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0 히든리거 =========================================================================
“홈런이네.”
그의 슛을 보고 추강이 말했다. 그 순간 화기소대원이 추강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신병 새끼가 말을 막하네.”
그는 뚜벅뚜벅 걸어 자기 진영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추강의 옆을 지나치며 말했다.
그 순간 추강은 놀란 눈으로 그를 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이제 자대배치 받은 지, 20일 정도 지난 신병에게는 타 중대라도, 상병의 계급이 하는 말은 오금이 절로 저리게 되는 것이었다.
“추강! 쓸데없는 말에 신경쓰지마라. 타 중대는…….계급 따위 필요 없다! 그냥 아저씨다!”
멍하니 서 있는 추강에게 화기소대원이 한 말을 들은 지동현이 소리쳤다.
지동현의 말을 들은 후, 멍하니 있던 추강의 표정이 변하였다.
얼핏 입대 전 들은 기억이 있었다.
“아저씨…….그런데 초면에 욕을 해?”
추강은 자신에게 신병새끼라고 말한 소대원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타중대원이라도 엄격하게 계급 서열을 인정하는 부대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대도 있다. 같은 중대원들끼리는 계급 서열을 따지지만, 타 중대원은 계급이 높던지, 낮던지…….그냥 아저씨라 부르는 대대도 꽤 있는 편이었다.
추강은 자신에게 격한 말을 한 화기소대원을 매섭게 노려보며, 육중한 몸에서 풍기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보내주었다.
“추강. 받아.”
용지현은 지금까지 진행된 경기에서처럼, 공을 멀리 보내지 않았다. 자신과 약 12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추강에게 공을 굴려주며 말했다.
용지현에게서 공을 받은 추강은 전방을 살폈다. 무리하게 자신의 공을 뺏고자 다가서는 화기소대원도 없었다.
그는 천천히 공을 몰고 상대진영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상대진영 중앙으로는 여전히 연동훈이 서 있었고, 오른쪽으로 지동현과 왼쪽으로 이민우가 있었다.
하지만 세 사람 모두 각각 대인마크를 당하고 있기에, 평범한 패스로는 그들에게 공을 전달 시켜 줄 수 없었다.
“지창! 전진해!”
공을 소유하고 있지만, 마땅히 패스 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던 추강을 보고, 화기소대장인 한 소대원의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지창이라는 소대원은 조금 전, 추강에게 격한 말을 했던 장본인이었다.
그가 다가서자, 추강은 용지현에게 받은 공을 얼마 끌고 가지 않은 채, 다시 몸을 돌려 뒤로 좀 물러났고, 그는 바짝 추강의 뒤를 따라 붙었다.
“신병새끼가 겁 대가리 없이, 공 가지고 시간 끌면 욕먹는다. 그러니 그 공, 나에게 줘.”
그는 여전히 추강에게 신병을 운운하며 비웃는 듯 한 표정을 지었다.
“아저씨가 원한다면, 기꺼이 줘야지.”
추강은 그의 표정을 보며, 그와 흡사한 표정을 지은 채 말하였고, 갑작스레 변한 그의 표정에 당황한 지창은 그 순간 소름이 돋는 듯하였다.
‘펑!’
‘퍽!’
일종의 유치한 복수 일수도 있었다. 추강은 자신의 앞에 다가선 그를 향해 강하게 공을 찼다.
그리고 그 공은 지창의 얼굴에 그대로 맞았고, 그 자리에서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삐~익!’
심판의 휘슬소리가 들렸다.
“고의로 찬 공인가?”
작전장교가 달려왔고, 쓰러진 지창을 본 후, 추강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고의는 아닙니다. 상대가 앞에 있어도 패스할 곳이 마땅치 않아, 공을 멀리 걷어내는 것이 상책이라 여겼습니다.”
작전장교는 그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이등병 나부랭이. 그것도 이제 자대배치 받은지 고작 20일 좀 넘은 핏덩이가 부대 작전장교에게 말대꾸를 한 것이었다.
