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리거-65화 (65/163)

00065  히든리거  =========================================================================

식사를 마친 후, 선수들이 다시 운동장으로 내려왔다. 양 팀의 코치진들은 좌, 우측 코너를 중심으로 반원을 그리며, 프리킥을 연습하기 위하여 잔디위에 표시를 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공을 차 올렸을 때, 어디로 차올리며, 어디에 있는 선수에게 전달할 것인지, 미리 암호를 정하는 것도 하였다.

항상 선수들이 같은 자리에 서 있을 수 없기에, 같은 자리에서 올려지는 프리킥이라 할지라도, 그 공이 향하는 곳은 다양하게 만들어 두는 것이었다.

“자. 일단 상무팀이 먼저 코너킥과 프리킥 찬스를 시행하고, 국방부FC가 수비를 맡는다.”

최감독은 공격과 수비를 정했다. 이는 국방부FC에서 최전방 공격수 역할을 맡은 선수들도 모두 가세한다. 즉 국방부FC 선수 11명이 모두 수비를 보며, 공격을 감행하는 상무 쪽에서는 골키퍼를 제외한 모두가 운동장에 섰다.

이는 코너킥이나 프리킥 후, 흘러나오는 공에 대한 처리까지 한꺼번에 하기 위함이었다.

골대를 향해 올려진 공은 그 후를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골키퍼가 펀칭으로 쳐 낼 수도 있고, 수비수가 걷어낼 수도 있다. 물론 그대로 골인이 될 수도 있지만, 골인이 되지 않았을 때를 대비한 연습이기도 하였다.

상무팀이 먼저 코너킥부터 시작하기 위하여 진영을 갖췄다. 코너킥은 보통 전담 킥커가 있다. 이는 정확성을 가진 선수들이 대부분 맡지만, 어떨 때는 공격적 성향이 비교적 적은 편인 수비수가 코너킥이나 프리킥을 차올릴 때도 있다.

이유는 공격자원을 더 두기 위함이다. 한 명의 수비수가 프리킥을 찬 후, 곧바로 다시 수비 진영으로 간다면, 수비에 큰 영향이 없다. 그 대신 수비수가 프리킥을 올렸기에, 공격팀 입장에서는 한 명의 공격수를 더 세워둘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반면에 프리킥이 잘 못 되었을 경우, 역습 한 방에 무너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상무팀이 코너킥한 공은 크게 라운드를 그리며 골대 중앙으로 날아왔고, 국방부FC의 첫 수문장인 이철호 상병에게 그대로 잡혔다. 이철호 역시 용지현과 버금가는 큰 키를 가진 선수였다.

골대와 가깝게 붙은 코너킥은 키가 큰 골키퍼에게 쉽게 잡혔다. 그러자 상무팀 감독은 코너킥을 전담한 키커를 향해 손가락을 펴 올렸다.

즉. 다른 각도와 방향으로 차올리라는 주문이었다.

또 다시 두 번째 코너킥이 올라왔다. 이번엔 골대에서 조금 더 멀었고, 페널티 박스를 약간 벗어나지 않을 정도로 떨어졌다.

‘펑!’

‘철렁!’

공은 코너킥과 함께 일제히 움직였던 선수들 사이로 올라갔고, 상무의 최전방 공격수의 머리에 맞았다. 비록 골대와 거리는 있었지만, 절묘하게 골대 모서리로 향하는 공을 골키퍼가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저 정도로 골대와 거리를 두고, 떨어지는 코너킥은 사실 골로 연결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골대와 거리가 좀 멀기에, 헤딩으로 골을 넣기에는 힘들지요. 하지만 조금 전처럼 아주 운이 좋아서, 골대 모서리로 날아가면, 비록 거리가 멀어도 골키퍼는 그 공을 막기가 힘듭니다.”

최감독의 말에 세령은 조금 전, 올려졌던 코너킥을 다시 한 번 떠 올렸다. 그의 말처럼 골대와 거리는 멀었다. 헤딩으로 골을 넣기에는 골키퍼가 충분히 감지하고 반응할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골대 모서리로 향하는 곳은 거리와는 거의 별개라 느껴졌다.

“잘 보십시오.”

