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0 히든리거 =========================================================================
두 사람은 화기소대 주축답게, 우람한 덩치에 새까만 피부까지, 마치 용병만 모아놓은 소대로 느껴졌다.
“이번엔 초반부터 진검승부네 2소대장.”
그리고 빅매치인 우승후보 1소대와 2소대의 경기가 첫 경기부터 잡혔다. 1소대장 서재호는 2소대장 이연호를 보며 말하였고, 이연호는 그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첫 경기가 화기소대라니. 나약한 3소대를 대비하여 의무대에 있는 우리 소대원들에게 자리 좀 비워두라 일어야겠군.”
서재호는 세령을 보며 비웃듯 말한 뒤, 행정반을 나섰고, 모두 떠난 자리에 세령과 연동훈만이 남아 있었다.
“최상의 대진표야.”
“네!”
진정 이해할 수 없는 그녀였다. 모두가 승점지급소대라 말하고 있는 3소대를 비웃지만, 그녀는 오히려 3소대를 제외한 모든 소대를 비웃는 듯 해 보였다.
“소대장님. 이게 무슨 최상의 대진표입니까?”
연동훈이 물었다.
“일단 화기소대를 제물로 우린 몸만 풀고, 다음 경기인 1소대와 2소대의 승자와 겨룰 때, 조금 더 몸을 다듬고, 또 다음 날 있을 4강 경기 때, 몸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결승전때. 우리의 모든 실력을 다 보여준다. 이상.”
세령은 대진표를 보며 당찬 각오를 말한 뒤, 행정반을 나섰고, 그녀가 나서고 난 뒤, 연동훈은 행정병 이무연을 빤히 보았다.
“연동훈 병장님. 말년에 코미디 많이 보시겠습니다.”
이 역시 비웃는 말이라 할 수 있지만, 연동훈은 이무연의 말을 듣고도 무반응이었다. 잠시 동안 계속 대진표만 보고 있던 그는 3소대로 향하였고, 소대로 들어서자마자 놀란 눈으로 소대 안을 보았다.
“일어나 이민우!”
세령은 모포를 뒤집어쓰며, 지금까지 연습을 하였지만, 절대 경기에는 나서지 않을 것이라 버티고 있는 이민우를 강제로 침상 아래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싫다는 놈에게 강요하지는 마십시오.”
연동훈은 놀란 눈을 진정한 후, 소대로 들어서며 말하였다.
“강요가 아니라, 부탁이야. 축구는 11명이 하는 것이고, 근무자 및 당일 면회자를 제외하면 11명 맞추기도 힘들어. 그러니 한 놈이라도 발을 보태야 해! 일어나 이민우!”
세령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민우는 모포를 완전히 몸에 칭칭 두르고 그녀의 힘에 반격하고 있었고, 한 동안 두 사람의 힘겨루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팟!’
그 순간 연동훈이 모포의 끝을 잡아 힘차게 잡아당겼고, 그 충격에 모포에 둘러싸여 있던 이민우의 엉망이 된 모습이 보였다.
“너도 말했듯이 조용히 가자. 너나 나나 제대 말년에 꼬이지 말자. 그냥 군대에 있는 시간이니, 그 시간만큼은 마음에 없더라도, 함께 뛰자.”
연동훈의 말에 또 다시 모든 소대원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퍽!’
하지만 세령은 달랐다. 멋진 말을 한 듯 보이지만, 세령의 팔꿈치가 그의 복부를 쿡 내리 찔렀다.
“뭡니까?”
“멋지게 말하는 것 같은데. 내가 소대장이다. 내가 애써 부탁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네가 선임이라고 명령내리면, 내가 뭐가 돼? 이놈은 내 부탁이 아닌, 네 명령으로 공을 찰 것이잖아!”
세령은 이민우를 등지며 연동훈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말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연동훈의 눈을 보며 계속적으로 윙크를 하였고,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연동훈은 얼굴만 빨개지고 있었다.
“아…….젠장…….”
수차례 눈으로 사인을 주었지만, 그 내용을 알아듣지 못한 연동훈에게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며 말하였다.
“하나같이 융통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놈들…….내가 윙크하며 신호를 보내면 좀 더 확실하게 밀어붙여 달라는 뜻인데, 그걸 보고 무슨 얼굴이 빨개져. 그리고 이민우!”
“병장. 이민우.”
