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7 히든리거 =========================================================================
“그럼…….제가 정말…….감독으로…….”
“내일. 아침 일찍 국방부에서 차가 올 것이다. 너와 함께, 추강이병, 설태구이병, 용지현이병도 합류한다.”
모두 3소대였다. 꼴통 소대의 대이변이 일어난 순간이었다. 하지만 문제도 있었다. 3소대에서 전출자가 또 다시 생기는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비록 사고나 사건으로 인한 전출은 아니지만, 남아있는 그들에게 아픈 기억이 다시 되살아날까하여 걱정되었다.
“모두…….3소대의 인원입니다.”
세령이 생각하고 있는 부분을 최태윤이 말했다.
“그렇지. 모두 3소대지. 그러니까…….왜 체육 대회 때 그리 잘 한 것이냐. 다른 소대들처럼 차라리 병장이나 상병이 잘 했으면, 차출이나 되지 않지, 이제 새파란 이등병 딱지 달고 있었던 놈들이 그리 날아다녔으니, 국방부에서 가만히 둘 것이라 여겼는가?”
왜 모두 3소대였는지 알 수 있었다. 체육대회 때, 뛰어나다는 신병들이 모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실력 발휘를 할 만큼 경기에 투입되지 못했었다.
하지만 3소대의 신병 세 명은 달랐다. 그들은 결승까지 올랐다. 그리고 자신들의 취약한 부분을 그 짧은 시간에 모두 극복하며, 최고의 실력을 뽐냈다.
당연히 관계자의 눈에 쏙 들었을 것이며, 이등병이기에, 더 오랫동안 선수로 뛸 수 있다는 최고의 장점까지도 보유한 그들이었다.
“알겠습니다.”
세령은 진정으로 기뻤고, 설렜다. 하지만 겉으로 표출할 수 없었다. 자신을 생각하는 이해석의 마음을 이미 본 것이었다.
그 마음을 보았기에, 쓴 표정으로 앉아 있는 그의 앞에서 철없는 딸로 보이기 싫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하였고, 대대장실을 나섰다.
“얏호!”
“…….”
철없는 딸은 딱! 대대장실 안에서 까지였다. 대대장실을 나서자마자, 최태윤이 옆에 있는데도, 폴짝 폴짝 뛰며 환호성을 질렀다.
“저…….목소리가 나에게 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이해석은 우울하였다. 아주 급하게 우울해지고 있었다. 당장 내일부터 세령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그 우울함은 LTE급으로 그의 가슴속을 후벼 파고 있었다.
최태윤은 두 사람의 심정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여성의 몸으로 군대스리거들을 이끌고, 거친 프로무대를 정복하려 한 그녀의 마음과, 하나밖에 없는 딸을 눈앞에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에 슬픔을 간직한 이해석. 그 두 사람의 마음을 모두 알고 있는 인물은 최태윤 밖에 없었다.
“어이! 꼴통 3총사!”
세령은 이 기쁜 소식을 그 누구보다 먼저 전해주고 싶었고, 대대장실에서부터, 가볍게 몸을 폴짝 거리며, 3소대에 들어서자마자, 추강과 설태구, 용지현을 불렀다.
“무슨…….좋은 일이라도 계십니까?”
그녀의 촐랑거림을 보고 지동현이 물었다. 이래저래 지동현도 이제 말년 티가 나고 있었다.
“지동현.”
“병장…….지동현.”
“좀…….그 뭐냐. 무게 있게 해 봐라. 중저음의 목소리에 기분 좋게 활짝 웃으며 관등성명을 말해봐.”
지동현은 인상을 구겼다. 다짜고짜 애교를 떨어보라는 말과 다를 것이 없었다.
“어서!”
하지만 그녀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모든 소대원들이 지동현의 애교를 보려 세령의 뒤쪽으로 몰려들었다.
“원위치…….”
