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리거-50화 (50/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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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아침이 찾아왔다. 주말에는 프로축구 상무 팀이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세령은 밤을 새고 충혈된 눈을 한 채, 아침 조식이 끝난 후, 운동장에 모여 있는 선수들을 만나기 위하여 비틀비틀 걷고 있었다.

“걸음걸이는 영락없는 술 취한 아낙네군.”

그녀의 걸음걸이를 보며 동네 마실을 나온 마냥, 뒷짐이고 걷고 있던 장소령이 말했다.

“충성.”

이세령은 그의 말을 듣고, 몸을 돌려 경례하였지만, 눈은 반쯤 감겨있는 듯 한 표정이었다.

“밤 샌 모양인데. 선수들을 훈련시킬 수 있겠나?”

장소령은 그녀의 옆으로 서며, 저 멀리 운동장에서 쉼 없이 연습하고 있는 장병들을 향해 보았다.

“괜찮습니다. 이 정도야 아무런 문제없습니다.”

세령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말하였지만, 아직 잠이 들 깬 탓인지, 주먹이 꽉 쥐어지지 않고 있었다.

“오늘. 상무팀이 경남과 경기가 있네.”

“네.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관전한다면, 저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조금 전까지 눈은 반 쯤 감겨 있었다. 하지만 장소령의 이 한마디에 세령의 눈은 말똥말똥해지고 있었다.

“그렇게…….해도 되겠습니까?”

“하지 못할 것은 또 무엇인가. 서로 같은 국방부 소속의 경기를 응원하고 관전한다는데, 누가 반대라도 하겠는가?”

맞는 말이긴 하였지만, 그렇다고 현역 군인이 축구 응원을 하기 위하여 영외로 나가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마침. 오늘 상무팀 경기는 체육부대장님도 관전코자 간다는 소문이 있던데…….”

장소령은 세령에게 일종의 힌트를 던져주었다. 세령은 그를 보며 미소를 지었고, 곧 운동장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다시 돌려 대대 행정반으로 향하였다.

“무슨 일인가 이 감독.”

부대장은 부대장실 문 앞에 서서 마치 교무실에 들어설까 말까를 고민하는 여고생처럼 서 있는 세령을 보며 물었다.

“저…….그것이.”

“이 감독답지 않게 말을 더듬거리네. 뭔가 고민이라도 있는 건가?”

부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직접 문 앞으로 향하며 물었다.

“오늘 상무 팀의 경기, 저희 팀원들도 관전할 수 있을까…….하여 찾아왔습니다.”

세령은 자신의 앞에 선 부대장을 보며 말했다. 부대장은 그녀의 말을 듣고, 잠시 동안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장소령이 말하던가?”

“네? 아 네.”

“그 놈은 시키지도 않은 일은 잘도 하지. 그렇지 않아도 이제 곧 국방부로 들어갈 자네들에게 선물하나 주고자, 함께 가려고 했던 참이네. 이왕 이렇게 왔으니, 내가 따로 찾아가서 말할 수고를 들어 준 것이지. 가서 준비하게, 경기가 오후 두 시부터 시작하니, 그 전에 입장하여 시작부터 끝까지 다 봐야지.”

세령은 부대장을 보며 장소령에게 보여주었던 미소보다 더 환하고 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힘차게 경례한 후, 마치 친구들과 여행가는 것을 부모님에게 허락받은 여고생처럼 기뻐하며 선수들을 향해 달려갔다.

“다들 집합!”

세령은 운동장에 다다르지 않았지만, 저 멀리서부터 큰 소리로 선수들에게 외쳤고, 마치 넘어질 듯, 불안한 달리기로 달려오는 그녀를 보며 모두가 행동을 멈추고 멍하니 서 있었다.

“무슨…….일입니까?”

헐레벌떡 뛰어 온 그녀가 가픈 숨을 내쉬고 있을 때, 연동훈이 물었다.

“오늘! 연습은 이것으로 끝낸다. 그리고 지금 곧, 상무팀 경기를 관전하기 위하여 경남진주로 향한다.”

