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4 히든리거 =========================================================================
‘퍽!’
“아악!‘
“삐익!”
세령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 즉시 휘슬소리도 들렸다. 단상위에서는 모두가 일어섰고, 이해석이 두 주먹을 꽉 쥐며 바르르 떨기 까지 하였다.
“아무리 짬밥이 높아도 이건 너무한 거 아냐!”
민간인들이 역시나 아우성이었다. 사내들은 마치 경기장에 난입할 듯이 삿대질을 하며 화기소대장을 나물했고, 그는 멍하니 선 채, 정강이를 붙들고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고통스러워하는 세령을 보았다.
“괜찮나?”
작전장교가 다가서며 물었다.
“의무대장!”
두 번째였다. 연동훈에 이어 세령마저 더 이상 뛸 수 없게 되었다.
세령은 이를 꽉 깨문 채, 고통을 참고 있는 표정이 역력하였다.
하지만 쇳덩어리처럼 탄탄한 화기소대장의 정강이를 걷어찼으니, 여인으로써 그 고통을 참아내기는 벅찼다.
“수비자 파울. 3소대 프리킥.”
소재은에 의해 세령이 들것에 실려 나가고, 3소대는 모두 그녀를 보았다.
민간인들마저 그녀를 보려 자리에서 일어나, 들것에 누워 고통스러워하는 그녀를 안쓰럽게 보고 있었다.
이해석은 매서운 눈빛으로 화기소대장을 노려보았다.
“경기는 끝내야지.”
언제까지 멍하니 있을 수 없었다. 작전장교의 말에 화기소대는 수비벽을 쌓기 시작하였고, 프리킥 위치에 공을 세워두고 이민우와 지동현, 그리고 추강이 섰다.
“마지막 공격일지, 연장전을 뛸지, 그건 이 한방에 달렸다. 누가 찰 거냐?”
이민우가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제 정규시간은 끝났다. 인저리 타임이 있다고해도, 더 이상 골을 넣을 시간은 부족하였다.
“지동현. 네가 차라.”
“아닙니다. 이병장님이 차십시오.”
영웅이 되느냐, 역적이 되느냐를 놓고 선택하는 순간이었다. 골을 넣으면 영웅이 된다. 하지만 넣지 못한다면, 패배의 원흉이 되는 꼴이다.
비록 지고 있지만, 넣으면 다시 한 번 기회를 얻을 수 있기에, 신중하게 선택하고 있는 것이었다.
“추강. 네가 차라.”
추강은 이민우를 보았다.
“못 넣어도 우린 이미 다 영웅이다.”
지동현의 말이었다. 그리고 의외였다. 연동훈의 악마 본성을 이어받은 그였다.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하였다.
“그래. 내 군 생활에 이런 경험은 없었다. 그리고 이것으로 충분하다.”
이민우는 추강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고, 지동현은 그 즉시 상대진영 골대 근처까지 이동하였다.
“삐익!”
심판의 휘슬소리가 울렸고, 추강은 공을 본 뒤, 다시 골대를 향해 보았다.
민간인들의 손에는 땀이 마치 물처럼 흘렀고, 단상위에 있던 사람들마저도 숨을 죽인 듯, 마지막 프리킥이 될 수 있는 공격을 자리에서 일어나 보고 있었다.
의무대에 실려 간 연동훈과 세령도 의무실 창문을 통해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자식들. 그래도 잘 해 왔네.”
연동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지더라도 최선을 다했어. 경기가 끝나고 난 뒤에 잘 토닥거려 줘.”
어느 정도 고통이 사그라진 세령이 연동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고, 연동훈은 그녀의 손이 자신의 머리에 닿아도, 이번엔 피하지 않았다.
모두가 숨죽이고 있었다. 공은 파울위치에 놓여 있었고, 추강이 공을 노려보고 섰다.
‘펑!’