“넌. 그래도 내가 소대장인데, 명령이 아닌 부탁을 해도 들어줄 생각조차 없냐!”
세령은 두 병장을 다시 한 번 고루 본 뒤, 소대를 나가버렸고, 갑자기 썰렁해진 분위기속에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젠장…….어렵다. 나 모태솔로다. 여자가 행동으로 뭔가 말하는 것은 몰라. 말로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무슨 행동으로 한다고 알겠어. 이민우. 꾹 참고 한 경기만 뛰어라. 어차피 첫 상대가 화기소대라, 첫 경기가 마지막 경기다. 결승을 제외하고는 체력안배상 전후반, 각각 20분씩 뛰는 것이니까. 딱 1시간만 투자해라.”
세령이 계속적인 윙크로 부탁한 말이 바로 이 말이었다. 하지만 연동훈은 수차례 신호를 준, 세령의 힌트에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고, 그녀가 나간 후에, 그녀가 원하는 답을 이민우에게 하고 있었다.
이민우는 모포를 들어 주섬주섬 챙긴 후, 다시 자리에 누웠다.
“젠장…….체육대회 당일…….경기 시작 전 부르십시오.”
모포를 뒤집어 쓴 후,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였고, 연동훈은 미소를 지은 뒤, 소대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틀의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체육대회 당일 아침이 밝았고, 그 어떤 날보다 컨디션이 좋은 듯, 3소대의 모든 소대원들의 얼굴이 환해 보였다.
“모두 활동복으로 환복 한 후, 근무자와 면회자를 제외한 모두 집합한다.”
연동훈은 조식을 마친 후, 소대원들에게 말하였고, 자신이 가장먼저 활동복으로 환복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움직이자, 하나, 둘 소대원들도 활동복으로 환복을 시작하였고, 소대 앞을 지나가던 최태윤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우고 있었다.
“3소대의 변화가 빠르군요.”
행정반으로 돌아온 후, 원사 박만둘을 보며 말하였다.
“꼴통소대의 변화라…….기대됩니다.”
박만둘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단 20일 만에 일어나고 있었다. 뭉개져버렸던 3소대의 지난 과거를 모두 본 사람은 박만둘이 유일하다. 기존 암흑 속 세월을 보냈던 사병들이 모두 제대하지 않는 한, 절대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3소대가. 새로운 소대장을 맞이한 후, 단 20일 만에 변화기 시작한 것에 자신 스스로도 쉽게 믿지 못한다는 표정이었다.
4대대 체육대회를 알리는 대대장의 연설과 함께, 축구로 인하여 이틀 동안 진행되는 체육대회가 막을 올렸다.
연병장 사방 끝부분으로 천막이 세워지고, 그 안에는 각 소대별로 군부대에서 지급한 음료와 함께, 부대 인근 민간인들이 제공해준, 각종 먹거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체육대회는 군부대의 단합과 함께, 병사의 사기를 올려주기 위하여 대대별로 해마다 진행하고 있으며, 그 규모는 대대나 연대, 사단별로 각기 다르다. 하지만 모든 군부대가 집중하며, 가장 많은 휴가증이 걸린 축구에 사활을 건 것은 어느 부대 할 것 없이 모두 공통적이었다.
대회시작을 알리는 모든 단계가 끝난 후, 12중대부터 축구시합이 시작되었다.
12중대에는 강력한 우승후보소대인 화기소대의 막강 공격력이 시합 초반부터 불을 뿜고 있었다. 화기소대와 경기를 가지고 있는 12중대 1소대는 단 한골도 획득하지 못한 채, 전반에만 무려 7골을 헌납하고 난 뒤, 후반 들어 의지가 꺾인 듯, 내리 10골을 다시 헌납하였고, 거의 2분당 한 골씩을 허용한 듯 17대 0으로 경기를 마감하였다.
체육대회 첫날, 첫 경기부터 엄청난 공격력을 내 보이며, 다음 라운드에 오른 12중대 화기소대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대장에게 경례한 뒤, 연병장을 빠져나왔다.
12중대 1소대부터, 15중대 화기소대까지, 총 16개 소대가 16강부터 시작한 경기는 초반 12중대 화기소대의 8강 진출을 시작으로 점점 열기를 더해가고 있었다.
