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리거-66화 (66/163)

00066  히든리거  =========================================================================

“그래도 자네들이 어떤 발자취를 남겨두냐에 따라, 그 뒤를 따라 움직일 선수들이 자리를 잡는다.”

최감독은 이태성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하였고, 곧 또 한 명의 쉬지 않고 뛰었던 추강에게로 다가갔다.

“자네는 제대가 얼마나 남았나?”

이태성에게 했던 질문과 같은 질문을 하였다.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까마득합니다.”

최감독은 웃었다. 자신이 군 시절 겪었던 것이 생각난 모양이었다. 선임들은 항상 후임들에 물었다. 군제대가 며칠 남았냐고 물었다.

그 때 며칠 남았다고 말하면, 군 생활 꼬일 정도로 괴롭혔다. 모르겠다고 답하면, 그게 네 군대의 앞길이라고 말했다. 생각하면 참 나쁜 관습이기도 하였다.

“올 시즌은 모두 뛰나?”

“네. 그렇습니다.”

추강과 같은 일병은 아직 군 생활 1년은 남은 선수들이었다. 그들은 올 시즌을 모두 마치고도 아직 군 생활이 남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최감독은 곧 제대하는 이들보다, 아직 국방부FC에서 한 참을 더 보내야 하는 추강과 같은 선수들에게 더 정을 주려하고 있었다.

물론 모두가 평등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대부분의 인생이 그랬다.

그 어떤 조직이라도, 처음에 들어가면 어리바리하며, 어디에 도움이라도 되겠어? 라고 말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좀 쓸만하면 그 곳을 떠나는 것이었다.

군대는 제대를 하고, 사회에서는 좀 익숙해지자 이직을 해 버린다. 그리고 가는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가지만, 남은 사람은 참 허전해지는 경우가 많다.

지난 날 세령도 그랬다. 불과 세 달 정도 함께 생활하였던 연동훈이 제대하는 날 그를 보려하지 않았다. 이별은 언제나 아프기 때문이었다. 최감독도 같은 처지를 여러 번 겪었다. 다른 구단과 달리, 정해진 시간이 되면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떠나야 하는 곳이 바로 상무이며, 국방부FC였다.

세령과 최감독은 아마 전 세계 축구구단 감독들 중, 선수들과 가장 많은 이별을 경험하며, 자신들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별을 경험하게 되는 사람들일 것이다.

전지훈련 두 번째 날을 소화하였다. 모두 맛있는 저녁을 먹은 후, 취침까지는 자유 시간을 주었다.

국방부FC와 상무선수들은 서로의 숙소로 놀러가 잡담을 나누었고, 몇 몇은 게임기로 축구시합을 즐기고 있었다.

“오늘 연습으로 선수들 그래프를 다시 만들어 봐야겠어.”

세령은 자신이 작성한 각 선수들의 능력분석표를 연동훈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연동훈은 그녀에게서 받은 자료를 본 후, 곧바로 자신의 숙소로 향하였다.

“야! 연동훈!”

그 순간 세령이 그를 큰 소리로 불렀다.

“국방부FC 소속이면 연코치이며, 군인이면 연중사입니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자제해 주십시오.”

평소의 연동훈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오늘 아침의 일을 아직도 담고 있는 듯하였다.

“자식…….잘 자라.”

세령은 그의 차가운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말하였다.

전지훈련 3일차 아침이 밝았다. 여전히 날씨는 추웠다. 모두가 운동장에 모여 있었고, 그들의 관심사는 또 다시 세령이었다.

“감독님! 오늘은 알통구보 없습니까?”

상무의 한 선수가 최감독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 순간 연동훈의 매서운 눈빛이 그 선수에게 향하였다.

“없긴 왜 없어! 오늘도 알통구보한다!”

곧바로 폐교에서 나오던 세령이 큰 소리로 답하였고, 그 순간 선수들의 표정은 다시 밝아졌다. 하지만 연동훈의 표정은 또 다시 어두워졌다.

“오늘도 알통구보 할건데. 괜찮겠어?”

