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리거-36화 (36/163)

00036  히든리거  =========================================================================

“앞으로 제대할 놈들이 수두룩한데, 고작 한 놈 보내고 이러면 어째.”

소재은이 그녀를 안아주며 말했다. 남자 소대장이라면, 웃으며 소대원을 보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의 마음은 다르다.

자신이 소대장으로 임명된 후, 처음으로 소대원을 제대시키는 기분은…….슬펐다.

또 다시 일주일이 지났다. 이제는 또 다른 아들을 보내주어야 한다. 이민우였다.

이민우도 신고를 마치고, 대대를 벗어나는 동안에 역시 세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또 다시 퉁퉁 부은 눈을 하고 있었고, 그 때도 소재은이 그녀를 안아주었다.

9월 중순. 이제는 가을이 다가서는 듯, 부대 내에서도 울타리속 겨울이 찾아오고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부대를 벗어나면, 한겨울에도 봄처럼 따뜻하지만, 부대 내에서는 봄, 가을에도 한 겨울의 추위를 느낀다.

“전진!”

무더위와 쌀쌀함이 공존하는 듯 한 9월 중순의 수요일. 전투체육을 즐기고 있을 때, 위병소에서 우렁찬 경례소리가 들리고, 모두의 시선이 위병소로 향하였다.

“별이…….두개네…….”

별 두 개가 시뻘건 번호판에 떡하니 붙은 채, 1호차라고 선명히 보이는 차량이 대대막사로 곧장 들어서고 있었고, 연병장에서 전투체육을 즐기기 위하여 나와 있던 대대원들이 멍하니 서서 말했다.

“전진!”

대대 막사 앞에 도착한 차량에서 내리는 인물은 역시 사단장이었다. 그를 보며 연병장에 있던 모든 대원들이 경례하였고, 사단장은 간단히 경례를 받은 후, 행정반으로 향하였다.

“연락도 없이 찾아오시니…….”

이해석이 사단장의 방문소식을 듣고, 관사에서 후다닥 달려갔다.

“이미 소식은 들어서 알 것이네. 국방부에서 승인이 났고, 팀 결성에 대한 모든 준비도 마무리가 되었네.”

그 내용은 이미 며칠 전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토록 급히 사단장이 운전병만 거느린 채, 대대를 방문하는 것은 특히 이례적이었다.

“내일. 정책기획관이 따로 말 할 것이지만, 내가 급히 4대대를 찾은 이유는 15중대 3소대장 때문이네.”

이해석은 사단장의 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설마 세령을 선수로 뛰게 하려는 속셈인지 겁부터 난 것이었다.

“3소대장을…….왜…….”

이해석은 군인답지 않게 말을 얼버무리며 물었다.

“창단을 하게 되면, 선수가 필요하지, 그리고 의료진과 코치진도 필요하네.”

“네. 그건 잘 알고 있습니다. 혹여…….3소대장을 선수로…….”

“무슨 말인가? 총알이 날아오고, 전우를 도와야 하는 전쟁터라면 상관없겠지. 하지만 총성 없는 전쟁터인 남자들의 프로무대에 어찌 여인을 올리겠는가?”

이해석은 더욱 더 심장이 빨리 뛰고 있었다. 선수가 아니라면, 코치진으로 한다는 말 밖에 남지 않은 것이었다.

어차피 사내들만 득실거리는 부대에 있는 것이지만, 자신의 눈앞을 벗어나서 사내들과 어울리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라 여겼다.

“정책기획관은 물론, 사령관님도 보셨고, 또 한 국군체육부대장도 현장에서 본 3소대장은…….진정한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라 판단하였네.”

“그렇다면…….”

“3소대장. 이세령 소위를 국군 전투축구클럽의 창단 멤버인 동시에, 감독으로 추천한다는 공문서가 이미 국방부에 제출되었네.”

“!!!”

사단장이 대대를 찾아왔다는 소식으로 대대 곳곳에 있던 장교들이 일제히 대대 행정반으로 모이고 있었고, 마지막 사단장의 말에 모든 장교들은 행정반 앞에서 얼어버린 듯, 멍하니 서 있기만 하였다.

“3소대장을…….감독으로…….”

서재호가 넋이 나간 듯, 멍한 눈을 한 채, 홀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연호 2소대장은 그의 옆에서 고를 숙였고, 강찬호는 두 손을 크게 한 번 부딪혔다.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저 강찬호 중위. 사단장님의 의견에 한 표 던집니다.”

역시 무대포 소대장이었다. 사단장의 말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다이아 두 개를 짊어진 젊은 소대장이 큰 소리로 말했다.

“자네들도 모두 같은 생각이라 여기네.”

사단장은 그의 목소리에 행정반 문 앞에 서 있는 장교들을 보았고, 곧 웃으며 말했다.

“정말…….남자들의 프로무대에 여소대장을 감독으로 추천하는 것입니까?”

서재호와 마찬가지로 12중대 화기소대장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다시 물었다.

“이미…….많은 관련자들이 이세령 소위를 초대 감독으로 추천하고 있네. 비단 그녀의 축구 실력만으로 뽑은 것은 아니며, 3소대장이 보여준, 리더십에 더 많은 점수가 부여된 것이었네.”

사단장도 알고 있었다. 진정 사고 소대이며, 꼴통 소대인 3소대를 완전히 변화시킨 사람이 이세령이며, 그녀는 여자지만, 충분히 전국 각 부대에서 모여든, 축구 천재들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물이라 평가한 것이었다.