잠시 동안 가픈 숨을 진정시킨 뒤, 세령이 말했다. 그리고 모두가 멍하였다. 이제 식사를 막 끝낸 후였고, 연습이라고는 몸 풀기 밖에 하지 않았는데, 연습 끝이라는 말에 모두가 멍하니 그녀를 보았었다. 그리고 아무리 축구팀이지만, 군인신분이 먼저인 이들이었다. 소위의 말 한마디에 쉽게 부대를 벗어날 수 없는 신분이었다.

“허락은…….받으신 것입니까?”

“그래. 우리 모두 간다. 그리고 너희들이 언젠가 밟아야 할 클래식 무대를 미리 보고, 그들의 실력도 미리 봐라. 오늘 연습은 프로선수들의 움직임과 실력을 보고, 그에 대해 자신들이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말하는 시간으로 대신 하겠다.”

연동훈의 물음이 있은 후, 세령은 오늘 연습과제를 말했다. 프로선수들의 축구시합. 군대 오기 전에는 축구장을 찾아 경기를 보았을 이들이었다. 하지만 군대에서 군인을 대표하는 축구선수가 되어, 프로축구를 관전하는 것은 모두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뭣들해! 당장 준비해!”

연동훈이 큰 소리로 말했고, 곧 선수들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본 뒤, 곧바로 숙소로 향하였다.

코치진 네 명은 그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고, 곧 세령에게 시선을 돌렸다.

“체력이 언제 이토록 약해졌습니까?”

연동훈은 천하제일 막강 체력이라 여겼던 그녀가 아직도 가픈 숨을 내쉬고 있는 것을 보며 물었다.

“몰라. 그리고 내 체력은 언제나 만땅인지 알아? 나도 사람이다. 지치면 숨이 차고…….”

“나이가 문제일수도 있습니다.”

“뭐!”

세령은 평소보다 더 숨이 차오르는 것을 고르고 있었고, 곧 그녀의 말에 이민우가 농담을 던졌다. 세령은 이민우에게 주먹 한 방을 먹이고 싶지만, 그의 옆으로 다가설 힘조차 없는지, 그저 노려보기만 하였다.

‘퍽!’

그리고 곧 자신의 옆에 있던 연동훈의 복부를 한 대 쳤다.

“왜? 저를 치십니까?”

“후임병 관리 잘해라.”

억지였다. 아무런 이유 없이 한 대맞은 연동훈은 그녀의 말을 들은 후, 곧바로 이민우를 노려보았고, 이민우는 연동훈의 시선을 피했다.

“오늘…….다녀와서 한 따까리 하자.”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연동훈의 말이었다. 그는 지난 날 소대에서 언제나 소대원들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단 하루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소대원들에게 진정한 악마의 모습을 보여주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지금. 중사의 계급을 달고도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그 말이 다시 나왔다.

이민우는 그저 웃고 넘겼지만, 태영훈과 서지후는 표정이 굳어졌다. 연동훈의 어투로 보아, 진정 오늘 밤, 한 따까리 할 것만 같은 느낌이 전해지고 있었다.

부대장의 특별 조치로 신생팀 모두가 영외로 외출을 나갈 준비를 마쳤다.

부대본관 앞에는 45인승 버스가 도착해 있었고, 그 버스 앞에 부대장과 함께, 장소령이 서 있었다.

“어서 타.”

준비를 마친 장병들이 나오자, 장소령이 말했고, 생각보다 너무 과한 대접을 받으며 축구 관전을 하러가는 것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던 세령은 장소령의 말을 들은 후, 곧 선수들에게 승차할 것을 명령 내렸다.

“장소령님도 함께 가십니까?”

세령이 물었다.

“너희 같은 애들을 어찌 그냥 보낼 수 있겠나. 대대장님과 함께 갈 것이니, 어서 타기나 해.”

장소령은 세령의 말을 듣고, 그녀의 말괄량이 표정에 딱 맞는 말을 해 주었다. 마치 철없는 딸에게 23명의 아이를 다 맡긴 듯하니, 마음이 불안하여 영내에 있을 수 없었던 그였다.

