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리거-56화 (56/163)

00056  히든리거  =========================================================================

“맞습니다…….”

그리고 곧 최감독이 고개를 약간 숙이며 답했다.

“지금 감독님은 어떻습니까? 내가 알고 있는 그 감독님이 맞긴 합니까?”

부대장은 곧 그의 얼굴을 빤히 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리고 감독은 아무런 말없이 그저 상무소속 선수들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최감독님. 저는 상무팀을 이기고자 이 팀을 맡은 것이 아닙니다. 그냥…….순수하게 저 아이들이 자신이 하고픈 축구를 하며 국방의 의무란 것을 잘 이겨내고, 사회로 다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팀을 맡았습니다.”

세령이 그를 보며 말했다.

“감독님도 그렇지 않으셨습니까? 저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상무에 속한 선수들도 때가되면 모두 상무를 떠나야합니다. 더 좋은 조건의 팀으로 이적하며, 더 많은 경험을 쌓기를 바랄 것입니다. 내 새끼가 훌륭하게 자라는 것을 보는 것만큼 뿌듯한 것이 없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최감독은 세령을 보았다. 지금까지 그녀가 어떤 말을 해도 시선을 주지 않던 그가 그녀를 보고 있었다.

“저도 이 아이들을 언젠가 모두 보내야합니다. 하지만 내 품에 있는 동안에는 그 어떤 누구에게도 주눅 들지 않았으며 좋겠고, 아무런 이유 없이 죄인이 된 듯 한 느낌은 받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최감독의 시선은 이제 세령에게서 신생팀 장병들에게로 향하였다. 그녀의 말처럼 지금 이 장병들은 아무런 잘 못이 없다. 하지만 자신은 물론, 2군감독도 괜한 색안경을 끼고 이들을 보고 있었었다.

단지, 신생팀에 몸담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제가 배울 것이 많습니다. 아시겠지만, 전 프로축구를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냥 군인입니다. 어릴 적부터 군대스리가를 보고 자랐지만, 그 군대스리가와 프로리그는 아주 큰 차이를 보입니다. 그래서 전 배워야합니다.”

세령은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계속하여 말하였다.

“자! 일단 밥 먹자. 난 배고프면 성격이 더러워져서 말이야.”

장소령이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삼겹살을 꺼내며 말했다. 그리고 상무팀 선수들과 신생팀 선수들을 고루 보며, 몇 몇을 지적한 뒤, 상차릴 준비를 하라는 뜻을 보냈다.

두 팀에서 장소령의 지적을 받은 인물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가 먹을 삼겹살을 챙기고, 불판을 올린 휴대용 가스버너를 자리에 놓기 시작하였다.

“자! 맛있게 먹는 것만이 내가 이 고기를 산 것에 대해 아깝지 않다고 여기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6명이 한 자리에 앉는다, 단! 상무팀과 신생팀이 고루 배치되어 앉은 자리에서만, 내가 고기를 구을 수 있도록 하겠다.”

장소령의 말에 바삐 움직이던 모두의 행동이 멈추었다. 그리고 최감독과 2군 감독의 시선이 장소령에게 향하였고, 장소령은 두 사람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냥! 말을 길게 하지 않겠습니다. 우린 모두 국방부라는 한 울타리 안에서 생활하는 가족입니다. 그런 가족이 서로 밥그릇 싸움하는 것만큼 보기 흉한 것은 없습니다! 친해지십시오. 그리고 가르칠 것이 있으면 가르치고, 배울 것이 있으면 배우십시오. 이게 내가 할 말입니다.”

부대장은 그저 시선들만 서로 주고받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곧 세령을 비롯하여 연동훈과 코치진, 그리고 최감독을 비롯하여 2군감독과 코치진의 시선이 부대장에게 향하였다.

“오늘이 어쩌면 이런 자리를 만들 수 있는 마지막 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훗날 시간이 지나, 지금 이 자리에서 본인들이 한 행동이 후회되지 않을 정도로, 적어도 딱 그 정도로만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주십시오.”

