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5 히든리거 =========================================================================
반응은 모두 같았다. 세령은 물론, 의무대 안에 있던 모든 장병들의 눈동자가 그 순간 모두 일제히 멈춘 상태가 되 버렸다.
“그…….그게 정말입니까?”
세령이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물론이네. 그 결과는 여름이 가기 전 결정 될 것이며, 이르면, 9월부터 선수단 모집을 해야 하니, 자네들도 생각을 하고 있게나.”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세령이 굳이 감사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진심으로 사령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였다. 비록 공을 차기 위하여 군대에 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훌륭한 재능을 가진 젊은 사내들이 군대에서 재능을 버리지 않고, 계속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좋았다.
“왜…….왜 이제야…….”
하지만 연동훈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더 군대에서 공을 차고 싶어 하였던 연동훈은 제대 세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태에서 처음 공을 차봤다.
그리고 그 동안 공을 차지 못한 여운을 모두 날려버린 듯 한 하루였다. 하지만 사령관의 말을 들은 후, 한 편으로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울하면 말 박던가.”
세령의 일침이었다. 진정으로 억울해 하는 그의 표정을 보며 말했고, 그녀의 무심결에 나온 말에 3소대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그들의 시선이 원하는 답은 알 수 없었다. 만약 말뚝 박는다면, 지금처럼 천사의 표정을 볼 수 있는 연동훈을 원하는 것이지만, 예전의 그로 돌아온다면, 그의 말뚝은 3소대원이 앞장서서 뽑아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짧지만, 길게 느껴졌던 체육대회가 끝났다. 12중대 화기소대가 우승한 것으로 마무리 되었고, 이해석이 그에 대한 휴가증 지급도 모두 완료하였다.
대회 최우수 선수에는 연동훈이 뽑혔고, 페어플레이를 한 소대도 3소대로 뽑혔다.
또 한, 인기상도 3소대로 돌아갔고, 특별상도 3소대였다.
총 15장의 휴가증 중, 정해진 10장의 휴가증 외에 다섯 장의 휴가증은 100% 이해석의 사심으로 인하여 지급된 상황이었다.
“금일 점호는 취침점호로 하겠습니다. 각 소대는 인원보고 및, 이상 유,무만을 행정반에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친 장병들을 위한 배려였다. 대대장의 특별지시로 취침점호가 진행되었고, 대대 모든 장병들은 자리에 누운 뒤,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마자, 곳곳에서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민간인들도 늦은 시간에 대대를 나서는 바람에, 다시 먼 길을 가느라 고생하는 하루였다.
체육대회가 끝나고, 평상시의 군생활로 돌아온 첫날이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3소대를 그 어떤 소대도 무시하지 않았다. 그 동안 그들을 무시하였던, 이상수 병장이나, 기타 중대원들은 먼저 3소대원들에게 미소를 보내주었고, 제대 할 때까지 이 지옥을 경험해야 할 것만 같았던 3소대원들은, 변한 그들을 향해 힘찬 경례로 답을 해 주었다.
“3소대장 어디가?”
목발을 짚고, 의무대에서 나오는 세령을 보며 소재은이 물었다.
“새끼들 좀 보려합니다. 그 놈들, 밤새…….”
“다 큰 놈들 뭐가 예쁘다고 안아주고 그래? 그냥 잘 살고 있으니, 일단은 소대장 정강이나 잘 치료하자. 어서 들어가서 누워있어.”
세령은 고생한 소대원들에게 자신의 환한 미소를 보여주려 하였다. 하지만 소재은이 떡하니 그 마음을 다 뭉개버렸다.
변화된 군 생활은 3소대원들의 표정도 바꿔 놓았다. 언제나 침울한 분위기 속에, 웃음이라고는 없던 소대는 점차 더 많은 변화를 이어갔다.
바늘이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국방부 시계도 빠르게 지나갔다.
무더운 7월의 시작과 함께, 4대대의 유격도 시작되었고, 세령의 끈질긴 아부성 행동에 의해, 체육대회 때, 호언장담하였던 PT 8번을 단 한번만 하고 넘어가는 특혜를 누릴 수 있었던 4대대였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연동훈의 제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8월 말.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을 때, 땡볕을 피해, 부대 뒤, 동산에서 나무들이 만들어 준, 그늘아래에 누워있는 연동훈을 보며 이민우가 말했다.
“너도 2주 남았잖아.”
연동훈은 말년을 한가롭게 보내고 있었다. 이민우 역시 말년 병장이라 교육 및, 작업에는 모두 열외 되었다.
평소 모든 것에 열외 열성을 보인 시간이 흘러, 이제는 행정보급관도 그에게 아무런 작업도 시키지 않았다.
“어이. 말년들!”
두 말년의 한가로운 시간을 방해하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령이었다. 그녀는 연동훈과 이민우가 있는 곳을 찾은 뒤, 두 사람의 사이에 떡하니 앉았다.
“제대가 다가오니 시간은 더 안가지?”
그녀는 두 사내의 사이에 앉아, 부끄러움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표정과 어투로 물었다.
“그 보다…….이제 제대하면 민간인입니다. 저희가 소대장님을 소대장님으로 보지 않아도 되는 때가 오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민우의 말에 세령이 그의 얼굴을 빤히 보며 물었다.
“그 뭐야…….그…….따지고 보면 저와는 나이차가 두 살 밖에 나지 않습니다. 사회 나가면 그냥 친구인데…….”
‘탁!’
이민우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세령은 그의 앞통수를 살짝 쳤다.