세령은 마치 연동훈에게 장난을 치는 듯, 그의 옆으로 바짝 붙으며 말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언제 그런 것을 저에게 물어보고 하셨습니까?”

연동훈은 시선을 피하며 답했다. 자신의 속마음은 이 말을 뱉는 것이 아니었다. 제발 하지 말아주세요라고 몇 번이고 가슴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자! 모두 상의 탈의!”

세령이 외쳤다. 그 순간 어제와는 달리 모든 선수들이 아주 빠르게 상의 탈의를 하였고, 모두의 시선이 단상위에 서 있는 세령에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세령은 어제와 같이, 자신의 키를 3분2나 덮은 외투 지퍼를 내리고 있었다.

모두가 두근두근 거리며 그녀의 손길에 시선이 집중되었고, 이내 지퍼가 배꼽부분까지 내려가자, 하나, 둘 표정이 굳어지고 있었다.

“이 감독님. 그건 알통 구보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녀의 모습에 상무 선수 한 명이 실망한 듯 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에 반해 연동훈의 표정은 밝아지고 있었다.

“어제...사실 춥더라고…….그래서 좀 껴입었다. 왜 싫어?”

“네 싫습니다!”

“이놈들이! 지금 감독님에게 그 무슨 말 버릇이야! 너희들의 아침 구보는 내가 지휘한다. 모두 운동장 20바퀴를 돈다. 실시!”

불똥이 제대로 튀었다. 모두가 세령의 하얀 속살을 보고 싶어 하였지만, 볼 수 없었다. 되려 최감독에게 어제보다 많은 운동장 20바퀴를 선사받았다.

세령은 외투 안에 방안내피, 일명 깔깔이를 입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속살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로 인하여 모든 선수들은 실망했지만, 연동훈의 표정은 밝아진 것이었다.

“이제 됐냐?”

“제가…….뭘 어쨌습니까?”

“자식…….기분 풀어. 그리고 앞으로는 알통구보 없다. 그리고 어디를 가서도 웃통 까는 일 없을 거야.”

세령은 연동훈의 어깨를 톡톡 치며 운동장으로 내려갔고, 선수들과 함께 구보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내 연동훈도 미소를 지으며 운동장으로 내려갔고, 곧 그녀의 옆에 나란히 서서 운동장을 돌기 시작하였다.

“오늘은 간단한 패스와 함께, 중,장거리 패스 및 각종 패스 연습을 할 것이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최감독은 모든 선수들을 모아두고 오늘 있을 연습내용을 알려주었다.

패스만 하더라도 그 종류가 다양하였고, 또 각 상항에 맞춰 각기 다른 패스를 주어야 공격자가 편히 공격에 임할 수 있는 것이었다.

상무팀과 국방부FC팀이 각각 한 명씩 나와서 두 명이 한 조가 되었고, 두 명은 각기 거리를 두고 패스 연습을 실시하였다.

서로 좌우로 이동도 하며 패스하였고, 또 두 선수 사이에 상대 선수를 대신할 장애물을 세워두고 패스 연습을 하였다.

수비수들이 넘겨주는 패스를 미들진들이 받아, 다시 공격진에게 연결되는 아주 빠른 패스도 시도하였다. 그리고 상대 수비수의 허점을 노려, 공격자가 오프사이드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절묘한 패스도 선보였다.

상무팀의 선수들은 이미 클래식무대 레벨을 가지고 있기에 국방부FC소속 선수들과는 조금 격이 다른 축구를 보이고 있었다.

오전 내내 패스 연습에만 열중이었다. 그리고 중식을 끝낸 후, 다시 운동장으로 모여들었다.

“오후에는 상대 수비수의 허를 찌르는 스루패스에 대해 알아본다.”

많은 선수들이 구사하고 싶은 패스였다. 그저 같은 팀 선수에게 공을 전달해주는 것은 비교적 쉬운 패스였다. 하지만 공격으로 전환된 시점부터 아주 빠르게 상대진영으로 파고드는 선수들에게 그가 서 있는 곳으로 주는 패스는 공격의 템포를 끊어버리는 패스다.

