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리거-51화 (51/163)

00051  히든리거  =========================================================================

“K리그 클래식 제 26라운드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두 팀의 입장에 맞춰 관중석에 앉은 분들께서는 힘찬 박수로 두 팀의 선수를 맞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 후, 선수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경남의 홈팬들은 선수들을 향해 소리치며, 함성을 질렀다.

“상무 파이팅!”

그 순간 세령이 큰 소리로 외쳤다. 비록 한 여인의 가냘픈 목소리가 엄청난 관중들이 내뿜고 있는 함성에 의해 그들의 귀에 들리지는 않았겠지만, 그녀는 더 큰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상무를 응원하는 파이팅을 외쳤다.

“상무 파이팅!”

그리고 연이어 연동훈의 박자에 맞추어 장병들이 힘찬 목소리로 상무파이팅을 외쳤고, 그 목소리는 입장한 상무선수들의 귀에 들어갔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그들을 향해 보았다.

“뭐야? 저 놈들이 어째 여기 온 거야?”

자신들을 응원해주는 그들을 보며, 상무감독은 인상을 찌푸린 채 말했다. 그리고 선수들도 그들을 향해 인상을 찌푸렸다.

세령과 장병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진정 파이팅을 외친 것이었다. 하지만 상무감독이나, 선수들은 그 느낌을 달리 전해 받고 있었다.

이 번 경기에서 승리한다면, 어깨에 힘 좀 더 줄 수 있지만 만에 하나 패배한다면, 저들의 비웃음을 살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정신 바짝차리고해라.”

상무 감독은 상무 주장에게 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상무팀 주장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린 뒤, 곧 시선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군복을 입고 힘차게 목청높이고 있는 그들을 향해 본 뒤, 쓴 웃음을 짓고 그라운드위로 올라섰다.

넓고 곱게 자란 잔디위에 22명의 선수가 섰다. 경남팀은 홈팬들의 열띤 응원소리를 들으며 모두가 싱글벙글하였고, 그에 반해, 상무팀의 표정은 상기되어 있는 듯 한 표정이었다.

“원정경기에서 최대적은 아마 홈 관중이라 여겨도 무방하다. 그들이 내지르는 함성소리에 공격할 타이밍은 물론, 페널티킥 실축까지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세령은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축구장이 내려앉을 듯이 소리치고 있는 관중들을 보며 말했다. 그녀의 옆에서 그 말을 들은 연동훈은 자신의 뒤로 앉아 있는 장병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말은…….이놈들에게 적용되는 말이 아닌 듯합니다.”

연동훈은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리며 말했다. 힘찬 응원에 의해 직접 경기에 뛰는 선수들은 아니지만, 충분히 경직되어 있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 홈팬들의 응원에 멍하니 있던 추강마저, 헤벌레 한 표정을 지으며 그라운드 위를 주시하고 있었다.

즉. 긴장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그들의 표정이었다.

‘삐~익!’

간단한 인사말과 두 팀 간의 페어플레이 선언이 있은 후, 경기가 시작되었다. 경남의 선축으로 시작된 경기에서 첫 볼터치가 일어나자, 관중석 앞에서는 불꽃이 쏘아 올려졌다.

일종의 팬서비스이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외국 경기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 중에 하나였다.

“오늘 상무 팀이 패배하면…….”

“9위로 내려앉습니다. 반면에 승리하면 7위로 오릅니다.”

부대장의 말에 장소령이 답을 주었다. 현재 상무는 클래식리그 12개 팀 중, 8위에 랭크되어 있었다. 하지만 선두그룹과 중간에 위치한 그룹간의 승점차이는 꽤 벌어져 있었다. 하지만 중간그룹에 속한 네 개 팀의 승점차는 거의 1~2점차였다. 즉 한 번의 승리와 패배로, 순위가 변동되는 그룹이었다.

또 한 하위권에 자리한 팀들은 경기에 이기더라도 순위변동이 거의 없을 정도로 승점차가 꽤 벌어져 있었다.

“거칠다…….”

