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8 히든리거 =========================================================================
그녀의 머리 쓰다듬는 버릇은 절대 고쳐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의 손길을 피하는 인물도 있었다. 지난 날. 연동훈과 이민우. 그리고 지동현이 그녀의 손길을 피하였다. 하지만 어느 샌가 그 손길에 적응되어 당연한 것처럼 그녀의 손길을 받아드렸던 그들이었다.
“후반전에는 전반전에 뛰지 못했던 선수들로 구성하자.”
세령은 코치들을 모아두고 후반전에 투입될 선수기용에 대해 논의하였다.
15분간의 휴식이 끝나고, 후반전 경기를 위하여 선수들이 다시 그라운드에 올랐다.
선수교체가 거의 없는 2군 팀에 비해 신생팀은 거의 대부분이 모두 바뀌었다.
“많이 바뀐 게 아니라 싹 바꿨군.”
후반전을 뛰기 위하여 그라운드에 오른 신생팀을 보며 정책기획관이 말했다.
“최전방에 연태민 일병을 세웠고, 그 밑으로 수도군단의 장만식, 그리고 미들진으로 통신대대 거구의 체격을 지닌 마철수와 작은 체격 설태식, 이민철과 지형구. 포백으로 서민후와 장형도, 민철환을 교체하였고, 전반전에 나왔던 우근우를 중앙수비에 그대로 두었군. 그리고 골키퍼는 용지현으로 바뀌었고.”
역시 놀라운 기억력이었다. 부대장은 그의 기억력에 다시 한 번 감탄하였다. 자신은 자신의 손에 들린 프로필 기록을 보면서도 얼굴이 매치가 되지 않았지만, 정책기획관은 진정 23명의 장병들을 모조리 기억하고 있는 것이었다.
새로 기용된 선수들의 포지션은 물론, 전반에 뛰었던 선수들이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 소위의 제 2안은 어떤 내용인지 볼까?”
그리고 다시 느긋하게 몸을 뒤로 앉힌 후, 팔짱을 끼고 후반전을 관전하기 위한 자세를 취하였다.
후반전 시작과 함께 2군 팀의 맹공이 이어졌다. 전반전과 달리 공격적으로 임하는 그들은 아주 빠르게 진영을 파고들었다.
“반대!”
오른쪽 사이드로 공을 몰고 가던 중, 수비수와 미들진이 협공을 펼치자, 왼쪽 사이드에서 큰 소리가 들렸고, 그 즉시 공은 아주 넓게 뻗어나가며 정확히 반대 자리에 위치한 선수에게 패스가 이어졌다.
모두가 오른쪽에 시선이 있을 때, 왼쪽으로 공격성향이 바뀌자 그를 향해 왼쪽 진영을 커버하고 있던 수비가 붙었지만, 공은 이내 중앙으로 곧바로 띄어졌다.
하지만 중앙 수비를 맡고 있던 우근우가 먼저 공을 걷어냈고, 그 공은 다시 2군 팀 미들진에게 연결되었다.
'펑!‘
골대와의 거리는 약 25미터 정도였다. 그 거리에서 2군 팀의 미드필더가 아주 강하며 정확한 슛을 날렸고, 공은 골대를 향해 굉장한 회전을 보이며 날아가고 있었다.
“골인이다!”
진정 골인이라 모두가 생각하였다.
‘탁!’
“!!!”
하지만 그 공은 정확히 용지현의 손에 잡혔다. 그것도 아주 빠르고 강한 회전을 하며 날아온 공을 용지현은 몸을 날려 두 손으로 캐치하고 땅에 떨어졌다.
“역시.”
모두가 놀랐지만, 정책기획관과 부대장은 놀라지 않았다. 용지현의 실력을 본 기억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보통은 그 거리에서 굉장한 스핀으로 날아오는 공을 잡아내기보다는 쳐 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용지현은 쳐내는 것보다 잡아내는 경향이 더 많았다.
“괴물이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한 말이었다. 골키퍼 용지현의 실력은 이미 프로무대에서도 충분히 인정될 실력이었다.
