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리거-46화 (46/163)

00046  히든리거  =========================================================================

“좀 전에 도착했는데, 운동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어 와 본 것이야. 그런데 무슨 경기인가?”

정책기획관은 아직 이 경기의 내용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부대장은 그에게 오전에 자신이 저지른 범행에 대해 말해주었다.

“아무리 그래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좋은 경험이라 생각들 할 테니, 그냥 기획관님께서는 마음 편히 축구경기나 관람하시면 됩니다.”

정책기획관도 부대장의 이런 장난끼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장소령이 말했듯이, 패하는 쪽은 진정으로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는 위험한 경기이기도 하였다.

“두 팀이 입장하겠습니다.”

군인은 역시 칼이었다. 정확히 오후 두 시에 두 팀의 입장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이 방송 역시 장내 마이크를 이용하여 고태환이 방송하고 있었다.

고태환의 방송 안내에 따라 두 팀이 일렬로 서서 운동장에 들어서고 있었다.

“이소위가 선수 배치를 어찌 하였는지 궁금하군.”

정책기획관은 신생팀이 만들어진 후, 처음 보는 경기였다. 이는 그 뿐만 아니라, 여기에 모인 모두가 처음 보는 경기였다. 그리고 23명의 인재를 어디로 어떻게 잘 맞게 배치시켰는지, 궁금하였다.

각 팀의 11명의 선수가 서로 중앙선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섰다.

두 감독도 선수들과 함께 나란히 마주보고 서 있었다.

상무2군 팀은 부대 내에서 어느 정도 안면이 있기에 그들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경기 시작 전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들리지 않습니까? 이 목소리가 곧 우리 팀에게 승리를 주겠다는 암시이기도 합니다.”

2군 감독은 부대원들의 응원소리를 들으며, 세령을 보고 말했다.

“홈그라운드라고 무조건 이긴다는 법은 없습니다. 특히…….둥근 공을 차는 축구에서는 말이죠.”

세령은 그의 말을 들은 후, 해맑은 미소와 함께 답해주었다. 순간 감독은 그녀의 미소를 보고 자칫 찌푸린 표정을 풀 번 하였다.

“어디 얼마나 대단한 놈들이 모였는지, 구경이나 한 번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시죠. 저도 2군 팀에서 배울 것이 있다면, 충분히 배우고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세령은 그의 말을 들은 후, 특히 2군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하며, 그의 심기를 살짝 긁어 놓았다.

“선수들 앞으로.”

그리고 운동장에는 세령의 귀에 익숙한 한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장소령이었다. 그가 입에 휘슬을 물고 서서 선수들을 더 가까이 다가서도록 만들고 있었다.

“저 분은…….”

“우리 체육부대의 모든 행정을 책임지시는 분이시지. 딱 봐도 행정보급관 같이 보이지 않나?”

세령은 그의 보직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축구시합의 심판까지 본다는 것은 진정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장소령을 보며 말을 흐리자, 2군 감독은 그와 친분이 두텁다는 것을 과시하듯, 그가 이 부대에서 맡은 보직에 대해 설명하였다.

“시합 시간은 전, 후반 각각 45분 풀타임으로 한다. 친선경기라 시간을 단축하여 짧게 하는 것은 부대 내의 체육대회에서나 있는 법이다. 이곳은 체육 부대이기에, 모든 규칙은 국제 법에 의거하여 진행한다.”

말은 거창하였다. 국제심판의 자격증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두 팀의 선수들을 세워두고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프로필을 보니, 신생팀은 일병과 이등병을 고루 배치한 모양입니다.”

부대장이 신생팀의 프로필을 열어본 뒤, 그들의 얼굴과 각기 포지션에 서 있는 선수들을 대조하며 말했다.

“아마 이소위는 모든 선수들에게 고루 기회를 줄 것입니다. 각 선수들에게 각 포지션을 모두 맡도록 해 줄 것이고, 그 포지션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 그 자리 주인이 되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부대장은 계속하여 정책기획관을 보며 홀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정책기획관은 그의 말에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은 채, 운동장에 들어선 선수들을 보고만 있었다.

“최전방에 원톱으로 선 인물은 이태성이고, 그 아래로 추강이 쉐도우를 섰군. 양 사이드를 책임질 인물로는 오른쪽에 마형식과 왼쪽에 서민구. 그 아래로 우동화와 전철민이고 포백 라인에는 여민호와 장강식, 우근우와 구민철이 섰고, 수문장은 이철호가 섰군.”