부대장은 다시 한 번 모두를 향해 말했다. 부대장이라는 자리에 앉았다면, 굳이 이런 자리를 만들면서까지 이들에게 부탁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부대장은 계급이라는 권력보다 인간미라는 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잠시 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움직이는 이들도 없었다. 그저 자신들이 들고 있는 고기나, 불판을 그대로 들고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뭣들해! 배고프다. 밥 먹을 준비들 안 해!”

장소령이 평소 하던 말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장소령이 아닌 최감독이 상무소속 선수들을 향해 소리쳤고, 그제야 자신들이 들고 있던 고기를 굽기 위하여 움직였다.

모두의 표정이 밝아졌다. 언제나 자격지심이 강했던 최감독이 마음을 연 것이라 볼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세령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보며 고개 숙여 인사하였다. 최감독은 그녀의 인사를 받은 후, 고개를 돌렸다.

“그…….사람이 그러면 안 됩니다. 아리따운 아가씨가 먼저 고개 숙여 인사까지 하는데, 어찌 매몰차게 고개를 돌리십니까?”

장소령이 고개를 돌린 최감독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상무 코치진과 선수들의 시선이 다시 최감독에게 돌아갔다.

“뭘 봐 이놈들아! 배고프다니까!”

최감독은 그들에게 소리쳤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사실…….상무팀을 못마땅하게 여겨 새로운 팀을 만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다 신생팀 감독이 여자라는 말에 어이가 없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무식한 놈들을 진두지휘해야 할 자리에 여자라니…….진정 어이가 없었습니다.”

최감독의 여성발언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의 말을 자르지 않고 모두가 그를 보고만 있었다.

“하지만, 단 며칠간 이세령감독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변화된 모습에 새삼 놀라기도 하였고, 주위를 끌어들이는 묘한 매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 또 한, 어제 경남에게 패한 뒤, 그라운드를 나서며 이감독의 눈빛을 보았습니다.”

부대장은 앉은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서며, 최감독을 보았고, 곧 장소령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보았다.

“상대를 무시하는 눈빛이 아닌, 진정 위로나 격려하는 눈빛으로 보였습니다. 내 축구인생 동안 패배 후, 나를 향해 그런 눈빛을 보이는 사람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좋았다는 겁니까? 아니면 기분이 나빴다는 겁니까?”

최감독의 말은 계속하여 이어졌지만,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표현하는 말이 나오지 않고 있기에, 장소령이 직설적으로 바로 물었다.

“패배는 언제나 아픕니다. 하지만, 그 패배를 이겨내고, 다시 승리하기 위한 마음가짐을 가진다면, 기꺼이 패배도 웃으며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저기 계신 이세령 감독의 표정에서 볼 수 있었던 나의 마음가짐입니다.”

“아 참. 그 사람 말 주변 없네, 그러니까…….”

“기꺼이! 우리 상무팀은 같은 배를 탄 신생팀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이 자리에 말씀드립니다.”

최감독에게서 계속하여 확답이 나오지 않자, 장소령이 다시 나섰지만, 곧바로 최감독은 세령을 향해 보며 신생팀을 맞이한 후, 처음으로 미소를 보이고 그녀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세령은 자신을 보고 있는 그에게 다시 고개 숙여 인사하며 말했다. 그리고 최감독도 그녀를 향해 정식으로 고개 숙여 인사하였다.

“자자! 이제 밥 먹자!”

무척 오랫동안 기다렸던 말과 같았다. 최감독에게서 이 말을 듣기 위하여 이런 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었다. 그러자 장소령은 더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모든 장병들을 향해 소리쳤고, 그들은 상무팀과 신생팀 구분 없이 서로가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오늘의 이 자리가 끝자리가 아닌, 시작하는 자리로 만들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앞으로 내가 체육부대장으로 있는 동안, 이 두 팀의 정기적인 자리를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부대장은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세령을 향해 다가서도록 손짓을 하였고, 그녀는 부대장의 명령으로 최감독의 옆에 섰다.