추강이 경기 시작 10분 동안 앉은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은 채, 관전하고 있었고, 곧 두 팀의 거친 몸싸움에 나지막한 목소리를 내 뱉었다.

“군대스리가에 비하면 아기자기한 축구다.”

그의 말을 들은 태영훈이 추강을 보며 말했다.

“넌 아직 군대스리가의 제대로 된 최대 악조건 축구를 경험하지 못해서 그렇지. 웬만한 짬밥좀 먹은 군인이라면 군대스리가의 공포를 한,두번은 느꼈을 것이다.”

“무슨…….말씀이십니까?”

태영훈의 말은 추강뿐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은 모두가 궁금해 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용지현이 물었다.

“군대에서 축구화신고 공차는 사람을 몇이나 봤냐?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대부분이 활동화를 신고 공을 차지, 그 와중에 몇 선임들은 훌륭한 사제 축구화를 신고 공을 차기도 하지만, 정말 무식한 놈은 전투화 신고 나온다.”

“네! 전투화를 말입니까?”

진정 놀랐다. 설마 축구시합에서 활동화가 아닌 전투화를 신고 경기에 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옛날에는 간혹…….아주 간혹 그런 정신 나간 선임들이 있긴 하였다. 소대간 PX 물품털기 5만원빵 경기를 하면, 정말 피 튀기는 경기가 일어난다.

지금은 군인들 월급이 꽤 있는 편이었지만, 지난 과거에는 고작 1~2만원이 군인들 월급이었다. 그런 상황에 5만원빵 PX털기 내기는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는 각오로 경기에 임해야한다.

그리고 이등병이나 일병들은 손이 까이고, 정강이가 까이더라도, 상대팀 선임이 공격해 오는 것을 무조건 막아내야 한다. 그 때, 활동화나 축구화를 신은 선임이라면, 진정 한 대 까이더라도 몸을 던져 막지만, 전투화를 신고 나온 놈이 있다면, 그건 그냥 올 스탯 만땅을 올리고 온 놈이라 생각하여, 쉽게 다가 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과거에는 전투화만 신으면 태권도 3단이라는 말이 있었다. 그만큼 전투화에 한 번 차이면 그냥 살이 날아가던지 뼈가 날아가던지, 둘 중에 하나는 꼭 일어나기에 나온 말이었다.

-경남의 공격이 아주 다양하며 화려합니다. 상무가 고전하는 듯합니다.―

전반 30분 정도가 지나가고 있었다. 경남은 세 차례의 위협적인 유효슈팅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상무는 그 시간동안 아직 슈팅 하나도 기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장내 아나운서는 경남에게 조금 더 편파적인 방송을 하는 듯 보였다.

“최감독이 전술 변화를 좀 주어야 할 듯합니다.”

장소령은 경기 내내 얼굴을 찡그린 채 경기를 관람하고 있었다. 자신이 보아도 답답한 구석이 보이고 있었다. 평범한 전술에, 평범한 공격루트, 전반전 내내 같은 방식의 공격을 시도하니, 경남 팀이 애초에 그 공격루트를 차단해버리는 것이었다. 그로 인하여 제대로 된 슈팅 한 방을 날리지 못하고 있었던 상무였다.

“모든 것은 감독 몫이야. 우리가 왈가왈부 할 입장은 아니지.”

부대장의 표정도 밝지 않았다. 하지만 표정과 말의 뜻은 완전 달랐다. 진정 당장이라도 달려 내려가 감독에게 전술 좀 바꿔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부대장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감독이 조율한다. 감독의 위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고 나서면, 그 팀은 그 어떤 강한 조직력을 지니고 있으며, 훌륭한 팀이라도, 곧 곤두박질치며, 바닥으로 내려앉게 된다.

그  만큼 감독의 힘이 높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그 어떤 누구보다 이번 경기를 더욱 더 열심히 뚫어지게 관전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세령이었다.

자신이 감독이었으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의 전술변화, 어떤 전술로 경기에 임해야 할지를 생각하면서, 연신 노트에 뭔가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네 명의 코치진에게 자동적으로 필기도구와 메모장을 열도록 하였다. 세령과 같이 그들도 자신이 맡은 보직으로 장병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나, 행동, 그리고 필요한 것들을 이 번 경기를 보면서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삐~익!’