연신 신생팀의 프로필을 열어가며, 선수들 얼굴과 대조하던 부대장과는 다른 정책기획관이었다, 그는 그라운드에 올라 선 11명의 선수들을 보며 정확히 이름과 포지션을 모두 말하고 있었다.

“그걸…….다 외우셨습니까?”

“내가 벌인 일인데, 당연하지 않나. 적어도 어떤 놈을 뽑았고, 어떤 놈이 어디에 서는지는 알아야하지.”

부대장은 그를 빤히 보았다. 자신도 이 일에 발 벗고 나선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렇지만 젊고 시커먼 사내들의 외모를 단 기간에 보고 외우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정책기획관은 그들의 이름은 물론, 각기 부대 내에서 맡았던 포지션까지 줄줄이 꿰고 있었다.

“4-5-1 전술이군. 이소위가 3소대를 이끌 때 사용하던 전술과 동일하지.”

부대장은 다시 운동장을 보았다. 그리고 지난 날, 체육대회 때 3소대의 진형을 떠 올렸다. 정확히 지금과 일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문장에 용지현이 아닌 11사단 이철호를 둔 것은 의외군.”

부대장은 다시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사실 자신은 이철호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하였다. 오로지 용지현이 뛰어난 선방으로 경기를 치렀다는 것만 기억에 남았다. 하지만 정책기획관은 용지현은 물론, 약 6개월 전에 11사단 신병이었던 이철호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자! 다들 실력 발휘를 해라!”

2군 감독이 큰 소리로 외쳤고, 그 즉시 그라운드에 오른 상무2군 팀은 힘찬 함성으로 그의 말에 답하였다.

“국민들의 세금이다! 헛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줘라!”

이어서 태영훈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의 목소리에 그 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보았다. 하다하다 세금으로 파이팅을 유도하는 경우는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잘했어. 동기부여는 확실해.”

자신을 향해 집중 된 수많은 눈들에 의해 고개를 숙이려던 그의 턱을 잡으며, 세령이 말했다. 그리고 다시 그의 고개를 들게 만들어 주었다.

‘삐~익!’

이윽고 장소령의 입에 물린 호루라기에서 휘슬소리가 울렸다.

선축은 상무2군에서 시작하였다. 그들은 공을 잡아 뒤로 돌리며, 신생팀의 움직임을 체크하기 시작하였다.

최전방에 서서 그들이 돌리고 있는 공을 따라 움직이는 이태성. 그들의 움직임은 과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느슨하지도 않았다. 아주 적당한 움직임으로 공을 돌리고 있는 상무2군 팀을 향해 가벼운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긴장하지 말고! 한 방에 한 골씩 넣어라!”

2군 감독이 큰 소리로 외치자, 그 즉시 2군 팀의 공격이 서서히 시작되었다.

빠르게 패스가 연결되며, 상대진영으로 들어서고 있었고, 그들을 밀착마크하기 위하여 왼쪽 윙을 맡고 있는 서민구가 다가섰다.

하지만 공은 곧바로 다시 중앙으로 뿌려졌고, 중앙으로 빠르게 들어선, 상무2군 팀의 선수가 공을 받은 후, 자신의 앞에 있는 추강을 보았다.

“그 몸으로 축구가 되긴 되냐?”

그는 추강에게 인신공격을 하였다. 하지만 추강은 오히려 그에게 미소를 지었다.

“이게 미쳤나?”

“축구는 머리에서 내린 명령으로 발이 그 명령을 수행하는 운동이지…….입이 하는 운동이 아닙니다.”

“!!!”

순식간이었다. 추강의 몸을 보고 인신공격을 하였지만, 육중한 몸에 의해 둔할 것이라 믿었던 그가 어느새 발아래 있던 공을 낚아채며 말했다.

그의 몸에 맞지 않은 행동을 보며, 관중석에 앉은 모두가 놀란 눈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기까지 하였다.

추강은 인터셉트한 공을 곧바로 오른쪽 윙어인 마형식 일병에게 연결하였다.

마형식은 공을 받은 후, 중앙을 보았다. 이태성이 빠르게 들어서고 있었지만, 이미 수비수 두 명이 그의 옆에 바짝 붙어 있었다.

역습이 여의치 않아 공은 다시 뒤로 돌아섰다. 마형식을 공을 받은 오른쪽 수비수 여민호 일병이 다시 공을 중앙수비수인 우근우에게 주었다.

2군 팀 공격수는 이태성과 마찬가지로 적지에서부터 압박을 가하고자 바짝 붙고 있었고, 의외로 공은 빠르게 포백라인을 타고 정확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오늘 처음 발을 맞춰본 선수들이라고는 믿기 힘듭니다.”