최감독은 다시 한 번 손을 들어 전담 키커에게 주문하였다. 이번엔 한 손이 아닌 두 손을 모두 들어 표시를 하였다.

최감독의 신호를 받은 키커는 조금 더 뒤로 간 뒤, 곧바로 코너킥을 올렸다. 그리고 공은 조금 전과 거의 같은 곳으로 향하였고, 똑같이 최전방 공격수가 뛰어올라 헤딩하였다.

‘철렁’

“또 들어가네…….”

같은 공격패턴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들어간 공은 골대 모서리도 아니었다. 골키퍼와 그다지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니었지만, 골키퍼가 막지 못하였다.

세령은 너무나 쉽게 골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전의 공격은 골키퍼 실수이기보다, 수비수가 공격수를 제대로 막지 못한 것이 큽니다. 조금 전 코너킥의 속도를 보셨습니까?”

“네. 코너킥이라고 하기에는 무척 빠른 공이었습니다.”

세령이 본 그대로를 말했다.

“맞습니다. 빠른 공입니다. 빠른 공은 비록 골대와 다른 방향으로 공이 오더라도, 살짝 방향만 바꿔주면, 그 속도를 거의 유지한 채, 골대로 향합니다. 즉. 빠른 공을 헤딩하면, 그 공은 아주 빠르게 골대를 향해 움직입니다. 그러니 골키퍼가 반응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골문을 향해 들어서니, 골키퍼가 막기에는 힘들지요. 다만…….공이 빠르다보니, 그걸 제대로 공격수가 방향을 바꿔 놓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공의 빠르기로, 골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이었다. 센터링이나, 프리킥, 코너킥에서 공이 느리게 올라오면, 골대와 가까이 붙지 않는 한, 골키퍼나 수비에게 걸린다. 하지만 공이 아주 빠르게 전달될 때는 골문 앞이 혼전이다. 수비수에 맞아 자책골이 될 수도 있고, 또 한,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다는 말처럼, 몸 어디라도 맞고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그 공은 아주 빠르기에 골키퍼가 손쓰기는 쉽지 않은 것이었다.

다음으로 프리킥을 차기 위하여 페널티박스 모서리에서 약 5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공이 놓여졌다.

“아주 위험한 프리킥 장소중에 하나입니다. 저 곳에서 이루어지는 프리킥은 직접적인 슈팅이 될 수도 있으며, 또 한 프리킥 시에 공을 앞에서 자르며 골대로 방향을 바꾸는 공격과 혹은 골대를 지나쳐 반대편으로 길게 연결시킨 후, 모든 수비수들을 지나쳐 2선에서 달려 들어오는 공격수에게 연결하여, 그대로 슛을 때릴 수 있는 공격을 만들 수 있습니다.”

최감독의 말에 이어 곧바로 시범이 이루어졌다. 공이 발끝을 떠나기 전, 선수들은 모두 움직였다. 하지만 공은 생각보다 느리게 움직였고, 모든 수비수들이 역동작이 이루어지는 순간, 이미 사인을 주고받은 또 다른 선수가 그 공을 골대를 향해 슛을 때렸다.

이 또 한 수비수 실책이라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수비수들은 공을 쫒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쫒는다. 자신이 전담마크로 지정된 선수를 그림자처럼 따라 붙는다.

하지만 전혀 공격에 가담할 것 같지 않은 선수가 갑자기 움직이면, 그 선수를 커버할 수비수가 없기에, 아주 자유롭게 놓아두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그가 때리는 슛은 보통 슛보다는 어느 정도 정확도가 더 있는 편이었다.

세령과 코치진 및, 아직 운동장에 오르지 않은 국방부FC 선수들은 연신 메모장에 기록하며, 그림까지 그리는 선수들도 있었다.

곧바로 같은 장소에서 또 다시 두 번째 프리킥을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중앙 페널티 박스에 모여 있던 모두를 지나치고 있는 공이었다.

그들을 모두 뛰어넘은 공은 페널티박스 반대까지 날아갔고, 그 공을 모두가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곳에는 어느새 상무공격수가 달려들고 있었고, 아주 빠르게 때린 슛은 그대로 골문을 향하였다.