“고의성이 없다니 봐준다. 비록 군대스리가지만, 따져보면 엄연한 스포츠다. 스포츠에는 스포츠정신이라는 것이 있다. 쓸데없는 일거리 만들지 마라.”
작전장교의 눈빛도 매서웠지만, 그의 목소리는 진정한 얼음마녀다운 차가운 목소리였다.
낮은 톤에 굵직한 목소리. 짧게 끊어서 툭툭 뱉는 듯 한 어투. 그냥…….눈도 마주치고 싶지 않으며, 목소리도 듣고 싶지 않은 인물로서 딱 적합한 사람이었다.
“추 강. 진정 고의가 아니길 빈다.”
추강은 지창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주었다는 쾌감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곧 그의 옆으로 지동현이 너무나 매섭고 날카로운 어투로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
추강은 그가 잘했다고 말하는 것이 맞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왜 화를 내는지는 몰랐지만, 곧 알게 되었다.
“젠장…….”
바로 화기소대의 프리킥이었다. 추강은 격한 말을 뱉은 후, 공이 놓인 자리와 골대까지의 거리를 보았다.
다행이 페널티킥이 주어지는 골대 박스라인에서 아슬아슬하게 벗어났지만, 그래도 골대와의 거리는 약 13미터 정도 되어보였다.
이는 정식 페널티킥을 차는 거리보다 약 2미터 정도 더 물러나 있는 거리지만, 대부분 바로 슛으로 연결되는 거리이기도 하였다.
군대스리가라 정식 축구장보다 규모가 작으며, 페널티박스 라인도 짧았기에, 페널티킥이 주어지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모두 사람을 마크해!”
어수선한 분위기를 바로 잡는 듯, 연동훈의 큰 목소리가 들렸고, 곧 3소대원들은 각기 자신이 개인마크를 해야 할 화기소대원들의 옆에 바짝 붙었다.
“개인마크는 무슨…….그냥 차면 골인이겠는데.”
화기소대장은 공이 놓인 자리를 유심히 보며, 연동훈의 말에 콧방귀를 끼며 말하였다.
그리고 다시 골대를 향해 보았고, 골키퍼 용지현의 위치를 확인하였다.
“야. 이게 뭐라고 긴장 되냐.”
단상위에 올라있는 장성들은 물론, 민간인들도 손에 땀이 나는 듯, 프리킥을 찰 준비를 하고 있는 화기소대장을 보았다. 그리고 민간인 중 한 명은 군납이 떡하니 찍힌 맥주 캔을 한 모금 마신 후, 중얼거렸다.
“삐익~”
휘슬 소리와 함께, 화기소대장이 공을 향해 달려갔다.
‘펑!’
“이런!”
벽이고 뭐고 필요치 않았다. 화기소대장은 마치 추강이 고의로 지창에게 공을 찼다는 것을 아는 듯, 그 짧은 거리에서 벽을 만들고 서 있는 대원들을 무시한 채, 감아 차기가 아닌, 발등으로 아주 강하게 찼다.
‘철렁!’
천하의 용지현도 어쩔 수 없는 골이었다. 12미터 정도에서 날아온 슛은 진정 눈으로 보기에도 힘든 공이었다.
더군다나 벽을 교묘하게 잘 피하고, 골대 모서리로 그대로 빨려 들어갔기에, 공이 골라인을 통과한 후, 용지현의 몸은 그 곳으로 날아 움직였다.
“와아아!”
화기소대의 환호와 함께, 12중대의 환호가 이어졌고, 단상위에 오른 장성들도 일어나 박수쳤다.
“무섭네…….”
하지만 민간인들의 큰 환호성은 없었다. 여자들은 군대스리가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에, 조금 전, 프리킥의 강렬함을 잘 모른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여성들은 군댕이야기도 싫어하며, 군대에서 공찬 이야기는 더더욱 싫어한다.