부대장은 그들의 패스를 보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패스는 아주 정교하였다. 그리고 상대공격수의 체력을 빼앗기 위한 듯 아슬아슬한 거리를 두고 패스를 이어하고 있었다.

이태성은 상대진영에서 내려오지 않았고, 처진 스트라이커로 있는 추강이 천천히 상대진영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아주 빠르게 양쪽 윙어들이 중앙선을 넘어 움직였고, 그들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2군 팀의 수비라인이 엉키고 있었다.

공은 중앙 미드필드를 책임지고 있는 전철민 일병에게 있었고, 그는 곧바로 두 윙어의 빠른 움직임에 맞추어 공을 띄웠다.

상대진영을 넘어선 공은 상대진영 왼쪽 라인을 타고 움직이던 마형식에게 전달되었다. 마치 설태구가 지난 날, 아주 먼 거리에서 지동현에게 공을 뿌려주었던 것을 연상케 하였다.

공을 잡은 왼쪽 공격형 윙어인 마형식은 그대로 치고 올랐다. 원 톱인 이태성은 이미 페널티 박스 안에 있었고, 그 뒤로 오른쪽 윙어인 서민구가 반대방향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마형식은 자신 앞에 있던 수비수를 본 뒤, 다시 골대 앞을 보았고, 곧 앞에 있던 수비수를 훼이크로 쉽게 따돌린 뒤, 곧바로 센터링을 올렸다.

“어림없지!”

공은 페널티 박스 중앙으로 아주 높고, 천천히 날아갔고, 2군 팀 골키퍼가 정확히 공이 떨어지는 낙하지점을 향해 뛰어올라 한 손으로 공을 쳐 냈다.

하지만 공은 사이드가 아닌, 중앙으로 다시 뻗어나갔고, 그 공을 추강이 바로 잡았다.

추강은 골문을 향해 보았다. 골키퍼가 골문을 비워놓고 나온 상태라 골문이 너무나 넓게 보이고 있었다.

추강은 공을 잡고 앞으로 툭 밀어 찼고, 그 즉시 천천히 굴러가는 공을 보며 몇 발 앞으로 내딛은 뒤, 강한 슛을 날렸다.

“어라…….”

“역시…….오합지졸이 뭘 하겠어!”

너무 긴장한 탓일 수도 있었다. 평소 정확한 슈팅으로 유명한 추강이 찬 공은 골대를 훨씬 뛰어넘어, 장외홈런을 만들었고, 스스로도 놀라 짧은 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2군 감독은 추강을 보며 배꼽잡고 웃었다.

“너무 힘주지마라. 그러다 똥 나온다.”

그의 홈런을 보며, 옆을 지나가던 2군 팀 공격수가 비웃으며 말했다.

추강은 그의 말을 들은 후, 페널티 박스 안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이태성을 보았다. 그리고 열심히 뛰어 올라왔던 양쪽 윙어들을 보았다. 미안하였지만, 모두가 매서운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어, 미안하다는 손짓조차 할 수 없었다.

멍하니 서서 있을 때, 2군 팀 골키퍼가 공을 길게 찼다. 공은 중앙선을 넘어갔고, 원바운드 된 뒤, 2군 팀 미드필드의 발아래에 멈추었다.

“패스 정교하지?”

2군 팀 감독은 골키퍼가 찬 공이 정확히 자기 선수에게 전달되자, 어깨에 힘을 주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에 아무도 대꾸가 없었다, 그저 홀로 잔득 힘을 주며 말하고 있었다.

공을 잡은 2군 팀 미드필드는 수비를 등지고 좌우를 살폈다. 그리고 빠르게 진영을 파고드는 오른쪽 사이드로 공을 뿌렸고, 정확히 패스가 이어졌다.

이에 2군 팀 감독은 또 다시 어깨에 힘을 주며, 두 주먹까지 불끈 쥐고 세령을 향해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세령은 그의 행동을 무시하는 듯, 보지 않고 있었다.

오른쪽 사이드 구석까지 공을 몰고 간 2군 팀 윙어는 골대 앞을 본 후, 그대로 센터링을 올렸다.

“사람을 막아!”

이태성이 큰 소리로 외쳤다.

“철렁.”

“하하하. 이게 바로 프로무대를 원하는 내 새끼들의 실력이다!”

이태성의 말에도 사람을 놓쳤다. 수비수들이 일제히 공격자들을 마크 하였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빨랐다. 센터링으로 올라온 공의 낙하지점을 정확히 파악하며 뛰어오른 공격수의 머리에 공이 걸렸고, 그 공은 골대 모서리로 그대로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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