공은 추강의 발을 떠났다. 묵직한 소리를 내며, 골대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고, 모두가 숨죽여 그 공을 보았다.
“무회전이네…….”
그 와중에 공의 회전까지 본 민간인이 말했다. 그의 말처럼 추강이 찬 공은 거의 회전이 없었다.
우연인지, 기술인지는 모르지만, 공은 마치 마구처럼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골대를 향해 날아갔다.
‘팅!’
“아! 젠장 뭐야!”
또 다시 민간인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벌써 5번째였다. 그리고 이번엔 골대를 맞고 공은 골라인을 벗어났다.
“삐익 삐익 삐익!”
그대로 경기는 끝났다. 12중대 화기소대의 2대1승리. 정말 손에 땀이 마르지 않을 정도의 명승부였다.
아쉬웠지만, 민간인들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큰 박수를 보냈고, 단상위에 앉은 사람들도 모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추강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그의 옆으로 설태구와 소대원들이 다가서며 어깨를 토닥거려주었다.
“일어나라 추강.”
이민우가 말했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추강은 소대원을 볼 수 없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우린…….엄청난 성과를 얻었다. 그리고 아주 값진 추억도 얻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이민우는 추강의 어깨를 토닥거렸고, 곧 지동현도 그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소대 들어가서 보자…….오늘 한 따까리 한다.”
조금 전까지 분위기는 훈훈하였다. 하지만 지동현의 이 한마디에 그 곳에 모인 모든 3소대원의 표정은 공포에 휩싸인 표정들이었다.
잠시 잊고 있었던 악마가 떠올랐다.
단상위에 앉은 이들에게 경례를 하였고, 민간인들에게도 경례를 하였다.
아주 뜨거운 박수도 받았고, 환호성도 들었다.
남은 시간은 군인과 민간인들이 서로 어울렸다. 연병장을 처음 밟아보는 민간인들도 있었다. 즉…….군 미필자들이었다.
그들은 그저 동네 초등학교와 다를 바 없는 연병장을 밟으며 연신 헐레벌떡 뛰어다녔고, 그들을 위해 공 몇 개를 연병장에 던져주자, 마치 눈 오는 날 강아지 뛰어다니는 것 마냥 신나게 놀고 있는 민간인들이었다.
“잘 보았네. 정말 멋진 경기였어.”
결승전을 끝내고, 연병장을 빠져나온 장병들을 보며, 사령관이 일일이 어깨를 토닥거려주었다.
“체육대회는 모두 끝났습니다. 특별히 시상식이나 기타 폐막 행사는 없으며, 18시까지 자유시간입니다. 그리고 민간인들께서도 연병장으로 나오셔서 함께 즐기셔도 됩니다.”
안내 방송이 나오기 전, 이미 민간인들 대다수가 연병장에 나와 있었다. 군인들과 어울리는 민간인들도 있었고, 같이 온 사람들끼리 음주 축구를 감행하는 이들도 있었다.
사령관을 비롯하여 군 장성들은 모두 대대 행정반으로 움직였고, 12중대는 완전 잔치 분위기였다.
“괜찮아. 너희들도 잘했어. 모두 떨어졌는데, 그나마 너희 3소대 득에, 간신히 15중대 명성에 먹칠은 하지 않았다.”
준우승의 성적으로 경기를 끝내고도, 고개를 숙인 채, 풀이 죽어 있는 3소대원들에게 서재호가 다가서며 말했다.
우수한 성적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것에도 2등의 기억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세상 모든 것에 적용되는 하나의 고질병과도 같은 것이었다. 충분히 웃으며, 축하받아 마땅하지만, 언제나 그 어떤 것에 대한 패배는 눈물만이 남는다는 현실이 있다.
“소대장님을 먼저 찾아가봐야 하지 않나.”
