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9 히든리거 =========================================================================
“헌데. 군인 클럽이라면 상무가 있지 않습니까?”
최태윤이 말했다.
그의 말처럼 현재 국방의 의무를 대신하는 프로클럽인 상무가 있다.
“상무와는 별개네. 상무구단에 소속된 병사들은 국방의 의무를 대신하여 소속구단에서 훈련도 하며, 군 기초훈련을 받지, 하지만 우리가 출범시킬 클럽은 말 그대로 현역 군인들이네.”
국군체육부대장의 말만 들으면, 상무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들도 비록 사회에 나가 있는 인물들이지만, 신분은 군인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서 상무와 다른 점이 있었다.
“훈련은 국군체육부대에서 하며, 전용경기장도 국군체육부대내에 마련된 축구장을 사용할 것이네. 또 한. 가장 큰 다른 점이라면, 실력을 인정받아, 외국 클럽에서 러브콜을 보낸다면, 그들의 신분이 군인일지라도, 우린 해당 군인을 외국으로 보내기도 할 것이네.”
“!!!”
파견적인 운영방침이었다. 이어지는 체육부대장의 말은 국방의 의무를 하는 도중에 외국으로 축구를 하기 위하여 보내 줄 수도 있다는 굉장히 파격적인 대우였다.
일종의 현역 군인의 파병과도 같은 맥락이었다.
“국방의 의무라는 하나의 족쇄로 인하여, 잠재력을 지닌 군인들이 자신들의 꿈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네.”
체육부대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축구뿐만 아니네. 요즘 부쩍 늘어난, 군대기피 현상을 막고자, 스포츠는 물론, 과학, 기술, 의료 등, 뛰어난 인재들이 2년이라는 군 생활에 자신들의 꿈이 좌초되지 않도록, 잠재력을 지닌 군인들에게 더 큰 길로 나갈 수 있는 길도 열어 줄 것이네.”
체육 부대장의 말에 이어, 정책기획관이 변화되는 군대를 말하고 있었다.
그의 말처럼 사회에서 생활하다, 군대라는 곳에 온 뒤, 2년간 총 쏘는 것보다 삽질을 더 많이 하고 가는 군인도 있었다. 개인의 능력을 발휘하고 나라의 기반이 될 꿈을, 군대라는 곳에서 놓쳐버리는 경우가 있기에,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바꿔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국방부였다.
“이미 국방부에 제출한 기안서에 이와 같은 모든 명목을 기재하였네. 스포츠를 시작으로, 모든 분야에 걸쳐 뛰어난 인재들은 다시 사회로 보낼 것이네.”
정책기회관이 다시 말을 이었다.
“사회로 다시 보낸다는 말씀은, 국방의 의무를 모두 끝내는 제대를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해석이 물었다.
“아니네.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의무지 않은가. 그런 의무를 누구에겐 주고, 누구에게는 주지 않을 수 없지 않겠나. 그들이 비록 자신들의 능력으로 인하여, 다시 사회로 나갔지만, 국방의 의무를 다 하는 날까지는 군인의 신분이네.”
어떻게 생각하면, 지금의 상근예비역이나 방위를 달리 말하는 것으로 들렸다. 하지만 조목조목 따져보면 의미가 달랐다.
동사무소나 예비군 조교 등 상근예비역과 방위가 하는 임무는 그대로 두는 것이었다.
국방부에서 새롭게 시행할 정책은 현역으로 입대한 군인들 중에, 각 분야에 뛰어난 자질을 보이는 장병들을 여러 국가기관으로 다시 보낸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상근예비역이나 방위와 다른 것이었다. 두 분류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비록 집에서 출퇴근을 하며 지내기는 하지만, 국군의 의무를 하는 분류였다.
“굉장합니다. 과연 이 내용이 국방부 승인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까?”
이해석이 정책기회관의 말을 들은 후, 다시 물었다.
“충분히 승인이 날 것이네. 그 동안 끊이지 않았던 사건, 사고를 막을 수도 있으며, 군대를 기피하는 현상도 막을 수 있을 것이네. 자신의 미래에 2년이라는 군 생활이 헛되게 지나가지 않도록, 군대에서 충분히 지원한다면, 군대를 기피할 젊은이들이 현저히 줄어 들 것이라 자명하네.”
