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1 히든리거 =========================================================================
“내가 아니고, 아무래도 네가 먼저 지칠 거야. 난 그래도 너 업고 못 올라가니, 그건 네가 알아서 해라.”
세령은 조금 더 속도를 내며 말하였고, 연동훈은 미소를 지은 뒤, 그녀의 속도에 맞춰 움직였다.
갑작스레 속력을 내는 세령과 연동훈으로 인해, 가장 죽을 심경이 된 인물은 이민우였다.
평지에서 걷는 것도 힘들어서 하지 않으려는 그가, 산을 올라야하니, 그 기분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내색도 하지 않았다. 아무런 말없이 산을 오르기 시작하였고, 점차 조금씩 뒤로 쳐지는 그의 옆으로 용지현과, 이철호가 다가와 섰다.
“그래. 그래도 네 놈들 밖에 없다.”
이민우는 골키퍼 코치이며, 용지현과 이철호는 골키퍼다. 즉. 이 세 사람은 현재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가장 많은 만남과 가장 많은 대화를 해야 하는 관계였다.
20대 초반의 건장한 사내들이 금산을 오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마치 동네 뒷동산을 오르는 것처럼 지친 기색 없이 잘 오르고 있었다.
“의외로 체력이 좋으신 것 같습니다.”
연동훈은 자신의 속도와 전혀 뒤 떨어지지 않게 산을 오르고 있는 세령에게 말했다.
“너도 체력이 좋다. 그렇게 담배를 피우는데도 어찌 폐가 지치지도 않냐?”
세령은 연동훈의 말에 농담을 섞어 답을 주었다. 두 사람의 뒤로 이태성을 비롯하여, 진정 육중한 몸으로 이 산을 오르기는 힘들 것이라 여겼던 추강의 속도도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반면에 이민우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다. 가장 후미에 섰던 서지 후와 태영훈이 보이고 있었지만, 그 사이에 이민우는 없었다.
“민우가 힘들었나보네.”
세령은 이민우와 함께 용지현과 이철호가 보이지 않는 것도 확인하였다.
“용지현과 이철호가 잘 데리고 올라올 것입니다. 곧 정상이니 단 걸음에 달려가 보시겠습니까?”
연동훈은 이민우의 일에 큰 관심이 없었다. 마치 두 사람이 가장 앞질러 움직이니, 두 사람만이 등산을 온 듯 한 느낌을 계속하여 느끼려 하였다.
세령은 용지현과 이철호가 이민우의 곁에 있으니, 그녀 역시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연동훈의 말처럼 곧 정상이 보이니, 남은 체력을 다 끌어올려 달려갈 채비를 하였다.
남녀사이 가장 빠르게 가까워 질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등산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었다. 서로 잡아주고, 당겨주면서, 전혀 어색함 없는 스킨십을 계속하여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세령과 연동훈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앞서가며, 서로 끌어주고 잡아주며, 어느새 금산 정산까지 오르고 있었다.
정상에 서니, 남해바다의 아름다운 경치가 한 눈에 들어왔다. 두 사람은 금산의 정상에서 내려다본 남해바다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곧 선수들도 하나, 둘 정상에 오르고 있었고, 그들의 시야에도 정상에서 내려다본 남해바다의 경치는 절로 감탄사를 불러오고 있었다.
정상에 도착한 후, 30분 동안 모두가 아무런 말없이 경치를 보고 있었다.
“힘들어 죽겠다…….”
마지막으로 이민우가 용지현과 이철호의 부축을 받으며 정상을 밟았고, 그는 오만가지 인상을 찌푸린 채 말했다.
“수고했다. 모두 정상에 올랐으니, 이곳의 기운을 받아 좋은 시즌을 보내자! 모두 하산!”
“네? 하산이라 하셨습니까? 저 이제 도착했습니다.”
