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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리거-62화 (62/163)

00062  히든리거  =========================================================================

“…….”

연동훈은 잠시 동안 그녀만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단상에서 내려와 아주 빠르게 그녀의 바로 뒤로 따라 붙었고, 뒤에서 따라오는 선수들이 그녀의 뒷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하는 듯, 그녀의 뒤에서 절대 앞질러 나가지 않고 있었다.

선수들은 연동훈에 의해 그녀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자, 이리저리 자리를 이탈하여 옆으로 뛰려 하였다.

“모두! 정열! 이놈들이 어디서!”

선수들의 행동에 최감독이 큰 소리로 외쳤고, 그 순간 모두가 다시 자신들의 자리로 바삐 움직였다.

아침 추위로 얼어붙은 몸이 녹는 듯 한, 아침 구보였다. 모두의 눈도 호강하였고, 얼어붙은 몸도 운동장 열 바퀴를 돈 득에 녹아내렸다.

“앗. 차가워!”

그리고 벗어놓은 옷을 입는 순간. 이곳저곳에서 소리가 들렸다. 몸은 열로 인하여 따뜻해졌지만, 운동장에 벗어놓은 옷들은 아침의 차가운 공기를 잔뜩 먹었기에, 아주 꽁꽁 얼어붙은 옷을 입는 듯하였다.

아침운동 겸 몸을 풀고 난 뒤, 모두 식당으로 향하였다. 여전히 어제 먹었던 것과 진배없는 화려한 식단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거…….너무 감사합니다.”

최감독이 운동장을 관리하는 사내에게 말했다.

“아닙니다. 어차피 내가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신경쓰지 마시고, 이곳에서 행해지는 전지훈련이 끝날 때까지, 마음 것 즐기다 가시기 바랍니다.”

사내와 사내의 아내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였다. 그리고 이내 선수들도 모두 두 사람에게 아주 큰 목소리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

“사실 놀랐습니다.”

식판을 가지고 각자 식탁에 앉은 후, 세령의 앞으로 자리한 최감독이 그녀에게 말했다.

“네?”

“오늘 아침 말입니다. 설마 이 감독께서 알통구보에 동참하실 것이라고는…….”

“저도 국방부FC소속입니다. 당연히 해야죠. 제가 처음 부대에 왔을 때, 3소대원들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그 놈들과 함께 땀 흘리고 난 뒤, 샤워는 함께 할 수 없어도,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세령은 최감독이 놀란 이유를 들은 후, 지난 날, 3소대에 배치되었을 때, 장병들에게 한 말을 해 주었다. 진정 그들과 함께 샤워는 할 수 없지만, 함께 땀 흘리며, 식사하는 것은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도 그녀는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한 것뿐이었다.

보기에 각기 다른 생각들을 하겠지만,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자신의 알몸을 보인 것도 아니었다. 가릴 곳은 충분히 가렸다. 하지만 시커먼 사내들 속에서 유독 하얀 피부를 드러내놓고 뛰는 것은 최감독의 말처럼 쉽게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만에 하나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문제시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편히 봐 주었다. 그녀의 노출에 심히 놀라기도 하였지만, 그녀의 의도를 들은 후, 최감독을 비롯하여 선수들 모두가 그저 그녀의 마인드에 놀랄 뿐이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연동훈은 그들의 생각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오늘 아침 점호 때의 일은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고, 그저 웃으며 식사를 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 반해, 연동훈은 모든 음식을 진정 와그작 씹어 먹는 듯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오늘은 상무팀 선배들과 함께 미니시합을 진행할 예정이다. 너희들도 잘 알다시피 상무는 올해 우수한 성적으로 K리그에 잔류한 것에 이어,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도 진출했다. 이는 우리 군인들에게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징조이기도 하다. 앞으로 상무팀의 뒤를 이어, 우리 국방부FC도 K리그 클래식은 물론, 아시아챔프에 오르는 날을 앞당기기 위하여, 최선을 다 한다!”

식사를 마친 후, 모두 운동장에 모였다. 세령은 국방부FC선수들을 세워두고 오늘 있을 상무 팀과의 미니게임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업적도 말해주었다.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없었던 챔피언스리그 진출. 이는 필시 국방부 소속 두 팀에게 모두 좋은 징조였다.

“오늘은 연습게임이지만, 실력이 날로 늘어가는 국방부FC에게 프로리그의 무서움도 전해주어야 한다.”

경기에 앞 서, 두 감독은 선수들에게 전술명령은 물론, 오늘 친선경기에서 각자가 해야 할 일들을 말해주고 있었다.

최감독은 국방부FC에게 정식 프로리그에 앞 서, 일종의 워밍업 수준의 경기를 보여주도록 상무 팀에게 부탁하였다.

“잘 알겠지만, K리그 클래식에서 3위라는 기록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상무는 그 만큼 실력이 있다. 너희들의 선배이자, 앞으로는 경쟁자다. 오늘…….너희들의 경기를 보고 각 포지션과 주전선발에 대한 일차적인 점검을 할 것이다.”

중요한 멘트였다. 상무를 상대로 경기를 하는 것은 그다지 긴장되거나, 어렵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 포지션 경쟁. 이 말은 23명의 선수들의 눈빛마저 달라지게 만들고 있었다.

“심판은 제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설 관계자인 중년 사내가 나섰다. 축구를 좋아하여 폐교를 인수하여 이런 좋은 곳을 만들었으니, 축구 룰에 대해서는 잘 알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그 만큼의 체력도 충분히 있다고 보였다.

관리인의 지시에 의해, 각 팀의 11명의 선수들이 각기 중앙선에 마주하여 섰다. 그들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자신감도 있겠지만, 친선경기라 충분히 숙지한 상태에서 치러지는 경기였다.

