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리거-55화 (55/163)

00055  히든리거  =========================================================================

“원래 세상이란 곳이 그래. 경쟁 할 상대가 생기면 혹시 자신들 밥그릇이 뺏기지 않을까 먼저 생각하지, 그리고 그에 대한 방편을 마련하려 발버둥치지.”

장소령은 다시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말했다.

“하지만 하나를 생각하고, 또 하나를 생각하지 못해, 서로 공생이라는 것을 왜 모르는지 말이야. 경쟁자가 생기면, 그 경쟁자를 뛰어넘을 더 좋은 제품이나, 실력을 보이면 되는 것이야. 하지만 지금 세상은 그렇지가 않아. 그냥 헐뜯고 깎아내리려는 것이 우선수단이지.”

세령은 장소령이 하는 말을 너무나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상무가 딱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여겼다. 국방부를 모체로 하는 팀은 상무가 유일하였다. 하지만 이제 다음 주 월요일이면, 또 다른 팀이 창단된다. 상무감독은 그 팀을 선의의 경쟁자가 아닌, 자신들 밥그릇을 뺏기 위하여 온 팀이라 여기고 있었다.

“상무는 그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네. 언제나 아슬아슬하게 클래식 리그에서 살아남았지, 하지만 올해는 달라, 중위권을 달리고 있지, 지난 리그들과는 달리, 올해는 아주 여유롭게 클래식 리그에 잔류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야.”

세령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태어나면서부터 봐 왔던 축구가 군대스리가다. 그리고 군대스리거들은 자신의 축구 실력이 우수하다고 여겨지면 그에 대한 최대 목표는 상무팀에 입단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군인들을 모아두고 있는 탓에 성적은 저조하였다.

군대 안에서는 모두가 대단한 군대스리거들이었다. 하지만 막강한 자본이나, 외국선수들을 기용하고 있는 프로무대에서는 그저 공만 좀 차는 군인 팀으로 모두가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세령이 생각하는 상무는 그런 팀이 아니었다.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며, 꿋꿋하게 버티고 버텨, 지금의 성적을 내고 있는 팀이라 여겼다.

“내년에도 상무는 클래식 리그에서 뛸 것이네, 그리고 자네가 맡은 신생팀은 챌린지 리그를 거치고, 실력이 인정된다면, 당당하게 클래식 리그로 올라오겠지.”

세령의 목표였다. 결코 긴 시간이 아닌, 짧은 시간 안에 신생팀을 챌린지리그에서 클래식리그로 올려놓는 것이었다.

“지금 상무감독은 내년이 아닌, 그 다음해를 보고 있네. 만에 하나 자네의 신생팀이 우수한 성적으로 챌린지리그를 벗어나, 클래식으로 올라선다면, 국방부는 물론, 협회에서도 전폭적인 지지가 있을 것을 예상하고 있지. 그렇게 되면, 지금 자신의 손안에 있는 이들이 홀대를 받지 않을까…….그런 생각을 미리하고 있는 것이네.”

이는 이미 세령이 석식 전, 두 감독에게 한 말이었다. 그녀의 생각처럼 장소령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방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서로 웃으며 마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세령은 천천히 식어가는 커피 잔을 들고, 마시지 않은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법이라…….이렇게 해 보면 어떻겠는가?”

장소령은 조금 남은 커피를 마저 마시며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다음 날. 체육부대에서 지내는 마지막 날이었다. 세령은 아침 점호를 마친 후, 곧바로 선수들을 운동장으로 모이게 하였다.

“오늘은, 우리가 이곳에서 지내는 마지막 날이다. 그리고 내일이면, 우린 국방부소속 두 번째 팀이 된다.”

세령은 모두를 운동장 한 쪽에 앉혀놓고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들 떠 있는 듯 들리기도 하였다.

“마지막 날인 오늘! 우리의 선배들인 상무팀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다!”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상무팀과 말씀이십니까? 어제 그런 눈빛들을 보고도…….”