하지만 악마의 성격을 이어받은 지동현에게 그 행동은 용납되지 않았다. 그의 날카롭고 매서운 한 마디에, 소대원들은 다시 처음 자신들이 있는 자리로 후다닥 움직였다.
“병장~. 지. 동. 현”
지동현은 잠시 주위의 소대원들을 본 후, 다시 시선을 세령에게 주었다. 그리고 말을 길게 늘어트리며, 자신의 이름을 한 글자씩 또박또박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그의 행동에 세령은 갑자기 웃음이 터졌고, 이내 배꼽까지 부여잡으며 깔깔거렸다.
“지금…….소대원 데리고 장난하셨습니까?”
악마의 표정이 다시 나왔다. 지동현의 날카로운 눈빛과 이를 가는 듯 한 음성. 그의 목소리에 3소대원들은 모두 관물대를 향해 시선을 돌렸고, 뭔가의 일거리를 찾는 듯, 이리저리 바삐 움직였다.
하지만 세령은 여전하였다. 그의 매서운 눈빛을 보고서도 다시 웃었다.
“아 참. 내가 여기에 온 이유가 있지.”
한참을 웃고 난 후, 진정이 되었는지, 눈에 맺힌 눈물마저 닦아내며 말했다.
“너희 3명. 내일부터 나와 국군체육부대로 전출이다.”
“!!!”
세령은 너무나 밝은 어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그 한마디에 3소대원 전원이 모두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하루아침에 날벼락이란 말이 딱 이때라 여겨졌다. 지금까지 길지 않았지만, 함께 웃으며 지내온 사이였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작별하는데, 저리 웃는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슨…….말씀이십니까?”
지동현이 신중하게 물었다.
“전출이라고, 국군체육부대로…….저 세 명과 나. 이렇게.”
말을 듣지 못하여 다시 물은 것이 아니었다.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여 물은 것이었다.
“체육 대회 때 의외로 많은 관계자가 본 모양이야. 그리고 이번에 창단되는 국군 클럽에 우리 3소대에서 꼴통 신병 세 명이 나란히 뽑혔다.”
그것은 축하할 일이었다. 모두가 박수를 보냈고, 웃어주었다.
“그렇다면, 저 세 놈만 가야지, 왜 소대장님까지 함께 전출을 가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지동현이 다시 물었다.
“나? 난 선수가 아닌…….감독으로 간다. 국군축구클럽 초대 감독. 그게 나야.”
“!!!”
그녀의 말은 지동현의 심장을 모두 파헤쳐 버리는 듯 한 말로 들렸다.
이제 자신도 제대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자신이 먼저 등 돌려 가고파 하였었다. 하지만 세령이 먼저 돌아서는 것이었다.
기분이 울적하여 3소대원들 전원이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해석도 마찬가지였다. 당장 아침에 눈을 뜨면, 이세령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여지없이 시간은 지나갔다. 아침 기상 나팔소리가 들렸고, 이해석은 충혈된 눈으로 관사를 나섰다.
3소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지동현을 비롯하여 소대원들 대부분이 밤잠을 설친 듯, 붉게 충혈된 눈으로 아침점호를 받고 있었다.
“잘 잤다.”
하지만 세령은 아니었다. 3소대장으로 임명받아 부대에 온 이후로, 가장 편한 꿀잠을 잔 듯, 개운하게 기지개를 피며, B.O.Q를 나서고 있었다.
“좋아 보이네.”
곧 그녀의 뒤로 소재은이 함께 나서며 말했다.
“네. 상쾌합니다.”
“서운한데. 비록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있는 정, 없는 정 다 들었는데, 너무 마음 편히 가는 것 아냐?”
소재은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녀의 밝은 표정을 두고 한 말이었다. 하지만 세령의 마음은 겉모습과는 달랐다.
자신마저 우울한 표정을 지으면, 작별이라는 아주 큰 아픔을 앞두고 있는 모두에게 더 큰 아픔을 주는 것이라 여기고 있기에, 겉모습만이라도 밝게 보이려 한 그녀였다.
