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리거-24화 (24/163)

00024  히든리거  =========================================================================

중앙에 서 있던 대원이 공을 받았고, 그는 앞으로 공을 툭 찬 뒤, 슛을 때릴 준비를 하자, 중앙에 서 있던 추강이 그를 향해 육중한 몸을 이끌고 다가갔다.

하지만 이 역시 이미 계획에 있었던 동작이었다.

공은 그의 발에서 툭하고 차 오른 뒤, 왼쪽 약 45도 뒤쪽으로 3미터 정도 뒤로 물러나고만 있었다.

“훼이크다 새끼들아!”

민관식의 정확한 계산이었다. 설태구와 추강이 버티고 있는 오른쪽과 중앙을 처음부터 공략하지 않았고, 공을 약간 돌려 수비 위치를 돌려놓은 뒤, 다시 공이 중앙으로 뿌려지면, 추강이 다가선다는 것도 계산해 두었다.

계산대로 추강이 슛을 때릴 준비를 한 그의 앞으로 다가섰고, 그가 앞으로 나오자, 약 45도 방향으로 왼쪽 뒤 3미터 부근에서는 골대가 훤히 보이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정확히 민관식이 앞으로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고, 공은 그의 발등에 그대로 꽂혔다.

“!!!”

하지만 그 누구도 상상치 못하였던 3소대의 또 다른 복병이 골문을 지키고 있었다. 바로 용지현이었다.

그 누가 봐도 100% 골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던 슛을 용지현은 몸을 달려 잡아내었다.

역시 쳐 낸 것이 아니라. 두 손으로 공을 잡아 가슴으로 당긴 뒤,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아주 작은 돌 알갱이가 쫙 깔린 연병장에 맨 몸으로 떨어지면 살이 다 까질 것은 당연하였다.

그래서 그 어떤 골키퍼도 쉽게 다이빙 캐치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용지현은 달랐다. 거구의 몸을 날렸고, 떨어지는 충격도 컸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가슴에 공을 안고 천천히 일어나, 전방을 주시한 채, 화기소대 진영을 달리고 있는 연동훈을 보았고, 그를 향해 공을 차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강하게 던졌다.

여전히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용지현의 손을 벗어난 공은 그대로 중앙선까지 날아갔고, 원바운드 된 공은 또다시 연동훈의 키를 넘겨 상대 골대로 향하고 있는 그의 앞에 떡하니 떨어졌다.

“뭐야 대체!”

아무리 봐도 이해가 가지 않는 장면의 연속이었다. 쥐뿔도 모른다는 세 명의 신병이 진정 숨겨진 3소대의 복병이었다.

1소대와 2소대는 놀라움 뒤에 허탈함이 함께 찾아왔고, 화기소대장은 커진 눈을 깜빡거리지도 않고 있었다.

‘철렁!’

모두가 놀란 눈을 하고 있을 때, 연동훈은 자신의 앞 쪽으로 떨어진 공을 그대로 골대를 향해 찼고, 그 공은 화기소대 골키퍼 바로 앞에서 원바운드 된 뒤, 가랑이 사이로 지나가 골망을 흔들었다.

“삐~익!”

스코어 4대2. 골과 동시에 소재은의 휘슬 소리로 경기는 끝이 났고, 이변이 일어났다.

1소대 탈락과 3소대 8강 진출. 3년 만에 경기에서 득점을 하였고, 승리까지 가져간 3소대를 향해 이해석과 최태윤, 그리고 타 중대 중대장과 소대장이 진심으로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유독 두 사람. 1소대장과 2소대장은 억울함이 잔득 묻어나는 표정으로 힘없는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3년 만에 만끽하는 첫 승리로 3소대의 모든 대원들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기뻐하였고, 역시나 세령은 대원들을 한 번씩 안아주며 기쁨을 나눴다.

체육대회 첫 날. 오전에 급히 치러진, 16강은 모두 끝났다. 중식은 대대 및 인근 민간인이 지원해준 음식으로 각 소대 막사에서 이뤄졌으며, 자대배치 받은 후, 단 20일 만에 신병들은 고기를 구워먹는 특혜를 누리고 있었다.

8강에 오른 소대는 12중대 2소대와 화기소대. 13중대 1소대와 3소대, 14중대 2소대와 3소대, 15중대 2소대와 3소대로 총 여덟 개 소대이며, 가장 큰 이변으로는 강력한 우승후보 15중대 1소대 탈락과 3소대의 승리였다. 자신만만했던 1소대의 패배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으며, 3년 동안 꼴통 소대란 불명예로 지내온 3소대 역시 처음으로 단합이라는 것을 보여주었고, 그 결과물로 승리를 가져왔다.