정말 좋은 정책이었다. 정책기획관의 말대로, 요즘 젊은 남성들의 군대 기피현상은 더욱 더 짙어지고 있다. 멀쩡한 손가락을 자르는 이들까지 있었으니, 얼마만큼 군대란 곳을 오기 싫어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들이 말하는 정책이 모두 승인된다면, 군대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었다.
총보다 연필을 잘 다루는 이들에게는 그에 맞는 국방의 의무가 주어질 것이고, 삽보다 PC를 더 잘 다루는 장병에게도 그에 맞는 의무가 주어질 것이었다.
그리고 그 첫 번째가 바로 스포츠였고, 오랜 명성을 지닌 군대스리가를 공개하는 것이었다.
“곧 결승전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진지한 분위기에 많은 말이 오고갔다. 비록 국방부의 승인이 남아있지만, 실현된다면, 건군이례 최대의 변화일 것이었다.
“결승전이란 최고의 경기가 남았으니, 잠시 무거운 분위기는 잊고, 즐겁게 결승전을 관람하지.”
사령관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하였고,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야…….내 간이 어디에 있는지 좀 찾아주라.”
그들이 나간 후, 간부식당 취사병은 큰 한 숨을 내쉬며, 후임 병에게 농담을 던진 후, 자리에 덜썩 주저앉았다.
“드디어 결승전이군. 이거 완전 꿀잼아니냐?”
민간인들이 오히려 더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무엇보다 남성들은 또 다시 세령이 연병장에 등장하기를 바라는 듯 한 눈빛이었고, 그런 남성들을 보며, 각자의 여자 친구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자신들의 남자친구를 노려보았다.
“12중대 화기소대와 15중대 3소대의 결승전을 시작하겠습니다. 두 소대는 연병장으로 입장해 주십시오.”
안내 방송이 있은 후, 두 소대의 선수들은 나란히 중앙선을 따라 입장하였다.
“전진!”
그리고 단상을 향해 일렬로 선 뒤, 힘찬 경례를 하였고, 곧 사령관이 경례를 받은 후, 단상을 내려갔다.
이 또 한, 단 한 번도 없었던 이례적인 일이라, 장병들의 표정이 경직되어 있었다.
이등병에서부터, 병장까지…….군 장병의 모든 계급이 다 있었지만, 그 계급을 다 엎어도, 별 3개가 내민 손을 잡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계급이었다.
“좋은 경기 부탁하네.”
일일이 모든 장병들과 악수를 마친 사령관이 그들에게 한 마디 하였고, 그들은 힘찬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곧 다시 이동하여 민간인들이 앉은 곳 앞에 섰다.
“전진!”
그리고 그들에게도 인사하였다. 난생 처음 자식이나, 지인 외에 다른 군인들에게 인사를 받은 면회자들은 어리둥절하였지만, 곧바로 큰 박수로 그들의 경례에 대한 답례를 해 주었다.
두 소대의 선수들이 중앙으로 섰고,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각 진영에 맞도록 자리하기 시작하였다.
“결승전은 4강전 때까지와는 달리, 전, 후반 각각 30분으로 하겠습니다. 이는 조금 더 개인 기량과 팀워크를 보일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함이며, 결승전다운 경기를 보기 위함입니다.”
안내방송에서는 경기 시간이 변경된 내용을 전달하고 있었다.
“젠장…….20분도 뛰기 벅찬데, 30분을 어찌 뛰어.”
그 방송에 가장 민간하게 반응하는 인물은 이민우였다. 스스로 말했듯이, 전반 20분 뛰는 것도 가슴이 터져버릴 정도로 힘들었다. 그런데 30분이라니. 진정 이민우에게는 마라톤 코스를 한 바퀴 더 돌아오라는 말로 들려왔다.
“이민우 파이팅!”
방송 내용에 가장 힘들어 하는 인물이 이민우란 것을 알고 있는 세령이 그의 이름을 부르며 외쳤고, 그 뒤로 소대원들도 이민우를 외쳤다.
그러자 민간인들은 이민우가 누군지도 모르지만, 세령의 목소리에 남성들이 큰 소리로 이민우를 함께 외쳐주었다.