“두 살 차이면 친구 먹는다? 그래 친구 먹어. 아무리 네가 그래도, 넌 내 새끼였고, 난 너의 엄마였어.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세령은 두 사내의 머리를 사정없이 쓰다듬어 주며 말하였고, 곧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몸을 돌려, 여전히 앉아 있는 두 사내를 보았다.
이제는 진정 자신의 부대원이 아닌, 민간인으로 보내야 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에, 길지 않았던 이들과의 군 생활이 떠올랐다.
“잘 살아. 부모님께 효도하고, 사회 나가거든 이쪽을 향해 소변도 보지마라. 그게 제대하는 사람들이 꼭 하는 말이다.”
세령은 연동훈과 이민우의 머리를 또 다시 쓰다듬어주며 말하였고, 곧 동산을 내려갔다.
두 사람은 그녀의 손길을 느끼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3소대장~!”
세령이 동산을 내려갈 때, 서재호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그의 목소리에 연동훈과 이민우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세령을 보았고, 혹여 서재호가 또 다시 악마본성이 나온 것은 아닌지에 대해 걱정하며 두 사람은 서재호의 곁으로 움직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서재호는 행정반에서 큰 소리로 계속하여 세령을 부르고 있었고, 세령은 행정반으로 들어서자마자,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드디어…….드디어 승인이 났데!”
“네? 무슨 말씀이신지…….”
서재호의 기쁜 표정과 어투와는 달리, 세령과 연동훈, 이민우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국방부 승인이 났다는 말이네.”
곧 최태윤이 행정반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국방부 승인이면…….설마 군대스리가가 프로에 진출한다는 지난 체육대회 때의 말씀이십니까!?”
세령도 목소리 톤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녀의 물음에 최태윤은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였다.
세령은 잔뜩 몸을 움츠린 후, 벌떡 뛰어 오르며 돌고래와 같은 소리를 질렀고, 곧 몸을 돌려, 연동훈과 이민우를 격하게 안아주었다.
“이제! 그 놈들은 사내다. 사회에 나가면 이쪽을 향해보며 오줌도 누지 않을 놈들이야. 그러니 괜히 안아주고 그러지 마라.”
그녀의 행동에 서재호가 두 사람을 보며 비꼬는 듯 한 어투로 말했다.
그의 표정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연동훈은 알고 있었다. 바로 공을 그렇게 차고 싶어 하였던 연동훈의 제대와 함께, 건군 이례 가장 큰 역사로 남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고, 그것을 겪지 못하고 제대하는 연동훈과 이민우를 놀리는 듯 한 표정이었다.
“사회인이 되면, 우리 국군클럽을 응원해주길 바라.”
세령은 두 사람을 안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은 눈물 섞인 목소리로 들렸지만, 애써 고개 숙인 채, 자신의 눈물을 보이려 하지 않은 듯, 고개를 들지 않고 있는 그녀를 모두가 보고만 있었다.
일주일이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3소대의 최대 악마였던 연동훈은 대대 행정반에서 제대 신고를 하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잘 가라 연동훈.”
그를 보며, 1,2소대장이 다가와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다.
“악감정도 많았고, 죽이고 싶을 정도의 감정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추억으로 남겨둬라.”
서재호가 말했다. 연동훈은 그에게 가장 많은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추억이다. 이제는 다시 보지 않을 인물이기도 하다.
“저희…….소대장님은…….”
세령이 보이지 않아 물었다. 비록 함께 한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자신의 군 생활에 가장 큰 추억을 남기도록 해 준 인물이었다.
“그러고 보니 보이지 않네.”
강찬호가 뒤 늦게 행정반으로 걸어오며 그의 말에 답했다.
이해석과 최태윤이 서 있는 앞에서 제대 신고를 하였다. 이제는 정말 민간인이 되는 연동훈이었다.
긴장되거나 떨리지도 않았다. 군인으로써의 마지막 보고를 하면서, 연동훈의 머릿속에는 지난 세 달간의 기억만이 떠오르고 있었다.
신고를 마친 후, 소대로 올라갔다. 마지막으로 자신과 함께 하였던 소대원들을 얼굴을 보기 위하여 올라갔다.
“잘 가라 연동훈.”
가장 먼저를 그를 반기는 인물은 이민우였다.
“그래. 이제는 민간인이니, 계급을 부를 필요가 없겠지. 민우 형도 잘 가.”
연동훈은 이민우에게 형이라 불렀다. 연동훈은 22살에 제대하지만, 이민우는 23살에 제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날, 세령에게 고작 두 살 차이난다고 말했던 그였다.
“꼴통들! 군 생활 잘하고, 소대장님 잘 모셔라. 가장 오랫동안 소대장님을 볼 놈들은 너희들이다.”
연동훈은 추강과 설태구, 그리고 용지현을 보며 말했다. 신병으로 들어와, 군 생활에 적응하기조차 힘들었던 지난 날, 악마와 같은 표정과 목소리로 군기를 잡았던 연동훈은 지금…….천사가 되어 제대하고 있는 것이었다.
연동훈이 대대를 벗어나는 동안에도 세령의 모습은 결코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이고 뒤 돌아보았지만, 세령의 모습은 없었다.
“갔어.”
B.O.Q에서 소재은이 세령의 방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녀는 연동훈이 제대신고하고, 대대를 벗어날 때까지, B.O.Q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소재은의 말을 들은 후, 그녀는 방문을 열고 나왔다. 퉁퉁 부은 눈. 연동훈을 보내며 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