“비록 팀은 서로 다르지만, 분명히 해 둘 것은 두 팀이 모두!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

모두가 환하게 웃으며, 고기를 굽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장소령의 이 한마디에 모두의 표정은 다시 굳어졌다. 잠시 동안 국방의 의무라는 것은 잊고 있었다. 그저 자신들이 좋아하는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소령의 입에서 나온 국방의 의무. 그의 말처럼 이 두 팀은 국방의 의무라는 하나의 연결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한 팀이기도 하였다.

“장소령이 괜한 쓸데없는 말을 꺼냈는데, 모두 지금은 그 말을 잊는다. 그냥 축구로 뭉친 친구이며, 팀이라고 생각하라! 그리고 밥 맛있게 먹어라!”

부대장이 마무리를 다시 하였다. 그리고 모두의 표정은 부대장을 향해 환호를 질렀고, 장소령을 향해서는 몇 몇이 쓴 미소를 짓기도 하였다.

“앞으로, 많은 지적과 도움 바랍니다.”

세령은 최감독에게 막걸리를 한 잔 따르며 부탁하였다.

“내년 시즌을 잘 마무리해서, 후 내년에는 정식으로 한 판 붙어보십시다. K리그 클래식이라는 전장에서 말입니다.”

최감독도 그녀에게 한 잔의 막걸리를 따르며 말했다. 세령은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고, 부대장과 장소령은 그녀를 보았다.

“이 감독.”

“네? 아…….소위 이세령.”

여러모로 복잡한 관등성명이었다. 군인이니 당연히 관등성명이 나와야한다. 하지만 민간인인 상무팀 감독이나 코치진과 대화 시에는 굳이 관등성명이 나올 필요가 없다. 그런 와중에 자신을 부른 부대장에게 대답과 동시에 관등성명을 다시 말하였다.

“자네의 그 미소, 진정 사내들을 홀리는 묘한 매력이 있다고 말했지? 그러니까…….아무에게나 그런 미소 좀 짓지 말아주게.”

“네? 아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여기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아무 나는 아니지 않습니까? 부대장님의 말씀처럼 모두 가족입니다. 가족에게 미소 짓는 것이…….”

“그래. 그래. 마음껏 짓게. 내가 자네를 어찌 이겨내겠는가? 그리고 여기에 있는 모든 선수들은 이세령 감독의 미소에 홀리는 놈이 없도록 조심해라!”

“네! 알겠습니다!”

부대장의 농담이었다. 그리고 선수들도 그의 말이 농담인 것을 알고 모두 웃으며 큰 소리로 답했다.

국방부로 돌아가기 전까지 상무 팀과의 감정은 좋아지지 않을 것만 같았었다. 하지만 부대장과 장소령의 기지로 인하여 괜한 오해로 빚어진 모든 것을 풀 수 있었다.

언젠가는 서로가 그라운드위에서 진검승부를 펼쳐야 하는 관계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진검승부는 선의의 경쟁이다. 하나의 모체를 두고 있는 두 팀. 그리고 그 두 팀은 그라운드라는 전장에서 만날 날을 고대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주는 말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최감독의 오해는 풀렸다. 단지 자신만의 오해로 신생팀을 멸시하였다. 다른 뜻은 전혀 없었다. 오로지 그것 하나뿐이었다. 그러기에 그 오해만 풀면 별다른 문제란 없어보였다.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자신들과 신분이 같은 군인이지만, 결코 자신들과 마찰이 일어날 관계는 아니었다.

감독의 오해로 선수들마저 오해를 가졌던 것이었고, 이제는 모두 풀렸다. 서로가 한 자리에 둘러앉아 웃으며 식사를 하였다.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하늘은 구름한 점 없는 아주 맑고 깨끗한 자신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 조금 후면 국방부에서 직접 주문제작한 신생팀 전용 버스가 너희들을 데리러 올 것이다.”

운동장 앞에 모인 모두를 향해 부대장이 말했다. 그리고 곧 상무팀 감독과 코치진, 선수들이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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