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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리거-22화 (22/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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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돌아가는군. 이제 승부는 저 두 사람 발에 달린 것인데.”

결국 끝까지 온 것이었다. 이제 남은 키커 는 각 소대의 소대장인 서재호와 이연호만 남았다. 두 키커가 모두 성공하면 또 다른 키커가 나서겠지만,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실패하면, 이 모든 것의 패배를 제공한 원흉이 되어버리는 순간이 된다. 어쩌면 이 두 사람이 마지막 키커인 것이 두 소대에는 아주 큰 행운일 것이었다.

1소대장 서재호가 다섯 번째 키커로 나섰다. 공을 둔 왼쪽 옆을 꾹 하니 밟은 뒤, 디딤발 위치를 표시하였고, 심판의 휘슬 소리와 함께 천천히 다가선 후, 강하게 밀어 찼다.

‘띵!’

“젠장 할!”

또 다시 서재호의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의 발끝을 떠난 공은 골키퍼를 완전히 속였지만, 골대 윗부분을 맞고 튕겨 나왔다. 1소대는 모두 덜썩 주저앉아 탄식하였고, 2소대는 환호성을 내 질렀다.

“내년에나 보자.”

이연호가 2소대 다섯 번째 키커로 나서며 서재호를 향해 말하였고, 그는 휘슬 소리와 함께,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골대 왼쪽으로 살며시 공을 차 넣었다.

“와아아아!”

2소대는 환호하며 서로 얼싸안았고,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1소대는 1라운드 탈락이라는 쓴 맛을 보았다.

“공은 둥글고, 경기의 결말은 아무도 모른다.”

2소대의 환호성 속에 다음 경기를 치르기 위하여 대기 중인 3소대원 가장 마지막 끝에 서 있던 세령이 중얼거리자, 그 말이 최태윤의 귀에 들어갔다.

그녀가 첫 자대배치를 받고 오는 날, 세령은 최태윤에게 이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공은 둥글고, 우승후보가 탈락후보에게 덜미를 잡혀 짐을 일찍 싸는 경우는 월드컵에서도 허다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조금 전, 바로 그 첫 번째 이변이 일어난 것이었다.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네.”

3소대와 화기소대의 경기를 앞두고, 대대장 이해석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비록 모든 소대에게 공평한 관심을 가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딸이 맡은 소대에게 조금이라도 더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긴장의 연속이 이어진 앞 경기 탓도 있겠지만, 이세령이 이끄는 3소대의 경기를 앞둔 것에 그 긴장감이 더한 모양이었다.

“3소대장은 경기에 직접 참여하지 않나?”

경기 시작을 위해, 모든 선수들이 연병장으로 향하였지만, 세령은 라인 끝부분에 서 있는 것을 본 최태윤이 단상위에서 물었다.

“이래봬도 저 히든카드입니다.”

그녀는 최태윤의 물음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고, 그녀의 말에 주위 대부분의 간부와 병사들이 순간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코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곧 최태윤의 매서운 눈빛에 그들의 코웃음은 멈추었고, 곧 이해석이 자리로 돌아오자, 분위기는 다시 조용해졌다.

“오전 마지막 경기이며, 16강 마지막 경기입니다.”

이번 경기의 심판은 의무대장 소재은 대위가 맡았다. 그녀는 두 소대의 주장을 가운데로 불렀고, 몇 가지 당부의 말을 전하였다.

“싸우지 마라. 그리고 다치지 마라. 만에 하나 부상자가 생겨, 그로 인하여 이번 체육대회를 내가 다 관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면 그 사건을 만든 장본인은 무조건 군기교육대다.”

살벌한 멘트였다. 화기소대 소대장은 우람한 덩치에 인상 더럽게 생겼지만, 군대는 계급사회. 계급 앞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근육일 뿐이었다.

16강 마지막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휘슬 소리가 들렸고, 선축으로 시작한 화기소대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곧바로 앞으로 밀고 들어가며, 공을 끌고 움직였던 민관식이 골대와 약 15미터 거리를 두고 골바로 슛을 날렸다.

‘철렁!’

경기 시작 최단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휘슬을 불고, 채 10초도 지나지 않은 시간에 3소대의 골문이 열렸다.