조금이나마, 아픔을 덜 하기위해서는 보내주는 사람과, 가야하는 사람들 중, 단 한쪽이라도 미소를 보여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미소를 세령이 보여주려 하였다. 그녀의 미소에 우울해야 할 모두가 미소를 지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점호가 끝나고 간단히 중대막사 인근 청소를 한 후, 아침 식사 집합을 하였다.
“지동현. 오늘은 내가 인솔한다.”
지동현이 3소대원을 이끌고 식당으로 향하려 할 때, 그의 뒤에서 세령이 말했다.
소대원들 모두가 그녀를 보았다. 중대원들 모두도 그녀를 보았다.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이제 이세령이란 여인은 이곳에 없게 되는 것이었다.
“자! 3소대! 전원 식당 앞으로 가!”
세령의 힘찬 목소리에 소대원들의 발걸음이 움직였다. 하지만 모두의 시선은 그녀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해맑은 미소 속에 감춰진 그녀의 마음을 보고 싶은 듯, 단 한시라도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세령은 소대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였다. 사병식당에서 먹는 마지막 식사이며, 소대원들과 먹는 마지막 식사였다.
“나를 보고 싶다면, 제대한 후, 아니면 휴가 나와서 국군체육부대로 찾아와라. 그러면…….이 예쁜 나를 언제나 볼 수 있다. 하하하.”
식사를 끝낼 쯤, 세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말했다. 언제나 들리던 그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비록 해맑고 아무런 걱정이 없는 듯 하게 말하였지만, 그녀의 어투는 떨렸다.
“잘 가고, 이왕 하는 것이니, 3소대처럼 대이변을 창출해.”
국군체육부대에서 차가왔다. 그녀와 세 명의 이등병을 기다리고 있는 차량이었다.
서재호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다. 그리고 세 명의 이등병에게도 말했다. 반면에 자신이 직접 선출한 축구천재라 자부하였던 신병들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자주 갈게.”
이어 소재은이 말했다. 그 어떤 장교보다 가장 빨리 그녀와 친해진 인물이 소재은이었다.
그녀도 세령과 마찬가지로, 작별에 대한 표정은 없었다. 맑은 표정으로 웃으며 말하였고, 두 여인은 서로 안아주었다.
곧이어 3소대원 전원이 그녀의 앞에 섰다. 그리고 힘차게 경례하였다.
“지동현. 제대 미리 축하하고, 시간나면 놀러와라.”
세령은 가장 앞쪽에 선 지동현을 안아주며 말했다.
“사내자식 마구 안아주는 버릇은 고치십시오. 이제 전국 63만 군바리들에게 소문이 쫙 퍼졌을 테니, 이 놈, 저놈 다 축구한답시고 모여들지 않겠습니까?”
지동현은 그녀에게 안긴 채, 일종의 질투심이 느껴지는 듯 한 어투로 말했다.
“그래. 그 놈들도 안아달라고 아우성을 부리겠지, 하지만…….내가 아무나 안아주는 성격은 아냐. 난…….내 자식만 안아준다.”
그녀는 지동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제 그녀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도 마지막이었다. 처음에는 싫었지만, 이제는 모두가 바라는 그녀의 손길이기도 하였다.
짧은 인사를 나눈 뒤, 네 사람은 차량에 승차하였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차량은 위병소를 통과하였고, 단 1분 만에 대대를 완전히 벗어나버렸다.
“서운하십니까?”
이해석은 대대장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옆에 섰던 최태윤이 물었다.
“잘 하겠지?”
“이 소위의 성격상. 중도 포기는 없으니, 꼭 결과를 만들지 않겠습니까? 비록 그 결과가 좋던 나쁘던. 이미 모든 결정은 난 것이며, 그녀를 믿고 맡길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최태윤의 말이 맞는 말이었다. 이제는 결과만이 모든 것을 말해주게 된다. 감독직에서 해임되던, 유임되던, 그것은 오로지 이세령의 몫으로 남아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