짜릿한 골로 인하여 함성을 질러주어야 할 남성들은, 굳이 편을 들자면, 화기소대가 아닌 3소대의 편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기에 화기소대의 골은 마치,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한 골을 뺏긴 것과 같은 분위기이기에, 함성은커녕 야유가 나올 판이었다.
“괜찮아! 그깟 한 골. 적선했다고 생각하고 다시 하면 돼!”
화기소대의 의기양양한 행동에 자칫 주눅들 것 같은 3소대원을 향해 세령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래! 힘내라 3소대! 축구는 후반전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모른다!”
어느새 민간인들은 3소대를 응원하는 분위기였다. 비단 세령이 그 중심에 있겠지만, 다윗이 골리앗을 잡는 짜릿한 경기를 원하는 스포츠 광들은 많다.
그것도 그 어떤 스포츠보다 더 열광하는 것이 축구였다. 야국의 9회 말 투아웃에 담장을 넘기는 끝내기 홈런과 함께, 후반 인저리 타임에 극적인 결승골을 뽑아내는 짜릿함.
그 짜릿함을 직접 라이브로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그 짜릿함이 주는 여운이 언제까지 지속되는지도 잘 알고 있다.
전반전 약 10분이 지난 상태였다. 추강의 어이없는 실책과도 같은 행동으로 1점을 내 주었다.
“추강. 뺏긴 1점은 네가 찾아와야 한다.”
주눅 들어 있을 법한 추강에게 연동훈이 다가서며 말했다. 그리고 이민우는 자신의 자리에서 살며시 엄지손가락만을 치켜세워 주었다.
그리고 새로운 3소대 악마자리를 꿰찬 지동현을 보았다.
하지만 그는 추강을 보려 하지 않은 듯, 자기 자리에서 땅을 툭툭 차고 있었다.
“이대로 한 골 더 먹히면, 그 때부터는 줄줄 이겠지?”
화기소대장은 중앙선에서 공을 밟고 있는 연동훈을 보며 물었다.
“그 한 골이 어느 소대 골문을 통과하는지가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화기소대장님.”
한 방 먹이려 뱉은 말에 오히려 한 방 먹은 격이 되어버렸다.
연동훈의 말을 듣고, 휘슬을 불려하던 작전장교가 화기소대장을 보며 피식 웃었다.
‘삐익~’
한 골을 먼저 뺏긴 3소대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결승전답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중압감이었다.
쉽게 전방으로 뚫고 갈 수도 없었고, 마땅히 누군가를 향해 공을 뿌려줄 수도 없었다.
연동훈에게 공을 받은 지동현은 곧바로 중원에 있는 추강에게 공을 내어준 뒤, 서둘러 자신의 자리로 이동하였다.
그저 추강에게 알아서 하라는 듯 공을 뿌리고 자기 자리로 가는 것이었지만, 화기소대는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
갑작스레 움직임을 빨리 한, 지동현에게 추강의 공이 연결될 것이라 지레짐작한 소대원이 지동현에게 빠르게 붙었고, 그 한 소대원의 움직임에 의해, 중앙선을 약간 넘어 상대진영에 서 있던 연동훈이 추강의 시야에 들어왔다.
추강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곧바로 연동훈에게 땅볼로 패스해주었고, 지동현이 아닌 연동훈에게 공이가자, 화기소대 미드필드가 연동훈에게 붙었다.
그와 함께 중앙에 있던 화기소대장도 그에게 붙었고, 연동훈은 자신을 향해 다가서는 두 명을 보았다.
이미 덩치가 산만한 인간들이라, 두 사람이 다가서면, 여지없이 공은 뺏긴 것이라 모두가 생각하였다.
“!!!”
하지만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민간인들이 모여 있던 관중석에서는 자리에 앉아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벌떡 일어났다.
그것은 단상위에 앉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마르세유 턴!”
모두가 놀란 이유였다. 연동훈은 자신을 향해 다가서는 두 명의 아주 좁은 사이로 공을 툭 밀어둔 뒤, 그 공을 다시 다른 발로 밟은 후, 몸을 한 바퀴 회전시키며 자신마저 그 두 사람을 뚫고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