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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리거-73화 (73/163)

00073  히든리거  =========================================================================

“과거다! 모든 것은 과거다! 이제부터 난! 진정 너희들을 위하여 헌신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서재호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더 큰 목소리로 소리쳤고, 그 목소리에 연동훈이 그를 보았다.

“잘 해보자.”

먼저 손을 내밀었고, 연동훈은 못 이기는 척,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곧바로 이민우도 악수하였고, 코치진과 선수들과도 모두 악수를 하였다.

“이 소위…….아니 이제는 감독이지. 이 감독. 잘 부탁하네.”

서재호는 마지막으로 세령의 앞에 서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세령도 그를 보며 미소를 지은 채, 악수를 하였다.

“차량이 또 들어옵니다.”

이어서 한 대의 차량이 또 들어서고 있는 것을 본 태영훈이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 곳으로 향했고, 한 차량에서 두 명의 인물이 내렸다.

“젠장…….”

두 사람이 내리자마자 이태성이 쓴 소리를 내 뱉었고, 그 즉시 모두의 시선이 이태성에게 향하였다.

“무슨 말버릇이 그래?”

세령이 그의 말을 들은 후, 곧바로 표정이 굳어지며 말했다.

“아닙니다. 결코 보고 싶지 않은 인물이었는데, 이렇게 보게 되니 저도 모르게…….”

그의 말을 듣고, 세령은 두 사람과 이태성의 관계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곧 두 사람이 모두의 앞으로 다가섰다. 그들은 대위였다. 두 명 모두 다이아 세 개를 모자에 새기고 있었고, 인상도 험해 보였다.

이태성은 그들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는 듯,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이태성…….오랜만이다.”

“상병…….이태성.”

대위 중 한 명이 이태성을 노려보며 말했고, 이태성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관등성명을 말했다.

“넌 아직 군인이다. 목소리가 그것밖에 나오지 않나?”

그는 이태성의 목소리를 듣고, 곧바로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그리고 모두를 고루 보았다. 그 험한 인상은 그를 처음 보는 모두를 긴장케 하고 있었다.

“장만식. 너도 오랜만이다.”

이어 다른 한 대위가 장만식의 이름을 부르며 물었다. 장만식은 추강과 함께 쉐도우 자리에 섰던 인물로, 덩치가 큰 편이었다. 그 역시 두 대위가 다가오고 있을 때, 이태성과 마찬가지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충성. 일병 장만식.”

장만식도 이태성과 마찬가지로 또 다른 한 명의 대위와는 그다지 좋은 관계가 아니었던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어서들 오게.”

곧 정책기획관이 두 사람을 반겼다. 그들은 정책기획관이 내민 손을 잡은 후, 가볍게 악수를 하였고, 곧 세령을 향해 보았다.

“말은 많이 들었다. 나 대위 이강수이며, 3사단 출신이다. 저기 있는 이태성을 데리고 있던 인물이지.”

이태성이 표정을 구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함께 생활한 것만으로 굳이 인상을 구길 필요는 없겠지만, 그 만큼 편하지 않은 관계였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또 한 세령을 대하는 태도도 굉장히 딱딱하였다. 하지만 축구선수이기 이전에 군인이므로, 계급이 높은 그의 행동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난 대위 서용식이다. 나 또한 이곳에 내 새끼가 한 명 있지, 바로 장만식. 난 수도군단 출신으로 저 놈을 데리고 있었었다.”

이태성에 이어 장만식도 표정을 구긴 이유는 같은 것이었다. 두 장교는 첫 인상부터 모든 선수들은 물론, 코치진과 세령만저도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한마디 미리 해두지만, 국방부FC. 축구 구단이기 이전에 그 구단에 속한 인물은 군인이라는 것을 항상 명심해라.”

이강수가 모두를 보며 말했다. 진정 두 사람 모두 얼굴의 험상궂은 정도는 조폭을 능가할 정도였다.

“분위기 삭막하게 만들지 말고, 부드럽게 해라.”

정책기획관이 순간적으로 얼어버린 듯 한 분위기를 보며 말했다. 서재호가 중위라는 계급으로 올 때까지는 괜찮았다. 비록 연동훈과 이민우와는 악감정이 있었지만, 지금은 말끔하게 정리가 되었기에 불편함은 덜했다.

하지만 이강수와 서용식의 등장은 모든 분위기를 살벌하게 만들어 두었다. 이는 절대 펴지지 않고 있는 이태성과 장만식의 표정만으로 그들이 어떤 인물인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잠시 동안 두 대위는 정책기획관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그들의 웃음에 세령을 비롯하여 나머지 인원들은 함께 할 수 없었다.

“분위기 엉망이군. 내가 중위의 계급으로 오면 최고선임이 되어, 모든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중위는 짬밥도 아니군…….젠장.”

서재호는 연동훈과 이민우의 사이에 서서 그들을 향해보며 말했다. 그리고 시선을 다시 돌려 세령을 보았다.

“너무한 것 아냐? 그래도 이 축구단을 이끄는 감독이 이소위인데, 지들끼리 무슨 수다를 떨고 지랄이야.”

서재호는 연동훈과 이민우만이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말했고, 그 즉시 연동훈의 시선이 세령에게로 향하였다.

“이 감독, 이리 와서 함께 몇 대화를 하지 그래. 서중위도 오고.”

지금까지 실컷 자신들끼리 뭔가 웃으며 대화하고 난 뒤, 정책기획관이 세령과 서재호를 불렀다.

두 사람은 그들의 곁으로 갔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웃고 있던 두 대위의 표정은 다시 험상궂게 변하고 있었다.