선수들을 태운 버스는 부대를 나서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자신들이 실전을 치루기 위하여 부대를 나서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은 장병들은 서로를 보며,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경남진주에 도착하였다. 경남지역을 대표하는 축구단이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구장 중, 하나다. 경남은 진주는 물론 창원등, 경남에 있는 몇 공설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좀…….초라하긴 하네.”

축구장에 도착한 후, 차에서 내려 구장 안으로 들어선 이태성이 말했다. 그리고 여느 장병들의 눈에도 그와 같은 느낌을 전해주고 있는 축구장이었다.

서울의 상암구장이나, 인천의 문학구장등, 월드컵을 치렀던 구장에 비하면, 진정 초라한 구장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경남은 이번 리그에서 중상위권을 달리고 있었다.

즉. 축구는 홈구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선수들 관의 팀워크와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자. 모두 지정된 자리에서 상무 팀을 응원한다.”

장소령이 멍하니 서 있는 장병들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하나, 둘 관중석으로 이동하였다.

“관중은 많이 들어오네.”

작은 구장이지만, 경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경남지역 축구팬들이 조금씩 경기장에 들어서고 있었고, 이내, 관중석을 계속하여 채우고 있었다.

“군대스리가와는 완전 다른 느낌일 것이다.”

부대장이 말했다. 그냥 딱 보기에도 군대스리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이번 관전은 상무와 경남의 선수들이 어떤 움직임을 보이며, 시합을 이끌어 나가는지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분위기와 함성에도 적응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부대장의 이어지는 말에, 장병들은 경기 시작 전인데도,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홈 관중들의 응원소리를 들었다.

우렁차며, 딱딱 박자도 다 맞는 듯 들렸다. 그리고 그 함성소리에 정말 원정팀들은 주눅 들듯 보였다.

“주말 오후, 축구장을 찾아주신 많은 축구팬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곧 경남과 상주의 K리그 26라운드 경기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경기 시작시간이 다가오자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가 들렸다. 그 멘트가 끝난 후, 홈팬들의 응원소리는 장내에 더욱 더 크게 울려 퍼졌다.

입대 전 프로축구를 보았기에, 이런 분위기를 여러 번 겪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군복을 입고 찾은 구장은 그 느낌부터 달랐고, 주위함성소리도 달리 들려왔다.

“엄청납니다.”

추강은 멍하니 앉아서 경기 시작도 전에 힘찬 함성으로 응원의 열기를 올리고 있는 관중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다른 장병들과 달리 추강은 축구장을 처음 찾았다. 축구를 좋아하긴 하였지만, 직접 구장을 찾아 열띤 응원을 한 경험은 전무하였다. 그리고 오로지 노력형으로 육중한 몸을 이끌고, 이 팀에 합류한 케이스였다.

그의 눈에는 이 모든 것이 너무나 신기하게 느껴졌다.

“다들…….적응해라. 비록 우리가 내년에 첫 발을 디딜 구장에는 이와 같은 열띤 응원과 수많은 관중들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단 한 명의 관중이라도, 응원하는 이가 있다면, 그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세령이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려 모두를 향해 보며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내년, 정규시즌부터 경기를 시작하지만, 현재 이들이 속한 리그는 K리그 챌린지다. 즉 2부 리그라 할 수 있는 경기다.

그 경기에는 지금과 같은 열띤 응원은 둘째 치고, 관중석도 텅텅 비어있다. 그건 지금 시즌도 마찬가지였다.

축구팬들은 화려한 경기를 보고자 한다. 선수들의 개인기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두 팀의 승부. 그런 짜릿함을 느끼고자 축구장을 찾는다.

하지만 챌린지 리그라고 동네축구나 조기축구 같은 분위기는 아니다. 단지 느낌의 차이였다. 그 어떤 나라에서도 2리그는 1부 리그에 비해, 관심이 덜하다.

그런 무관심속에서도 그들은 열정을 다해 경기에 임한다. 자신을 위해. 팀을 위해, 그리고 단 한 명의 관중이라도 응원해주는 그 홈 팬을 위해서, 그들은 사력을 다해 경기에 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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