“그런 눈빛들을 봤으니, 더욱 더 함께 하며, 마지막 날에 그들의 눈빛이 따뜻한 눈빛으로 변하도록 해야 하지 않겠어?”

세령의 말을 들은 후, 모두가 놀란 눈들을 하고 있었고, 곧 연동훈이 어제 세령을 본 그들의 눈빛에 대해 말하였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은 체, 연동훈을 보고 눈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다들 아침은 잘 먹었는가?”

곧 장소령이 운동장으로 다가서며 물었고, 세령이 그에게 경례하였다. 그리고 장소령은 세령을 보며 미소를 보인 뒤, 다시 운동장에 앉아 있는 장병들을 보았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 하루를 어찌 보내려고 하는 것인가?”

장소령은 이미 세령과 말을 맞췄지만, 모른 척하며 물었다.

“그게…….오늘 마지막 날이고 하니, 우리 선수들과 상무선수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리고 코치진과 감독들이 마주할 수 있는 시간도 가졌으면 합니다.”

세령은 그를 보며 말했고, 연동훈을 비롯하여 코치진들과 선수들은 천천히 시선을 돌려 아침부터 맹연습에 땀을 흘리고 있는 상무선수들을 향해 보았다.

“그래? 그럼 내가 다리역할을 해 주어야겠군. 내가 저 사람들과 소주도 마시며, 친분도 있으니, 살짝 운 한번 띄워보고 오겠네.”

장소령은 그 길로 곧장 상무 팀으로 향하였다.

“정말. 상무팀과 우리 선수들을 한 곳에 모두 두실 것입니까? 이제 오늘이 지나면 다시 보지 않아도 될 놈들을 굳이…….”

연동훈은 긁어 부스럼 만드는 듯하여 물었다.

“다시 보지 않더라도, 이 쓸데없는 감정은 풀고가야지, 왜 내 새끼들이 죄 없이 눈치받아야하며, 왜 나나 너희들이 저들 앞에 주눅들어야해? 그건 풀고가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

세령의 말을 들은 후, 연동훈은 그녀를 빤히 보았다. 진작 그녀의 성격은 잘 알고 있었지만, 요 근래 그녀가 나약해 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역시 천성은 누구주지 못한다고 하였듯이, 세령의 성격은 고쳐지지 않는 것이었다.

잘 못한 것이 있으면, 사과하며 풀어야하고, 반대로 상대의 잘못이 있다면 사과를 받고 풀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녀였다.

“오늘 상무팀 다른 스케줄이 있습니까?”

장소령은 상무감독의 곁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특별한 스케줄은 없습니다. 연습이 부족한 듯하여 부족한 부분을 고치기…….”

“피나는 연습이라…….좋죠. 하지만 선수들에게도 휴식은 필요합니다. 그리고 대화도 필요한 법이고요.”

장소령은 감독의 말을 자르며, 그의 옆으로 자리하여 앉은 뒤, 아침부터 구슬땀을 흘리며 뛰고 있는 상무선수들을 보며 말했다.

“내가 상무선수들과 코치진들에게 점심 한 끼 대접하고 싶은데, 오늘 점심시간에 시간 좀 내어줄 수 있으십니까?”

감독은 장소령을 빤히 보았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밥을 산 적이 없었던 장소령을 잘 알고 있었다. 이는 지난 날, 경기장에서 음료수를 사들고 온 그를 보며 부대장이 세령에게도 했던 말이었다.

“왜 갑자기…….”

“뭐. 이유가 있으니 내가 이런 제안을 한다는 것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또 한…….두 번 다시 내가 이런 제안을 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계실 것이니, 오늘. 저렇게 열심히 뛰고 있는 새끼들에게 고기한 번 먹여보시죠.”

장소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확답을 듣지도 않았고, 그대로 일어나 선수들을 한 번 더 본 뒤, 그대로 그 곳을 벗어나고 있었다.

“저 양반이 무슨 꿍꿍이로…….”

