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4 히든리거 =========================================================================
“왜? 신생팀에게 패배를 보여서 그런 것입니까? 그런 것이라면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그들은 진정 훌륭한 경기를 관람하였고, 또 신생팀의 감독은 이번 경기를 보며 많은 것을 배워 갈 것입니다.”
부대장은 감독을 보며 말했지만, 감독은 끝까지 부대장과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부대에서 뵙죠.”
분위기를 보아, 더 있어 좋을 것이 없었다. 부대장은 감독에게 말한 뒤, 곧 선수들을 다독거려 주었고, 먼저 라커룸을 나왔다.
“혼자만의 생각으로 모든 것을 판단 내려 하지 마십시오. 진정 저들은 이번 경기를 보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누구도 패배한 상무팀을 향해 소리치거나, 질타하는 이는 없었습니다.”
장소령은 부대장이 나간 뒤, 감독을 보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의 말처럼 지금 이 분위기를 더 가라앉도록 만들고 있는 인물은 감독이었다.
그의 말처럼 패배는 언제나 있는 것이다. 단지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것으로 그 패배를 더욱더 짙은 패배로 여긴다는 것은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너희들도 잘했다. 고생했고, 부대에 돌아와서 푹 쉬어라.”
장소령도 선수들을 토닥거린 뒤, 라커룸을 나섰다.
“젠장…….”
두 사람이 모두 나간 후, 상무감독은 쓴 소리를 내 뱉었고, 선수들은 그를 보고만 있었다.
“가지.”
라커룸에 들려 부대원을 토닥거려준 후, 다시 밖으로 나온 부대장은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세령을 보며 말했다.
“상무 감독님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네. 패배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 단지 자네가 보고 있는 상황에서 역전패를 당한 것에 홀로 성질부리고 있는 것뿐이네.”
세령의 말을 다 듣지 않은 채, 부대장은 자신이 보고 온 상무감독의 심경을 말하였고, 곧 먼저 차량에 승차하였다.
곧바로 장소령이 도착하였고, 세령의 어깨를 말없이 토닥거린 뒤, 차량에 올랐다. 그리고 세령도 마저 올랐다.
가는 길은 조용하였다. 그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는 이가 없었다. 자신들이 패배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기분마저 완전 가라앉은 듯, 조용하게 다시 체육부대로 향하고 있었다.
“저녁 맛있게 먹어.”
부대에 도착하니 석식시간이 되었다. 세령은 선수들에게 말한 뒤, 시선을 돌려 연습중인 상무2군 팀을 향해 보았다.
“어디…….가십니까?”
그녀가 2군 팀을 향해 걷자, 연동훈이 물었다.
“먼저 식사해. 난 잠시 어디 좀 다녀올게.”
그녀가 향하는 곳의 끝을 보았다. 상무2군 팀을 향해 걷는다는 것을 연동훈은 알 수 있었다.
“먼저 식사들 하고 있어, 난 감독님과 함께 먹을 테니까.”
그녀 혼자 보낼 수 없다고 여겼다. 연동훈도 곧 그녀의 뒤를 따라 움직였고, 이민우가 두 하사관을 이끌고 식당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장병들도 각기 식당으로 향하였다.
“2군 팀을 왜 만나시려는 것입니까?”
그녀의 옆으로 다가선 연동훈이 물었다.
“내 생각을 말해주고 싶어서, 그냥 자신들의 밥그릇을 뺏기 위하여 온 팀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며, 함께 이루고 싶은 것을 이뤄보자는 뜻을 전하고 싶어서.”
세령의 진심이었다. 상무라는 선배팀이 먼저 존재하였다. 그리고 국방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생팀이 생겨났고, 그 팀을 이끌 감독으로 여성인 자신이 선택되었다.
모두가 색안경을 끼고 먼저 다가섰다. 하지만 점 차 그 색안경을 벗기고 있었던 세령이었다.
상무팀이 착용한 색안경도 충분히 벗길 수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앞당기려, 그들 앞에 서려고 하는 것이었다.