계속하여 밀리기만 하였던 전반전이 끝났다. 경남의 다섯 번 슈팅을 운 좋게 모두 막아내어, 전반전을 0-0으로 마무리 시켰다.

“최감독을 만나보시겠습니까?”

장소령이 전반전이 끝나는 휘슬이 울리자, 부대장을 보며 물었다.

“됐어. 최감독에게 맡긴 것이니, 알아서 잘 하겠지. 화장실이나 좀 다녀와야겠어. 화장실 갈 놈들 가고, 절대 일반 시민들과 마찰 일으키지마라.”

부대장은 장소령의 말에 답한 뒤, 장병들을 향해 말했고, 곧 전반전 내내 생리현상을 참고 있었던 장병들이 일어나 화장실로 향하였다.

“마실 거라도 사다드리겠습니다.”

“됐어. 군바리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이런 곳에 와서 사먹냐? 그리고 입이 몇 갠데. 장소령님 정도의 월급이 된다면야 충분히 얻어 먹고 싶은 생각이 들긴 하지만…….”

연동훈의 말에 세령은 전반전 내용을 기록한 메모를 보며 말했고, 곧 그녀의 앞에 앉아 신문을 펼친 장소령을 보며, 그의 귀에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말을 흐렸다.

그러자 장소령은 신문의 다음 장을 넘기며 애써 신문을 계속 읽는 듯 앉아 있었지만,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중사.”

“중사 연동훈.”

“따라와.”

장소령은 아주 짧게 말한 뒤, 먼저 움직였고, 그 뒤를 연동훈이 따라나섰다. 연동훈은 곧 세령과 눈을 마주친 뒤, 서로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부대장이 돌아왔고, 화장실 갔던 장병들도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곧 장소령이 자리 뒤쪽 게이트에서 올라왔고, 그의 뒤로 한보따리 음료수를 들은 연동훈이 보였다.

“한 놈에 하나씩이다.”

장소령은 자신의 자리에 앉으며 말했고, 곧 연동훈이 들고 온, 음료수를 받은 태영훈과 서지후가 각 장병들에게 음료수를 나눠주었다. 그리고 연동훈은 자신이 직접 들고 온 음료수를 세령에게 건네주었다.

“잘 먹겠습니다. 장소령님.”

“…….”

세령은 자신의 앞에 앉은 장소령에게 여우와 같은 음성으로 말하였고, 장소령은 아무런 말없이 음료수를 들이마셨다.

“이거…….장소령이 산거야?”

“네. 장소령님께서 저희들에게 사 주신 것입니다.”

부대장은 세령의 말을 들은 후 물었다. 그러자 세령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답하였다.

“천하의 장소령이 음료수를 사? 내일 국방신문에 나오겠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부대장의 말에 세령이 다시 물었다.

“지금까지 장소령이 그 누구에게 뭔가를 사주는 꼴을 내 군생활 동안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어, 그런데 이렇게 음료수를 사오다니…….그냥 신기해서…….”

장소령은 괜한 헛기침을 하며,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고, 세령은 그저 그를 보며 미소만 지었다.

‘삐~익!’

휴식을 끝낸 후, 두 팀의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전반전에 뛰었던 선수들이 양 팀 모두 그대로 나왔다.

“선수 변화가 없다는 것은 전술에도 변화가 없다는 뜻입니다.”

전반전의 선수들이 그대로 나온 것을 두고 연동훈이 말했다. 그리고 세령은 전반전 시작하기 전, 상무팀 선수들이 서 있었던 자리를 기억해 떠 올리고 있었다.

“선수의 변화는 없지만, 전술적 변화는 있을 수 있어.”

“네? 선수를 교체하지 않고 전술적 변화를 준다는 말씀입니까?”

세령의 말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보통 전술변화는 교체선수가 누구냐에 따라 변화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서로 다른 포지션에 있는 두 사람을 교체함으로써 전술적 변화를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반전과 같은 선수들로 전술적 변화를 준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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