그가 자리에서 벗어나자, 2군감독이 다가서며 말했다.

“무슨 꿍꿍이인지는 가보면 알겠지. 잘됐다. 오늘 우리 새끼들 고기맛 좀 보여주자.”

감독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고, 곧 선수들을 모두 모이도록 하였다.

“이 쪽도, 오늘 점심은 내가 살 것이니, 점심시간에 부대 뒤편 만남의 광장으로 모두 모이게.”

장소령은 다시 신생팀이 있는 곳으로 온 뒤, 짧은 몇 마디를 남기고 그대로 부대건물을 향해 걸었다.

“상무팀이 우리를 만나는 것에 찬성한 모양입니다.”

연동훈이 물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장소령이 이런 확답을 주고 휑하니 가지 않을 것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상무팀 인원 전체가 만남의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상무의 1,2군팀 모든 코치진과 선수들이 모이니, 50명은 족히 넘어가는 대규모 인원이었다.

“다들 모이셨습니까?”

곧 장소령이 광장에 모습을 보이며 물었고, 그의 뒤로 부대장도 함께 들어서고 있었다.

“충성”

부대장이 보이자 감독과 코치진들은 일어나 인사를 하였고, 선수들 중, 선임은 경례를 하였다.

“오늘. 좋은 자리가 있다고 하여 이렇게 왔습니다. 그리고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오늘이 휴일이고 하니, 특별히 막걸리를 정해진 양만큼 지급 할 테니, 드시기 바랍니다.”

“와아아!”

선수들의 환호성과는 달리, 감독과 코치진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부대장이 술을 내어준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사회인이라 술을 먹고자 한다면,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위치에 앉은 사람들이었다.

곧 부대장의 특별지시로 막걸리 두 통이 들어왔고, 엄청난 양의 삼겹살이 배달되고 있었다.

선수들은 군침을 흘리며 막걸리와 음료수, 그리고 고기들을 보고 있었고, 곧 건물 모퉁이를 돌아들어서고 있는 신생팀을 보며, 모두 표정이 변하였다.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자리를 마련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은 하였습니다. 모두 저 팀을 위해서였습니까?”

최감독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부대장을 향해보고 물었다.

“비단, 누구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자리에 앉으십시오.”

부대장은 그를 보며 말했고, 곧 광장으로 들어서는 세령에게 손짓하며 불렀다.

“일단 모두 자리에 앉는다.”

부대장은 뒷 늦게 도착한 신생팀을 보며 말했고, 그들은 상무팀과 좀 거리를 두고 자리하여 앉았다.

“이왕 마련된 자리니 밥은 먹겠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은 바라지 마십시오.”

최감독이 미리 딱 잘라 말했고, 부대장과 장소령은 그의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내가…….최감독님을 본 지가 어느덧 3년이 되어가는 듯합니다. 맞습니까?”

부대장은 갑자기 최감독과의 인연을 꺼냈다. 비록 부대장이 이곳 체육부대장으로 들어온 것은 1년 정도 전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도 이미 두 사람은 친분이 있었다는 말이었다.

“그렇습니다.”

“내가 3년 동안 본 최감독은 그 어떤 누군가에게 이유 없는 행동을 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맞습니까?”

부대장은 다시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최감독은 부대장을 본 후, 다시 세령을 향해 시선을 주며 답했다.

“그런데! 지금 난 누구를 보고 있는 것입니까? 내가 알고 있는 최감독은 축구를 하는 사람이라면 축구를 한다면 누구라도 품으려 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던 사람입니다. 하물며, 동네 꼬맹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으면, 하다못해 그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이라도 사다주고 가던 사람입니다. 맞습니까?”

부대장은 최감독의 인성을 말하고 있었다. 이건 아주 기본적인 작전 중에 하나였다. 그 어떤 누구라도, 자신을 칭찬하는데 인상을 찌푸릴 사람은 없을 것이며,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도망치듯 나갈 사람도 없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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