“감독님.”
석식을 마쳤는지, 아직 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상무2군 팀은 여전히 연습 중이었고, 그들을 지휘하는 감독의 곁에 선, 세령이 그를 불렀다.
“어쩐 일이십니까?”
2군 감독은 그녀를 쌀쌀맞게 맞이하였다.
“이유를 알고 싶어서 왔습니다.”
“무슨 이유요?”
여전히 쌀쌀맞았다.
“우리 팀이 싫은 것입니까? 상무라는 팀이 국방부에 먼저 자리 잡고 국방부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하고 있는데, 저희들이 난데없이 끼어들어, 그 지원이나 관심이 사라질까 그런 것입니까?”
2군 감독은 몸을 돌려 그녀를 노려보았다. 당장이라도 뭔가 소리를 치려는 듯 보이는 그의 표정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쓴 표정만을 몇 차례 지은 뒤, 다시 몸을 돌려 훈련중이 선수들을 보았다.
“우린…….그런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저나, 저를 따라 온 장병들. 모두 국방의 의무니 어쩔 수 없이 한다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국방부에서 국방부소속 제 2의 팀을 만들었고, 그 팀에는 오로지 현역선수들만을 배치하였습니다.”
“그게 뭐가 어떻단 말입니까! 내가 원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니, 너무 차갑게 대하지 말라? 뭐 이런 뜻으로 하는 말입니까?”
계속 아무런 말없이 있으려 하였다. 하지만 2군 감독은 세령의 말을 들은 후, 참다못한 듯, 다시 시선을 돌려 그녀를 매서운 눈빛으로 보며 말했다.
“당신네 선수들이 경기를 잘 소화하여, 만에 하나 클래식리그에 진출하면, 우린 어찌 되는지 아십니까? 그냥 그 순간부로 찬밥신세가 됩니다. 이런 금쪽같은 내 새끼들이 모두 찬밥신세가 된다는 말입니다.”
2군 감독은 세령의 앞에서 자신의 심정을 말하였다. 그의 말에 훈련 중이었던 모든 2군 선수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왜? 그런 생각을 먼저 하시는 것입니까?”
그의 말에 답하지 않고 있던 세령 대신, 연동훈이 입을 열었다.
“왜 그런 생각요? 그럼 무슨 생각을 먼저 해야 합니까?”
“감독님의 말처럼 만에 하나 우리 신생팀이 내년 챌린지리그를 우수한 성적으로 마감하고, 그 다음해애 클래식 리그를 밟는다고 하여도, 상무팀이 다시 챌린지 리그로 내려간다는 조항이 붙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연동훈의 말에 2군 감독은 그를 매섭게 보았다. 비록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세령과 연동훈이었다. 하지만 축구라면 군대스리가를 조금 경험 것이 전부라고 보이는 그 두 사람이 자신을 훈계하는 듯 보여 그의 인상은 더욱 더 구겨지고 있었다.
“이미 보지 않았습니까? 어제 경기. 어제 저희가 패배하고 난 뒤, 그 뒤의 분위기를 보지 않으셨습니까?”
감독은 시선을 약간 내리며 조금 전에 비해 힘이 떨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처럼 어제의 단 한 경기로 인하여, 식당에서나, 기타 어떤 장소에서든 신생팀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었다. 지금 2군 감독은 그 때를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 2군 팀은 이미 프로생활을 겪었거나, 프로로 전향하기 위한 선수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군대에서 공 좀 찼다고 하는 놈들이 모였고, 그것도 고작 하루 정도 발을 맞춰 본 신생팀에게 3대1이라는 어이없는 스코어로 패배하였습니다. 우리를 보는 눈들. 그리고 이놈들. 험난한 2군 팀에서도 살아남아, 꼭 1군으로 올라 무대를 밟겠다고 연일 다짐하는 이놈들. 이놈들은 그 단 한 번의 패배로 기가 죽었습니다.”