“환장하겠네.”
그들의 행동에 강찬호가 어이없는 웃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누군지는 알지?”
마지막 경기인, 결승전의 심판을 보기 위하여 중앙선에 선 인물은 지금까지 진행된 경기에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씨익하고 웃으며 연동훈을 보고 물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작전장교님.”
바로 4대대 작전장교였다. 계급은 소령이었다. 하지만 작전장교다운 카리스마가 그냥 넘쳐났다. 부대 내에서 가장 무서운 인물인 작전장교. 군부대의 모든 훈련을 책임지는 인물로, 살벌한 기운을 가지지 않은 자라면, 결코 맡을 수 없는 보직이 바로 작전장교다.
“두 소대가 모두 나를 잘 알고 있으니, 더 말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작전이 그 결과를 말해준다. 어떤 소대가 어떤 작전을 가지고 경기에 임하느냐에 따라 승패는 갈린다. 부디…….좋은 작전을 보여주기 바라며…….잔꾀는 부리지마라. 그 즉시 퇴장과 함께, 내일 군기교육대 입소다.”
역시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모든 것을 작전에 비유하며 말했고, 그에게 사사로운 잔꾀는 곧 20kg 진흙군장을 메고 군기교육대 입소를 말하는 것과 같다.
‘삐~익!’
드디어 결승전 시작을 알리는 심판의 휘슬소리가 들렸다.
12중대 화기소대의 선축으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강찬호의 말처럼 화기소대라는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소대원들이었다.
우람한 덩치에 까무잡잡한 피부들. 마치 사람 하나는 쉽게 들어 메칠 수 있을 것 같은 표정들이었다.
그에 반해 3소대는 어린 양들 같았다. 천하의 독종이며 악마라는 연동훈마저도 순하디. 순한 양처럼 보이고 있었다.
“우승팀에 휴가증 5장이 걸려있다! 집에 가고 싶지 않은가!”
경기가 시작되었다. 천천히 자기진영에서 공을 돌리고 있던 화기소대장이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고, 그의 한 마디에 화기소대 전원이 힘찬 소대구호를 외쳤다.
“역시 군바리들한테는 휴가증이 최고 명약이네.”
그 소리를 들은 민간인이 말했다.
그의 말처럼 군인들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그 어떤 것보다 휴가증이다. 힘든 군 생활 기간에 달콤한 사회를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기상나팔소리도 없으며, 어깨에 힘 잔뜩 들어간 점호도 없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집으로 향할 수 있는 기회였다.
“화기소대라 파이팅이 넘치는군.”
단상위에 있던 사령관이 굵직한 목소리로 외친 화기소대장의 목소리에 반응하는 소대원들을 보며 말했다.
약 2분 정도 공은 여전히 화기소대 진영에서 돌고 있었다. 무리하게 전진 패스를 하지 않았고, 무리하게 침투하며 들어서는 장병도 없었다.
중앙에 서 있던 화기소대장이 공을 다시 잡았고, 연동훈이 그의 곁으로 천천히 다가섰다.
“뺏고 싶지? 하지만 어려울 것이다. 내가 이래봬도 축구로…….”
화기소대장은 연동훈을 노려보며 굵직한 어투로 말하다 말고,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하며 말을 잇지 못하였다.
자신의 발아래 공을 두고, 연동훈을 노려보았지만, 연동훈이 갑자기 앞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바람에 자신의 발아래에 있던 공을 제대로 컨트롤 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화기소대장의 발에서 멀어진 공은 여전히 화기소대원에게 굴러갔고, 그는 그 즉시 왼쪽 사이드라인을 따라 앞으로 움직이고 있는 소대원을 보았다.
‘펑!’
화기소대장의 실수였지만, 공을 이어받은 대원은 사이드라인을 따라 침투하는 그에게 정확히 공을 차 올렸고, 마치 자로 잰 듯 한 정확한 패스로 그의 앞에 떨어졌다.
공을 받은 화기소대원은 그 즉시 앞에 있던 3소대원을 간단히 제친 후, 골대를 향해 그대로 슛을 날렸다.
하지만 공은 골대 근처도 가지 못하고, 골대를 훌쩍 넘겨 사병식당의 벽을 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