“프리킥에서 가장 무서운 세트피스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모두가 골대 근처로 공이 날아올 것을 생각하고 있고, 키커가 공을 차기 전, 수비수들은 공격선수를 놓치지 않으려 움직입니다. 혼전상황이 되는 거죠. 하지만 문제는 그 공이 어디로 향할지는 공격자들만이 알고 있습니다. 이미 짜인 각본이니, 각본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세령은 조금 전 상황을 다시 떠 올렸다. 최감독의 말처럼 모두 중앙에 있었다. 2선에 물러나 있는 상무팀을 그 누구도 커버하지 않고 있었다. 공은 중앙을 넘어갔고, 수비수들은 이미 그 공을 막을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지 않았다.

그리고 텅 빈 곳에 떨어지는 공. 그 공은 이미 약속한 플레이를 펼치는 상무의 제 2선에 있던 선수가 달려 나오며 찬스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 찬스를 만들기 위하여, 중앙에 있던 상무팀 선수들은 마치 자신에게 공이 날아올 것이라 상대수비수가 생각하도록 아주 열정적으로 몸싸움을 하며, 자리를 잡고 움직인다. 이 모든 것이 이미 계획된 플레이다.

이 플레이에 모든 수비수가 속는 것이었다.

그 후로 각 여러 곳에서 이어지는 프리킥에 세령과 연동훈을 비롯하여 국방부FC의 코치 및 선수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있었다.

진정 신세계라 말 할 수 있었다. TV에서도 보고 많이 봐 왔지만, 이렇게 자세한 설명과 함께, 그 공격 패턴을 알아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수비수는 공보다 공격자를 막는 것이 우선입니다. 공격자를 막으면, 적어도 그 공이 골대로 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변수가 있습니다.”

최감독이 하는 한마디 한마디를 세령은 단 한글도 놓치지 않고 받아적었다.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제2선에서 침투하는 공격수. 이들을 막을 수 있는 수비수는 없습니다. 즉. 이들은 수비수가 아닌, 공격수가 막아야 합니다. 그저 멍하니 서서 같은 팀 수비수가 걷어내는 공을 받아 상대 골대로 향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말고, 자신이 수비에 가담하여, 단 한명이라도 커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세력은 최감독의 말을 들은 후, 세트피스 상황에서 왜 공격진들까지 다 투입하도록 한 것인지 이해하고 있었다.

그저 수비수들과 함께 서로 중복되는 자리에 서서 공격자를 커버하라는 뜻으로 투입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공격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국방부FC소속 공격자들은 모두 페널티박스 중앙에 있었다. 중앙에 모여 있는 상무팀 공격수를 막기 위하여 서 있었던 것이었다.

이는 한 공격수에게 두 명. 많게는 세 명이 수비를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감독이 원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바로 분담마크였다. 이미 상무의 공격자들은 국방부FC의 수비자들이 전담마크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 공격자들이 굳이 그들과 함께 서며, 중복된 자리에 있을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그들이 할 일은 바로 2선에서 침투하는 공격자를 막는 역할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들의 공격도 저지하며, 어떨 때는 그 즉시 인터셉트한 공을 몰고 상대진영으로 갈 수도 있는 자리에 있는 선수들이기에, 그들에게 항상 2선에서 침투하는 선수들을 막게 하는 것이 유용하였다.

오후 내내 프리킥과 코너킥에 관한 연습을 하였다. 점 차 하나하나 더 배워가고 있었다. 세트피스에 대한 중요성을 아주 뼈저리게 느낀 훈련이었다.

“힘들지?”

최감독이 이태성에게 물었다. 이태성은 오후 내내 연습하는 동안 단 한 번도 휴식을 취하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제대가 얼마나 남았나?”

“이제 5개월 남았습니다.”

“5개월이라, 전반기 경기도 다 뛰지 못하고 가겠군.”

최감독의 말에 이태성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일병 때 팀에 합류하였지만, 결국 이 팀을 위해 자신이 헌신할 수 있는 날은 고작 4개월이 전부였다.

다음 달이면 이태성을 비롯하여 또 다시 다섯 명이 병장으로 진급한다. 그 후에 남은 기간은 4개월. 그 4개월 동안 그라운드를 누빌 수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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