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9 히든리거 =========================================================================
“낯익은 얼굴이 있습니다.”
세령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리고 연동훈과 이민우는 표정을 구겼다. 나머지 몇 선수들도 각기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 있었는지, 그들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입장한 선수들은 모두 현역 군 장성과 장병들이었다. 그리고 세령과 연동훈, 이민우의 눈에 낯익은 인물은 바로, 4대대에서 1소대장인 서재호와, 2소대장 이연호, 그리고 이제 곧 제대를 앞 둔, 지동현이 있었다. 그리고 각기 선수들에게도 서로의 부대에서 꽤 공을 찼던 사람들이 그라운드 위를 밟고 있는 것에 연신 인사하며 손을 흔들었다.
“자네는 물론, 선수들에게도 줄 수 있는 내 첫 선물이기도 하네.”
국방부장관이 세령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진정 선물이었다. 비록 처음에는 서로 좋은 감정이 아니었지만, 결국 떠나오기전, 모든 악감정을 다 버렸던 사람들이었다.
“어디…….실력 좀 보자 추강.”
후반전 시작을 위해 선수들이 그라운드 위에 올랐고, 상대팀 원톱으로 나선 지동현이 추강을 향해 쓴웃음을 지어주며 말했다.
“기꺼이, 지병장님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후반전에는 이태성을 대신하여 원톱으로 추강이 섰다. 추강은 원래 포지션이 쉐도우였다. 하지만 충분히 원톱으로도 설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에, 세령은 그를 원톱으로 세워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왼쪽 윙어에는 설태구가 섰고, 골키퍼는 용지현이었다.
“이건 설마 운 아니지? 내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놈들이 모두 경기에 나섰네.”
지동현에 이어 이연호가 추강에게 말했다. 하지만 지난날처럼 악의적인 말은 일체 없었다.
“삐익~”
후반전은 경기다운 경기가 진행 될 듯 보였다. 상대팀도 제법 실력 있는 선수들로 배치하였다. 그들 중에는 아깝게 국방부FC에 들어서지 못한 장병들도 있었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전반전과는 완전 달랐다. 공은 아주 빠르게 패스가 이어지고 있었고, 양 쪽 윙어들의 움직임도 무척 빨랐다.
“정신 바짝 차려!”
연동훈이 큰 소리로 외쳤다.
“이제 연중사가 되었네?”
연동훈은 경기에 집중하며 소리쳤고, 곧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듯 하여 고개를 돌렸다.
“전진!”
화기소대장이었다. 그는 경기에 직접 뛰지는 않지만, 특별히 이번 창단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국방부를 찾은 것이었다.
“오랜만이야 3소대장. 아니 이제는 감독이지.”
세령도 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화기소대장의 우람한 덩치 뒤로 보이는 너무나 반가운 얼굴. 바로 중대장 최태윤과 주임원사 박만둘. 그리고 대대장이자 그녀의 아버지인 이해석이 보였다.
“아빠…….”
세령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고, 이해석은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아는 듯, 정확히 세령을 보며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고작 5일간 보지 않았던 기간이었다. 하지만 두 부녀는 마치 5년 이상은 보지 않았던 것처럼 상봉의 기쁨을 서로의 글썽거리는 눈물로 말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발전은 없는 것 같은데.”
공을 몰고 이리저리 국방부FC팀 진영을 휘젓고 다니던 지동현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설태구를 보며 말했다.
“뚫고…….지나가 보십시오.”
설태구는 자신 있는 듯, 지동현에게 말했고, 지동현은 헛웃음을 지은 뒤, 설태구를 앞에 두고 요리조리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공을 툭하고 앞으로 밀어 넣은 뒤, 아주 빠르게 몸을 돌려 설태구를 지나쳤다.
“봤지. 이게 바로…….”
지동현은 설태구의 다리 사이로 공이 빠졌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공은 설태구의 발아래에 있었고, 그 즉시 설태구는 전방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 왼쪽으로 아주 빠르게 오르고 있는 지형구에게 패스해 주었다.
“와우!”
역시였다. 설태구의 패스 한 방에 그 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감탄사가 울려 퍼졌다. 아주 정확하게 지형구가 달려가는 앞에 뚝 떨어졌고, 그 공을 잡은 지형구는 그 즉시 중앙에 있던 추강에게 패스하였다.
지동현은 자신의 생각대로 공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설태구의 수비에 막히자,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하였다.
“어딜!”
추강에게 공이 전달되는 것을 막겠다는 신념으로 서재호가 빠르게 움직였지만, 그가 공에 다가서기 전, 추강이 먼저 공을 향해 움직였고, 그보다 한 발 앞서 공을 잡은 추강은 공을 잡은 순간, 곧바로 툭하고 위로 차 올린 뒤, 서재호의 키를 넘겼고, 추강도 곧바로 공을 따라 몸을 돌려 움직였다.
서재호도 멍하니 서 있었다. 설마 그 순간에 공을 트래핑하지 않고, 곧바로 툭하고 차올려 자신의 키를 넘길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였다.
‘펑!’
“뭐야!”
모두가 놀랐다. 거리로 보면 약 25미터 이상은 충분히 될 듯 한 거리였다. 그 거리에서 추강은 몇 번의 드리블을 이은 후, 골대를 향해 슛을 날렸고, 구경하던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아주 강하게 날아가고 있는 공을 보았다.
‘출렁!’
“삐익~”
기자들은 연신 셔터를 눌렀다. 육중한 몸을 지니고 있는 추강을 집중 조명하였다. 절대 축구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몸을 지닌 추강에게서 너무나 정확하며, 빠른 슛이 나온 것에 기자들도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들이었다.