한 골과도 같은 기회를 놓쳤다. 2군 감독은 물론, 선수들도 용지현에게 놀랐다. 모두가 골이라 여겼던 공을 막아낸 것에 멍하니 용지현을 보고만 있었다.
용지현은 공을 잡고 일어선 후, 멀리 보았다. 그리고 정확히 전반전 추강이 섰던 자리에 있는 장만식에게 공을 던졌다.
“뭐야!”
용지현에 관한 놀라움은 끝이 없었다. 공을 찬 것이 아니라 던진 것이 거의 중앙선까지 날아갔고, 정확히 팀원에게 전달된 것이었다.
모두가 멍하니 그 광경을 보고 있을 때, 공을 받은 장만식은 그대로 돌진하였다.
큰 덩치에 우락부락한 그가 움직이자, 2군 팀은 쉽게 그를 막을 자세를 취하지 못하였다. 장만식은 거의 뻥 뚫린 듯 한 상대진영을 그대로 진격하였고, 곧 오른쪽 사이드로 파고들고 있던 마철수에게 공을 뿌렸다.
마철수는 공을 잡자마자, 그대로 대각선에 자리한 골대를 향해 빠르게 움직였고, 그가 몰고 오는 공을 뺏고자 수비수가 붙었지만, 수비수 가랑이 사이로 공을 살짝 보낸 후, 다시 공을 잡았다.
‘펑!’
그리고 그 즉시 아주 강한 슛을 질렀다.
“철렁!”
“미치겠네!”
대각선 45도. 공격진이나 미들진등. 슛에 자신감이 있는 선수들이 좋아하는 각도였다. 골대를 앞에 두고 45도 각도에서 내지르는 공은, 골대의 양쪽 어디로 향하던 그 빈 공간이 비슷하게 느껴진다. 대부분이 골대 반대방향으로 슛을 지르지만, 골키퍼도 그 방향을 잘 알고 있기에, 안쪽 방향으로 차는 경우도 꽤 많다.
그리고 마철수가 찬 공은 골대 안쪽이었다.
후반 시작 후, 줄곧 공격을 하고 있던 2군 팀은 단 한 번의 역습에 의해 한 점을 다시 내어주었다. 마철수의 우락부락한 덩치에서 나오는 슛은 그의 체중을 더하여, 아주 빠르고 정확하게 날아갔기에, 2군 팀 골키퍼가 손 쓸 틈이 없었다.
이로써 스코어는 3대 1이 되었다.
“역시 그냥 63만 군인들을 대표하여 차출된 놈들이 아니네. 실력이 월등해.”
서서히 신생팀으로 응원구도가 바뀌고 있는 추세였다. 2군 감독은 간부나 장병들의 말을 들으며, 인상을 찌푸렸지만, 세령의 표정은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다시 경기는 재개되었고, 별다른 공방 없이 어느새 시간은 흘러 남은 시간은 10여분이었다.
“10분 안에 두 골을 넣을 수 있을까?”
부대장은 은근히 2군 감독을 압박하는 듯, 그가 들릴 정도로 말했다. 그러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2군감독이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2군 팀은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격은 쉽지 않았다. 골대 근처까지는 가도, 골문을 열 수 없었다.
철벽 수문장 용지현을 뚫을 말한 히든카드가 없었다. 페널티박스 안에서 내지른 빠른공도 용지현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 진정 괴물이라는 칭호는 용지현을 두고 나온 말인 듯하였다.
“삐익~삐익~”
전, 후반 90분의 경기가 끝나는 휘슬이 울렸다. 스코어는 3대1. 용지현이 골문을 지키고 있던 후반전에는 단 한 골도 넣지 못한 2군 팀이었다.
만약 보통의 골키퍼였다면 충분히 세 골 이상은 들어갔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용지현의 손에 잡혔다.
“고생했어.”
경기가 끝나고 두 팀은 서로에게 인사한 후, 승자는 환호성을 지르며 감독에게 달려갔고, 패자는 고개를 숙인 채, 감독을 향해 걸어갔다. 세령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이들을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이소위…….역시 사람을 홀리는 뭔가가 있는 사람인 듯 하지 않은가?”
