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2 히든리거 =========================================================================
“추강!”
“이병 추강”
“너 이리와바!”
두 사람에게 주던 시선과는 달리, 세령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갑자기 자신을 부르자, 추강은 물론, 모두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이 귀염둥이 자식!”
역시 그녀였다. 그녀는 자신보다 거의 3배는 더 커 보이는 추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고, 곧 그를 안아주려 하였지만, 두 팔을 다 벌려 안아도, 세령의 두 팔은 그의 몸을 지나 다시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젠장! 살 더 빼!”
세령은 추강의 배를 툭 치며 소리쳤고, 곧 모두가 환하게 웃었다.
“연동훈.”
“병장. 연동훈.”
“너…….정말 대단하다. 내가 꼭 하고 싶었고, 배우고 싶었고,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던 마르세유 턴을 네가 보여줬어. 기쁘다.”
연동훈은 그녀의 큰 눈동자를 보며 심장이 두근거렸다. 한 때 남자들만의 스포츠였던 축구였다.
그녀는 수년 동안 축구를 하였던 그들도 쉽게 실전에서 사용하지 못했던 마르세유 턴을 꼭 해보고 싶어 하였다. 그것도…….군대스리가에서…….
“어디서 이 경기 촬영하는 사람 없나? 그냥 한 번 보고 끝낼 경기로는 너무 아까운 경기라서 말이야.”
사령관의 말이었다. 어쩌면 단상위에 오른 사람들과, 민간인들도 대부분 이런 생각을 하였을 것이었다.
방송카메라가 잡아주고, 골이나, 반칙이 선언되면 리플레이도 보여주고, 그런 것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일 것이었다.
그만큼 이번 경기에는 다시고픈 장면이 너무 많았었다.
하지만, 부대 내에서의 촬영은 엄격히 금하고 있기에, 무단 촬영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결승전의 휴식은 기존 5분의 휴식에서 5분을 더 늘린, 10분간의 휴식이 부여되었다.
그리고 각자 컨디션을 다시 조절하며, 휴식을 취한 뒤, 연병장으로 다시 나서고 있었다.
“어. 뭐야? 그 여자 소대장은 안 나오는 거야?”
후반전을 기다렸던 이유이기도 하였다. 민간인들은 오전 경기 때와 마찬가지로 후반전에 세령이 나오기를 바랐다. 하지만 3소대 선수들의 변화는 없었다.
이민우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고, 세령은 3소대 막사 안에서 소대원들을 향해 힘찬 파이팅을 외치고 있었다.
“아깝네. 다시 보면 카메라로 좀 찍어두려 했는데.”
그들의 목적은 면회를 온 것이었다. 힘들게 군 생활하는 친구나 가족, 아들을 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 근본 목적이 변해버린 듯하였다. 남자들은 하나같이 세령을 보길 원했고, 그런 그들의 여자 친구들은 짐 보따리를 싸서 그냥 돌아가려는 마음이 앞섰다.
“후반전도 멋진 경기 부탁한다.”
작전장교는 화기소대장과 연동훈을 가운데로 불러 매서운 눈빛으로 말했다.
이건 뭐. 부탁이 아니라 그냥 명령으로 들렸다.
전반전에는 화기소대의 선축으로 시작되었었다. 그리고 후반전에는 3소대의 선축으로 시작되었다.
“대대장.”
“네 사령관님.”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사령관이 이해석을 불렀다.
“혹시. 시원한 맥주 있는가? 웬만하면 참고, 경기가 끝난 후에 한 잔 마시려 했는데, 내가 긴장한 탓인지, 갈증이 나는구먼.”
비단 사령관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단상위에 오른 인물들 모두가 시원한 맥주 한 캔이 생각나고 있었다.
하지만 어찌 감히 사령관이 그냥 있는데, 함부로 술을 입에 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네들은 그렇지 않은가?”
“사실 저희들도 갈증이 나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모두가 딱 한 캔씩만 마시자고.”
사령관의 특별조치로 단상위에 오른 모두가 시원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여건이 주어졌다.
최태윤은 곧바로 단상에서 내려가 화기소대장에게 명령하였고, 화기소대장은 그 즉시 중대 막사의 아이스박스 안에 들어있는 맥주를 꺼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 모습을 본 세령이 일어섰다. 그래도 소대장 짬밥으로는 막내니, 소대장 중, 최고선임인 강찬호만 심부름을 하도록 둘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캔 맥주를 들고, 단상위에 올랐고, 세령이 시원한 맥주를 사령관에게 권했다.
“세령이가…….아니지 이제 이세령 소위지.”
“네? 아네 사령관님. 소위 이세령입니다.”
세령은 사령관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놀란 눈으로 그에게 자신의 관등성명을 말했다.
“나 기억하지 못하는가?”
세령의 어투로 보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하여, 물었다.
“죄송합니다. 사령관님을 제가 따로 뵌 적이 없기에, 머릿속 기억에는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세령은 그의 말을 듣고, 자신의 메모리 한계를 느끼는 듯 말했다. 사령관이 자신을 기억하는데, 어찌 일개 소위가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허허. 이거 서운한데. 그 어린 꼬맹이 아가씨가, 축구공을 들고 내 앞에 서서, 재롱을 피우던 때가 그리 오래 된 건가?”
“아…….”
그 때야 생각이 나는 듯, 세령은 사령관 앞에서 한 마디 짧은 탄성을 내 지르며 그를 보았다.
“11연대장님?”
세령은 사령관을 보며, 환한 미소로 말했다. 감히 소위가 사령관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마치 오래전 만났던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단상위에는 사령관은 물론, 사단장과 연대장, 하물며, 정책기획관도 자리하고 있었다.
