라온 공은 수비수 우근우가 먼저 걷어냈지만, 그 순간 페널티박스 앞으로 진입한 청주FC의 중앙미드필더가 빠르게 달려오며 그대로 강슛을 날렸고, 그 공은 골로 연결되었다.

평범한 슛이며, 골대 모서리나, 기타 골키퍼의 시야를 가린 수비수도 없었지만, 이철호는 그저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공을 보고만 있었다.

“삐~익!”

전반 15분이 지난 상황이었다. 또 다시 추가실점을 하였고, 스코어는 2대0이 되었다. 첫 번째 골과 거의 다를 것이 없는 두 번째 골이었다.

결국 여민호의 패스미스 한 번에 이루어진 청주의 역습에 제대로 한 방 먹은 것이었다.

-2대 0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국방부FC에서는 전반전에 선수교체와 함께 전술변화를 주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데요.―

아나운서는 세령의 전술에도 태클을 걸고 있었다.

이태성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선 채,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은 이태성을 지나, 연동훈을 보았고, 곧 세령을 보았다.

이태성의 표정은 무섭기까지 하였다. 연동훈의 표정은 진정 악마의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이민우와 서지후, 태영훈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세령의 표정은 아니었다. 그녀는 선수들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 여자감독…….정신 나가버린 것 아니야? 웃고 있어.”

두 번째 골을 허용한 뒤, 중계카메라는 세령의 표정을 잡고 있었고, 그녀가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경기장 대형모니터에는 물론, TV중계를 하고 있는 카메라에까지 잡히며, TV로까지 전파를 타고 나갔다.

그러자 몇 몇 관중은 그녀마저 비웃는 듯 한 어투로 말하고 있었다.

-이세령감독. 그저 웃고 있습니다. 저 웃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아직 자신 있다는 뜻이겠죠?―

아나운서는 세령의 미소에 대해 의외로 좋은 방향으로 멘트를 해주고 있었다.

“선수들이 긴장감으로 제대로 된 경기를 뛰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위압감까지 얹어주면, 경기는 걷잡을 수 없이 대량 실정으로 이어진다. 아마…….이 감독은 그것을 막기 위하여 저런 표정을 하고 있을지도 몰라.”

모두의 생각과는 다른 생각을 한 국방부장관이었다. 정책기획관이 그녀의 표정에 대해 해명하기도전에 국방부장관이 먼저 그녀의 표정을 해석하였다.

“이번 경기는 우리 국방부가 패배하더라도, 절대…….그 누구도 이 감독은 물론, 코치진과 선수들에게 그 어떤 질타도 해서는 안 되니, 전군에 그 말은 필히 전하게.”

“네 장관님.”

정책기획관은 쿵쾅거리던 심장이 그제야 어느 정도는 안정이 되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국방부FC의 최고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장관이 직접 관전하고 있는 경기였다. 그리고 전반 15분 만에 두 골을 내주었고, 경기력마저 엉망이었다. 그로 인하여 국민들의 세금을 쓸데없는 곳에 사용하였다는 말이, 적어도 국군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만이라도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잘 돌아가는군. 그러니…….감독을 좀 제대로 된 감독으로 선정해야지…….거친 축구에 축자도 모르는 여장교를 감독으로 세우니 이 꼴이지.”

경기가 점차 엉망으로 되어가고 있는 것에 모든 관계자의 심기가 불편해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이강수와 서용식은 한  쪽 편에 앉아 경기를 보며 쓴 소리를 하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정책기획관이 기용한 사람이다. 세령을 처음 볼 때부터 강한 압박을 가하였지만, 소재은과 연관이 있었던 인물로써, 소재은에 의해 세령에게 가하던 압박을 가할 수 없게 되었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경기력이 엉망이면, 자연스럽게 세령은 물러날 것이라 여기고 있었고, 그 시초가 시작되고 있는 것을 반기고 있는 듯 한 표정들이었다.

“첫 경기로 청주와 대진하게 된 것이 우리에겐 득이 된 모양이야.”

이강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두 사람은 현재 국방부FC에 관련된 모두와 전혀 상반된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삐~익!”

2대0의 스코어로 경기는 재개되었고, 여전히 국방부의 공격은 중앙선을 쉽게 넘어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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