모두가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중식을 먹고 있었다. 경기에 패해 쓴맛을 본 1소대도 패배의 아픔을 오래 간직하고 있진 않았다. 모두가 맛있게 고기를 구우며 식사를 즐기고 있었고, 서재호는 3소대의 막사를 찾았다.

“축하해.”

서재호는 막걸리 한 사발을 가져와 세령에게 건네며 축하해주었다.

“고맙습니다. 1소대장님.”

세령은 그가 건네주는 막걸리를 받아 한 번에 다 비운 뒤, 그에게도 한 사발 가득 채워 주었다.

지난 악감정은 악감정으로 남은 것이고, 체육대회는 체육대회대로, 또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군대에서 유일하게 막걸리를 먹을 수 있는 날이 체육대회다. 부대 내부에서 제공하며, 각 소대별로 정량이 정해져 있다. 기분이 좋다고, PX에서 술을 더 사 먹을 수도 없다.

딱 지급된 양을 가지고 모든 대원들이 나눠먹는다. 그리고 지급되는 술을 공평하게 나눠먹는다면, 결코 술로 인하여 취하거나 인사불성이 되는 인간은 나오지 않는다.

“소대장이 여인이라 우리가 강하게 할 수 없어 패한 것이야!”

가끔은…….아주 가끔은 인사불성인 인물도 나온다. 모두가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화기소대장 강찬호가 술이 오른 듯, 얼굴이 붉게 변한 뒤, 세령을 향해 소리쳤다.

“누가 화기소대장에게 술 먹였어!”

그리고 곧바로 소재은이 화기소대를 향해 소리쳤다.

“저희들이 권한 것은 아닙니다! 소대장님께서 패배한 것에 대해 홧김에…….”

“야 강찬호!”

인사불성인 그를 향해 소재은이 다시 큰 소리로 불렀다.

“너! 술 입에 대지 말라고 했지. 소주 한 잔에 이틀을 누워있는 놈이, 막걸리를 다 들이켰으니 죽을 맛이겠지? 들어가 자라. 어이 화기소대! 지금 당장 소대장 B.O.Q에 데리고 가서 눕혀!”

술을 많이 먹어 인사불성인 것이 아니었다. 우람한 덩치와 외모에 비해, 강찬호는 술을 전혀 하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막걸리 한 사발에 만취가 되었고, 3소대에 패한 쓰라린 아픔을 꼬장으로 대신하고 있는 그였다.

서둘러 화기소대원들이 그를 데리고 그 자리를 벗어난 후, 대대장 이해석이 3소대의 막사를 찾았다.

“사고만 없다면 징계를 내리지는 않을 것이네. 적당히 먹고 즐기며, 힘든 군 생활에 하나의 활력소가 되는 체육대회로 만들게나.”

대대장은 모두를 향해 말한 뒤, 시선을 세령에게 주었다. 그리고 불안한 듯 한 눈빛을 보냈지만, 세령은 매몰차게 시선을 돌린 뒤, 자신의 소대원들에게 고기를 구워 주기 바빴다.

“매정한 놈…….”

표정이 싹 변한 그는 홀로 중얼거린 뒤, 1소대장이 들고 있는 막걸리를 뺏다시피 하여 한 번에 다 마신 뒤, 간부들이 모여 있는 막사로 향하였다.

기분 좋게 모든 부대원들이 식사를 즐겼고, 곧 8강에 오른 소대들은 대진표대로 경기를 치를 준비를 하였다.

8강 역시 전후반 20분씩. 총 40분으로 진행되며, 대진표는 중대별 한 팀씩 각각 다른 중대별로 경기를 치른다.

12중대 2소대와 13중대 1소대가 첫 번째 경기를 치루기 위하여 준비를 마쳤다.

오후에 시작되는 8강 첫 경기는 조금 더 치열한 공방전이 이어졌다. 그로 인하여 고득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첫 경기는 12중대 2소대의 3대1 승리로 끝났다.

두 번째로 이어지는 경기는 12중대 화기소대와 13중대 3소대와의 경기였다. 이 두 팀 역시 강력한 우승후보인 팀이다. 16강 경기였던 15중대 1소대와 2소대의 경기처럼, 또 다시 8강전에서 우승후보 두 팀의 격돌이 이어졌다.

