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리거-60화 (60/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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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고 밥 못 먹지는 않아. 점심을 여기서 먹고, 우린 마지막 전지훈련을 간다.”

전지훈련이라는 말에 모두의 시선이 다시 세령에게로 집중되었다. 지금까지 5개월 동안 전지훈련은 없었다.

오로지 국방부 내에서 생활하였다. 하다못해 다른 부대를 찾아가서 연습경기를 치르는 것도 없었다. 오로지 23명의 군인들로만 연습하고 미니게임을 즐기기만 하였었다.

“어디로…….가는 것입니까?”

이태성이 물었다.

“궁금하지? 궁금할 거야. 하지만 말하지 않는다. 너희들에게 아주 깜짝 선물을 해 주기 위하여 내가 입을 꾹 닫고 있을 테다.”

세령은 그를 보며 미소를 짓고 말했다. 참 어이없는 그녀의 행동이기도 하였지만, 모두가 그냥 웃었다. 말괄량이 누나가 동생에게 선물을 주기 위하여 자신의 입을 꽉 막고 있는 행동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점심식사 후, 다시 운동장으로 보였다. 그리고 곧바로 국방부FC가 아주 멋들어지게 그려진 차량이 들어서고 있었다.

“야…….저거, 체육부대에서 여기 올 때, 한번 타보고 거의 5개월 만에 처음 보니 느낌이 새롭네.”

마형식이 말했다. 마형식의 말처럼 처음에는 그저 촌스럽기만 하였다. 하지만 이제 자신들의 유니폼은 물론, 모든 개인장비에 저 마크가 새겨져 있으니, 5개월 동안에 정이 든 모양이었다.

“모두 승차.”

차량 앞으로 다가선 후, 연동훈이 큰 소리로 말했고, 곧 선수들이 하나, 둘 차량에 올라타기 시작하였다.

“따뜻하다.”

가장 먼저 승차한 이태성이 외부 온도와 너무나 급격하게 차이가 나는 차량 내부 온도에 얼어붙은 볼을 비비며 말했다. 차량 안은 이미 온풍으로 훈기가 돌고 있었고, 외부에서 벌벌 떨었던 모두의 몸을 녹여주고 있었다.

“잘 다녀오게.”

곧 정책기획관이 다가서며 세령에게 말했다.

“네. 다녀오겠습니다.”

“너희들도 잘 다녀오고. 몸 관리 잘해라.”

정책기획관은 세령의 답을 들은 후, 차량위로 잠시 올라, 모두를 향해 말하였고, 곧 다시 내려갔다.

“내가 요즘 너무 바쁘다. 국방의 일도 봐야하고, 또 상무쪽 일은 체육부대장에게 맡기더라도 자네들 일을 봐야하니, 몸이 모자라.”

정책기획관이 현재 국방부FC의 모든 협회관련 업무를 봐 주고 있었다. 이는 아직 국방부FC의 모든 업무를 진행할 인원을 선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하여 지난 5개월간은 아무런 간섭도 없이 잘 지냈던 것이기도 하였다. 세령에게 모든 권한을 주었고, 오로지 그녀의 생각에 의해서만 보낸 5개월이었다.

하지만 곧 업무관련자들이 정해지면, 그들은 직접적으로 국방부FC의 모든 것에 관여하게 될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세령의 독재 아닌 독재도 끝날 수 있는 것이었다.

프로무대에서는 특히 관계자와 감독 및 코치진의 불화가 많다. 땅을 파서 장사하는 것이 아니기에, 하다못해 단 1원이라도 수익을 내야 하는 것이 관계자다. 반면에 돈을 떠나, 선수들을 먼저 생각하고, 전술 및 화려한 경기를 펼치는 것이 목적인 감독이다. 그로 인하여 어느 팀이라도 서로 마찰이 없는 구단은 없을 것이었다.

“전지훈련 다녀오면, 모든 질서는 다 잡혀 있을 것이네. 그러니 이번이 자네들에게 주는 마지막 자유라 여기고 열심히 즐기다 오게나.”