공을 가지고 들어서는 화기소대의 민관식의 주위에 화기소대원들은 덩치로 밀고 앞으로 전진 만하였고, 가장 앞쪽 서 있던 연동훈을 지나치자마자 마치 아무도 없는 것 마냥 앞으로 쭉쭉 뻗어나간 후, 10초 만에 민관식의 슛으로 첫 득점에 성공하였다.

“아무래도…….”

최태윤이 이해석의 표정을 보며 몇 말을 하려하였지만, 이해석은 두 눈을 아예 감고 있어,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오늘 지면. 잠시 잊었던 악마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경기 재개를 위하여 중앙선에 섰고, 연동훈의 아주 짧은 말이었지만, 그 말 한마디에 3소대 전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의 말처럼 참으로 오랜만에…….아니 연동훈의 밑 군번들은 입대 후, 처음으로 천사 같은 연동훈을 20일간 보았었다. 하지만 그 동안 보아왔던 연동훈의 악마본성을 단 20일 만에 아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 잊었던 그 기억이 다시 새록새록 돋아나고 있었다.

중앙선에서 공을 밟고 있는 연동훈은 오른쪽으로 서 있는 지동현을 보았다. 그리고 왼쪽으로는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서 있는 이민우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3소대 진영 뒤로 돌렸다. 세령의 말과는 다르게 추강은 중앙수비수로 서 있었고, 용지현은 아예 투입되지도 않았다. 또 한 설태구는 좌측 풀백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흔히 보는 프로축구에서는 그 실력으로 선수 포지션을 선정한다. 수비력과 공격력을 고루 본 후, 공격과 수비로 선수들 위치를 배정한다. 하지만 군대는 다르다. 군대는 짬밥 순으로 공, 수가 정해진다. 계급이 높으면 공격이고, 낮으면 수비다. 그것이 군대스리가의 깨지지 않는 오랜 고질병이었다.

연동훈은 시선을 다시 앞으로 두었다. 그리고 심판의 휘슬 소리가 울리자, 이민우에게 공을 전달하였다.

이민우는 갑작스럽게 아무런 사인도 없이 자신에게 공이 전달되자, 허둥거리며 어찌 행동해야 할지 모르는 듯, 망설였고, 그 순간 화기소대 선임분대장인 민관식 병장이 이민우의 옆으로 다가선 후, 허둥지둥 거리는 그의 발밑에 있는 공만 살짝 뺀 뒤, 중앙에서 골대로 향해 돌진하고 있는 소대장 강찬호를 보고 그대로 공을 밀었다.

“오케이!”

아주 정확히 자신의 발로 오는 공에 방향만 틀어준다면 곧바로 골인으로 연결 될 듯하여 기쁜 마음으로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공을 보며 말하였다.

“!!!”

하지만,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현상이 벌어졌다. 화기소대장 강찬호가 거의 자신의 발 앞까지 다가온 공에 발을 들이미는 순간, 육중한 몸으로 그의 앞을 지나치며 추 강이 공을 빼앗았다.

마치 쿵쾅거리는 느낌마저 전해지는 듯한 움직임으로 공을 몰고 앞으로 움직였고, 곧 연동훈이 그의 움직임을 본 후, 화기소대 진영 중앙으로 파고들었다.

‘촤르르르’

추강은 그의 움직임을 본 후, 자신과 연동훈 사이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았고, 곧바로 아주 빠르게 땅에 거의 붙다시피 한 패스를 연결하였다.

상대 골대를 향해 움직이던, 연동훈의 바로 1미터 앞으로 공이 와 닿았다.

‘철렁!’

연동훈은 너무나 정확히 자신의 움직임과 함께, 발을 디딜 수 있는 공간까지 계산 된 듯, 자신의 앞으로 들어서고 있는 공을 향해 아주 강한 슛을 때렸고, 그 공은 정확히 골망을 흔들고 화기소대 골문 안에서 몇 번을 더 퉁긴 후, 멈췄다.

“와우!”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단상위에 있던 모든 간부가 일어나 소리치며 박수를 보냈고, 구경하고 있던 병사들도 얼떨결에 박수를 쳤다.