하지만 경기는 의외로 싱겁게 마무리 되었다. 우승후보다운 면목을 보여준 팀은 12중대 화기소대였다.

화기소대만의 강인한 체력으로 13중대 3소대를 7대 0으로 제압하고, 두 번째로 4강에 안착하였다.

이어지는 세 번째 경기는 14중대 2소대와 15중대 2소대였다.

이 경기 역시 이변을 기대하기도 하였으나, 15중대 2소대의 막강화력 앞에서 14중대 2소대는 힘이 없었다.

이연호가 이끄는 15중대 2소대는 전반 시작과 함께 단 5분 만에 3골을 몰아넣었고, 그 후에도 골 잔치는 끝이 없었다. 오히려 이번 대회의 승점지급기는 15중대 3소대가 아닌 14중대 2소대로 보였다. 전후반 40분 동안 이연호의 2소대는 무려 10골을 넣는 폭발적인 공격력을 선보인 반면, 14중대 2소대는 단 한골도 만회하지 못한 채, 8강전에서 물러났다.

이로써 15중대 2소대가 세 번째 4강전에 오른 소대가 되었고, 곧 8강 마지막 경기인 14중대 3소대와 15중대 3소대의 경기가 준비되고 있었다.

“이번에도 이변은 이어 질 것 같은가?”

이해석이 최태윤에게 물었다.

“14중대 3소대는 원래 축구보다는 농구를 좋아하는 소대입니다. 우연찮게 8강에 올랐지만,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15중대 3소대에게 무릎을 꿇을 것 같습니다.”

최태윤이 이해석의 물음에 답하였다.

“뭐, 제 생각도 최대위님과 같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자네 중대 아닌가? 중대 편을 들어야지…….”

두 사람의 옆에서 함께 대화에 끼어든 인물은 14중대장이었다. 그 역시 축구보다는 농구를 좋아하는 타입으로 휴가증 두 장이 걸린 농구에 모든 힘을 다 쏟고 있는 인물이었다. 쟁쟁한 인물들이 모두 모여 있는 축구보다는 비교적 관심이 덜해 유능한 인재가 없는 농구에서 휴가증을 가져가겠다는 그의 전략이었다.

곧 8강 마지막 경기가 시작되었다.

모든 사람들의 관심은 15중대 3소대였다. 이번에도 여전히 세령이 경기에 직접 투입되었고, 16강을 뛰었던 모든 대원들이 고스란히 경기장에 서 있었다.

“3소대 파이팅!”

연동훈은 경기 시작 전, 큰 목소리로 파이팅을 외쳤고, 그의 목소리에 화답하듯 소대원들 모두가 큰 소리로 파이팅을 외쳤다.

그 모습에 세령은 연동훈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미소를 지었고, 연동훈의 얼굴은 또 다시 붉어졌다.

경기가 시작되자, 연동훈은 빠른 공격으로 상대의 수비를 뚫고 전진하였고, 양 옆으로 매섭게 파고들고 있는 세령과 지동현을 본 후, 지동현에게 공을 열어주었다.

지동현은 자신의 앞으로 굴러오는 공을 그대로 찼고, 그 공은 그대로 골망을 흔들었다.

“왠지 어색하군. 3소대가 저런 모습을 보이니, 나조차도 적응이 안 되네.”

단 한 번 공격에 첫 골이 나오자, 이해석이 최태윤을 보고 말했다.

최태윤도 적응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도저히 변할 것 같지 않았던 소대가 지휘관이 바뀌었다는 하나만으로 변화를 시작하였다. 그것도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기에는 부족한 시간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매섭게 몰아붙이는 공격 끝에 전반전을 3대0으로 마무리하였고, 세령은 모든 대원들을 토닥거려주었다.

비록 20분을 뛰는 경기지만 오전 경기로 인하여 피로가 누적되어 있는 상황 속에서도, 이들은 지친 기색 없이 모두 열심히 달려주었다.

5분의 휴식이 지난 후, 후반전이 이어졌고, 역시 연동훈과 세령. 그리고 지동현과 추강의 공격에 힘입어 순식간에 네 골을 더 몰아넣었다.

가끔 기회를 잡은 14중대 3소대의 공격은 철벽방어를 보이고 있는 용지현을 뚫지 못한 채, 단 한골도 만회하지 못하였다.

결국 경기는 7대0으로 마무리 되었고, 이변의 연속이 일어났다. 3소대는 4강이라는 엄청난 성적을 내고 대회첫날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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