세령은 선수들을 보았다. 자신을 보고 있는 그 선수들의 눈빛을 보았다.
낮에 보았던 상무1군 팀의 선수들과 비슷한 또래의 나이들. 그리고 그들과 흡사한 눈빛들. 지금 이들은 자신들 앞길을 막고 있는 최대 장애물로 신생팀을 지적하고 있는 듯 한 눈빛이었다.
“우린…….내일이 지나면 국방부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후로는 감독이나, 이 선수들을 그라운드에서나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그 전에라도…….”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시고, 가십시오.”
세령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상무팀 감독이 다가서며 말했다. 그는 이미 오늘 경기의 패배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 상황이었다.
“오늘은…….”
“오늘 본 경기가 우리 아이들의 실력이라 생각지 마십시오. 우리가 운이 좋지 않았고, 그들이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축구는…….실력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운도 좋아야 합니다.”
상무 감독은 세령이 하려는 말을 모두 자르며 자신이 하고자 한 말을 하기 바빴다.
“그만 식사하러 가십시오. 이런 사람들과 더 대화하여 얻을 것은 없는 듯합니다.”
계속하여 세령이 두 사내들에 의해 죄 없이 죄를 추궁 받는 듯 한 느낌이 들자, 연동훈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연동훈의 말에도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고, 곧 다시 두 사람을 향해 보며 말했다.
“제가 2군 팀을 이겼고, 1군 팀이 패배하는 것을 보았다고, 모든 것을 단 그 두 경기를 가지고 판단할 것이라 여기지 마십시오. 감독님의 말씀처럼 축구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운도 따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2군 팀과의 경기 때는 우리가 운이 좋았으며, 오늘 있었던 1군 팀의 경기는 운이 나빴을 뿐입니다. 단지 그것뿐입니다.”
세령은 두 사람을 보며 말한 뒤, 고개 숙여 인사하였고, 곧 몸을 돌려 움직였다. 그 뒤로 연동훈이 따라 움직였고, 두 사람은 그녀를 보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하였다.
“당돌하군. 아직 어린 나이의 여자가 저토록 당돌하게 말하다니…….축구에 대해 이론만으로 익힌 여자가 말이야…….”
1군 감독은 그녀의 말을 모두 듣고도, 전혀 자신의 생각을 고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축구를 이론으로 배운 여자라며, 세령을 깎아내리고 있는 그였다.
“모두! 오늘 저녁은 간단히 먹어라! 점호 전, 야간 연습을 더 할 것이다!”
곧 1군 감독은 2군 선수들을 향해 소리쳤고, 그의 말에 선수들은 힘없이 고개를 숙인 뒤, 축구공을 한 곳으로 몰아두었고, 식사를 하기 위하여 줄을 맞춰 섰다.
석식을 끝낸 후, 세령은 자신의 숙소에서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고, 곧 노크소리가 들렸다.
“잠시…….들어가도 되겠나?”
장소령이었다.
“네 들어오십시오.”
세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안으로 들어서게 하였다.
“여장교의 숙소를 들어서는 것이 처음이라 떨리는군.”
장소령은 숙소로 들어온 뒤,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고, 세령은 그저 미소만 지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다른 게 아니라…….혹시 커피 있으면 한 잔 주겠나?”
장소령은 자리에 앉은 후, 여전히 주위를 둘러보았고, 곧 그녀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짓고서 물었다.
따뜻한 커피를 건넸고, 한 모금 짧게 마신 후, 그녀를 보았다.
“분위기가 영 개판이지?”
“네? 아…….네 뭐…….사실 이런 분위기를 떠 올리며 신생팀을 맡은 것은 아닌데…….그게 생각처럼 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의 물음에 세령은 커피를 들고 있던 자신의 손을 보며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밝은 내일을 떠 올리며 신생팀을 맡았다.
하지만 힘든 시기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것 같았다. 선수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거나, 서로 티격태격 다투는 것을 어찌 잘 어울리게 만들까…….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