정책기획관은 의미심장한 말을 한 후, 곧바로 자신의 차량으로 이동하였고, 세령과 코치진은 멍하니 그가 한 말을 떠 올리며 서 있었다.

“감독님. 춥습니다. 이만 타십시오.”

곧 운전병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 국방부FC 차량을 운전하는 인물도 군인이었다. 그에게는 정말 땡보직일수도 있는 것이었다.

선수들을 태운 차량은 서서히 국방부를 벗어나기 시작하였고, 위병소를 통과하자, 우렁찬 경례소리를 들었고, 세령은 그들에게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경례를 해 주었다.

“자. 모두 충분히 자둬라. 오늘부터 진행되는 전지훈련은 총 일주일간 이루어진다. 그 일주일 안에 너희들의 마지막 점검이 있을 것이다.”

위병소를 빠져나온 후, 연동훈이 모든 선수들을 보며 말했다. 마지막 전지훈련이며, 정식 시즌이 시작되기 전, 마지막으로 세령을 비롯하여 코치진들에게 자신들의 실력을 보여 줄 수 있는 일주일이었다.

“경부선을 탔네. 어디로 가는 거지?”

따뜻함에 하나, 둘 눈을 붙이고 있었다. 하지만 추강은 차창을 통해 밖을 보며 경부선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따뜻한 남쪽으로 가면 좋지.”

그의 말에 옆에 앉은 설태구가 눈을 감은 채 답했다. 이제 이들도 일병이다. 그리고 추강의 육중한 몸에 의해 그의 옆자리는 언제나 깡마른 설태구가 앉을 수밖에 없었다.

“대전, 통영 간으로 탔는데.”

추강은 여전히 눈을 붙이지 않고 있었다. 차량이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로 접어들자, 설태구를 흔들며 말했다.

“남쪽이 좋다고 했잖아. 그냥 잠 좀 자라.”

설태구는 잠이 들 만하면 자신을 깨우는 추강에게 한 마디 한 후, 여전히 감은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휴게소다.”

“어디?”

지금까지 계속하여 이동방향을 알려주고 있던 추강의 목소리에 설태구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지만, 휴게소라는 단 한마디에 모두가 몸을 뒤척거리며 차창 밖을 보았다.

“여기서 잠시 쉬다간다.”

곧 연동훈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고, 차량은 인삼 랜드 휴게로 들어서고 있었다.

“여전히 춥잖아.”

남쪽이라고 서울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추위가 느껴지자, 이태성이 투덜거렸다.

“그럼. 그냥 혹한기나 한 번 뛰러갈까?”

그의 말을 들은 후, 그의 옆을 지나쳐가던 이민우가 무서운 말을 하였다. 차라리 이 추위를 겪는 것이 낫지, 혹한기는 절대 접하고 싶지 않은 훈련이었다.

“전혀 춥지 않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이민우의 말은 곧 모두에게 따뜻한 봄날을 강제로 느끼도록 해주는 말이었다. 따뜻한 차로 이동하고, 휴게소에 들러 따뜻한 국물이 있는 우동이라도 한 그릇 먹는 것이 천국이지, 만에 하나 그냥 일반병사로 군 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이라면, 지금 이들은 혹한기 훈련을 뛰어야 할 판이었다.

그에 비하면 진정 천국이니, 이민우의 단 한마디가 모두의 움츠린 어깨를 활짝 펴지도록 해주었다.

“역시…….혹한기하고 유격은 묘약이다.”

군 생활 중, 가장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두 가지였다. 냉혹한 추위를 이기며 훈련에 임해야 하는 혹한기, 그리고, 극한의 체력을 요구하며 담력을 길러야 하는 유격. 진정 젊은 사내들도 눈물 흘리게 만드는 훈련이기도 하였다.

휴게소에서 간단한 먹거리와 함께 생리현상을 해결한 후, 곧바로 다시 차에 올라탔고, 그 잠깐의 추위에도 온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다시 차량은 출발하였고, 곧 고속도로의 끝인 통영으로 버스는 나가고 있었다.

“통영이다.”

청정해역인 통영에 접어들자, 추강이 다시 현 위치를 말하였고, 역시나 지금까지 눈만 감고 있던 모두가 차창 밖을 보았다.