모두가 풀 죽어 있을 때, 이민우가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 모든 것에 최고의 공로자는 바로 세령과 연동훈이었다. 불행히도 결승전을 모두 마치지 못한 채, 의무대 신세를 지고 있지만, 그 두 사람이 만든 변화는 엄청난 결과를 가지고 온 것이었다.
이민우의 말에 3소대원은 의무대로 향했다.
“고생했어. 꼴통 소대가 어찌 이런 대단한 결과를 만들었는지 몰라.”
의무대에 들어서자마자, 소재은이 이민우와 지동현을 비롯하여 3소대원들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는 세령이 잘 하는 행동으로, 처음에는 모두가 어색해 했지만, 이제 그 짧은 시간에 적응마저 된 듯, 소재은의 손길에도 피하는 이들은 없었다.
“수고했어! 장하다 내 새끼들!”
풀 죽은 채, 세령을 볼 면목이 없었지만, 세령은 그들을 향해 웃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언제나 긍정적 마인드의 막판 보스 같은 그녀를 보았다.
불과 2~3살, 많아봐야 4~5살 정도 차이나지만, 그녀에게서 새끼라는 말을 듣자, 모두가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군대에서는 소대원들이 형제며, 소대장이 아빠이자 엄마가 되는 것이다.
당연히 소대장인 세령에게 이들은 자식이기에, 그녀의 말을 듣고, 그제야 모두가 미소를 지었다.
“우승 못하면 너희 휴가증 줄어든다. 그건 생각 안 해봤어?”
잠시 훈훈한 분위기에 찬 물을 확 끼얹은 연동훈의 말이었다. 그의 말처럼 우승하면 휴가증이 다섯 장이지만, 준우승에게는 휴가증이 세 장이다. 그리고 4강에 오른 다른 두 팀에게 각각 한 장씩 돌아간다.
그렇다고 예선탈락 하거나, 순위에 오르지 못한 팀에게 휴가증은 없는 것이 아니었다. 축구에 걸린 총 15장의 휴가증 중, 10장은 순위에 따라 지급되지만, 다섯 장은 최우수선수 등. 기타 맹활약을 한 선수에게 돌아가는 휴가증이었다.
그 결과는 대대장이 직접 한다.
행정반에 모였던 장성들은 함께 모인 대대 장교들에게 지난 날, 미리 운을 띄워 놓았던 말에 대해, 앞으로의 모든 계획을 알려주었다.
당연히 모두가 놀란 눈들이었고, 믿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별이 3개가 달린 사령관이 휴일, 일개 대대를 찾아 농담을 던지고 갈 만한 여유가 있는 몸은 아니었다.
대대 장교들에게 내용을 알린 후, 사령관의 모든 말을 정녕 믿지 못하겠다는 듯, 멍하니 있는 장교들을 뒤로하고, 장성들은 의무대를 찾았다.
의무대에서는 아직도 3소대원들로 꽉 들어차 있었고, 갑작스러운 사령관 및, 사단장의 방문으로 의무대장이 경직 된 자세로 경례하였고, 그 안에 있던 소대원들도 모두 경례하였다.
“아주 훌륭한 경기 잘 보았네. 그리고 3소대장. 괜찮은가?”
사령관은 3소대원의 경기를 칭찬한 뒤, 다리에 응급처치로 간단한 깁스를 한 세령을 보며 물었다.
“네! 괜찮습니다!”
세령은 큰 목소리로 답하며, 곧바로 섰지만, 이내 화기소대장에게 걷어차인 정강이에 무리가 온 듯, 몸이 자연스럽게 비틀거렸고, 그녀의 옆에 함께 서 있던 연동훈이 그녀를 부축하였다.
“괜찮으십니까?”
“그래. 머리가 다쳐서 바보 되는 것보다야, 정강이를 다쳐서 당분간 목발 짚는 게 더 나은 것 아니겠냐.”
“하하하.”
그녀의 농담에 의무대 안에서는 한바탕 큰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 사령관이 아직 내용을 듣지 못한, 세령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모두 말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