“앞으로 우리 국방부FC를 위해 많은 노력 부탁드립니다.”

세령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우리야 뭐…….구단의 행정업무만 지원하면 되는 것이니, 잘 이끌어 나가는 것은 이감독이 할 일이지. 그리고 누차 말하지만, 그저 여기서 시간 때우다가 제대하려는 생각이 있는 놈은 그 즉시 보따리 싸서 다시 현역으로 보내버릴 것이다. 우린…….이 구단의 행정업무를 맡으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로 꼽은 것이 구단 이익이니 말이야.”

이강수는 세령을 보며 조금 더 독한 눈빛을 주고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국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니, 적어도 적자는 용서치 않는다는 것이지. 시즌 중, 성적이 떨어지면 감독교체는 물론, 코치진교체. 그리고 선수들 물갈이도 우리가 모두 할 것이다. 그러니…….똑바로 정신 차리고 하는 것이 좋아.”

시작도 전에 얼음장부터 놓는 이강수였다. 그의 말에 서재 호는 표정이 굳어졌지만, 세령은 오히려 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웃지마라. 여긴 군대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미소는 이강수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더 험상궂은 표정으로 그녀를 향해보며 날카로운 음성으로 말했다.

“이태성 상병님. 대체 저 사람이 어땠습니까?”

선수들은 따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곧 우동화가 이태성에게 다가가 이강수에 대해 물었다.

“말도마라. 세상에 독한 놈 독한 놈, 그래도 저 대위님에 비하며 천사일 것이다. 처음 연동훈 코치님을 악마라고 했을 때, 난 사실 천사 같았다. 바로 저 이강수 대위님을 먼저 보았기 때문이지…….”

그의 이 한마디로 압축된 설명에서 그가 얼마나 독한 인물이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연동훈을 천사로 비유할 정도라니,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인물이었다.

곧 장만식에게도 서용식 대위에 관한 질문을 하였다.

“뭐…….이태성 상병님이 말씀하시는 것에 비하면 아주 손톱만큼은 천사일 수도 있는 인물입니다. 서용식 대위님은 부대 작전장교였는데, 훈련시에는 진정 악마이며, 자신의 눈에 한 번 찍히면, 제대 할 때까지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는 소문이 우리 수도군 단내에서는 자자합니다.”

모두는 고개를 숙였다. 진정 행복했던 지난 5개월이었다. 오로지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그 5개월이 이들에게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처럼 느껴지고 있는 지금이었다.

정책기획관을 중심으로 이강수와 서용식, 그리고 세령과 서재호가 서 있었지만, 세령과 서재호는 여간 불편한 자리가 아니었다.

“늦네.”

또 다시 정책기획관은 시계를 보며 말했고, 모두의 시선이 다시 주차장 쪽으로 향하였다. 하지만 들어서는 차량은 없었다.

“내가 다시 알아보고 올 테니, 서로 대화좀 나누고 있게나.”

정책기획관이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이 정책기획관을 향해 돌아섰다. 마치 굶주린 맹수를 조련하고 있던 조련사가 자리를 비우고 있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군생활동안 설마 이런 보직이 생겨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

그가 벗어나자마자, 이강수가 자신이 들고 있던 가방을 그라운드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의 표정은 진정 매서웠다.

“그러게 말이야. 좋아하는 축구나 보면서, 남은 군 생활 잘 보내고 가면 되는 것이지.”

두 사람의 돌변한 모습에 세령의 시선도 매섭게 변하였다.

“이세령.”

그러자 곧바로 이강수가 세령을 불렀다.

“소위. 이세령.”

“그래. 그렇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하는 거야. 그리고 지금까지 이놈들을 어찌 관리했는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자네 뜻대로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만은 알아둬. 우리가 협회 쪽은 물론, 국방부FC와 관련된 모든 기관과의 행정업무를 다 할 것이니, 우리 말 한마디면 변하는 것이 너무 많아져.”

서용식이 세령을 내려 보며 말했다. 키도 크니, 당연히 아담한 사이즈인 세령을 내려 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아직…….두 사람이 오지 않았다고 하는 것 같은데. 한 명은 대위며 팀 닥터고, 한 명은 소령이라고 하는데…….뭐. 잘 대해주면 되겠지.”

그들에게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은 두 사람의 계급은 중요치 않았다.

“차가 들어옵니다.”

우울한 기분이 들고 있던 중에, 서지후의 말을 듣고, 모두의 시선이 다시 들어서는 차량을 보았다.

“팀 닥터인가?”

곧 차량에서 한 여인이 내렸다. 세령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서재호도 미소를 지었다. 연동훈과 이민우는 물론, 추강과 설태구, 용지현도 미소를 지었다. 바로 소재은이었다.

이들 모두는 소재은과 아주 각별한 사이였기에, 그녀의 모습만으로 힘이 되는 듯하였다.

하지만 반가운 마음을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이강수와 서용식 때문이었다. 이들에 의해 소재은이 구박받을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었다.

세령과 서재호는 코치진과 선수들은 이미 계급적인 면에서 한 단계 아래에 있기에 그렇게 크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소재은은 달랐다. 그녀도 대위였다. 같은 대위의 입장에서 두 사내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을 것 같은 느낌에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도 반가움보다는 안쓰러움이 먼저 다가서고 있었다.

그녀는 해맑은 표정으로 다가서고 있었고, 세령은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짓고 서 있기만 하였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가 들고 오는 가방이라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은 세령은 물론, 서재호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뒤에서 매섭게 보고 있는 이강수와 서용식의 시선으로 인하여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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