진정 같은 땅이라 느끼기 힘들 정도로 맑아보였다. 간혹 보이는 바다는 푸르렀고, 동네도 아주 깨끗하게 보였다.

차량은 통영 바다를 끼고 돌며, 한적한 동네로 들어섰고, 곧 학교건물같은 곳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여기는…….어딥니까?”

목적지에 다 온 듯하여 이태성이 물었다.

“이 곳은 폐교다. 하지만 한 개인이 이곳을 구입하였고, 경남지역 축구 발전을 위하여 자비로 선수들을 육성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지.”

이태성의 물음에 연동훈이 답해주었다. 그리고 차가 정차한 후, 모두의 눈은 휘둥그레 졌다. 폐교라고 하였지만, 절대 폐교로 보이지 않았다. 낡은 건물 외벽은 그림으로 모두 도배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운동장에 깔린 잔디가 돋보였다. 시골동네에 있는 작은 분교인 듯 보였지만, 운동장은 진정 프로무대 급이었다. 겨울이라 잔디가 푸르지는 않았지만, 관리가 잘 되어 있는 듯 보였다.

“어…….저 차는?”

모두의 시선이 잔디와 건물에 집중되어 있을 때, 용지현의 시선에 눈에 익은 버스가 보였다.

“설마…….”

“상무축구단 버스잖아!”

이태성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버스로 향하였다. 그의 말처럼 상무축구단 버스였다. 그들도 이곳으로 전지훈련을 온 것이었다.

“우리에게 최고의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람들이라 여겼어. 그래서 부탁하였고, 흔쾌히 승낙도 해 주셨다. 모두 최감독님을 보면 감사의 뜻을 전해라.”

세령이 선수들을 보며 말했다. 지난 날, 체육부대에서 두 팀은 서로 화해하였고, 좋은 감정으로 헤어졌다. 그리고 시간이 5개월이나 지난 지금. 그들을 다시 보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그 기간 안에 제대한 인물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선수들은 아직 제대를 몇 달 정도 남겨두고 있었고, 감독이나 2군 감독, 그리고 코치진들의 변화는 전혀 없었다.

바로 지난 시즌의 우수한 성적 때문이었다. 상무는 리그 최종 순위 3위로 시즌을 끝냈다. 역사상 처음 이룬 성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군인들의 축구단으로는 처음으로 아시아 챔피언리그에 출전할 수 있는 기회도 손에 넣은 것이었다.

“늦었네.”

들 뜬 마음으로 건물로 향하던 길에, 최감독이 마중 나왔다. 그리고 그는 세령과 선수들을 보며 웃으며 맞이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곧 선수들의 우렁찬 목소리에 최감독은 미소를 지은 뒤, 세령을 보았다.

“이제 시험대에 오르겠네.”

그 한마디가 세령의 가슴을 더 빠르게 뛰도록 만들었다. 모두가 지켜보고 있는 팀이며,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현역 군인들만이 즐기던 군대스리거들을 외부 스카우트들도 볼 수 있는 첫 번째 시즌이기도 하였다.

폐교 안으로 들어선 후, 선수들과도 만났다. 단 며칠간 서로 보았지만,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나는 듯, 서로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주었고, 훈련에 앞 서, 이 경기장을 운영하고 있는 개인이 마련해준, 음식들이 준비된 식당으로 모두 들어섰다.

“와~아.”

정말 입이 떡하고 벌어질 광경이었다. 식당 안에는 각종 해산물이 수두룩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이렇게나 많이…….”

세령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통영이 해산물로 유명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을 돈으로 계산한다면, 적어도 몇 백만 원은 간단히 넘을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대한민국 군인들이 주축이 된 두 축구단을 맞이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모두가 음식에 눈이 홀려 있을 때, 식당 문이 열리며 한 중년사내가 들어섰다. 나이는 약 50대 중,후반정도로 보였고, 그의 옆으로는 아내로 보이는 여인이 고운 자태로 함께 서 있었다.

“이렇게 까지 신경 써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최감독이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곧 세령도 그의 앞으로 다가가 꾸벅 인사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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