사실 체육대회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그 중심은 오로지 축구였다. 구석에서 족구와 함께, 배구 및 농구도 진행 중이었지만, 축구에 비해 시선을 끌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족구가 축구에 이어 두 번째로 관심이 가는 종목이지만, 축구가 시작되면 여지없이 구경꾼들은 축구로 눈길을 모두 돌렸다.
이어진 경기에서 12중대 2소대가 3소대를 누르고 8강에 안착하였으며, 13중대 1소대와 3소대도 각기 2소대와 화기소대를 누르고 8강에 안착하였다.
중식 전, 16강 경기를 모두 치르기 위하여 경기가 끝나자마자 다음 경기가 바로 속행되었고, 이어서 14중대 2소대와, 3소대가 8강에 합류하였다.
“곧 빅매치가 이어지겠군요.”
14중대까지 모든 경기가 끝난 후, 15중대장이 단상에 앉은 대대장에게 말하였다. 대대장 이해석은 사실 타 중대의 경기보다 자신의 딸이 속해 있는 15중대의 경기에 더 많은 관심이 가고 있었다.
곧 15중대 1소대와 2소대가 경기시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4대대 전체 경기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두 소대간의 16강 경기는 이미 경기를 치른 소대는 물론, 경기를 준비 중인 15중대 3소대와 화기소대의 모든 시선을 받고 있었다.
“이거 애석하게도 천하의 1소대가 16강 탈락이라는 이변을 안고 쓸쓸히 이번 체육대회에서 사라지겠는데.”
“하하하. 어찌 그 말이 꼭 2소대에게 더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아?”
경기 시작을 앞두고, 두 소대장은 일종의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서로 동기이기에 말은 편하게 하지만, 그 말 속에는 서로를 밟아야만 사는 무서운 뜻이 담겨 있었다.
“자! 오늘 1소대를 잡으면, PX 전세 낸다!”
2소대장 이연호의 도발이 먼저 시작되었다.
“오늘 2소대가 PX청소를 해 둔다고 하니, 깨끗한 PX에서 스모크 치킨이나 즐겁게 뜯어보자!”
서재호도 만만치 않았다. 두 사람의 신경전이 잠시 있은 후, 심판의 휘슬이 울렸고, 빅매치가 시작되었다.
각소대의 진정한 능력을 보여주기에는 전, 후반 각 20분씩, 총 40분이란 시간이 굉장히 짧은 시간이지만, 정해진 이틀 안에 모든 경기를 다 소화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경기가 시작되고, 두 팀은 우승후보답게 공방이 아주 치열하였다. 마치 프로팀의 경기를 보는 듯, 정교한 패스와 짜임새 있는 전술. 두 소대장은 각기 감독이면서, 선수로 뛰고 있었고, 경기 중,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야! 반대로 넘겨!”
힘차게 공을 차며, 1소대의 오른쪽 측면을 휘젓고 골대를 향해 돌진하는 대원에게 2소대장 이연호가 큰 소리로 말하였고, 골대를 향해 슛을 준비 중인 대원은 갑작스럽게 들린 이연호의 목소리에 슛이 아닌 자신이 서 있는 오른쪽 측면에서 왼쪽 측면 끝에 있는 이연호를 향해 긴 패스를 하였지만, 그 공은 이연호의 발끝에 닿지 않고 골라인 아웃되었다.
“젠장…….”
대원은 인상을 찌푸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하였고, 그 목소리는 이연호에게 들리지 않았다.
“야! 공이 너무 길잖아! 다음부터 잘 보고 해!”
이연호는 대원을 향해 큰 소리로 말한 뒤, 다시 자신의 위치로 서서히 움직였고, 2소대의 실수 후, 공격을 시작하고 있는 1소대는 중앙에 있는 서재호에게 곧바로 공이 연결된 뒤, 빠르게 2소대 골문을 향해 들어가고 있었다.
서재호의 양 쪽 사이드로 두 윙어는 그의 진입속도에 맞춰 전진하였고, 전방에 수비수 두 명이 자신의 곁으로 다가서고 있는 것을 본 1소대장 서재호가 다시 시선을 양쪽으로 돌리자, 먼저 치고 들어가는 왼쪽 윙어 소형석 병장에게 땅으로 깔리는 빠른 속도의 전진패스를 찔러주었고고, 소형석은 서재호에게 받은 공을 그대로 골대를 향해 강하게 때렸다.