정책기획관은 이세령의 밝은 미소를 보며 말했고, 그의 말에 부대장이 세령을 보았다. 진정 아름다운 미소란 그녀의 미소를 보고 나온 말인 듯 보였다.
“수고했네. 이소위…….아니 이감독.”
곧 정책기획관은 승리의 기분을 만끽하고 있는 그들의 곁으로 다가간 뒤, 이세령을 보며 말했다.
“충성. 언제 오셨습니까?”
세령은 그가 관전중인 것을 모르고 있었다.
“경기를 모두 보았네. 단 하루 만에 어찌 이런 결과를 만들었는가?”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모두 이놈들이 한 것입니다. 스스로 대화하며, 스스로 판단하여 내린 결정대로 스스로 움직여서 얻어낸 결과입니다.”
세령은 승리의 일등공신을 선수들에게 돌렸다.
비록 공식적인 경기도 아니며,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경기도 아니었지만, 스포츠에서의 승리는 그 어떤 경기든 짜릿 한 기분을 선사하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전반전과 후반전 전술의 차이가 있었나?”
정책기획관이 다시 물었다.
“별다른 것은 없었습니다. 선수들을 고루 기용하여, 그들에게 맞는 포지션을 주고자 한 경기였습니다. 다행히 서로가 원하는 위치에 잘 섰고, 그 원하는 위치에서 자신들의 기량을 모두 발휘한 것뿐입니다.”
여전히 선수들에게 모든 공을 돌리고 있었다. 정책기획관은 그녀를 보며 손을 내밀었다.
“이 내용은 국방부장관께 알릴 것이네. 그리고 첫 단추…….잘 꿰어주길 바라네.”
그의 말에 세령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고, 관전한 모든 사병들과 간부들도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잘하더군.”
그리고 곧 그녀의 옆으로 장소령이 다가서며 말했다.
“훌륭한 심판을 두어 승리한 것 같습니다.”
“아부는 금물이야. 배고프니 밥이나 먹으러가자.”
그는 세령의 말에 배를 만지며 말했다. 아직 석식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배를 부여잡고 그 즉시 식당으로 향하는 듯하였다.
부대장의 장난과도 같은 말로 인하여 얼떨결에 성사된 경기였지만, 꽤 좋은 결과를 얻어낸 경기였다.
모두가 삐딱선을 타기 전, 단합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었고, 그 결과를 승리로 장식하니, 이들의 단합은 더 빨리 찾아와 정착할 것으로 보였다.
모두가 표정이 밝았다. 웃으며 숙소로 향하였고, 서로가 조금 전 있었던 경기에 대해 연신 대화하고 있었다.
“너희들 뭐야…….어째서 다 이 모양이야! 그러고도 1군으로 올라가려는 생각들을 한 것이냐! 오늘 있었던 경기의 내용을 1군 감독에게 모두 말할 것이다. 너희들! 당분간 1군 진출은 꿈도 꾸지마라!”
밝은 표정의 신생팀과는 완전 다른 분위기를 보이고 있는 2군이었다.
2군 감독은 씩씩거리며 선수들에게 질타하고 있었고, 선수들은 숙인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있었다.
모두가 프로생활을 한 번씩은 경험한 선수들이다. 국방의 의무를 하기 위하여 상무에 입단하였지만, 그 전에는 학교에서, 또는 소속된 구단에서 뛰었던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보기 좋게 패배를 당했다. 축구란 이런 것이었다. 월등한 강자도 없다. 그렇다고 무시할 약자도 없다. 공은 둥글며, 그 공은 어디로 향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다.
세령을 포함하여 코치진은 모두 간부식당으로 향하였고, 사병들은 사병식당으로 향하였다.
모두가 오후에 있었던 경기로 인하여, 기분이 들 떠 있었지만, 식당으로 가는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다.
바로 어제 겪은 일종의 텃새 때문이었다. 단 두 번의 식사를 경험하며, 세령은 불편한 자리를 경험하였다. 그건 사병들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직접 다가서며 눈치 주는 사병들은 없었지만, 그들의 눈빛은 실로 따가웠던 두 번의 식사시간이었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두 번의 식사. 어제와는 여유가 있는 식사를 마쳤지만, 그렇다고 편한 식사를 즐긴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