세령은 모두를 향해 말한 뒤, 먼저 몸을 돌려 산을 내려갈 준비를 하였고, 이민우는 아직도 거친 숨을 내 쉬며 그녀의 말에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모두가 너를 기다리고 있었고, 네가 도착했으니, 기다린 사람들은 최소한 너에 대한 예의는 다 갖췄다. 그러니 그 후는 네가 알아서 해.”
매몰찼다. 세령은 곧바로 내려가기 시작하였고, 그 뒤로 연동훈이 움직였다. 감독과 선임코치가 움직이니, 선수들도 자동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이민우는 서운하였다. 자신도 이 경치를 마음껏 즐겨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이었다.
이민우는 용지현과 이철호를 향해 손을 뻗었고, 두 사람은 그의 손을 자연스럽게 잡은 뒤, 다시 산을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세령은 하산하는 길에, 보리암을 들렸다. 최감독이 말한 절경을 보기 위함이었다.
보리암에서 보는 남해바다 절경은 산 정상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다.
점심은 산 아래의 식당에서 먹기로 하였다. 모두가 모여 점심을 먹을 준비를 하였지만, 이민우는 아직도 보이지 않았다.
“먼저 들어가서 먹어. 난 민우가 오면 같이 들어갈게.”
세령은 연동훈에게 말했다. 모두가 함께 모여 식사를 할 수 있지만, 왕성한 식욕을 가진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모두 산을 오르고 내려왔다. 그들의 빈속이 얼마나 요동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연동훈은 모든 선수들을 데리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세령은 산을 향해 보았고, 곧 산 가장 아랫부분을 힘겹게 내려오고 있는 이민우가 보였다.
“두 번 다시…….체력단련은 없게 해주십시오…….”
이민우는 평생 자신이 할 체력단련을 단 번에 다 해버린 듯 한 표정으로 말했다. 세령은 그를 보며 그저 미소만 지은 뒤, 어깨를 토닥거렸고, 세 사람을 데리고 식당으로 들어가 식사를 하였다.
남해 금산의 정기를 받은 탓인지, 폐교로 돌아오는 길에도 모두 얼굴 표정들이 좋았다. 여전히 남해바다의 깨끗함과 절경을 보며 지친기색을 보이지도 않았다.
폐교로 돌아오자마자, 상무팀 선수들이 차량에 승차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올라가시는 길입니까?”
세령이 차에서 내린 후, 최감독에게 다가서서 물었다.
“네. 가서 곧 시작될 새 시즌을 대비하며, 아시아챔프도 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다. 이 감독님께서도 올 시즌 잘 마무리 하셔서, 내년 시즌에는 우리 같은 무대에서 한 번 만나봅시다.”
최감독은 세령에게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은 웃으며 악수를 하였고, 짧은 기간 동안 전지훈련에 많은 도움이 된 모두에게 국방부FC 코치진과 선수들은 힘찬 박수를 보내주었다.
짧은 만남이지만 헤어짐은 언제나 마음 저 편을 아프게 하였다. 상무차량이 폐교를 벗어난 후에도 국방부FC선수들은 쉽게 그라운드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어느 덧, 국방부FC도 다시 서울로 향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짧은 일주일의 전지훈련을 뜻 깊게 보냈고, 이제는 진정 그 결과를 볼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세령은 폐교를 관리하는 부부에게 진정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였고, 선수들도 두 사람을 향해 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차량은 서서히 폐교를 나와, 다시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오늘 오는 건가?”
한 편. 국방부장관은 전지훈련을 떠난 국방부FC가 오늘 복귀하는 것을 두고 정책기획관에게 물었다.
“네. 금일 도착 후, 휴식을 취하며, 내일부터 정식으로 이번 시즌에 대비한 체계를 갖출 것입니다.”
정책기획관은 그 동안 많은 준비를 하였다. 하나의 구단을 만들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기 위하여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다.
다른 구단처럼 축구계에 몸담고 있는 수많은 관계자를 쉽게 채용할 수 있는 구단이 아니기에, 더 분주하게 움직였다.