그런 선수들이 달리고 있는 속도나 움직임에 맞춰, 그 앞으로 공을 뿌려주는 것이 스루패스였다.

상무팀 소속 선수들이 공격전환으로 나섰고, 수비에는 국방부FC선수들이 섰다. 그리고 최감독의 신호에 맞춰, 자기진영에서 출발된 역습 상황을 재현하며 빠르게 패스가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여주었다.

단 세 번의 패스로 어느새 상대진영 페널티 박스 인근까지 가버리는 엄청난 패스였다. 정확히 공격전환이 된 선수의 앞으로 공이 움직였고, 선수들은 자신이 달리는 속도를 줄이거나, 빠르게 하지 않고도 자신 앞에 다가서는 공을 자연스럽게 컨트롤 할 수 있었다.

“자! 국방부CC에서는 누가 하겠나?”

지금까지 상무팀이 주로 모든 것을 보여주었고, 국방부FC는 수비를 하고 있었다. 이에 최감독은 다시 진영을 바꾸어 공수전환을 주문하였다.

“수비진부터 시작된 공이 미들진을 거쳐, 공격진에게 가는 것이다. 상대 수비수들을 잘 피하며 같은 팀 동료에게 공을 패스해 준다.”

최감독이 다시 한 번 설명해 주었고, 그 말을 들은 후, 국방부FC선수들이 행동으로 옮겼다.

하지만 조금 전 상무팀이 보여주었던 것과는 달랐다. 패스는 짧거나 길었다. 그것도 아니면 상대 수비수에 걸렸다. 약 열 번의 시도 끝에 두, 세 번 정도가 성공되었다.

“성공확률이 너무 낮아. 일단 선수들의 능력치를 선수들끼리도 잘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선수의 빠르기에 맞춰 공을 줄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예를 들어 빠른 선수에게 공을 천천히 넘겨주면, 그 선수는 속도를 줄여 기다려 합니다. 반면에 느린 선수에게 빠른 공을 주면, 그 선수는 정말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내어 뛰어야 합니다. 패스 한 번 받으려고 모든 체력을 다 소비해버리니, 그 선수는 쉽게 지칩니다.”

최감독이 국방부FC선수들의 패스능력을 보며 말했다. 세령의 눈에도 너무 자세히 잘 보였다. 지금까지 연습은 거의 공격과 수비를 어찌 하는 것인가에 대해 연습하였다. 하지만 이런 기본적인 것을 놓치고 지나왔다.

최감독에 의해 좋은 훈련을 할 수 있어, 세령은 그에게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하였다.

“그리고 패스미스는 많은 선수들을 지치게 합니다. 공을 받기 위하여 뛰는 체력이 많이 소비되면, 오히려 공을 잡았을 때, 더 큰 체력이 필요하지만, 그 체력이 이미 방전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패스는 아주 적절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하는 것을 중점으로 두어야 합니다.”

최감독이 몇 가지 팁을 더 주었다. 모두가 국방부FC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팁들이었다.

“분위기 반전을 하기 위하여 우리 국방부FC의 패스킬러 설태구의 능력도 좀 봐주십시오.”

국방부FC에서도 패스라면 그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을 천재적인 인물이 있었다. 바로 설태구였다. 그는 축구를 전문적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태권도 유단자라는 장점을 축구에 아주 잘 접목시킨 인물이었다.

태권도로 인하여 잘 단련된 다리와 발목의 힘을 아주 적절하게 잘 활용하며, 공에 가하는 힘을 조절한 뒤, 정확히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공을 보내고 있었었다.

이는 이미 체육대회 때도 그랬고, 체육부대에서 상무2군 팀과 경기를 할 때도 모두의 눈을 휘둥그레지도록 만든 장본인이었다.

세령의 말에 설태구가 나왔다. 그리고 그가 공을 잡아 공격전환을 시도하였다.

“하하…….쉽지 않죠?”

최감독이 그의 첫 패스를 본 후, 세령에게 말했다. 세령은 진정 천재적인 패스 능력을 지닌 설태구라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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