군대스리가를 대표하여 나온 장교들과 사병들은 추강을 보며 멍하니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왜 이 25명의 엔트리에 들어서지 못했는지, 그 자리에서 바로 인정하는 듯 한 표정들이었다.
그들도 무척 놀라운 축구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국방부FC에 합류한 장병들의 실력은 진정 프로급이라 말할 수 있는 실력들이었다.
“삐~익”
어느 덧 후반전 20분 경기도 끝났다. 그리고 국방부FC는 후반전에도 어느새 다섯 골을 넣었다. 총 스코어는 15대 0이었다. 심지어 용지현은 공을 단 한 번도 잡아보지 못하였다.
“이들과 진정한 시합을 해보라는 뜻으로 마련한 자리는 아니었네. 이제부터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각부 대에서 국방부FC를 응원할 것이네. 그 동안 함께 생활하며, 정도 많이 쌓였을 것이라 여겨, 오늘 하루라도 함께 보내라는 뜻으로 마련한 것이네.”
경기가 끝난 후, 국방부장관은 세령과 함께 나란히 서며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은 후, 세령은 국방부장관에게 다시 경례를 하였다. 그리고 모두가 그에게 경례를 하였다.
비록 모두가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군대라는 한 곳에서 모두 가족처럼 친해진 사이였다. 그런 그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으니, 고마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창단식과, 친선경기가 끝났다. 선수들은 국방부를 찾아준, 옛 부대의 선임이나 후임, 그리고 소대장 및 장교들을 따로 만나며, 서로 그 동안 하고 싶었던 대화를 하면서 연신 웃고 있었다.
이해석은 이제 자신의 품을 완전히 떠나는 세령을 보며 글썽거리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있었고, 제대를 앞 둔, 지동현은 연동훈과 이민우를 찾아가, 자리를 양보하라는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그 날 저녁. 각종 스포츠뉴스나, 기타 스포츠를 다루는 매체에서는 신생팀인 국방부FC의 창단내용을 중점으로 다루고 있었으며, 몇 전문가들은 이 팀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서도 자세히 보도하고 있었다.
국방부FC에 속한 선수들을 자식으로 둔 부모들은 연신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동네방네 소문내며 자식자랑하기 바빴다.
“이제부터…….치열한 경쟁이 시작되겠지. 잘 해보세나.”
그리고 스포츠뉴스를 뚫어지도록 보고 있던 사람. 바로 상무의 최석호 감독이었다. 그는 지난 며칠간의 악감정을 모두 버렸다. 지난 일요일 부대장이 마련한 자리에서 세령과 함께 진정한 선의의 경쟁을 펼치자는 뜻을 전하였었다.
며 칠동은 국방부FC에 관한 내용이 스포츠뉴스에 한 동안 메인으로 방송되었다. 그리고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있었고, 곧 매서운 겨울이 찾아오고 있었다.
그 동안 선수들은 다음 시즌을 대비하여 많은 훈련을 하였다. 체력을 끌어올리는 것은 기본이었으며, 전술이해도와 각 포지션 별로 가장 적합한 선수들도 추려내고 있었다.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겨울도 점차 수그러들기 시작하였다.
길지 않았지만, 5개월 이상 발을 맞춰가며 서로를 다독거리던 선수들은 곧 시작될 시즌에 대비하여 마지막 전지훈련을 떠나기 위하여 모두 국방부 운동장에 모여 앉았다.
“춥지?”
세령은 국방부에서 마련해준, 두터운 외투를 입고서서 선수들에게 물었다.
“춥습니다.”
모두가 후덜덜 떨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세령은 온 몸을 꽁꽁 싸매고 있었지만, 선수들은 운동복 위에 국방색 점퍼만을 입고 서 있었다. 이에 이태성이 두 손을 모아 싹싹 비벼가며 답했다.
“상병은 추위도 덜 탄다고 하던데, 넌 왜 그래?”
“상병도 군인이며, 사람입니다. 당연히 추운 날씨에 충분히 추위를 탑니다.”
이제는 서로 편하게 농담도 주고받는다. 처음에 만났을 때의 그런 딱딱한 분위기는 일체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태성을 비롯하여 마형식, 우동화, 전철민은 상병이 되었고, 이철호, 연태민, 서민구, 마철수, 여민호, 장강식, 우근우, 구민철, 지형구, 설태식, 장만식, 이민철도 다음 달이면 상병이다. 즉. 시즌이 시작되면, 상병이 수두룩해지고, 이등병은 단 한명도 남지 않는다.
“자! 이제 다음 달이면 시즌이 시작된다. 오랜 시간동안 서로 발을 맞춰보지는 않았지만, 그 짧은 시간에도 충분히 서로가 서로를 알 수 있었던 시간이라 본다. 우린! K리그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그 돌풍의 중심에 선다.”
세령은 추위로 인하여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선수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녀의 힘찬 목소리에 지금까지 그저 공을 차고, 군인의 신분이라고만 생각하였던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변해버리는 듯하였다.
군대스리가가 아닌 프로무대에서 첫 선을 보일 날이 다가온다는 말이었다. 전투체육시간이나 기타 휴일, PX에서 물품 털기 시합을 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모든 것은 승점이 말해주는 진정한 무대에 오르는 것이었다.
“갑자기…….더 추워지는 듯합니다.”
추강은 여전히 육중한 몸을 이리저리 흔들어가며 말했다. 그의 몸무게는 전혀 줄어들어 보이지도 않았다. 120kg의 엄청난 거대 몸이 추위로 인하여 떨고 있으니, 모두에게 웃음을 주는 행동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