이해석은 자신의 자리 밑에서 아주 뾰족한 쇠창이 튀어나와 엉덩이를 마구 쪼는 듯 한 느낌이었다.
“허허. 이제야 기억난 모양이군. 그래. 그 때 내가 11연대장이었지. 그 때 3중대장이었던 이해석에게 딸이 있었고, 그 딸이 바로 자네였네. 당차게 생겼고, 내 앞에서 당당히 공을 들고 와 공차자고 했던 것이 난 아직도 기억에 남아.”
아주 어린 시절이었다. 그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을 사령관이 기억해주고 있었다.
세령은 입가에 미소가 생겨났고, 곧 그를 향해 경례를 한 뒤, 다시 단상을 내려갔다.
“3소대장 강심장이네. 어찌 사령관님 앞에서 그리 오래 있을 수 있어?”
먼저 맥주를 다 나눠주고 내려온 강찬호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지 못하였다. 그저 그의 앞에서 웃음까지 보이는 대담함에 마냥 놀랄 뿐이었다.
“와아아아아!”
후반 초반에 서로 중앙선에서 공방전이 이어졌고, 매서운 공격은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그리고 단상위에 맥주를 전달해주고 내려와, 강찬호와 몇 말을 하는 도중에, 화기소대와 12중대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또 다시 3소대가 한 골을 내어 준 것이었다. 어찌 골이 들어갔는지 보지 못한 세령은 아쉬운 눈빛으로 자신의 소대원을 보았다.
“화기소대의 맹공이 꽤 무서운데. 공격진과 미들진을 모두 올리는 강수를 둘 생각을 했을까.”
사령관의 말에 세령은 화기소대장을 보았다. 그리고 함성이 있었을 때, 3소대 진영에 있었던 화기소대원의 위치를 떠 올렸다.
공격진 여섯 명. 포백을 제외하고 미들진까지 모두 공격에 가담하여 공격을 퍼 부었던 것이었다.
워낙 슈팅력도 강하기에, 어느 정도 공을 몰고 진격한 후, 골대를 향해 내지르면, 천하의 용지현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세령은 이민우를 보았다. 후반 시작과 함께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졌는지, 가픈 숨을 내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세령은 자신과 이민우를 교체하기 위하여 작전장교에게 요청하였고, 그는 두 선수의 교체를 허락하였다.
“와우! 드디어 나오셨다! 3소대 파이팅! 이세령 파이팅!”
세령이 연병장에 들어서자마자, 민간인들의 함성이 연병장에 울려 퍼졌다. 수많은 남성들의 힘찬 함성은 군인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큰 함성소리였다.
“이소위의 인기가 대단하군. 만약에 이소위가 프로무대를 밟게 되면 저 보다 더 많은 호응을 얻지 않겠는가?”
“!!!”
사령관의 한 마디에 이해석은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차마 그 자리에서 안 된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세령은 장교다. 그리고 여인이다. 어찌 사병들과 함께 공을 차며, 사내들의 경기에 여인이 뛸 수 있는지, 이해석은 그 즉시 ‘반댈세’를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짬밥은 무시할 수 없다. 중령이, 중장에게 뭐라 말할 수도 없었다. 그냥…….사병처럼 까라면 까야 되는 군번이었다.
세령의 출전으로 대대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민간인들 중, 사내들은 마치 걸 그룹을 본 듯 한 표정과 함성을 질렀고, 그로 인하여 3소대의 기세는 오르는 듯 하였다.
“연동훈! 지동현! 추강! 그냥 닥공이다!”
이름이 불린 세 사람은 멍하니 그녀를 보았다. 그 세 사람뿐만 아니라 화기소대원들도 멍하니 그녀를 보았다.
닥공이고 뭐고 다 좋지만, 그런 작전을 굳이 큰 소리로 다 말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들이었다.
“삐익~”
심판의 휘슬소리가 울렸고, 공을 잡고 있는 연동훈은 곧바로 추강에게 연결해주었다.
추강은 그 즉시 닥공이 무엇인지 곧바로 보여주고 있었다. 공을 잡자마자, 바로 전진하였고, 화기소대장이 공을 뺏기 위하여 다가서면, 뒤쪽에 서 있는 설태구에게 공을 연결해 주었다.
설태구의 정확한 패스 실력을 알기에, 그 즉시 화기소대장은 시선을 돌려 자기 진영을 보았다.
그 거리에서 누구에게 줄 수 있는지를 보았다. 하지만 자신이 보아도 마땅히 줄 만한 사람은 없었다.
전방으로 진격한 세령과 연동훈, 그리고 지동현에게는 여지없이 수비수가 밀착 수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줄 곳이 없는 듯한데.”
다시 시선을 설태구에게 돌린 소대장이 웃으며 말했지만, 설태구는 왼쪽으로 공을 한 번 툭 찬 후, 그대로 전방으로 내 질렀다.
“뭐야!”
이미 소대장은 자신의 눈으로 다 보았다. 그 누구에게도 줄 만한 곳은 없었다. 하지만 공은 설태구의 말을 떠나 멀리 날아갔고, 그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찌…….”
할 말은 여전히 없었다. 설태구가 차 올린 공은 아주 멀리 날아갔고, 또 다시 개인마크 당하고 있던 수비수를 따돌리고, 정확하게 왼쪽 라인을 타고 오르던 세령의 앞에서 원바운드 되었다.
그 즉시 세령은 왼 발로 공을 잡아 세운 뒤, 왼쪽으로 바로 몸을 돌렸고, 가볍고 빠르게 몸을 돌린 그녀의 행동에 화기소대원은 따라 움직이기조차 할 수 없었다.
간단하게 한 명의 제친 세령은 중앙과 반대를 보았다.
연동훈과 지동현이 거의 일직선상에 서 있었고, 그 뒤로 추강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