“대체…….뭐야…….어째 저런 몸으로…….”

연동훈의 골보다 모두의 시선은 추강에게 향해 있었다. 전혀 예상이 되지 않은 그의 움직임. 125kg에서 배를 좀 밀어 넣었어도, 120kg은 넘는 거구의 몸이었다.

조금 전의 움직임은 그 거구의 몸에서 나올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결승가자!”

이번엔 모두의 시선이 세령에게 향하였다. 고작 한 골을 넣은 것으로 세령은 아주 큰 목소리로 외쳤고, 그 목소리에 단상위에 있던 사람들은 물론, 병사들도 어이가 없다는 듯 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보았다.

비록 모두를 혼란에 빠뜨리는 첫 골을 넣었지만, 그것만으로 결승을 외치는 것은 너무 과장된 표현이라 여겼다.

“저 놈 뭐야? 어찌 저런 몸에서 조금 전과 같은…….”

“화기소대장님께서도 그 버릇은 고쳐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을 어찌 외모만 보고 모든 결론을 미리 내다보십니까?”

강찬호가 조금 전의 상황을 아직도 믿지 못한다는 듯 한 표정을 지은 채 말하였다.

그 말을 연동훈이 들었고, 그는 강찬호를 향해 쓴 소리를 내뱉었다. 그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곧 소재은이 강찬호의 어깨를 톡톡 쳤다.

“네 의무대장님.”

“연동훈 병장 말이 맞아. 국제 경기에서도 인격모독은 곧 퇴장감이야. 이대로 연병장 밖으로 나갈래?”

“아…….아닙니다.”

소재은의 한 마디에 강찬호는 바로 꼬리 내렸고, 다시 매서운 눈빛으로 자신의 소대원들을 고루 보았다.

1대1로 서로 팽팽함을 유지한 채, 다시 화기소대의 공격이 이어졌다. 여전히 큰 덩치로 거의 밀고 들어오다시피 아무런 방해도 없이 들어서고 있었고, 또 다시 짧은 시간에 3소대의 골대 앞까지 다다랐다.

‘철렁!’

한 번 공격에 한 골씩이었다. 이번엔 추강이 있는 중앙이 아닌, 왼쪽으로 공격을 시작하였고, 그 끝도 왼쪽에서 맺어졌다. 단 한 번의 패스를 받은 후, 왼쪽에서 골문까지 밀고 들어간 화기소대 박호연 병장은 그대로 골대를 향해 툭 차 밀었고, 공은 강하지도, 빠르지도 않았지만, 골문 안으로 천천히 굴러 들어갔다.

중앙에는 추강이 서 있었고, 설태구는 오른쪽으로 서 있었다. 추강에 의해 미리 선수파악을 하지 못한 화기소대가 설태구마저 피하며, 왼쪽 공격을 자행한 것이 적중하였다.

“삐삑‘

2대 1의 상황이 이어졌고, 전반 전 끝날 때까지 두 팀 모두 별다른 득점이 없었다.

“잘했어. 고작 2대1이야. 지난해 30대0에 비하면 우린 프리미어리그 승격과 다름없는 결과를 만들고 있어, 그러니 후반전에도 힘내자.”

“저기…….소대장님.”

전반전을 끝내고 들어온 대원들에게 일일이 어깨를 쳐주며 세령이 파이팅을 외쳤다. 그리고 곧 이민우가 그녀를 불렀다.

“사실…….쪽팔린 얘기지만, 너무 오랫동안 뛰어본 경험이 없어, 숨이 찹니다. 후반전을 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민우의 말에 연동훈이 그를 노려보았다. 이민우는 자신이 한 말처럼, 훈련도 웬만하면 아프다는 이유로 열외를 받고 있었다. 그다지 뛰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신체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기에, 입대한 것이었고, 입대 후에도 많은 핑계를 만들어 되도록 훈련을 열외한 그였다.

“그래. 어쩔 수 없지. 대회보다는 건강이 우선이니까 말이야. 그럼 후반전엔 좀 바꾸자. 용지현이 골키퍼로 들어가고, 민우 자리에는 내가 선다.”

“네?”

연동훈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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