국방부FC에는 단 한명의 민간인도 없는 구단이다. 감독은 물론, 코치진과 선수들도 모두 군인이며, 그에 맞도록 팀닥터나 스카우트등, 구단을 이루는 인물들 역시 모두 군인으로 선출하고 있는 정책기획관이었다.
오후 4시가 되었다. 국방부 정문에서 힘찬 경례구호가 들렸고,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정문 인근에 있던 정책기획관이 들어오는 차량을 맞이하고 있었다.
주차장에 차량이 정차하였고, 세령이 가장먼저 내린 후, 그 뒤로 코치진과 선수들이 모두 내렸다.
정책기획관은 그들을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고, 곧 세령에게 악수를 한 뒤, 연동훈과 이민우, 서지후와 태영훈에게도 악수를 청하였다.
그 후로 모든 선수들과도 일일이 악수를 다 하였다.
“수고 많았네. 이제부터 진정 국방부FC로써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 다가오는 것 같네.”
정책기획관은 세령과 함께 연동훈 및 코치진을 모두 보며 말했다.
“자. 들어가지. 오늘은 먼 길을 다녀온 것으로 모두 피곤할 텐데,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내일부터 새롭게 접하게 될 모든 것과 마주해보게나.”
정책기획관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끝말에 모두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새로운 것을 접한다는 것은 지금과 다른 어떤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모두가 당연히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었다.
지금과 같은 구조로 프로리그에 진입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많기에, 더 많은 것이 보강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당장 내일부터 그 새로운 것과 마주한다고 하니, 긴장감이 짙어진 것이었다.
“역시…….집이 좋다.”
숙소로 들어서자마자 모두 각자의 침상에 짐을 던져놓고 편히 누웠다. 단 일주일간의 전지훈련에서 힘들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맛난 음식과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모든 것을 정화시키고 온 듯하였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집만큼 편한 곳은 없는 것이었다.
“애들. 푹 쉬도록 해주고, 너희들도 쉬어.”
세령은 코치진들에게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모두에게 휴식을 주었다.
“감독님도 쉬십시오.”
연동훈과 이민우는 세령에게 경례하며 말했고, 곧 자신들의 숙소로 돌아갔다.
세령은 곧바로 숙소로 향하지 않았다. 정책기획관이 일주일동안 준비한 모든 내용을 미리 알고 싶었다.
“정책기획관님, 이세령감독님이 오셨습니다.”
세령은 정책기획관을 찾았다.
“쉬지 않고 왜 온 것인가?”
정책기획관은 그녀가 찾아올 것이라 알고 있었다. 궁금증을 잔뜩 던져주었으니, 그 궁금증을 한시라도 빨리 풀기 위하여 그녀는 모든 선수들에게 휴식을 준 뒤, 곧바로 올 것이라 생각하였고, 그 생각은 맞아 떨어졌다.
“정책기획관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해 먼저 알아 볼 수 있을까 해서 찾아왔습니다.”
“이 쪽으로 오게.”
정책기획관은 세령을 자신의 책상 앞으로 서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녀를 빤히 보았다.
“왜…….그렇게 보십니까?”
“아니야. 그냥 신기하기도 하고, 또 대단하기도 해서…….그 보다 자네가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한 답변은 여기에 있네.”
정책기획관은 그녀가 자신의 얼굴을 이리저리 만지며 물었지만, 그저 웃으며 말한 뒤, 그녀에게 서류철 하나를 건네주었다.
“이게…….무엇입니까?”
“읽어봐. 국방부FC를 구성하는 초기, 최소한의 모든 것이 다 기록되어 있어. 필요한 물자는 물론, 가장 중요한 사람까지도 모두.”
국방부FC에는 현재 감독과 코치, 선수. 그리고 이동수단인 버스밖에 없는 처지였다. 당연히 많은 것이 더 필요하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