프로무대에 첫 발을 내딛는 준비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축구협회의 승인과 함께, 국방부 승인이 더해지자, 역시나 군바리 정신으로 모든 것을 빠르게 진행하고 있었다.

“진정. 이 선택에 대한 재고는 없습니까?”

9월 말. 다음 시즌부터 당장 프로무대를 밟기 위해서는 모든 준비가 급했다. 그리고 첫 단추를 잘 꿰어야 뒤탈이 없는 것이었다.

국방부 관계자는 다시 정책기획관이 재출한 기안내용을 보며 물었다.

이미 선수 선발은 국군체육부대장과 함께, 전국 부대를 돌며 선수선발을 마쳤고, 국방부에서 그 선수들에 대한 이의는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감독의 자리에 앉는 이세령에 관한 내용이 국방부 관계자들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었다.

“이미, 실력을 인정받았고, 사고뭉치 군 장병들을 최고의 장병들로 변화시킨 장본인입니다.”

정책기획관은 관계자에게 다시 한 번, 세령의 장점을 어필하였다.

“아시겠지만, 여자축구단이 아닙니다. 진정한 대한민국 최강 군인들만이 모인 클럽입니다. 그 클럽을 지휘할 인물로…….”

“겉만 보시고, 모든 것을 판단하지 마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년입니다. 2년 안에 K리그 클래식 무대를 밟도록 하겠습니다.”

정책기획관은 관계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세령에 대한 강한 믿음을 다시 어필하였다.

그의 말처럼 국군전투축구단은 챌린지 리그부터 시작이다. 첫 창단부터 클래식에서 뛸 수 없었다. 이는 그 어떤 구단도 마찬가지였다.

유럽 최정상의 선수들만을 모아둔 클럽이라 하여도, 구단이 창단되면, 챌린지 무대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2년…….정책기획관께서 그리 자신 있게 말씀하시니, 믿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사람보다, 확인한 사람의 결정이 더 중요하였다.

며칠을 심사숙고하였으며, 감독직에 대한 교체도 생각한 국방부였지만, 정책기획관과 3군 야전사령관의 추천으로 세령이 초대 사령탑에 앉게 되는 것이 결정되었다.

“그리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구단은 나라에서 운영하는 구단과도 같습니다. 즉! 국민들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구단입니다. 부디…….그 세금이 헛되이 쓰이고 있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관계자의 말에 정책기획관의 심장이 꽤 크게 두근거렸다. 그의 말처럼 사업성을 띈 기업이나, 기타 개인이 소유하는 구단이 아니었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만들어지며,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 선수로 선발된 장병들은, 63만 군 장병들을 대신하여 자신들의 특기를 발휘한다. 그리고 오로지 현역 군인들만이 팀에 합류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진행하십시오.”

기다렸던 답변이 이제야 나왔다. 모든 것이 승인 났다고 하지만, 선수단 및, 코치진에 대한 승인은 조율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 단계를 남겨두고 있었고, 조금 전, 그 마지막 단계도 모두 승인이 난 것이었다.

정책기획관은 그 즉시, 사령관과 사단장에게 연락을 취하였고, 사단장은 연대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4대대에 연락하였다.

“알겠습니다…….”

이해석은 사단장의 전화를 직접 받았다.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는 기분이었다.

“지금 즉시…….15중대장과 3소대장을 부르게.”

이해석은 대대장실에 앉아, 당번병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고, 당번병은 그 즉시 중대에 연락을 취하였다.

“전진!”

약 10분 정도가 지난 후, 최태윤과 이세령이 대대장실에 들어섰다.

“앉게나.”

여전히 이해석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필시 건군이례 최고의 이변을 만든 순간이었지만, 유독 이해석만은 표정이 밝지 않은 듯 보였다.

“조금 전. 사단장님께서 연락을 해 오셨네.”

“사단장님께서요? 뭔가 문제라도 생긴 것입니까?”

이해석의 굳은 표정에서 나온 말에, 최태윤도 표정이 굳어지며 물었다.

“세령아…….”

그리고 이세령의 계급이 아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네…….아니. 소위 이세령.”

그의 나지막하며 부드러운 어투에, 세령은 잠시 아버지가 자신을 부르는 듯 한 느낌을 받았지만, 이내 관등성명을 말했다.

“공차는 것이 그리 좋아?”

“즐겁습니다. 그냥…….즐겁습니다.”

이해석은 자신이 원하는 답이 아니었지만,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어주었다.

즐겁다는 말에 더 이상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하나 밖에 없는 그의 핏줄이며, 딸인 그녀가 그 어떤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는데, 굳이 막아설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내일…….국군체육부대로 가거라.”

“네? 잘 못 들었습니다.”

이해석의 힘없는 목소리에, 세령이 다시 물었다.

“내일. 국방부소속 축구클럽 창단이 있을 것이다. 전국 63만 장병 중에서, 축구에 미친 사내들이 모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지휘할 코치진도 모일 것이다.”

세령은 이해석을 말을 곧바로 알아들었다. 이미 지난 날, 사단장이 대대를 방문하였을 때, 세령을 감독직으로 추천한다는 말을 하였고, 그 말은 대대 장교 대부분이 들었다.

세령에게도 그 말은 전달되었지만, 실감나지 않았었다. 말 그대로 추천이었다. 정확히 감독직에 내정된 것이 아니었기에, 괜한 설렘과 기대감을 가지고 싶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 이순간은 달랐다. 추천이 아닌, 확정이었다. 그것도 대한민국 군인들 중, 진정으로 축구에 미쳐있는 그들을 지휘하는 감독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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