그 만큼 부상에 주의하기 위하여 서로 과격한 축구보다, 서로에게 도움이 될 축구를 하겠다는 표정들이었다.

“선수들 포지션은 다 정했습니까?”

최감독이 세령의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아무리 친선경기라도, 서로 다른 팀이기에, 감독들과 코치진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경기를 관전하며, 작전지시를 내린다. 하지만 지금 두 팀의 감독과 코치진은 서로 한 곳에 모여 앉아 있었다.

“이런 방법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이민우가 말했다. 비록 감독의 전술적 명령은 중간 중간 지시하기가 힘들겠지만, 경기 중, 그 즉시 발견되는 서로의 문제점을 곧바로 지적할 수 있으며,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였다.

“국방부FC 선수층은 잘 구성된 것 같습니까? 혹여 공격수가 남는다, 수비수가 모자란다…….이러면 시즌 중 낭패이기도 합니다.”

최감독이 경기 시작 전, 세령에게 첫 관리시스템에 대한 말을 꺼냈다. 그의 말처럼 상무나 국방부FC는 선수들을 시즌이 끝날 때까지 데리고 있을 수 있는 다른 팀들과는 달랐다.

바로 이들은 군인이다.

제대할 날짜가 다가오면 붙잡고 싶어도 붙잡을 수 없다. 제대를 앞 둔, 선수가 공격수면, 곧바로 그에 맞는 공격수를 군인들 사이에서 선출해야 한다. 무척 고달픈 업무 중 하나다. 상무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잘 굴러오다가도, 어느 순간 제대를 앞 둔 에이스급 선수들이 줄줄이 빠져나가버리면, 그야말로 시즌 중간에 이미 챌린지 리그로 내려갈 채비를 해야 할 정도가 된다.

“저도 걱정이긴 합니다. 전반기 시합을 마치면, 이태성을 비롯하여 몇 놈이 제대합니다. 그 때 맞춰서 선수를 데리고 오는 것이 아닌, 그 전에 미리 선수 발굴을 해야 하는데, 아시겠지만, 지금 저희 쪽에는 아직 제대로 정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세령도 최감독의 말을 듣고 진작 걱정하고 있었던 부분이었다. 그리고 세령의 말처럼 아직 국방부FC의 모든 행정 및 관리는 정책기획관이 임시로 하고 있다. 별 하나를 단 장성이 이들의 뒷바라지를 해 주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책기획관은 세령에게 전지훈련이 끝나는 대로 모든 것을 다 준비해 둘 것임을 밝혔다. 즉 훈련이 끝난 후, 다시 국방부로 들어가면, 국방부FC의 스카우트는 물론, 모든 행정과 필요한 인원들이 모두 정해진다는 말이었다.

“삐~익!”

두 사람이 몇 대화를 나누는 중, 경기가 시작되었다. 국방부FC에서는 역시나 3-5-1시스템을 꺼내들었다. 이태성을 원톱으로 세우고, 그 아래로 미들 진을 다섯 명을 두었다. 이는 허리부분에서부터 강한 압박을 가해, 최전방 원톱에게 공격 찬스를 만들어 주기 위함이다.

상무의 전술은 4-4-2였다. 전형적인 한국축구의 전술이었다. 공격수 두 명을 앞에 세워두고, 그들에게 골망을 흔들어 주길 바라는 전술이다.

“원톱으로 우리 상무의 수비진을 뚫기는 쉽지 않을 텐데.”

최감독이 경기가 시작된 후, 국방부FC의 전술형태를 보며 말했다.

“어차피 축구는 창과 방패의 대결이지 않습니까? 여러 개의 창이 있는 것도 좋지만, 단 하나의 제대로 된 창으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공격. 오히려 더 효과적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시도해 보는 것입니다.”

최감독은 세령을 보았다. 단 한 번도 사령탑에 앉은 경험이 없는 그저 평범한 육군 장교였다. 하지만 그녀가 하는 말은 진정 프로무대를 수십 년은 누비고 다녔던 감독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도 같았다.

경기의 흐름은 역시 허리부분 싸움이었다. 미들진이 다섯 명인 국방부FC의 중간을 뚫는 것은 상무로써도 무척 버겁게 느껴지는 듯하였다. 쉽게 앞으로 나가지 못하며, 공을 수차례 다시 자기진영으로 돌리곤 하였다.

“쉽지 않네.”

최감독이 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태성이 공격 진영에서 잘 내려오지 않고 있지만, 미들진 다섯 명과 포백의 수비전환 능력이 탁월해 보였다.

“그럼…….이런 방식은 어떨까요?”

즉시 최감독은 상무팀 선수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선수들 중, 한 명이라도 최감독의 사인을 본 이들은 각기 자신들 주위에 있던 선수들에게 큰 소리로 그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전술 변화입니까?”

세령이 물었다.

“변화입니다. 경기가 마음대로 풀리지 않을 때는 변화를 줘야하지 않겠습니까. 지난 날, 이 감독께서 우리 상무팀 경기를 관전하러 왔을 때, 난 전술변화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 때. 패배를 맛보고 난 뒤 홀로 더러운 성질 좀 부렸지요. 아마 그 경기를 보신 이 감독은 전술변화를 수차례 요구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세령은 그 때를 떠 올렸다. 그의 말처럼 상무는 전, 후반 내내 같은 전술이었다. 계속하여 막히고, 공격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술적 변화는 없었다.

선수들은 지쳤었고, 변화가 없으니, 계속하여 경남의 공격을 막기만 바빴었다.

그 때. 최감독은 오기를 부렸다는 말을 하였다. 세령에게 그런 사소한 것도 가르치지 않기 위하여 오기로 선수들 교체도 하지 않았고, 전술적 변화도 주지 않았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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